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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강해 제8과

분노한 자를 멀리함으로 얻는 안전

 

Avoiding an Angry Man Brings Safety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잠언 22: 24-25).

 

캔사스 레븐워스(Leavenworth)에 있는 미연방교도소 심리상담가인 글렌 월터즈(Glenn Walters)씨의 말에 의하면 교도소 수감자들이 정서적으로 겪게 되는 두 가지 경험은 "공포와 분노"(Fear and anger)라고 합니다. 교도소에 있는 죄수들의 주위의 환경적 모든 분위기는 사실상 이 두 가지 감정 이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제1과에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공경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본과에서는 하나님께서 분노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의 말씀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의로운 분노

 

분노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분노(anger)나 진노(wrath)는 의심의 여지 없이 항상 의로운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의 분노에 대해서 이처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잠 24:17-1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전을 청결케 하려 하실 때 분노하셨습니다(요 2:13-17).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에서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진노하셨을 때에 예루샇렘 성이 불타고 온 성이 폐허가 되며, 백성들은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 광경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남 왕국 유다가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그들의 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성이 파괴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참고-북 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함)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 당시보다 천년 이전에 신명기 28장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경고해 놓으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임금을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신 28:15, 36-37).

 

 

그러한 경고를 이미 받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한결같이 목이 곧고 패역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고 하나님 섬기기를 저버리고 그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 이방 족속들의 풍습과 그들의 우상 신들을 따라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천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인내하시며 자신의 택한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진노를 참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않았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예레미야애가에 나타난 비극은 바로 천년 이상 오래 참으사 진노하시되 더디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잘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에 의해 누군가가 해를 입게 될때 이를 보고 나타내는 의로운 분노는 전적으로 합당한 것입니다. 가령 어느 악한자가 길거리에서 한 노부인의 가방을 뒤에서 낚아채고 그녀를 구덩이로 밀쳐 넣어 피를 흘리게 하고도 조롱하며 그냥 그대로 가버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이 그와 같은 광경을 보았다면 당신은 아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에 속한 사람일 것입니다. (1) 히히덕 거리면서 그 도둑이 피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2) 아주 무관심한 상태로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쓰며 그 노부인을 구덩이에 내버려 둔 채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3) 의로운 분노에 따라 그 노부인을 도와 구덩이에서 이끌어 내고 또한 도둑을 잡으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3번째의 반응은 곧 의로운 분노의 반응입니다.

 

불의한 분노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둘보다 무거우니라.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 27:3-4).

 

분노는 사람들 주위에 독을 뿌림과 같습니다. 남을 저주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앞을 지나게 될 때 자신도 감정이 솟구침을 느끼거나 혹은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긴장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분노한 자가 절제심을 상실할 때 필경 그 가운데 어느 사람이 다치게 되거나 때로는 총이나 칼 등의 무기까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잠 25:23).

 

자신을 등 뒤에서 험담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많은 사람이 분노를 표출하게 됩니다. 특히 가정 폭력문제의 큰 요인이 이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아내나 혹은 여자 친구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격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1:19).

 

여자들 역시 화를 내게 됩니다. 그들은 남자들과 다른 방법으로 종종 자신들의 분노를 드러냅니다. 어찌되었든, 분노하는 자는 주위의 룸메이트나 동료 감방죄수나 직장 동료나 혹은 그의 배우자에게 극심한 불쾌감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잠 19:19).

