주님 위해 핍박 받는 사람들

                                                                                                    -리챠드 범블란트


                                        4  예수님의 사랑으로 (3)


   왜 내가 서방세계에서 고난 받는가?


   나는 정신적으로 볼 때 루마니아에 있을 때보다 서방세계에 있을 때 더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지하교회를 그리워하며 애통해합니다. 아래의 옛 라틴어 격언이 바로 그 지하교회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벗은 자들이여, 벗으신 그리스도를 따라 가라."

   사회주의 나라에서 예수님과 예수 믿는 사람들은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집을 지어서 뭘 합니까? 체포되어 잡혀가면 곧 몰수되니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집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그 집이 욕심난 보위원들은 그들을 잡아가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는 일이나 가족들과 작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어머니며, 누가 형제 자매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우리의 어머니이며 형제인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고발하고, 자식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고발하는 혈육관계도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 오직 주님 안에서만이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지하교회는 가난하고 고난 받는 교회이지만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볼 수 없습니다. 지하교회의 예배는 1,900여 년 전의 초대교회와 같습니다. 말씀 전하는 자는 복잡한 신학을 모르며 베드로처럼 설교법도 모릅니다. 성경이 거의 없으므로 성경 구절도 잘 알지 못합니다. 설교자는 감옥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크므로 성경을 읽을 기회는 더 적은 것입니다.

   지하교회의 성도들은 비록 감옥에서 고문 받고 굶주림을 당했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들은 욥이 고백했던 것처럼하나님께서 자기를 죽이실지라도 그분을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버림을 당하시면서도 하나님께 "아버지"라 부른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을 끝까지 붙듭니다.

   지하교회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텅빈 서방교회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내 눈으로 서양문명이 기울어져가는 것을 보며 이전에 감옥에 있을 때보다 더 큰 아픔이 있습니다.

   오스왈드 스펭글러는 "서양의 쇠퇴"라는 저서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너는 멸망해가고 있다. 나는 너에게서 쇠퇴의 특징들을 다 보았다. 나는 너의 빈부격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전쟁과 혁명, 무신론과 염세주의, 그리고 너의 부도덕과 너의 파괴된 결혼, 너의 산아제한 등 모든 것이 너를 위협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고대의 알렉산더와 희랍, 그리고 로마의 멸망의 징조이기도 하였다."

   이 글은 1926년에 쓴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구라파의 절반 지역과 쿠바가 이미 고꾸라졌으며 서양의 나머지 부분도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입니다. 동구라파의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실망하고 환멸을 느끼고 있는 반면 서양의 공산주의자들은  아직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폭행과 핍박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지칠 줄 모르게 가는 곳마다 공산주의를 선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미지근하게 대하지만 그들은 거짓된 것을 열성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서방의 신학자들은 하찮은 일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1493년에 모하메트 2세의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여 발칸 지역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것인지 모슬렘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시기에 그곳의 교회의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성 마리아의 눈은 무슨 색일까? 천사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만약 파리가 성수에 빠지면 파리가 성스럽게 되는가, 물이 오염되는가? 등의 문제였습니다.

   이는 전설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간행물들을 보면 이와 같은 문제들이 논의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학적인 문제, 의식에 관한 문제 그리고 중요치 않은 문제들만 끝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잡담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서서히 침몰되는 배에서 단 한 권의 책만을 가지고 외딴 섬으로 탈출해야 한다면 당신은 무슨 책을 가져갈 것입니까?" 그러자 한 사람은 "성경"이라고 대답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세익스피어 문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문제를 제사한 사람이 정답을 밝혔습니다. "나라면 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을 골라서 배를 만들어 돌아가서 내가 보고 싶은 책들을 마음대로 읽겠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자유가 없이는 다른 그 어떤 문제도 중요한 것이 못됩니다. 우리는 교파와 신학적인 문제를 떠나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을 물리치고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사회주의 나라들의 교회는 더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나의 마음은 그들과 함께 있으며 나도 그길을 걸어왔으므로 그들의 고난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공산국가에서 고난 받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핍박자들의 영혼이  영원한 형벌 아래 있게 될 것을 생각하면, 고난 받는 성도들을 돕지 않고 있는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합

