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도 죄인인가?


                   영원한 속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브리서 10:10).


   당신은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여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당신은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율법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지 못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여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선한 행위나, 기도나, 교회봉사나, 율법을 지킴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선한 행위로, 기도로, 교회봉사로, 율법을 지킴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구약에는 수많은 양들이 인간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죗값으로 피가 뿌려져야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구약의 양 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속죄의 양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가 당신과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고귀한 생명의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그 피는 당신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흘리신 피입니다.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당신의 과거 죄만 용서하였습니까? 현재와 미래의 죄는 일일이 기도해야 하고 죄를 범하지 않아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영원한 속죄! 영원한 속죄입니다.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영원히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8).

   당신의 죄를 위하여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하지 않도록 "영원한 속죄" 를 하여 주셨고 " 다 이루었다" 고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당신이 죄 용서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선행입니까?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8,9).

   당신이 구원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으로 믿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Posted by 행복자
,

  사도행전


                     06 더해가는 고난(11-12장)


요절 : 12장 24절, 요한일서 3장 14절

요점 :

1. 다른 사람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2. 성령님을 소유한 것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것은 구원받은 두가지 증거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좋은 이름입니다.

4. 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우편에 있게 됩니다.

5. 하나님은 기도하고 스스로를 돕는 자들을 도우십니다.

6. 비록 악인이 번영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에게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예루살렘과 안디옥


1.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비난함(11:1-3)


10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유대인에게와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에게 기꺼이 복음을 전하도록 가르치시기 위해 특별한 환상을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 하는 것을 매우 악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행한 일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편협한 시각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비록 베드로 일지라도 그가 특히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도록 주님께 명령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내버리도록 하나님께 직접적인 계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다른 그리스도인이나 주님의 종들을 비난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마귀" 라는 말은 "참소자" 를 의미하고 그가 하는 일은 형제들을 참소하는 것입니다(계 12:10).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자기 백성들을 참소로부터 변호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언자(요일 2:1)라 불리웁니다. 하나님 한분만이 모든 상황과 마음의 동기를 아시며 하나님 한분만이 자신의 종들을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2.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간 이유를 설명함(11:4-14)


때로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 특히 주님을 위한 어떤 섬김에 대해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간섭에 대해 화를 내고 원망할 수도 있지만 베드로는 그렇게 하기 보다는 단순하게 이 문제에 있어서 주님께서 처음부터 자기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예수님은 사람이 말한 무슨 무익한 말이든지 심문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타당한 이유없이 기록된 성경에 무언가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전에 읽은 한 부분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반복에 의해 결국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기꺼이 전하게 된 것이 매우 중요한 걸음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에 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성령님은 구원의 증거임(11:15-18)


주 예수님께서는 신자들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는 특별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것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이나 정결케 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나타내는 증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요7:39)?

   베드로의 마지막 변론은 하나님께서 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께서 받으셨음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한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자 유대인 신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주 예수님 안에서 다른 신자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구원받은 또 다른 표시입니다(요일3:14, 5:2). 당신은 당신이 거듭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4.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11:19-21)


사울이 구원받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아주 가혹하게 핍박하므로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이일은 비록 유대인들에게 국한 된 것이었지만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셨다는 베드로의 교훈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처럼 아주 편협한 마음이 아니어서 헬라인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자유로웠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받게 되었는지를 듣고 기뻐하였으며 수다한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의 과정을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까지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후에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는 빌립과 사도들을  보게 되며 내시가 에디오피아에 복음을 가지고 돌아가게 됩니다. 회심한 후 사울은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파했고 베드로는 룻다와 욥바에서 복음을 전했고 그리고 가이사랴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제 이곳 안디옥에서 많은 헬라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성경 지도에서 이 장소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5. 바나바와 사울(11:22-26)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 받는 이 복된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지자 예루살렘에서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사마리아와 가이사랴의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이 때에는 이 복된 소식을 듣고 사도들이 4장과 9장에서 언급되었던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매우 기뻐했고 사람들에게 주님께 계속 붙어있으라고 권했습니다.

