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2.23 말씀의 올바른 분별 - 제4과 부활과 심판 1
  2. 2015.01.23 로마서 - 10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말씀의 올바른 분별


                                     제 4 과

                            부활과 심판


   1.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진리의 말씀은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할 것이라고 아주 명확하고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교리 중에서 이 사실 만큼 분명하게 성경에 근거하여 선포된 것도 없을 것입니다. 또 이 사실의 진위에 기독교의 사활(死活)이 달려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 이 부활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고전 15:13,14)


   그러나 성경은 죽은 자들이 다 일시에 부활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데, 이점은 꼭 주목해야 합니다. 실제 일부 성도의 부활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27:52,53)


   부활에는 그 대상과 시기를 달리 하는 두 부활이 있는데 이는 모두 미래에 있을 것입니다. 이 두 부활은 생명의 부활 악인의 부활로서 각기 그 성격을 달리합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


   이 구절에서 만약 "때" 라는 낱말이 한순간을 가리킨다는 것을 근거로 이 두 부활이 구분없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25절의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한 말씀대로 " 그 때" 는 1900년이나 지나갔다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 그 때"는 여전히 미래적인 시점입니다. 따라서 두 부활이 동시적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겠습니다.

   * 참고요절 : 벧후 3:8 ; 고후 6:2 ; 요 8:56의 때(Day)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눅 14:13,14)


   위의 말씀에서는 주님께서 첫째 부활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이 부활에 대한 묘사가 더욱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22, 2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4-16)


   이 생명의 부활, 의인의 부활,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들의 부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11에 말씀하고 있는 부활입니다. 바로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에 이르려 하노니" 인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 이 아닙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모든 죽은 자가 동시에 부활되는 것을 뜻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은 당연히 그 가운데에서의 차출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 가운데 얼마는 남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입니다.


   만약 죽은 자들이 모두 동시에 부활한다고 생각했다면, 사도 바울도 당연히 그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인데, 왜 '어찌하든지'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말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0:4-6에는 두 부활이 함께 언급되고 있는데, 이 말씀에는 두 부활 곧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의 부활 사이에 시간의 차가 있음이 덧붙여 있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또한 12, 13절은 둘째 부활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심판에 이르는 부활입니다. 그렇다면 4-6절의 말씀은 두번째 부활이 있기 천년 전에 죽었던 신자들의 몸이 불신자들의 시체들 가운데서 부활된다는 것을 명백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부활의 가르침이 오로지 죽은 자의 "몸" 에만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영은 죽은 이후 바로 복이나 화를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빌 1:23 ; 고후 5:8 ; 눅 16:22, 23).


   2. 다섯 심판


   종교 서적을 보다보면, 온 인류가 함께 심판받는다는 의미의 "총체적인 심판(general judgment)" 이란 단어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심판은 성경에 나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말이 의미하는 개념도 성경에 없습니다. 펜티코스트(Pentecost)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기독교계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조류가 있다. 이는 세상 끝날에 전 인류 곧 성도와 죄인, 유대인과 이방인, 산 자와 죽은 자가 구분없이 다함께 "크고 흰 보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는 일대 큰 사건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없다." 성경에는 다섯 종류의 심판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 심판들은 대체로 대상,장소, 시기,결과라는 네 가지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1) 신자들의 심판

   신자들의 죄는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시기 : 주후 30년 /

   장소 : 십자가 /

   결과 : 그리스도의 죽음과 신자들의 의인(義認)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요 19:17,18)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벧전 2:24)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 ."(히 1: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요 5:24에서 심판으로 번역된 낱말은 (일반 역본에는 "정죄" 라고 되어 있음) 마 10:15, 히 9:27, 벧후 2:4에 심판으로 번역된 낱말과 똑같은 낱말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행위에 대한 심판이 언급된 고후 5:10에는 전혀 다른 낱말이 사용되었습니다.


(2) 신자들이 범한 죄들에 대한 심판

   시기 : 어느 때나 /

   장소 : 어디에서나 /

   결과 : (우리가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주님께 징계를 받는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1, 32)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 12:7)


   *참조요절 : 벧전 4:17 ; 고전 5:5 ; 삼하 7:14, 15 ; 삼하 12:13,14 ; 딤전 1:20


(3) 신자들의 품행이나 행한 일에 대한 심판

   시기 :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

   장소 : 공중에서 /

   결과 : 상을 타거나 해를 받는다.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히10;17). 그러나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상벌간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신자의 생활, 행한 일은 반드시 주님의 검열을 받게 됩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9,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 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위의 두 인용문들은 문맥상으로 보아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주어진 것임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두 상태 중 어느 하나에 속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주님을 떠나 육신에 거하고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육신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고 있다는 그것입니다. 이런 말은 불신자들에게 쓰여질 수 없는 말입니다. 그외 "담대히 원하는 바"가 어찌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자 되기를 힘쓰노라"하는말도 마찬가지로 불신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나 "형제"란 낱말도 역시, 이 말씀이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령님은 구원 얻은 자와 구원 얻지 못한 자를 결코 혼합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피로 정결케 된 성도가 어떤 심판도 받지 않을 것으로 착각할까 하여 이사야서에서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등의 말씀을 인용한 다음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고 덧붙이고 계십니다.


   * 다음의 말씀들은 행위의 심판에 대한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 3:11-15)


   * 다음의 말씀들은 이 심판의 시기를 정해 주고 있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 . "(눅 14;14 ; 고전 15:22,23 참조)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우리의 미숙한 일에 대하여 주께서 정밀하게 조사할 것을 생각 할 때 우리 마음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주님께서 인내와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금도 우리 속에서 역사하심으로 인해 그 때에 우리가 칭찬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 . "(딤후 4:8)


   이 심판의 장소에 대해서는 데살로니가 전서 4;17과 마태복음 25:24-30을 참고하십시오.