 니다.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에도 조용히 안락한 생활을 하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눈앞에서 기승을 부리는데 어떻게 앉아 보고만 있겠습니까? 공산당은 대부분의 교회들을 철폐하고 한두 개만을 남겨 놓고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며 마치 공산국가에서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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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지워 부담을 덜려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들과 타협하는 서방교회지도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오래 전부터 있는 것이며 그들은 단지 이 죄의 희생자들일 뿐입니다. 교회의 혼란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나는 서방에 이주한 후 많은 신학교들을 방문했습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을 보면 교회의 종파의 역사, 성찬식, 음악의유래, 그리고 옛날 교회의 교리와 같은 것이었으며, 창세에 관한 내용들이 거짓되며, 아담과 홍수의 이야기, 그리고 모세의 기적들도 없는 일이며, 예언들은 그 일들이 일어난 다음에 쓰여진 것이고, 처녀가 잉태했다는 것도, 예수님의 부활도 전설에 불과하며, 예수님의 뼈가 어느 고장의 무덤에 묻혀 있다든지, 사도들의 서신도 위조된 것이며, 계시록은 어느 미친 사람이 썼다는 등의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신성한 책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교회 지도자들이 신학교에서 배워온 것이며 그들의 생활환경입니다. 이런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을 믿는 다고 말할 수 읶겠습니까? 하나님은 죽었다고 가르치는 교회의 지도자가 교회를 위한다면 얼마나 위하겠습니까? 그들은 종교 지도자인지는 모르나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하교회의 성도들, 순교자들을 만나면 이상한 사람들을 본 것으로 여깁니다.

   사람들의 일부만을 보고 그를 판단하는 것은 옳은일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하여 모든 것을 부정한 바리새인과 같게 됩니다. 공산주의에 대하여는 그릇된 견해를 가졌다 할지라도 다른 면에서 옳을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성실한 분일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들이 다 틀렸을지라도 고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한때 공산당과 결탁한 한 동방정교 대주교와 함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탕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서면 다 받아주십니다. 주교라 할지라도하나님은 기뻐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는 무신론 논문을 써서 빨리 석방되길 원했던 한 동방정교 사제와 같은 감방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는 그 논문들을 다 찢어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므로 그는 영원히 풀려나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부담을 안기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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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또 하나의 아픔이 있습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마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공산주의자들을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문헌 작가 글리우디 몬테피오르는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라 하신 그분의 명령과 모순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은퇴한 런던 성 바울 교회의 목사인 마태 박사는 이는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된 말이며 예수님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가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몬테피오르의 관점은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지만 그들은 사랑하셨습니다. 나도 공산주의자들과 교회 안의 친공산주위자들을 사랑합니다.

   내가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최종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산당의 목표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소금이나 광물질이 된다는 유물론의 차원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학과 종교"라는 잡지에 이런 글을 실었습니다. "종교는 공산주의와 모순될 뿐 아니라 적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방침은 신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여 인민 대중을 영원히 종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함으로 종교에 큰 타격을 안기는 것이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공존할 수 잇습니까? 공산주의의 말을 빌려 해답을 드린다면"...공산주의는 종교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길 것이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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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위해 핍박 받는 사람들

                                                                                                               - 리챠드 범블란트

                                    2  더 큰 사랑이 없나니...(1)


   나는 1948년 2월 29일까지 지하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했습니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 예배당으로 가는 도중 보위원들에게 납치되었습니다. 나는 성경에서 사람의 생명을 노략하는 "절도요 강도"라는 단어를 여러 번 보아왔지만 그날 그 뜻을 실감나게 배웠습니다.

   그 당시 그들의 납치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갑자기 지프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추더니 4명의 보위원들이 뛰어내려 나를 무작정 차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나는 8년 동안 나의 생사여부를 아는 사람이 없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보위원들은 석방된 나의 감옥 친구로 가장하여 나의 아내를 찾아가 자신들이 나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가슴이 터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당시 감옥은 각 교파에서 잡아온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성직자는 물론 농민, 청소년들까지 예수를 믿는다면 다 잡아갔습니다. 투옥은 곧 고문을 의미했습니다. 내가 겪었던 고문들에 대하여는 얘기하기도 싫습니다. 고문을 받는 날은 통증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고문들


   후르레스끄라는 성도는 죽도록 매를 맞고 붉게 달아오른 쇠갈고리와 칼로 고문을 당했습니다. 간수들이 굶주린 쥐들을 감방에 들여놓아. 그는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눈을 잠시 붙이려면 쥐들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쥐들을 쫓아야만 했습니다.

