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확신

                              갈망하는 이들에게

                                                                      H. A. 아이언사이드

                                                 제1장

                                  확신을 위한 추구


      반세기가 다 되도록 사역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으로 인도하는 기쁨을 누려왔습니다. 아울러 나는, 우리를 당혹케 하는 문제들과 온전한 확신에 대한 방해는 사람마다 각기 달리 표현되지만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이 작은 책을 통해서 여러 영혼들의 필요를 도와주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진리들을 가급적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과거에는 젊은 의사들이 여러 부류의 환자들을 돕기 위해 많은 약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진료를 거듭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효과가 없다고 판명된 많은 처방을 버리고 효과가 확실하다고 판명된 몇몇 처방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혼의 의사도 똑같은 경험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 경험이 과거의 사역에 비하면 미래의 사역에 다소 무미건조한 단조로움을 줄 수 있지만,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라고 최고의 사도에 의해 그들의 관점이 간략히 요약될 수 있는 주님의 사도들의 본을 좇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영적인 질병에 대한 권위 있는 처방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것을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최고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짧은 지면을 통해 선포하고자 힘쓴 메시지입니다.


   순회 전도자로서


   생애 대부분 동안 나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선포하기 위해 종종 1년에 5,000~6,000킬로미터를 여행하며 순회 전도를 했습니다. 그 모든 세월 중에 열차를 놓친 적은 단 두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번은 표준시간을 혼동 했습니다. 또 한 번은 미리 특실을 예약해놓은 위니펙 행(行) 오후 열차를 탈 수 있도록 그의 시골마을에서 미국 미네소타주 로우리 마을까지 나를 태워주기로 한 한 농부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서둘러 떠나자고 그렇게 재촉했는데도 그 친구가 시간이 많다고 고집하면서 온갖 사소한 일로 꾸물거렸던 그 때 일을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안달복달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짐을 싣고 넓은 들을 가로질러 달렸습니다. 로우리 마을을 1.5킬로미터 가량 남겨뒀는데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역에 도착해서 몇 분 멈췄다가 북쪽으로 떠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야간 특급열차를 타려면 5,6시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좌석예약도 물론 하지 않았습니다. 열차가 도착하자 역시 침대석은 만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껴서 캐나다 국경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 후에야 자리가 생길 것입니다. 잔뜩 짜증이 났지만 다음 말씀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나는 혹 주님께서 예약한 열차와 편안한 좌석을 놓치게 하신 어떤 뜻이 있다면 그 뜻을 꼭 알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붐비고 악취가 나는 2등석에 올라탔더니 저쪽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한쪽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옆자리에 앉아 짐을 아래 넣는 사이 그 젊은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좀 졸린 눈빛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얼마 안가 우리는 다정하게, 나지막하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주위는 모두 졸며 코를 골았습니다. 기회를 타서 나는 "혹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자리를 고쳐 앉고는 말했습니다.

   "이상하네요, 제게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요? 나는 줄곧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를 알고싶은데 잘 이해가 안가요!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더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남부 미네소타 주의 어느 마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주위의 설득으로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아마 설교가 능력이 있었던지 그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싶다고 앞으로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죄 사함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평안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 때 나는 내가 열차를 놓친 까닭을 알았습니다. 이곳은 나의 '가사'(사도행전 8:26)였고, 비록 무가치한 존재지만, 나는 하나님에 의해 그의 '빌립'이 되도록 보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을 만날 때 읽고 있었던 그 이사야 53장을 열었습니다.

   그 일이 이뤄지기 오래 전에 기록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에 대한 그 놀라운 묘사로 그 친구의 관심을 돌리면서 나는 4,5,6절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청년이 그 말씀을 읽는 동안 말씀이 그의 영혼 깊숙이 녹아 들어가듯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제 길로 간 잃어버린 양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죄악을 담당시키신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그는 머리를 숙이고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고 아뢰었습니다. 우리는 여기 저기 성경을 넘겨가면서 한 두 시간 가량 즐거운 사귐을 나눴습니다. 그 후 목적지에 이르자 그는 생명의 길을 알려준데 대해 뭐라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면서 떠났습니다. 그 후로 그를 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를 다시 만나리라 확신합니다.


   곤고한 영혼을 위한 도움


   이 책이 어떤 분들의 손에 들려질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날밤 미네소타 주의 그 열차 안에서, 영혼의 곤고함을 절감하고 하나님께 진실로 마음을 돌이켰지만 평안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그로 인해 아무 확신도 없었다가 기록된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 영혼에 깊이 새겨짐으로써 그 길을 발견하게 된 그 청년과 나눈 대화처럼, 많은 곤고한 영혼들에게 아주 시기 적절한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책을 펴냅니다.

   만일 당신이 그 젊은이와 동일한 문제로 고민하고 또 하나님의 섭리로 이 책을 구해 자세히 읽고 있다면, 나는 그것이 주님께서 당신을 그분 자신에게로 이끌고자 하시는 방법임을 당신이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또한 당신이 이 책을 주의 깊게, 신중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혹 성경을 갖고 있다면 여기에 기록된 말씀들을 당신의 성경에서 직접 찾아본다면, 당신도 온전한 확신을 얻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깊은 관심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에게 그분의 구원을 아는 지식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 책이 당신의 주의를 끈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글을 쓰도록 내 마음을 감동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이 글을 읽기를 원하십니다. 이 글은 당신을 향한 그분의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분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십니다(엡 1:11).


   그 이발사는 관심이 많았다


   또 하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들면 이 장의 요지가 더욱 분명해지고 또 적절히 마감 지어질 것입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이발소를 찾아 인디애나폴리스의 분주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붉은 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돌아가는 이발소 표시등이 처음 눈에 띠자 나는 무작정 그리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습니다. 곧 이발사의 능숙한 손놀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말이 좀 많았지만 그냥 생각 없이 떠벌리는 형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이 때다 싶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혹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있는지요?"

   뜻밖에도 이발사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그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물을 그치더니 이렇게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상하네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묻다니! 내 평생에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없었어요. 사실 나는 지난 3년 간 줄곧 그리스도에 대해 싱각해왔어요. 그분에 대해 내게 말해줄 수 있나요?"

   이젠 내가 놀랄 차례였습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한 번은 그리스도가 고난 당하는 수난극을 보았는데 그 장면이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는 "왜 그 선한 사람이 그렇게 고난을 당해야 했지요? 왜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두셨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평생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십자가 이야기를 한 시간 가량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으며, 그는 이제 모든 문제가 풀렸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었습니다. 나는 이발소를 나오면서, 복음은 과연,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랑하사 위하여 자신을 주신 사실을 처음 알게된 그 배우지 못한 이발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아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나에게는 그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보여주는 독특한 예가 되었습니다. 나는 수난극, 즉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그런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그분께로 돌이켜 삶을 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장면을 사용하셔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나는 그분이 내 발걸음을 그 이발소로 인도하사 그 번민 중에 있는 이발사에게 세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알려주는 기쁨을 맛보게 하셨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와 유사한 많은 경우에 그분께서 이 글을 사용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나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가 더욱 넘치니

   구속받은 영혼이 고백하는 말,

   '그 깊이를 어찌 알리요

   그 길이와 넓이를 누가 알리요

   그 영광스러움 안에 영원히 내 영혼이 거하리'."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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