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새로운 출생(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 8 과

                 본문 : 마태27:37-66 마가 15:26-47 누가23:38-56 요한 19:19-42


                                          인류 최대의 범죄

                     (The Greatest Crime Ever Committed)


   범죄 장면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곳은 사형수들이 끌려와 처형당하는 장소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로마인들은 사형수들을 나무 십자가 위에 달아 처형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곳에서는 죄수들의 처형식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곳을 골고다(Golgotha)라 불렀고, 로마인들은 갈보리(Calvary)라 불렀습니다. 오늘 날에는 해골의 언덕(Hill of a Skull)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성 시내로 들어가는 중심가 곁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날은 금요일 오전이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죄수 하나를 처형하기 위해 그곳으로 그를 끌고 왔습니다. 그는 이제 30대가 갓 넘은 젊은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이곳 골고다로 끌려 올 때 길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어떤 여인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또한 그의 뒤를 계속 따르며 그를 향하여 온갖 조롱과 저주와 모욕과 욕설을 퍼붓고, 이를 갈면서 그에 대한 극한 증오심을 들어내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처형장소에 이르렀을 때, 무리들은 더욱 큰소리로 일제히 "십자가에 못 박아라" "십자가에 못 박아라" (crucify, crucify!) 라고 외쳤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의 피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범죄자로 이끌려 온 이 사람의 정체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그의 이름은 예수(Jesus)였습니다. 그는 다윗 왕의 후손으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의부 요셉의 뒤를 이어 목수가 되어 그의 식구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30세 쯤 되었을 때 그는 홀연히 자신의 목공 연장들을 내려놓고, 현대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도단(Crusade)의 사명을 띠고, 이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운동은 초기부터 순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가르침과 자신의 신성에 대한 주장은 당대의 기존 종교지도자들과 심한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날로 대중들이 날로 그의 가르침과 기적에 이끌리고 있음을 보고 극한 시기와 증오심으로 여러 번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계획은 번번이 실패했지만 그의 제자 중 하나인 배반자 가룟 유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그를 체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여 그를 죽일 구실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자신들 간에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가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하여 신성모독 죄를 구실 삼아 로마인들에게 그를 넘기며 그의 사형을 요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는 사형 판결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수를 넘겨받은 로마 총독 빌라도는 그를 심리한 결과, 그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 유대인들 간의 종교 문제임을 깨닫고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굽히지 않고, 그의 처형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총독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그를 살리려고 힘써 보았지만 자칫 민란이 일어 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물을 담은 대야를 가져오게 하고 자신의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 27:24)고 선언한 후, 그를 사형 집행자들에게 넘겼습니다. 이상이 예수의 생애에 대한 개략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이며, 그는 왜 죽어야 했는가? (Who Was The Man? Why Did He Die?)


   우리 모두는 이 분에 대해서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같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십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십니다. 그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은 그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그는 그가 만드신 온 우주와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분이십니다(요 1:10 ; 골 1:17, 히 1:3). 그러나 그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목적은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는 오셔서 우리의 대속 제물(substitute)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마땅히 지불해야 할 모든 죄 값을 대신 다 지불하여 주셨습니다. 그는 우리들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그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들은 그를 죽일 만반의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요?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라" (마 27:25)고 맹세하며 그의 십자가 처형을 요구했던 종교 지도자들과 그에 동조했던 모든 유대 사람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다음에는 그의 무죄함을 알면서도 그를 처형하도록 허락한 로마 총독 빌라도와 로마 병사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우리들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지 않는 한 신비한 그 십자가의 완전한 의미를 우리는 결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 1서 2;2)하였고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는 어떤 사람들에게 타의적으로 죽임을 당하신 것도 아니며 또한 그 자신의 죄나 잘못 때문에 죽임을 당하신 것도 아닌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우리 모든 인간들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하였다"(이사야 59:1-2)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 되었다" (롬 5: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 사이에 가로 막혔던 죄의 담을 영원히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스스로 택하셨습니다(빌 2:8 ;히 5:7-9). 그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7, 10).

   또한 그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요 10:17-18).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 또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라" (마 20;28)고 거듭 거듭 그 자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를 증거 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고 외쳤고,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라고 그의 죽음을 예언으로 증거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시편 22편과 다른 여러 곳에서도 그의 죽으심을 예언한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와 규례 등은 다 그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그림자들이었습니다. 죄를 속죄하기 위해 수많은 짐승들의 희생 제물들의 피를 요구했던 그 모든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당하셨던 형언할 수 없는 그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 모든 고통에 대해서 좀 더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성지 순례자들의 코스 중에 하나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가 있습니다. 일명 고통의 길(the way of sorrows) 혹은 통곡의 길(the way of tears)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던 곳으로부터 이 길을 따라 골고다 언덕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길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길이는 약 1km이며 폭은 약 3-5m 가량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약 세번 가량 쓰러지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가 쓰러지실 때마다 로마 군병들의 채찍이 사정없이 그의 등을 내리쳤습니다. 그 채찍은 쇠붙이가 달려 있어 맞을 때마다 그의 등은 무참히 찢기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예언되었습니다. "밭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시129:3)