그후에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으며 사울도 오게 되어 그 사역을 돕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이 일 하기를 기뻐하여 두 사람은 그곳에 1년간 머물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고 주님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그 도시의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람들" 이라는 의미인 "그리스도인" 들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 대한 좋은 이름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됨을 나타내는 다른 명칭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를 칭하고 있는 성도, 제자, 신자, 그리스도인, 형제 이외의 어떤 명칭도 우리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6. 한 선지자가 다가올 흉년을 예고함(11:27-30)


그후에 예루살렘에서 몇 명의 선지자들이 오게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약간의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그부조를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내기 위해 사울과 바나바를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형제에 대한 사랑이 거듭난 것에 대한 진정한 증거임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도움을 받았기에 자신들의 물질로 돕고자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박해


1.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죽임을 당함(12:1-2)


신약성경에는 헤롯이라 불리는 세 명의 왕이 있습니다. 첫째는 마태복음 2장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통치하고 있던 자로  자신이 왕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 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헤롯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실 때 갈릴리를 다스리던 자였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고 주님께서 죽으실 때 예수님에 대해 빌라도와 합의하게 되었습니다(눅 23:12).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왕은 첫째 헤롯의 손자로써 그리스도 이름에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맹렬한 증오를 앞에 나온 두 헤롯에게 나누어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그가 아무 이유없이 야고보를 칼로 죽인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신약성경에는 야고보라 불리우는 사람이 적어도 세 명이 있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사도들로 마태복음 10장 2-3절에 그이름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장의 17절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야고보(막 6:3)는 야고보서를 기록한 주님의 형제입니다.

헤롯과 야고보가 얼마나 대조됩니까? 이 구절로 인해 당신은 헤롯이 더 강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주님이 오셔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때, 야고보처럼 주님을 따른 자들이 진정으로 우편에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있게 될 것입니까?


2. 베드로가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히지만 천사에 의해 풀려남(12:3-10)


그러나 그 때에 헤롯은 자신이 매우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드로도 가두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다 죄에 빠졌던가! 헤롯은 아주 확실케 하려고 여섯명의 병사들에게 베드로를 감시하여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도록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비록 베드로는 다음날 재판을 받아야 했지만 확신과 평안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깊이 잠들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일어나서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쇠사슬이 그에게서 벗겨졌고 큰 감옥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베드로를 데리고 거리에 나왔을 때,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보고는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의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뜻에 대적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을 돕는 큰 일을 행하시는 것을 이 단락에서 보게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기를 기대하십니다.


3. 베드로가 형제들에게로 감(12:11-17)


처음에 베드로는 어떻게 된 일인지 거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깨닫게 되었을 때 다시 풀려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즉시 다른 믿는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당신은 직장이나 학교수업이 쉬게될 때 무엇을 하십니까? 당신은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며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지금은 한밤중이며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주 간절하게 베드로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가 너무나 놀랍도록 하나님에 의해 응답되어 베드로가 문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의 믿음이  아주 강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귀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구할 때는  진정으로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4. 감옥 파숫군들을 죽임(12:18-19)


죄수를 탈출하게 하는 것은 파숫군에게는 매우 큰 범죄였습니다. 죄수들을 탈출하게 한 것은 죄수에게서 큰 선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할 수 있기 때문에 로마제국에서 파숫군이 죄수를 잘 지키지 못하면 사형에 처해집니다. 실제로 헤롯은 이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하나님의 권능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두려워졌습니다. 헤롯은 파숫군의 이야기를 전혀 믿지 않고는 그들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요셉은 주님을 새 무덤에 장사했고, 빌라도는 제자들이 그 시체를 훔쳐가서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났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봉인했습니다. 그러나 무덤 앞에 있는 돌과 로마 군대 전체 그리고 사단의 모든 세력이 함께했을 지라도 무덤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 파숫군들도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졌지만 제사장들은 그 사실이 누설되지 않으면 그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마 28:11-15).

   하나님을 거역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주님께서 마지막에 이기실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언젠가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잘 알면서도 죄의 길에 계속 행하고 있습니다.


5. 헤롯이 심판을 받음(12:20-23)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가지고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이 악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임하게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왕에게 호의를 구하러 오자 왕은 큰 연설을 했습니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왕에게 아첨하려고 그 말이 단순한 사람의 소리가 아닌 신의 소리임에 틀림없다고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헤롯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며 자기는 단지 사람일 뿐이라고 시인하는 대신에 이 거짓된 칭송을 크게 즐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쳐서 충이 먹는 굴욕적인 죽음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의 의 심판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이 번영하고 그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이것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명백해 질 것입니다.