 

폭력적인 기질을 가진 자는 결국 그에 대한 징벌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격렬히 분노할 때에 누군가가 경찰을 부르게 될 것이며, 그의 아내는 집을 뛰쳐나갈 것이며, 자녀들은 공포에 떨 것이며, 고용주는 그를 파직시킬 것입니다. 혹은 범죄 수사기관에서 그를 심하게 다루게 될 것입니다. 여기 인용 구절의 후반부에서 주는 교훈은 상습적으로 분노하는 사람에게는 구제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한 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계속 화를 낼 것이며 심지어 이전보다 더욱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분노한 사람을 진정시키거나, 그의 잘못을 처벌함으로 분노하는 사람을 교정시켜보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의 아내나 어머니나 여자 친구들이 종종 이와 같은 방법으로 노력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일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수많은 형무소의 흉악범들이 형무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후로 양 같이 온순하게 새로운 인간으로 변하는 실례들을 수 없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당할 때 돌로 스데반을 치던 무리들을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옥에 가두고 기독교를 이단으로 몰아 말살하려고 교회를 핍박하던 냉혈 인간 사울 역시 훗날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이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구원함을 얻고 주의 사도도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오른 편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던 강도 역시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그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2-43)고 그 십자가상의 강도를 받아들이시고 그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잠 6:34).

 

수 많은 폭력사태나 분노를 일으키는 요인은 성적인 문제와 관련이 깊습니다. 실례로, 남자는 자기 아내나 여자 친구가 신실하지 못할 때 의심을 품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그의 여자 친구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조차 참지 못하고 의심하고 경계하며 분노를 나타냅니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잠 14:16).

 

지혜로운 자는 악한 자와 어울려 악을 도모하지 않습니다(잠 22:24). 그는 분노하는 사람의 악에 자신이 동참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리석은 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잠언에는 무려 50번 이상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만심이 강하고, 거만하며, 세상 모든 일이 그를 중심으로 해결되고, 그가 이끄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일이 그의 뜻이나 방식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에 는 분노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언제나 일방통행식입니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이와 같은 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거부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잠 29:9).

 

이 말씀에서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와 쟁론을 하여 합의를 이끌어 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여기에서 어리석은자의 히브리어의 원어의 뜻은 악한 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혜로운 자의 입장은 다만 당황스러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악한 자)의 반응은 지혜로운 자를 향하여 노를 격동하던지 혹은 비방과 조롱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교훈은 이와 같은 자를 상대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 29:22).

 

분노하는 사람의 주변은 항상 위험합니다. 그들은 항상 문제를 일으킬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자주 곤경에 빠뜨립니다. 따라서 분노하는 자와 동류가 되는 것은 결국은 자신도 심각한 문제에 함께 빠져들 염려가 있습니다.

 

술과 분노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잠 23:29-30)

 

술이나 마약의 중독에 빠진 자들이 자신의 건전한 통제력이나 절제심을 잃고 분노를 잘 나타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주정뱅이는 다툼이나 분쟁 일으키기를 좋아하며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잠 23:32).

 

