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지구상에서의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성경에는 안개, 빠르게 달리는 사람, 한 번 내쉬는 숨 그리고 한 줄기 연기 등 이 땅에서의 삶이 짧고, 일시적이며, 순간적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많은 비유가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분명코 어제 태어난 것 같은 느낌...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그림자만큼이나 순간적이다" (욥기 8:9, NLT).
삶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는 영생에 비해 이 땅에서의 삶은 지극히 짧다는 것이며, 둘째는 지구라는 곳은 우리가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그리 오래 머무를 것이 아니기에 지나친 애착을 갖지말고, 우리도 하나님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다윗은 "주여, 내가 이 땅에서 보낼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나는 아주 잠시동안 이곳에 있는 것임을 알게 해주십시오." (시편 39:4 LB)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복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외국에서 잠시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곳은 우리의 영원한 집 또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잠시 지구를 지나가며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순례자, 외국인, 방문객, 손님, 여행자' 등의 어휘를 사용해서 세상에서의 짧은 시간을 표현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다윗은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시편 119:19)라고 말했고, 성 베드로는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이 땅에서 잠시 거주하는 것처럼 살라" (베드로전서 1:17, GWT)고 말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위해 아곳으로 이주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국의 시민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이곳 시민이 아니지만 일을 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방문자 등록 카드(그린 카드)를 소지하고 다닌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자신들이 하늘의 시민임을 상기시켜주는 영적 등록 카드(그린 카드)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삶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항상 이 땅의 것만을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하늘의 시민임을 기억한다" (빌립보서 3:19-20, NLT).진정한 신자는 이 땅에서의 짧은 인생보다 훨씬 더 긴 삶이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정체성은 영생에 있고 우리의 모국은 천국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와 집착' 을 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 이곳을 위해 사는 것, 즉 세상이 기준이 되고, 세상의 일이 우선순위인 삶의 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문화의 가치관과 유혹에 빠지는 것을 영적인 간음이라고 부르신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우리가 적국의 대사로 임명을 받았다고 상상해보라.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그리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관습과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는 대사이기 때문에 적국의 영토 밖에서 살 수 없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과 접촉을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나라가 편하게 느껴지고, 그 나라와 사랑에 빠지며, 모국보다 우선시하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의 충성심과 헌신의 대상이 변할 것이며, 대사로서의 역할까지 위태로워지고, 모국을 대표하기보다 적들과 같이 행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배신자가 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고린도후서 5:20). 슬프게도, 스스로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종종 이 영적인 진리를 잊어버리곤 한다. 어리석게도 그들은 현재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그들의 영원한 집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땅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 성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전서 2:11).
하나님은 우리 주위의 것들이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너무 마음을 주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세상 물건을 쓰는 사람은 그것들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은 사람처럼 사십시오. 그것은 이 세상의 현재 모습이 지나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7:31, 쉬운성경).
세상은 지난 세기와 비교해볼 때 분명 살기 편해졌고, 고개만 돌리면 곳곳에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의 말초적인 즐거움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진정한 목표를 망각하게 만든다. 삶이 영원을 준비하기 위한 시험이고, 위탁받은 것이며, 잠시 맡겨진 임무라는 사실을 깨닫을 때에만 부수적인 것에 불과한 세상의 즐거움이 더 이상 우리의 삶을 움켜쥐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보는 것들은 내일이면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보지 못하는 것들은 영원할 것이다" (고린도후서 4:18, Msg).
이 땅이 우리의 궁극적인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왜 어려움과 슬픔 그리고 거절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요한복음 16:33, 16:20, 15:18-19). 또한 왜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왜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는지, 왜 어떤 상황들은 불공평해 보이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세상이 삶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삶에서 상당한 정도의 불만 요소를 갖게 하신다. 이 세상에서 채워질 수 없는 갈망을 느끼게 하신다. 우리가 이곳에서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곳은 우리의 영원한 가정이 아니다. 우리는 훨씬 더 놀라운 것을 위해 창조되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땅에서는 행복 하지 않을 것이다. 독수리가 날지 못한다면 삶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위해 우리가 지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땅에서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놓으신 것 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깨달음은 우리의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가치가 근본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C. S. 루이스는 "영원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무용지물이다" 라고 했다. 성경은 말한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18).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위해 갖고 계신 목표가 세상이 정의하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나 통속적인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풍요로운 삶은 물질적인 풍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충실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해서 그것이 우리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적인 편안함 보다는 성품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서의 삶을 편안하게 만드시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기억하라. 삶은 시험이다.
성 바울은 하나님께 신실했지만 결국 감옥에 갇혔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 신실했지만 그것 때문에 처형당했다. 수백만명의 신실한 사람들이 순교를 했고, 이 세상의 관점으로보면 모든 것을 잃었으며,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이 삶을 마감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삶의 끝은 끝이 아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은 번영, 성공, 그리고 이 세상의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일시적인것으로 여기고, 영생에서의 약속된 상급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사람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명예의 전당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3, 16). 이 세상에서 우리가 숨쉬는 시간이 우리 인생 스토리의 완결 편이 아니며, 스토리의 나머지 부분들은 천국에 가서야 채울 수 있다.
미국 대통령과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 은퇴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환호하는 환영 인파들, 군악대, 빨간 양탄자 그리고 언론이 대통령을 뜨겁게 맞이했다. 하지만 그 선교사가 배에서 내릴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 때문에 그는 자기 연민과 분노를 느끼며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하나님은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지 않니?"
"내가 왜 그렇게 일시적인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했지?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난 왜 그렇게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많은 시간과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하며 안감힘을 썼지?" 이와 같은 부르짖음이 우리의 마음에서 울리기 전에는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삶이 힘들어지고, 의심의 구름이 몰려오며,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고민하게 될 때 우리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죽음이란 우리가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집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할 점 :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삶으로 떠나는 질문
영원히 지속될 유일한 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이것은 당신의 가치관, 우선순위, 소유물 그리고 계획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적 편안함보다는 성품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리를 안 당신은 어떤 문제들을 바라보거나 반응할 때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주위에 이미 돌아가신 분이 있는가? 방금 읽은 것들을 토대로 그들이 말할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할지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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