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새로운 출생(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 10 과

                                         본문 : 사도행전 16:16-34


                               감옥에 갇힌 두 전도자

                    ( Two Preachers Who Went to Jail)


   바울과 실라는 제2차 전도여행 중에 그리스 북부에 있는 빌립보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귀신을 힘입어 점을 치는 한 점쟁이 소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점술로 그의 주인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그 도시에 나타난 이후로 이 점쟁이 소녀는 매일 두 전도자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이와 같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로 구원의 한 길을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 소녀의 말은 반은 옳고, 반은 그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들은 구원의 여러 길 중 하나를(a way of salvation)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유일한 길(the way of salvation)을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요한 14:6 ; 사도행전 4:12).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지 간에 바울은 그와 같은 마귀의 증거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소녀의 얼굴을 주목하고 마귀에게 명하여 그녀에게서 나오라고 외쳤습니다. 즉시로 그 노예 소녀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건은 소녀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그녀의 주인에게는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이 소녀가 귀신의 힘을 빌어서 점을 치고, 그 주인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 소녀의 주인도 인간의 영적인 유익보다 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음 전도자 바울과 실라는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두 전도자들을 잡아 관청으로 끌고 가서 바울과 실라를 반-로마 선동자라는 죄목으로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의 고소는 전적으로 중상모략이었고, 재판관의 판결은 잔인했습니다. 그들은 공정하고 합법적인 공적 심리도 하지 않고 바울과 실라를 때리고, 감옥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날 밤, 두 전도자들은 온 몸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상태로 특별감방에 쇠사슬에 발이 묶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슬픔으로 그날 밤을 보내게 되었을까요? 천만에요.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시인 리차드 러브레이스(Richard Lovelace)의 말대로 감방의 사면 벽이나. 쇠창살까지도 그들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집으로 초대받다 (The Duet That Brought Down The House)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찬양과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렇습니다. 한 밤 중에 갑자기 그곳에 아주 강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옥문들이 활짝 열리고, 죄수들의 발에 채워졌던 쇠사슬이 저절로 풀렸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간수는 놀라 황급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가 본 것은 그를 절망하게 했습니다. 감옥 문은 완전히 열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모든 죄수들이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사형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칼을 뽑아 자신을 찌르려는 순간, 감옥 안으로부터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멈추시오." 바울과 실라는 그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해하지 마시오. 아무도 도망치지 않고, 모두 여기 있소" 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그 간수의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급히 등불을 들고 특별 감방 안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심히 떨고 있었습니다. 잠시 전까지는 그는 살기를 두려워했었는데 이제 그는 죽기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육적으로는 그 생명을 보존(구원)을 받게 되었지만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도자 바울과 실라를 향하여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내 영혼의)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고 간절히 물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질문의 대답은 즉시 돌아 왔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함을 얻고, 또한 너희 식구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구원을 얻게 되리라."

   자 여기 잠깐 멈춰봅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고 하는 바울과 실라의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구원은 분명히 자신의 어떠한 노력이나 공로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행위와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로마서 4:5).

   믿음이란, 십계명을 지키도록 힘쓰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행위의 문제이지, 믿음이 아닙니다(롬 8:3).

   믿음이란, 황금률이라고 하는 산상수훈의 교훈을 순종하여 따르며,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노력과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이란, 침례를 받거나, 혹은 교회의 모든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일들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반드시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한 확실한 "믿음" 이 앞서야 합니다. 순서를 바꿔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믿는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What Does it Mean To Believe?)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요한 1;12).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기 자신의 마음 문을 여는 믿음을 의미합니다(계시록 3:20). 그리스도를 자신의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영접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요한 14:6).

   우리는 비행기에 대해서 모든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비행기를 탑승하고 우리의 행선지를 향하여 우리 몸 전체를 그 비행기에 의탁하기 전까지는 그 비행기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반드시 하늘나라를 갈 수 있는 오직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믿고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에게 의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의자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의자에 앉을 때 우리 자신의 몸을 그것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앉게 되는 것은 내 자신이 그 의자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한 여인이 결혼할 때, 신부인 그녀는 주례자로부터 "이 남자를 이제 당신의 법적인 남편으로 맞아들이겠습니까?"라는 서약의 질문을 받을 때 그녀는 "네"(I do) 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너는 이제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너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주로 영접하느냐?" 고 물으실 때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네" (I do) 라고 분명히 대답해야 합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 마음 중심으로부터 이처럼 정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1) 자신은 죄인이며 또한 자신은 지옥으로 가야 마땅한 자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3)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4) 확실한 믿음의 결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진심으로 이와 같이 고백하였다면, 그 사람은 이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입술로서  만의 고백이어서는 안 됩니다(참고 마태 15:8).


   그날 밤, 빌립보 간수가 한 일이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온 가족들 또한 그들의 가장의 훌륭한 믿음의 본을 따라 함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전도자 바울과 실라는 잠시 동안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 그리고 구원받은 후 침례를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해야 할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씻겨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전날 바울과 실라가 심한 매질을 당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간수와 그의 온 가족들은 즉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과 이 후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믿음 안에서 날마다 살아갈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간수는 또 다른 모습으로 그의 새로운 믿음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전도자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하여 귀한 음식을 접대하였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그날 그 즐거운 식탁에서 펼쳐졌을 감동적인 광경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서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재판관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자임을 알고 이 일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잔인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대했던 사실이 그들에게 중대한 과오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재판관은 자신이 직접 감옥 안으로 들어가 두 죄수들을 만난 후 그들을 밖으로 친히 안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성을 떠나  줄 것을 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What Was Really Going on?)


   바울과 실라의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우리는 그들의 선교 사역 중에서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탄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먼저 부드러운 영의 입술을 통하여 두 설교자들에게 아첨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이 성공하지 못하였을 때, 사탄은 맹수처럼 돌변하여 잔혹한 핍박의 수단을 통하여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감옥 안에 갇히도록 하였습니다. 때때로 마귀는 간사한 유혹의 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계시록 12:9 ;살후 2:9-10). 또한 포효하는 사자처럼 위협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벧전 5:8).

   둘째로, 이제 새롭게 회심한 간수의 생애를 통하여 구원받은 뒤에 얼마나 아름다운 선행이 따라오는 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세 가지 선행을 보여주고 있는데, 첫째는 죄수들의 상처를 씻겨 준 일이고, 둘째는 그와 그의 가족이 침례를 받은 일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바울과 실라를 그의 식탁에 초대하여 사랑과 교제의 접대를 한 일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전도자 바울과 실라를 염려했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선한 일을 위하여 너무나 큰 시련을 당했던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하기를 만일 우리의 잘못으로 인하여 벌(고난)을 받으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2:19-20). 이는 주 예수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딤후 3:12).

   또한 우리가 주목해 볼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동시에(간수와 그 가족들의 구원), 외형적으로 불행해 보이는 일(바울과 실라의 감옥에 갇힘)을 함께 허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롬 8:28).

   지진의 시각은 정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자연을 명하여 그의 하시는 일을 돕도록 하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알며 그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의 배후에서 참된 목적과 승리를 위해 일을 이루시는 사실을 압니다.

   마지막 교훈은 재판관의 모습을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바울과 실라를 대적했던 자였지만, 그는 결국 그들을 친히 정중하게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다음의 말씀이 진실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언 16:7).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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