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구원을 배운 신자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용서함 받아서 멸망의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위에 열거한 두 가지 내용은 복음을 깨닫는 것과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깨닫는 것과 발견하는 것은 동일하게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서두에 기록된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는데 '안다'는 말은 곧 경험을 통해서 안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기노스코"라는 단어로써 "...에 의하여 ...을 알게 되다", "발견하다", "깨닫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지식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경험적으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상담하면서 느끼는 것은 구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며, 혹 구원의 진리를 아는 사람을 만나보아도 그들은 구원을 배웠을 뿐이었다.
구원을 배운 사람을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구원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예전과 달라서 오늘날은 각 교회마다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경 지식수준이 상당히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원을 지식적으로만 배워서 이론으로는 알지만 경험하지 못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의 심각한 문제요, 근심거리이다.
사단의 입장에서보면 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노략질하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단의 속삭임에 속고 있다. 사단은 구원의 지식을 가르쳐주고 말하기를 "너는 구원의 진리를 알고 있으니 구원받은 거야. 더구나 한국에서 제일 이름있는 교파에 속했으며 유명한 목사님도 너와 같이 생각 하고 있지 않느냐? 너는 너의 목사님에게도 인정받고 있지 않느냐" 라고 한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현상을 여러 방면에서 조명하여 규정지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단에게 속아서 지옥에 가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기가 막힌 사단의 전략에 속아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필자는 눈물을 금할 수 없다.
이제 본론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구원에 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구원을 얻으라" 혹은 "구원을 얻었나니" 등으로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성경 어디에도 구원을 이론적으로 배우라는 가르침은 없다. 원칙적으로 복음은 외치는 것이며 경고하는 것이며 깨닫게 하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가르쳐서 지식을 습득하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다르다.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구원에 관해서 자신이 없으며 막연하게 천국에 갈 것이라 생각하여 자신 없는 대답만 한다. 혹 자신 있는 대답을 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자존심 때문에 말하거나 착각으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주제, 즉 구원을 배운 사람들의 상태를 점검해 보면서 이글을 읽는 독자들의 신앙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먼저 성경에서 경험을 통하여 구원받은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불쌍한 여인의 안내를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여인을 통해서 "메시야를 만났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은 배움의 단계이다. 배움은 듣는 것이며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며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은 소문일 뿐이다. 누군가가 그것의 사실성을 물어볼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은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라고 믿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배운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왜 메시아이며 왜 구세주인가, 그가 메시아라면 나와 어떤 관계가 있으며, 나의 인생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냥 구세주라고만 알고 있는 것이다.
여인의 말을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인을 따라가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구원을 받았다(경험했다). 그들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요한복음 4:42).
이 얼마나 확실한 경험인가.
또 다른 경우도 있다.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의 경우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에 관해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들었다. 그분은 메시아라고 들었다. 또는 선지자라고 들었다. 여러 기적들에 관해서도 들었다. 가르친 말씀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는 들은 상식으로 예수님을 알뿐이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삭개오에게 예수가 누구냐고 물었으면 자신 없는 대답을 하되 알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 하였을 것이다.
금일에 필자가 만나본 교인들이 오랜 교회생활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 없이 어정쩡한 대답을 하거나 분명한 대답을 한다 하여도, 학생이 배운바를 대답하듯 지식적인 대답에 머무르고 있다.
필자는 언젠가 교인을 만나서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그는 "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또 묻기를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가?"하니 "구역집회에서 전도사님에게 배웠다"고 하였다. "무엇을 배웠느냐?" 물으니 "여러분이 에배당에 나오는 날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으니 구원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였기 때문이라고 배웠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또 묻기를 "그러면 죄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니 "십자가에서 모두 용서되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또 계속해서 죄를 짓는데 어떻게 되는가?" 그는 "죄를 짓지 않아야지요" 하였다 "그래도 실수로 죄를 짓지 않는가?" 하니 "그러면 회개해야 하지요" 하였다. 또 끈질기게 묻기를 "회개하지 못하고 죽거나 죄를 짓다가 죽으면 어찌됩니까?" 하니 "할 수 없지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지옥으로 가는데 어찌 하렵니까?" 하였을 때, 너무나도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수십 년 교회 다닌 그의 입에서 놀라운 말을 들었다. "지옥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어이가 없어서 "지옥을 못 믿습니까?" 하니 "아니, 믿기는 믿는데 지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대화를 들으면서 독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는 지식으로 구원을 배웠을 뿐 구원받은 적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삭개오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삭개오는 자신의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서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뽕나무 위에서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의 생애는 달라졌다. 그는 구원받은 성도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여! 그대는 거듭났는가? 구원을 경험했는가? 속죄를 경험했는가? 지옥을 경험했는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대가 하나님의 실존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들 되심을 믿고 있다 할지라도 앞에 질문한 질문들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구원받았다고 인정할 수 없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독자들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이렇게 경고할 수밖에 없는 전도자의 마음을 아는가?
구약의 예를 보자. 열왕기상 10장에 보면 스바 여왕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 관하여 많은 소문을 들었지만 솔로몬의 위대함에 대해서 오히려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는 진실을 알아보기 위하여 멀고도 힘든 여행을 하였다. 그리고 솔로몬을 만나게 되었다. 솔로몬을 만나서 그가 한 고백은 무엇인가?
"왕께 고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나의 들은 소문에 지나도다" 하였다. 그는 소문을 확인한 것이다. 예수님도 이 여왕을 칭찬하지 아니하였던가(마12:42).
여기에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단어가 있다. "소문"이다. 소문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소문은 알고 있는 지식일 뿐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소문적 신앙에 머물러 있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 말했던 구도자의 경우 지옥을 믿는데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해괴망측한 이야기도 소문적 신앙의 전형이다,
오늘의 기독교 현실이 수요일과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일방적으로 듣고(배우고) 끝나면 집에 와서 자기의 삶을 살고, 이렇게 살다 보니 들은 것은 많은데 내 것이라고 할만한 지식은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직은 믿음이 없다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세례 주고 교인을 만들면 천국에 가는가? 교회를 몇년 다녔지만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자격도 없으므로 직분을 맡을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협박하다시피 집사 직분을 맡기면 천국에 가는가? 그것이 구원받은 사람인가?
필자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목사님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세례 받고 직분 맡으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왔다. 나의 부모뿐만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것을 보아왔다. 얼마나 잘못된 현실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어서는 안 되며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집사를 맡기면 교회 망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관료주의에 젖어서 감투를 좋아하는 속성이 있다. 오늘의 기독교가 이 속성을 이용하여 성경에도 없는 수많은 종류의 감투를 만들어 교인들에게 나누어주고, 교인들은 그 속에서 위안을 받으며 천국에 갈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집사, 장로 임명을 받으면 얼마만큼의 헌금을 해야 하는 의무는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요구되고 있다. 이것은 중세 천주교에서 속죄권을 팔았던 사실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또한 성직을 매매했던 슬픈 기독교 역사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참으로 기가 막힌 현실이다. 영생의 비밀에 관해서는 가르쳐 주지 못하고, 가르쳐도 이론적으로 가르쳐 줄 뿐 그들의 생명을 살리지는 못하는 현실 아닌가.
독자여, 그대가 수 십 년 하나님을 섬겼는가? 구원의 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는가? 예수님은 나 때문에 죽어서 내 죄를 용서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는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배워서 주장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장담하고 있는가? 그러나 필자는 권하고 싶다. 그대가 진정 멸망의 지옥에서 건짐 받은 경험 있는 성도들인가를 정직하게 점검해보길 바란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린도후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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