   간수들은 그를 2주일동안 밤낮으로 세워놓고 동역하는 성도들을 배반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의 14살 난 아들을 데려다 그의 앞에서 사정없이 채찍질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이들에게 말해야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러자 그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주님을 파는 아버지를 원치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십시오. 만약 이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예수님과 조국을 위하여 죽을 것입니다."

   악에 찬 간수들은 소년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였습니다. 감방 벽은 붉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소년은 주님을 찬양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우리의 두 손목은 안쪽이 톱날로 된 족쇄에 채워졌습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이 없지만 추운 감방에서 추위에 떨면 우리의 손목은 찢어져 피가 흐릅니다.

   보위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거꾸로 매달고 채찍으로 내리쳤습니다. 그들은 얼음으로 덮인 냉동실에 성도들을 잡아넣었습니다. 나도 속옷만 입고 끌려들어갔습니다. 의사는 작은 구멍으로 우리를 관찰합니다. 만약 우리가 얼어죽을 것 같으면 그는 간수들을 시켜 우리를 따뜻한 방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 풀리면 그들은 우리를 다시 냉동실에 잡아넣습니다. 이런 고문을 여러 번 반복적으로 가합니다. 그로 인해 나는 지금까지도 냉장고 문 열기를 꺼려합니다.

   또한 보위원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우리 몸보다 조금 더 큰 나무통에 넣고 고문했습니다. 그들은 이 작은 나무통 안 벽 사면에 수많은 못을 박아 놓습니다. 우리가 지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못에 찔려 고통을 받습니다.


   공산당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한 잔인한 고문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나는 직접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문을 가할 때 얼굴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가 바로 마귀다"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악한 세력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귀의 악한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 즉 하나님의 영입니다. 나는 종종 고문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동정심이란 말을 아시오?"

   그러면 그들은 레닌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계란을 볶으려면 껍질을 깨야 하며, 나무를 베려면 톱밥이 날리기 마련이다."

   "나도 그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지금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감각 없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유물론에 젖어있는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소용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물질 밖에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나무와 계란껍질과 같은 물질로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극도로 잔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잔인한 무신론주의자들은 나쁜 일을 하면 화가 돌아 오고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도 믿지 않으니 사람됨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핍박자들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없다. 그리고 내세도 없고 죄에 대한 심판도 없으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이런 괴변을 늘어놓습니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의 잔인한 수단과 방법을 다 쓸 수 있세 해준 하나님을 감사하고 있다."

   이들은 감옥에서 악명 높은 핍박자였습니다.

   우리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책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어는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악어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책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사람으로서의 가장 초보적인 도덕과 양심이 없으며, 또 이것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내가 이들로부터 배운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주님을 끝까지 부인하는데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사단 마귀와 싸워 우리 마음에 틈새를 남겨주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미국 상원 안전위원에서 이와 같은 무서운 고문에 대하여 간증했습니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4박 4일동안이나 십자가에 매달아 놓은 후 그들을 십자가에 매단채로 마루에 눕힙니다. 그리고는 수백 명의 죄수들을 강제로 그 묶인 사람의 얼굴과 온 몸에 소변을 보게 합니다. 그런 다음 다시 십자가를 세워 놓습니다 그리고는 비웃습니다.

   '보라, 너희들에게 천국의 향기를 가져다주는 예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한 목사는 고문을 너무 많이 받아 거의 정신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억압에 못 이겨 대소변을 성도들에게 분배했습니다. 후에 나는 그에게 "조롱당할 바엔 죽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나를 판단하지 마시오. 나는 예수님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한 묘사와, 단테의 "지옥"에서 묘사한 고통은 공산당 감옥에서 행해진 잔인한 악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상의 실례들은 많은 핍박 중에 극히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일들을 글로써 남기기에는 너무나도 무섭고 잔인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철의 장막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겪어온 고난의 길이며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길입니다.


   옥중에서 하나님의 충실한 아들로, 영웅으로 인정받은 성도중의 한 사람인 밀탄 하이모비치는  자진하여 다른 형제들 대신 매를 맞곤했습니다. 감방에는 "죄수"들이 너무 많아 간수들은 우리를 잘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감옥의 규율을 어긴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면 자신이 나가 그 사람을 대신해 맞곤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공산당이 성도들에게 가한 각종 폭행들을 여기에 다 적을 수 없으며, 또한 성도들이 발휘한 희생정신과 영웅적인 사실들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옥중에서 우리 형제들이 받은 고난과 희생, 불굴의 투쟁정신은 자유세계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크게 고무했습니다.