6. 바나바와 사울과 마가(12:24,25)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는 박해는 하나님께서 악한 헤롯을 심판하시자 끝났습니다. 사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며 더하여 갔습니다. 고난의 시간 후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된 행복한 시간을 주십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약간의 부조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11:30). 그들이 이일을 마치고 젊은 청년 마가 요한과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옸습니다. 마가의 가족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일 수 있는 큰 집을 소유했습니다(20절). 마가는 이러한 일들에 의해 크게 감동되어 있었으며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진실한 갈망도 있었습니다. 그는 바나바의 조카였으며(골 4:10), 안디옥까지 사도들과 함께 갔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

                              로마서


                          2과    하나님의 진노

                                                      (1장 18절~3장 20절)


   복음이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가?


   간단히 말한다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저버린 인류는 지옥의 선고를 받아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1.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버림 받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러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19절~32절의 말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ㄱ)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19,20절).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해와 달과 별과 인체와 동물과 식물의 존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를 창조주로 깨닫고 자기를 경외하며,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여러 가지 형태의 축복을 주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ㄴ)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만물의 증거를 거부하였습니다(21,22절)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은 이것들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23절).


   ㄷ) 물론 이런 죽은 우상들은 사람을 감화시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참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새겨 만든 우상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24절). 이와 같이 사람들은 점점 불신앙의 흑암과 부도덕 속에 깊이 빠져서 마침내는 26절과 27절에 나타나 있는 성적 타락에 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은 29절~31절에 나타나 있는 무서운 죄로 가득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이방인을 가리켜 버림받은 죄인이라고 한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경우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2:1~3).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고 해서 정죄함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도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ㄱ) 유대인들은 이웃 이방인들을 비방하면서 자신들도 같은 죄를 범하였습니다(1절).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즉시 벌하지 않는 까닭에,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3절). 사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4절), 그들은 계속 죄를 지으므로 심판 날에 임할 그들의 죄의 대가를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5절).


   ㄴ)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2절~6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본 원칙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내함으로 계속 선하게 살면서 영광과 존귀와 영생을 구한다면, 그는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7~10절). 그러나 이 말씀은 이와같은 방법으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3장 19절과 20절의 말씀은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만한 육체가 하나도 없음을 결론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ㄷ)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절대 공평할 것입니다(11절). 율법을 받은 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12절),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옳고 그름을 말해 주는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4,15절)


   ㄹ)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여러 특권들을 자랑하였습니다(17~20절).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전했던 것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1~23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24절). 그들은 할례와 같은 종교의식은 거기에 따르는 실제 생활이 없는 한,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25~29절).


   ㅁ) 유대인도 버림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뜻(3:1)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습니다(2절). 하나님은 그들을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한결같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묵과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3~8절).


   3. 그러면 결론은 무었일까요? 결국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3:9~23절)


   ㄱ) 구약 성경은 죄가 전 인류에게 감염된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10~12절).


   ㄴ) 또한 구약 성경은 죄가 사람의 몸 즉,목, 혀, 입술, 입, 발 그리고 눈, 기타 모든 부분에 다 감염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3~18절).


   ㄷ)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정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정죄하고 있습니다. 19절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유대인이 전 인류의 좋은 본보기가 됨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본보기인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죄인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그 본보기를 근거하여 전 인류를 죄인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율법은 전 인류의 유죄성을 노출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전혀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

                         성 경  개 요 


                        제9과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


                                                       복음서


   복음서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통틀어 중심되는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심장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역사 그 자체가 주님에 관한 기록(History is His Story)이기는 하나, 특별히 복음서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 주신 주님의 사적을 볼 수 있습니다.

   구주의 지상 생활은 33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그 33년 중 초반 곧, 주님이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동정녀에게 탄생하셨고, 양친은 애굽으로 피했다가 나사렛에 돌아왔던 사실을 복음서의 첫머리에서 읽게 됩니다. 또한 예수께서 열 두살 되던 해의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 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30세가 될 때까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30세에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40일 동안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이후에 주님께서는 비로소 대중적인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기간은 편의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유대에서 약 1년간 지내셨고,

   2. 갈릴리에서 약 1년 9개월을 지내셨으며,

   3. 베레아에서 약 4,5개월간 머무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역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1. 주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심으로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2.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를테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품행은 어떤 것인가 등에 관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기 위하여 비유나 실화를 사용하시기도 했고, 구약을 인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