(4) 열방의 심판

   시기 :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능력으로 나타나시는 날, 곧 지상 재림시(마 25:31,32 ; 13:40,41) /

   장소 : 여호사밧 골짜기(욜 3:1,2, 12-14) /

   결과 : 구원받는 자도 있고 잃어버림을 당하는 자도 있다.(마 25:46)

   기준 : 그리스도께서 내 형제라고 부르시는 자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따라 심판(마 25: 40,45 ; 욜 3: 3,6 7)


   이 형제들은 큰 환난 중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돌아올 유대인 잔존자들입니다. 큰 환난은 교회가 휴거된 후에 시작되어 영광 중에 나타나시는 우리 주님의 지상 재림으로 끝납니다(마 24:21,22 ; 계 7:14 ; 살후 2:3-9). 이 시실을 증거하는 말씀들은 너무 많아서 여기에서 다루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형제들이 현 교회 시대의 믿는 신자들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리 무식하더라도 신자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이 실제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친절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존 열방에 대한 이 심판은  요한 계시록 20;11의 크고 흰 보좌의 심판과 때때로 혼동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두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조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열방의 심판

   부활이 없다.

   생존한 민족들이 심판을 받는다.

   지상에서 받는다,

   책이 없다.

   세 종류의 부류 곧 양,염소,형제들이 나타난다.

   심판의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재림하실 때다.


   크고 흰 보좌의 심판

   부활이 있다.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

   하늘과 땅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책들이 펴 있게 된다.

   오직 한 부류 뿐이다. 곧 죽은 자들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1000년간 통치하신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열방의 심판에 관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고전 6:2 ; 단 7:22 ; 유14,15) 열방의 심판과 크고 흰보좌의 심판에 공통되는 것은 다만 하가지 뿐인데 그것은 심판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5) 죽은 악인들의 심판

   시기 : 천년왕국 후 어느 지정된 날(행 17:31 ; 계 20:5,7) /

   장소 : 크고 흰 보좌 앞(계 20:11) /

   결과 : 영원한 파멸(계 20:15)


   사도행전 17:31과 로마서 2:16 등의 구절에 나타난 날과 같은 낱말에 대해 어렵게 생각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날은 하나님의 장구한 기간을 뜻하는 것으로 벧후 3:8 ; 고후 6:2 ; 요 8:56 ; 요 5:25의 때는 벌써 1900년 이상이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 참고 ; 성경은 천사들의 심판에 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6:3 ; 유 6 ; 벧후 2:4). 누가복음 22:30 은 아마 신정통치(神政統治) 하의 사사와 같은 이들을 언급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법부라기보다는 행정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사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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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10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12장 1절 ~ 13장 14절)


   그리스도인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실을 매일의 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내야만 하는가? (1)


   이제 로마서에서 실제 생활에 관한 것을 배우고자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말씀(1~11장)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헌신과 봉사의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의 임무입니다.


   1. 하나님께 대한 헌신(12:1,2절)


   이 말씀은 본 서신서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면 크나큰 손실을 입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기억하면서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절실한 호소를 하였습니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


   하나님의 자비는 은혜로 구원 받은 자에게 오직 한 가지 합리적인 결론을 주었습니다. 곧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셨다면 나 또한 내 몸을 그에게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나 또한 모든 일에 있어 그를 위해  내가 살지 않을 수 없다"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C.T.스탓(C.T.Studd)은 "만약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내가 무슨 헌신인들 아낄 수 있으랴"고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찬송가 작가 아이작 와트도 다음과 같이 유명한 시를 남겼습니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이런 고백들은 사실입니다. 사실상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모순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그의 피로 사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쁘신 대로 우리를 쓰실 수 있도록 우리는 순간 순간 순종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믿음 안의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본 받지 말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적(육적)에서 영적으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처럼 사고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세상 모든 것을 보시는 것처럼 보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바로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에 있어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향하여 새로워질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은 영원을 향한 소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2. 은사를 사용할 때의 겸손한 마음(3~8절)


   우리의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이를 우리가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3. 성도에 대한 사랑(9~13절)


   우리의 사랑은 신실하고 순결하고 이타적이고 친절해야 합니다.


   4. 핍박하는 자들에게 대한 사랑(14~21절)


   그리스도인에게 보복이란 옳지 않습니다. 오직 심판은 주님만의 권한 인 것입니다. 가장 좋은 일은 친절로써 핍박을 대하는 것입니다.


   5. 정부에 대한 순복(13:1~7절)


   국가의 권력은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그 누구보다도 충성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사실을 정부가 강요할 때에 성도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세금이나 기타 관세의 문제에 있어서는 위의 권세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6. 이웃에 대한 사랑(8~10절)


   이것은 모든 사람에 대한 우리의 빚입니다. "저로 하여금 주님처럼 눈물로 무리들을 바라보게 하옵시고, 길 잃은 양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사 주님의 사랑으로 저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7.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11~14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주님의 임박한 재림으로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 같은 태도에는 두 가지의 성도의 삶이 있습니다.


   1)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풍성함 가운데 거함으로 그를 경외하면 다른 이들이 성도를 봄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2) 육신에게 여유를 주지 마십시오. 육신의 충동과 정욕을 버리고, 육신의 비위를 맞추려 하거나 육신을 경솔하게 다루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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