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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0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성 -제8과 여성에 관한 구체적 교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제8과


                            여성에 관한 구체적 교훈


                                           아내에 대한 교훈


   이번에는 순복에 관해 다루고 있는 다른 세 대목을 상고해 보려 합니다. 이 구절들은 특히 아내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골로새서 3장 18절에서도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Submit yourselves)" 고 특별히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자진해서 순복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 다음 구절에서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33)는 말씀대로 남편들에게 아주 무거운 책임이 지워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사랑이 있는 지도자가 되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그의 책임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아내를 지으신 것이지, 어려움이 되도록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아내들이 그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말씀은 교회가 선포해야 할 중대한 교훈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행해야 할 신령한 진리의 실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4절에서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상의 교훈은 아내된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기혼자이든 미혼자이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모든 여성이 갖춰야 할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여성은 모름지기 외모를 아름답게 하는 데 치중하기 보다는, 아름다운 품성 계발에 치중하여 정숙한 생활을 하게 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신령하고도 고상한 품성과는 대조적으로 고집과 다투는 소리와 공격적인 태도를 몇몇 현대 여성에게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하십니다(롬 12:2).

   순복이란 누구에게나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던(빌 2:6~8) 그리스도의 생애를 재현하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며, 또한 이를 주위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 할진대,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순복을 본받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순복은 결코 열등하다거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훌륭한 인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습니다(잠 16:32).

   순복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이 특권은 분명히 아내에게나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18~21)고 말씀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5장 5절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순복하는 심령은 모든 믿는 자의 특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우선적으로 생활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요일 3:16).

   주님을 믿는 여성은 외모를 사치스럽게 꾸며서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려 할 필요도 없고, 대중적인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지위를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가치있게 보시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자연히 내적인 정숙과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 당시 믿음의 여인들이 갖고 있었던 소박하고 단정한 자태는 이방 여인들의 부도덕, 방종과는 대조적이었기에, 이교도였던 리바니우스(Libanius)는 "어쩌면 기독교 여성들은 이처럼 훌륭할까"라고 찬탄해 마지 않았습니다.


                                             침묵에 대한 교훈


   남자의 지도적 권위와 여자의 순복의 원리는 교회적인 집회에 있어서 여자가 잠잠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은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딤전 2:11,12)고 말했습니다.

   이에서 보다시피 교회에서 여자가 남자를 가르치거나 다스리는 권위를 명백히 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 2:13,14)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여자의 침묵의 이유로 1세기의 어떤 지역적, 문화적 특수 상황을 제시하지 않았고, 창조와 타락의 순서에 기초하고 있음을 말했습니다. 결국 이것은 잠잠하라는 교훈이 근본적인 원칙이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됨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디모데전서 2장 8절에서 바울은 공중 기도를 남자에게만 허용하고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신자들에게도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고전 14:34,35)고 편지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저 집회 중에 있는 여자들의 잡담이나 험담을 금했을 뿐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이 구절에서 "말하는 것'은 원어상 결코 잡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동일한 단어가 21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경우에도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을 뿐더러, 남자의 지도적 권위에 순복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여자들이 대중앞에서 말하게 되면 순복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렇듯 여자들에게 보람있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셨지만, 교회에서 대중적으로 일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신약 성경의 일관된 증거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대중적으로 질문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35절). 로저(E. W. Rogers)는 "여성의 지위에 대한 모든 논쟁은 여성의 강단 사역이 중요하다고 과장하여 강조하려는 데에서 비롯된다.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은 기도가 설교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 기도야말로 자매들이 할 수 있을뿐 아니라 남자보다 더 잘 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한편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전 14:37)고 말했던 점을 유의하십시오. 이것은 앞서 다루었던 모든 문제와 여자들에 대한 가르침까지 포함한 모든 내용이 주의 명령이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사도 바울의 사상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1장 5절에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라는 말씀을 상고하지 않은 채, 여자들의 침묵의 문제를 일단락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건대, 여자들이 대중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허락을 했고, 14장에서는 같은 내용을 금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절의 문자적 의미와 교훈적 의미에 대해서는 구구하면서도 그럴듯한 견해가 무수하게 나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11장이 지도적 권위와 순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 교회의 질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즉 11장에서 바울은 여자들이 회중 앞에서 말해도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교회 질서를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14장, 디모데전서 2장에서는 잠잠할 것을 명하셨던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1장에 나오는 여자의 기도나 예언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만약 고린도 교회에서 여자들이 회중 앞에서 기도나 예언을 했다면,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로서 다른 교회에도 있었던 일반적인 관습은 아니었으며(고전 11:16), 많은 혼돈 가운데 있었던 고린도 교회에 대한 특별 조처였다고 결론짓게 됩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4장과 디모데전서 2장에서 분명하게 가르치는 침묵의 원리는 고린도전서 1장 11절의 지도적권위와 순복에 대한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있는 여자들의 무분별한 활동으로 인해 침묵의 원리가 변경되는 것은 아닙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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