   우리 지하교회의 한 젊은 자매님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을 가르쳤습니다. 결혼 식 날 그녀는 곱게 차려입고 기쁨에 넘쳐있었습니다. 갑자기 보위원들이 문을 박차고 결혼식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안 신부는 태연하게 두 손을 내밀고 수갑을 채우게 한 다음 신랑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나는 나의 결혼식 날에 내게 이 수갑을 선물하신 하늘에 계시는 나의 신랑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깁니다"라고 말하고는 끌려갔습니다.

   5년 후 그녀는 풀려 나왔으나 많은 고난을 겪어 30살이 넘은 아주머니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위하여 이런 희생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지하교회의 모습입니까?


   세뇌교육의 실상


   6.25전쟁과 월남에서 실시한 세뇌정책에 대하여 서방 사람들은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세뇌 교육을 받았습니다. 세뇌교육 날에는 17시간 동안 이런 것들을 들어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제일이다!

   공산주의는 제일이다!

   공산주의는 제일이다!

   기독교는 어리석은 것이다.

   기독교는 어리석은 것이다.

   포기하라!

   포기하라!

   포기하라!

   포기하라!

   포기하라!


   며칠 동안, 몇 주 동안 심지어 몇 달 동안이고 우리는 계속하여 하루에 17시간 동안 이런 말들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세뇌교육을 견뎌냈는가를 물어봅니다. 이것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씻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깨끗이 씻겼고 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모든 고문을 다 견딜 수 있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만일 우리도 그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면 그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견디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있는가를 보십니다.

   나는 철의 장막 속의 성도들이 주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간증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는 고문이 그칠 때가 없습니다. 내가 의식을 잃거나 혼수상태에 빠지면 보위원들은 나를 감방에 던져 넣고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면 고문을 계속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무참히 맞아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몇 차례의 이런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나는 잡혀있는 기간에 여러 곳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네개의 척추와 많은 뼈들을 골절시켰으며 12군데의 칼자국과 18개의 화상자국을 남겼습니다. 후에 의사들이 이 모든 것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죽었어야 했습니다. 나도 내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어 나로 하여금 철의 장막 속의 지하교회가 겪는 이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도록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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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윌리암 맥도날드

                                          21장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1942년 나는 캔자스시티 패어팩스 지방에 위치한 미 공군기지에 배속되었습니다. 당시에 미국은 2차대전에 참전 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복무하는 동안 나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로 파견 근무를 명받았습니다. 수요일 밤 10시에 떠나야 했습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는데, 당시는 비행기 여행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널찍하고 값싼 군인용 숙소에서 좀 불안한 마음으로 쉬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공군기지에 가서 비행기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작전실 벽에 비행 일정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탈 비행기는 대대에서 가장 낡은 기종이었습니다. 조종사의 말이, 여기 저기 손보지 않은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 조종사도 비행경력이 별로 없는 신참이었습니다. 조종사가 신참이니 부조종사는 얼마나 더했을까요. 그밖에 물어볼 것은 한가지뿐이어서 나는 기상실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오클랜드 사이에 날씨는 어떻지요?"

   "날씨가 정말 알고 싶나요?"

   왠지 불길한 어조로 되물었습니다.

   "예, 알고 싶습니다."

   "온 종일 잔뜩 찌푸렸지요."

   그 순간 나는 이런 말씀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벧전 4:7).


   기상실 병사는 날씨가 안 좋아 유감이라며, 9시 50분에 차를 보낼테니 숙소에 돌아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제 곧 영구차가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방에 돌아와서는 이 밤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연민 속에 한 동안 뒤척이다가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습구나. 네 믿음이 어디 있지? 너는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곤경에 처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지?"

   "하나님 말씀을 폈지. 하지만 성경 어디를 펴야하지?"

   "그리스도인들이 위로를 받고 걱정 근심에서 풀려나기 위해 보통 어디를 펴지?"

   "시편을 피겠지. 하지만 시편 어디를 읽어야 하지?"

   "처음부터 시작해볼까?"

   나는 시편을 펴서 처음부터 읽었습니다. 그러나 내 절박한 상황에 적용할 만한 말씀이 안 보였습니다. 2편을 읽었습니다. 흰종이에 검은 글씨뿐이었습니다. 3편을 읽었습니다. 곤고한 심령을 위한 평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4편을 펴니 한 구절이 네온사인처럼 밝게 빛났습니다. 8절이었습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아니었습니다. 조종사가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주님 손에 있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요?