   마침내 그가 골고다 언덕에 이르렀을 때 그의 십자가 처형식은 이렇게 이루어 졌습니다. 군병들은 먼저 예수께  쓸개 탄 초(vinegar and gall)를 권했습니다. (주- 여기에서 식초는 아마 발효된 포도주를 의미하는 듯 싶음) 이는 사형수에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마취의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를 받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데 반 마취 상태(half-drugged condition)로 임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전 9시, 병사들은 나무 십자가 위에 그를 누이고 그의 양손과 발에 쇠못을 박은 후 이미 파 놓은 구덩이 속으로 십자가를 던져 넣었습니다. 그때 그의 손과 발이 찢기는 고통을 어찌 능히 다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오후 3시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갈증과 그 고통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그는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으로 만드신 피조물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다니! 이는 인류 최대의 범죄 사건이었습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께서

   한 인간으로서 인간을 위해 저주가 되셨네.

   그의 거룩한 손가락으로 지음을 받은 그 가지들은

   가시덩굴로 자라 그 이마를 찌른 가시관이 되었네.

   그의 설계를 따라 신비 속에 깊게 감취였던,

   그 손으로 만드신 광물은 그를 찌르는 못이 되었네.

   그가 만드신 아름다운 수풀 속에서 자라난 나무들,

   그 나무 십자가위에 그 몸 달리셨네.

   그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 달리셨던,

   그의 나무 십자가 서있던,

   그가 만드신 저 언덕,

   예처럼 지금도 그대로 서 있네.


   사형수의 옷을 나누는 것은 병사들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는 일찍이 다윗에 의해 예언된바 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 22:18).

   예수님의 머리위에는 그의 범죄 푯말을 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단순하게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라고 쓰인 푯말을 달았습니다. 많은 백성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 바꿔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그의 가족이나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은 그가 임종 시에 남기는 마지막 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일곱가지 중요한 말씀을 남기겼습니다. 그 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여,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눅 23;34)라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원수들을 위한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는 그의 놀라운 은혜를 나타냅니다. 그 기도는 주님을 배척하는 자들이 훗날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주께 돌아오게 될 때, 그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2장 37절 이하를 보면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마땅히 예수님처럼 원수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대신 벌을 받다 (Taking The Rap For Others)


   이처럼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성난 군중들은 조금도 자신들의 만행을 참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성전을 헐고 삼 일 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했지, 만일 네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제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을 구원해 보라." 라고 조롱했습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 역시 그를 희롱하기를 "너는 거짓으로 남을 구원한다고 한 자다. 이제 너 자신을 구원해 보라. 십자가에서 내려옴으로 네가 참 이스라엘의 왕인지 증명해 보라. 그러면 우리도 믿겠노라. 너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했다. 좋다. 네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아들이면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시게 하라. 그러면 모든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물론 그가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그 자신을 구원하실 능력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사십 일간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마치셨을 때, 마귀가 그에게로 다가와 세 가지 시험을 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마귀는 의심 없이 예수님께서 초능력적인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신성을 지니신 분이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예수께서 돌을 떡으로 만드실 수도 있는 분이심을 믿었으며,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밑으로 뛰어내리실 수도 있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만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임이 분명했지만, 예수께서는 그 십자가를 자신이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 자신의 사명을 알고 계셨습니다.