   3.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하여 열 두 제자를 부르사 훈련시키셔서 보내셨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말씀이 점점 백성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배척을 받게 되자, 주님께서는 그 사역의 대상을 이방인에게로 확대하셔서, 당신 자신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여러번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미리 말씀하셨고, 주님을 배척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서운 고난이 있으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한편 베레아에서의 사역이 끝날 즈음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개선의 입성을 하셨으며, 백성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을 모함했고, 유다와 더불어 주님을 체포할 것을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제자들과 더불어 유월절을 지키려는 것이었고, 나아가서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을 분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을 겪으셨으며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시련을 당하시고 빌라도와 헤롯 앞에서 로마인들에게 희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죄하심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거짓 증인들에게 에워싸여 송사를 당하셨고, 주님의 죄를 찾지 못한 빌라도마저 백성들의 요구에 못이겨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께서는 두 강도 사이에 매달려 고통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신 후 죽으셨습니다. 이런 외형적인 사실만을 보면 주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담당하시려고 친히 십자가로 나아가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뒤 주님의 몸은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삼 일 만에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 후 승천하여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실 때까지 40일 동안이나 제자들과 여러 성도들에게 당신 자신의 모습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이러한 생애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모두 복음서에 기록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일 주님의 생애에 있었던 일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세상이라도 그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입니다(요 21:25).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네 권의 복음서가 각기 다른 면에서 흠도 없고 죄도 없는 완전한 한 인간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문학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의 생애가 이처럼 역사적으로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마치 우리 인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지지만, 주님의 생애는 우리와는 달리 완전하셔서 전혀 흠을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죄많은 인생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죄 없으신 분의 생애를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령님께서는 네 권의 복음서를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복음서가 네 권이나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권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네 사람의 저자가 저마다 다른 관점에서 다른 방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주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하여 마태복음에서는 메시야로서의 탄생, 메시야에 대한 세례요한의 증거, 시험을 받으시고 세상에 알려지셨다가 배척을 당한 메시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마태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증거하는 것이었으므로, 주님의 족보를 다윗과 아브라함에서부터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세상에 오신 종으로 묘사했습니다. 주께서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신 사실이, 주님의 신분을 알려주는 선조에 관한 사실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에, 족보 이야기는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는 주 예수님을 인자로 증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에 누가가 밝힌 족보는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뭇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뭇사람을 섬기시며, 그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위의 세 복음서와는 전혀 다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족보를 기록하기 보다는, 주님을 태초에 계신 말씀으로 영존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홀로 요한만이 유대에서의 주님의 활동이나 베레아에서의 활동을 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주님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네 권의 복음서가 있기에,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까이에서 직접 모시던 제자들보다도 주님을 더욱 완전하고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원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초기 기독교의 형성과 성장에 관해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도행전에는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어떤 이는 성령 행전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바울의 활동이 주로 기록되어 있어 두 사도의 행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활동은 1-12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탄생되었을 때부터 베드로는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며, 만주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하여 전파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던 예루살렘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 신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후 핍박이 일어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최초의 순교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신자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본의와는 무관하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되자, 이제 복음은 더 이상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 국한되기는 커녕,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복음을 배척함으로써 오히려 이방인들이 교회의 지체로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사도행전 13장 4절에서부터 사도행전의 마지막까지에는 바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구원을 받게 된 바울은, 베드로가 주로 유대인의 사도로 봉사했던 것처럼, 이방인의 사도로서 봉사하는 총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활동은 세 차례에 걸친 전도 여행과 죄수로서의 로마 여행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 1차 전도 여행에서는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구브로와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제 2차 전도 여행에서는 재차 소아시아를 방문하고 나서 마게도냐와 그리이스로 건너갔다가 에베소와 가이사랴를 경유하여 안디옥으로 올라 왔습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 . 후서를 썼습니다.

   제 3차 전도 여행에서는 소아시아와 마케도냐와 그리이스를 거쳐 소아시아의 서남 해안으로 돌아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고린도 전 . 후서로마서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제 3차 전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체포와 구금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니 돌아 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는데, 그래도 그는 그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아에 살던 유대인들이 바울이 성전을 모독하고 있다고 무고하게 고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와 벨릭스와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에게 심문을 당하다가, 바울이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노라고 상고하여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이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실은 배가 항해 도중 멜리데에서 파선하게 되어 승무원과 승객들은 그곳에서 겨울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뒤 마침내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에는, 자기의 셋집에서 살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2년 동안 머물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옥중 서신으로 불리우고 있는 에베소서빌립보서, 골로새서빌레몬서를 썼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여기에서 끝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1차 투옥에서 풀려나 다시 전도 여행을 했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디모데 전서디도서를 썼을 것이며, 바울이 히브리서의 저자일진대 역시 이 시기에 히브리서를 썼을 것입니다.

   그뒤 바울은 재차 로마로 잡혀가서 투옥되었던 것으로 분별되며, 디모데 후서는 순교 직전에 씌어졌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