   나를 태우러 차가 왔을 때 운전수는 곤히 자는 나를 깨워야 했습니다. 시편 4편 8절이 달콤한 잠을 자게 한 것입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나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또 잠에 떨어졌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오클랜드에 다 왔다는 안내방송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내 곁에 앉아있던 한 장교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곤히 잠잘수 있는지 의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까지 비행기를 타면서 최악의 폭풍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번개가 날개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내가 곤히 잠들 수 있었던 것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나는 근심 걱정이 한 짐이었지만 주님께서 평안을 주셔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구절을 통해 1942년에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분명 그날 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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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 12 과

                                         본문 : 창세기 39장-41장


                           억울한 누명을 쓴 자

                                                (Bum Rap)


   성(sex), 음모(frame-ups), 치욕(scandal), 억울한 누명(bum rap) 서로 엮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야곱의 총애를 받던 요셉, 훤칠한 키에 햇볕에 잘 그을린 피부, 그리고 빼어난 용모의 미소년, 그는 열일곱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를 질투하는 이복형제들에 의해 종으로 애굽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을 섬기는 종이 되었습니다.

   요셉 개인을 볼 때, 그의 생애는 보기 드물게 흠이 없었습니다. 성경 가운데 흠 없는 삶을 산 몇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예- 노아, 다니엘, 욥(겔 14;14)>. 물론 그에게 죄의 성품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 중에 그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10). 그렇지만 요셉은 진심으로 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경건한 유대인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항상 순종하며 따랐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었고, 충성스럽고, 그리고 뛰어난 상식과 출중한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는 그의 주인의 전폭적 신뢰와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이제 보디발의 아내의 등장입니다. 그녀는 거만하고, 음탕하고 그리고 포악스런 여인이었습니다. 하루는 가사를 돌보기 위해 집으로 들어선 요셉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침실로 함께 들어갈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녀의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말하였습니다. "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나는 나를 신뢰하고 모든 가사를 내게 맡긴 당신의 남편을 거역하는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배신과 누명 (Double-cross And The Big Frame)


   날마다 그녀는 요셉에게 자신의 침실로 함께 가자고 졸라댔고, 그럴 때 마다 요셉은 그녀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요셉은 여전히 자기 주인의 부인에 대해서 완벽한 태도와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와 같은 요셉의 훌륭한 태도가 아니라 요셉,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계교를 발휘하여 요셉을 유혹해 보려고 하였으나 요셉은 여전히 그의 주인 보디발에게 감사하며, 오직 그에게 충성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을 알게 된 이 음탕한 여주인은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하루는 요셉의 옷자락을 굳게 움켜쥐고, 마치 명령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나와 함께 나의 침대로 가자!" 그때 요셉은 그녀가 움켜쥔 자신의 외투를 벗어던져 버리고 그녀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아마 당신은 그와 같은 요셉의 태도를 남자 답지 못한 연약함으로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약함이 아니라 죄를 대항하여 싸우는 강함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습니다.

   "너희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도록 하라"(딤후 2;22).

   우리는 결혼 이외의 어떠한 성적 음행도 피해야합니다(고전 6:18). 우리는 모든 유형의 죄의 유혹으로부터 피해야합니다.

   여하간, 그녀 침실 안에 한 남성의 외투가 남겨진 것에 대해서 은근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 그녀는 외투를 한 곁에 접어두고,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마자 한 걸음에 달려 나아가 그녀는 요셉에 대해서 온갖 거짓말로 중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요셉의 외투를 들어 보이며 그가 내 침실로 들어와 나를 겁탈하려함으로 내가 소리를 질렀더니 이 외투를 벗어 던져 버리고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 외투는 변명할 여지없는 그 증거물이라고 꾸며댔습니다.