   한번은 학교 교실 안에서 다른 학생의 물건을 훔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그 문제의 학생이 누구인지 반드시 가려내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자백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강하게 엄포를 내렸습니다. "내가 범인을 반드시 찾아내기 전까지는 오늘 한 사람도 집에 돌아 갈 생각을 말라" 이미 해는 지고 교실 창밖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는 30여명의 무고한 학생들까지 꼬박 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때 반장 윤군이 당임선생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는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물건을 훔친 범인입니다. 부디 저를 처벌하시고, 이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모든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담임선생님도 그가 그럴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범인임을 자백한 자를 지금 벌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반드시 다시 생기리라 생각한 선생님은 아무 죄도 없는 그를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온몸에 상처를 입으며 매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참고 견디고 있는 모습을 본 학생들은 마치 자신이 채찍을 맞는 것처럼 모두 고통과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앞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실은 제가 그 나쁜 범인입니다. 저를 벌해주세요.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교실 안은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도 울었습니다. 벌을 대신 받고 아픔을 참던 학생도,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깨닫고 용서를 비는 학생도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선생님은 하나님을, 다른 학생들을 위하여 대신 벌을 자청한 사람은 예수님을, 그리고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자기 자신의 잘못과 죄를 깨닫고 그 죄를 고백한 사람은 우리 모든 죄인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바로 이와 똑같은 원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 년 전,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판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 죄인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시고, 그가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당하시며,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깨닫고 믿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의 죄를 회개하오니 예수님의 보배로우신 그 피로 저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옵소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악한 죄악 중에 이 세상을 살아왔던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제 예수님을 진심으로 저의 마음과 저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 문을 열고, 이제 주님을 구주로 영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 예수께서는 이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거룩한 희생의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원수들의 조롱대로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그의 십자가를 포기하셨다면, 우리 모든 인류의 소망은 영영히 끊어졌을 것입니다. 육신을 지니신 예수님인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죽음을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오르셔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심히 놀라고 슬퍼하시면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는 홀로 앞으로 나아가셔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하실 수 있다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가 그처럼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의 기도가 간절하셨던가를 우리는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에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 번째 기도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괴로울지라도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우리를 위한 대속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그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에서도 구주로서 자신에게로 나아오는 오른 편 강도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소서." 라고 간구하는 강도를 향하여 예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너는 낙원에서 나와 함께 있으리라."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에서 더욱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군중들 틈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동정어린 눈길로 자신의 어머니를 내려다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그의 어머니를 부탁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동정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넓고 큰 바다처럼 한없는 사랑과 동정을 쏟으셨습니다.

   정오로부터 오후 3시까지, 태양은 빛을 잃고 온 세상은 깊은 암흑으로 덮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연과 온 만물마저 처참한 십자가의 광경에 슬픔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옛 찬송가의 한 구절처럼,


   인간을 위해, 

   피조물 되어 그들의 죄를 지시고

   그리스도, 전능자께서 죽음을 당하실 때

   밝은 태양마저 어둠속에 숨어

   그의 영광을 가리 우네.


   이 세 시간 동안은 주 예수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진노를 담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고통은 장차 우리가 지옥으로 가서 영원토록 당해야 할 모든 고통을 함축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인내하며 우리를 위해 참으셨습니다. 그가 겪으셨던 그 모든 고난을 어찌 그 누가 능히 다 측량하리요! 또한 예수님에게는 우리 인간들의 손에 의해 당하신 어떠한 고통도 하나님 손에 의해 당하는 고통에 비교하면 부드러운 손길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과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성취하신 일은 무엇인가? (What It Took to Finish The Job)


   암흑의 세 시간이 끝날 무렵,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외치셨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그의 기도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은 우리들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양 어깨 위에 모두 지워졌던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와 의로움은 모든 죄에 대한 완전한 심판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위에 얹혀진 우리들의 죄를 보셨을 때 그의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죄 값을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내가 목마르다"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면으로 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째로, 그는 적어도 여섯 시간 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서 피를 흘리심으로 인한 극심한 육체적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그의 목마름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영적 갈증의 표현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마름의 호소를 육체적 갈증으로 생각한 한 병사는 스폰지 달린 장대에 초(신 포도주)를 적셔 그의 입가에 대었습니다.

   그는 초를 조금 맛보신 후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라고 외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한 모든 사역을 그가 마침내 다 이루신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한 완전한 구원의 길을 친히 예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들의 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그 모든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시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한 일을 마치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보탤 것도 없고, 우리에게 더 필요한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통하여 이미 다 완성해 놓으신 그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 뿐입니다.

   최후로, 구주께서는 "아버지여, 아버지의 손에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라고 외치신 후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는 자신의 죽음의 시간을 스스로 주관하고(controlled)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이 오면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요 10:18).

   예수께서 운명하셨을 때, 두 가지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는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히 10:19-20). 또 다른 사건은, 지진이 일어나 무덤들이 열리며, 많은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로마 장교(백부장)는 심히 놀라며 "이는 분명 무죄한 사람이었도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고 놀라운 증언을 했습니다.

   관례에 따라, 병사들은 죄수들의 죽음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하여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것을 알고 그의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한 병사가 그의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매 피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예수님의 숨은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을 내려, 바위 속에 판 그의 새 무덤에 그를 장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삼 일이 지난 후, 예수께서는 무덤으로부터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나라로 다시 오르셔서 우리의 왕과 구주로서 지금 하나님 우편 보좌 위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참된 종교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죽었고, 그들의 시신은 여전히 무덤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나라에 지금 살아 계십니다. 오직 어리석은 자들은 죽은 사람을 자신들의 신(神)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들은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신(神)으로 믿습니다.

   생명과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우리 인간들의 인류 최대 범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자비로 말미암아 이것을 우리의 영원한 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나의 대속자로 죽으신 사실을 깨닫고, 참된 믿음으로 자신의 삶 가운데 그분을 영접하면 하나님은 진정한 복을 그의 생애 가운데 임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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