   아내의 말만 듣고 몹시 분개한 보디발은 즉시 요셉을 자기 집에 있는 감옥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적반하장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요셉은 정직했고, 흠 없는 생활을 했건만, 이게 웬 일일까요! 그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때때로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종종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와 같은 시련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그와같은 모든 시련들 가운데 반드시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련을 통하여 우리에게 더 큰 영적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뛰어난 사람은 항상 드러나게 마련이다.(Cream Always Rises To The Top)


   요셉은 그의 환경이 바뀌기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새로 처한 환경(감옥)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뛰어난 사람은 항상 드러나게 되는 법입니다. 요셉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감옥 관리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과 함께 갇혀있는 다른 두 죄수들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특별한 영적 분별력을 나타내었습니다. 그가 해석한대로 꿈들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왕의 술을 맡았던 관원은 감옥에서 풀려나 복직되었고, 왕의 빵을 굽던 관원은 목매달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이 복직되기 전에, 요셉은 그 관원을 붙들고 간곡하게 청을 하였습니다. 복직을 하게 되어 왕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부디 자신을 기억하여 자신의 억울한 모든 사정을 왕에게 직접 고해줄 것을 말입니다. 그 관원은 요셉의 간청대로 시행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셉을 곧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바로 왕은 그의 침상에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왕은 즉시 온 나라의 모든 술객과 박사들을 모으고 자신의 꿈을 해석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은 그제서야 요셉과의 옛 약속을 번뜩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 앞으로 나아가 지난 날 자신의 꿈을 해석해 주었던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고하였습니다. 지체할 것없이 요셉은 바로 왕 앞으로 인도되었고, 마침내 그는 왕의 꿈을 해석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꿈을 해석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그 땅에는 큰 풍년이 7년간 계속될 것이며, 그 후에는 극심한 가뭄이 7년간 닥쳐 올 것이라는 예언적 꿈이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왕에게 이와 같이 충언을 하였습니다. 처음 7년간의 풍년 기간 동안 큰 창고들을 짓고, 양식을 그 곡간 안에 충분히 저장하여 쌓아둠으로써 그 다음에 닥칠 7년 동안의 흉년을 미리 대비하면 굶주림의 고통에서 능히 백성들을 구해 낼 수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바로는 기뻐하고 감탄하였습니다. "과연 그 지혜가 놀랍도다." 그리고 바로는 모든 신하들 앞에서 요셉에게 이 같이 명하였습니다. "네 하나님은 참된 신(神)이시로다. 너는 이제 애굽 온 나라를 치리토록 하라. 너는 이제부터 이 나라에서 나의 다음가는 치리자가 되리라."

   이로써 요셉은 애굽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에게 아름다운 애굽 소녀를 아내로 주었습니다.

   요셉의 생애 가운데 일어난 이러한 모든 일들은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의 한 실예가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요셉의 생애에 닥쳤던 많은 시련들은 외형적으로 재앙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의 무대 뒤에는 항상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따랐고, 때로 비극처럼 보였던 것들은 훗날 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셉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높여 드렸고 하나님은 요셉을 존귀하게 높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삼상 2:30하)고 하신 말씀이 그릇됨이 없는 참된 진리입니다.

   결국 요셉의 생애는 시작보다 그 종말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에게 불변의 진리입니다.


   부록


   교도소에서 온 편지들


   엠마오 성경통신교재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나의 생애 가운데 역사하심을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BORN TO WIN(본과의 영어 원본제목) 통신교재는 나를 주께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이 교재는 내가 지금껏 공부한 교재 중에서 가장 훌륭한 교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Harry (후로리다 교도소)


   니는 여타 다른 종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유대교는 여전히 율법을 따르고, 천주교는 많은 의식과 우상들을 가지고 있으며,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은 성경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BORN to win은 참된 복음으로 나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통신교재는 오직 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뿐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_ Terrance (조지아 교도소)


   나는 빈 감방을 청소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쓰레기 더미 속에서 표지가 온통 더렵혀지고 찢겨진 BORN to win 책자를 발견하였습니다. 나는 그것을 주워들고 점심시간에 책을 펼쳐 Steve Thompson의 간증 문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와우!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이로구나!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내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11명의 형제 가운데 막내였습니다. 나는 35세로, 이제까지의 나의 삶은 모두 실패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나는 살인을 저지른 적은 없었지만, 나의 친 형제, 자매들과 소식이 끊긴 지 오래 되었고 마약과 알콜(술)에 빠져 5번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렸습니다. 여러 가지로 Steve가 예전에 걸었던 길을 나 역시 이제껏 걸어왔었습니다. 나는 이 통신교재를 계속 읽어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이해할 수 없었던 성경을 보는 눈이 비로소 열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이 책자를 발견하게 해주심을 감사했고, 잃어버린 내 영혼이 구원함을 얻게 된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 Luis (후로리다 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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