형무소 수감자들의 약 80퍼센트 이상은 술이나 마약 중독과 관계가 있습니다. 일단 중독에 걸리게 되면 그런 사람은 안전운행을 할 수도 없고 기계를 다룰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술이나 코카인이나 메담페타민 같은 각성제에 의해 환각상태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통제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지미(Jimmy)의 취미는 오토바이 타기를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전신은 온통 문신(tatoos)으로 뒤덮인 상태였습니다. 청장년기의 시절에는 항상 오토바이타기를 즐기고 술과 메담페파민 같은 각성제를 항상 가까이 하였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하여 항상 분노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끊임없이 싸움을 일으키곤 하였습니다. 그는 어릴 때 자신이 받은 학대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심한 역기능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그의 친척들은 그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주 수입원은 거의 길거리에서 마악을 거래하는 일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토바이 타는 것과 마약 거래하는 것과 같은 부류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어느 날, 지미(Jimmy)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바(bar-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그 자리는 싸움판으로 변했고 끝내는 커다란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지미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체포되었고 법정에서 7년 형을 언도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미는 형무소로 넘겨지기 직전, 구치소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구하였고 마침내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차츰 차츰 하나님의 말씀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공부 시간과 기도회가 있을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참석하였습니다. 지미는 시간이 있을 때 마다 다른 동료 수감자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하는 데까지 힘을 썼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그는 예전의 동료 갱 멤버들로부터 계속해서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들과 결코 싸우거나 다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과 결코 조그마한 언쟁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들에게 복음의 말씀과 사랑을 나타내는 일만 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의 동료들은 그를 인정하게 되었고 그를 형무소내의 전도자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지미는 다시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을 근심시켜드리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하여 늘 조심하였습니다. 세월이 가고 또 해가 갈수록 점점 그는 더욱 자기 절제와 마음의 안정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드디어 지미는 형무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 아주 굳건한 그리스도인으로 그들 가운데 우뚝 서게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분노와 자기절제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분노를 이기는 해결책은 인내와 절제와 신중성을 고양시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특성들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힘씁니다. 그는 자신을 모욕하는 자에게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받은 모욕을 할 수 있는 한 가볍게 넘기려고 애씁니다. 비록 어떤 사람으로부터 무슨 불쾌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는 그러한 모욕이나 반대나 도전을 단순한 일로 넘겨버리기 위하여 인내와 절제를 동원하여 할 수 있는 한 합당하게 대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비하는 자의 분노가 경건한 사람을 분노 가운데로 함께 빠져들어 가게 하지 못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긴박한 상황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주십니다. 상대편이 화를 낼 때 좋은 말로 대응을 하면 그 사람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말이나 혹은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떤 그릇된 태도의 말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 하며,소금으로 간을 쳐 맛을 내듯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어떻게 합당한 말을 할 줄을 알리라."(골 4:6)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지혜로운 자와 충동을 억제 하지 못하는 자 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충동적인 사람(impulsive people)은 그의 머리나 혹은 지각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개 즉흥적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본성적인 근성(raw emotion)을 있는 그대로 나타냅니다. 누군가가 그를 모욕하면 즉각적으로 분노로 대응하며 목청을 높여 싸우려 들거나 때로는 주먹이나 발길질 같은 육체적 행동까지 거침없이 들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이와 같은 범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보내진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그의 기질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영화 같은 흥행물에서는 민첩한 주먹을 휘두르는 자도, 총을 잽싸게 다루는 자를 영웅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신속하게 제압하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욕설이나 위협 등을 격렬하게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아주 반대입니다. 즉흥적인 폭력이나 공격적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들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는 자를 하나님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앞에 인용된 잠언 구절은 실제로 그의 갑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전쟁에서 성을 정복하고 승리한 용사보다 더 훌륭한 영웅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는 사람은 자기 절제(self-control)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과 영혼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 29:11).

 

안정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야 한다고 하는 그릇된 이론을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분노나 격한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자기 안에 이를 품고 참는다면 결국 나중에 쌓였던 그 분노가 마치 화산처럼 밖으로 터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는 정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는 법을 먼저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분노를 절제하는 자란 자신 안에 있는 분노를 부인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그와 같은 감정이 있는 것을 자신에게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도 인정해야 합니다. 시편 안에서 보면, 다윗은 그의 분노를 숨기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결코 해를 입히지 않고 매우 절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은 그의 원수 사울이 그가 숨어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한 신하로부터 이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는 절호의 기회라며 그를 해치워 버리라는 권유를 듣습니다. 다윗인들 기회가 왔을 때 왜 원수를 갚을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다만 사울의 옷자락 끝을 칼로 베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사울 왕 앞에 자신이 결코 목전에 있는 원수를 해하려는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줌으로 사울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또한 그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신하는 길에서 사울의 신복 시므이의 끈질긴 저주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참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절제의 인물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삼하 16:5-13). 실로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실 때 그는 모욕과 조롱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다고 베드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벧전 2:22-24). 모세도 그랬고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로 그랬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역시 그래야만 할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 21:14).

 

자기 절제를 잃은 분노한 사람에게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까요? 때때로 선물이나 혹은 뇌물(bribe는 종종 present로 번역됨)은 화해(peace)를 이루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 중에서 좋은 실례 가운데 그하나는 야곱이 그의 형 에서에게 한 행동입니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와 진정한 화해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선물로 말미암아 형 에서의 분노를 가라앉히기를 원하였습니다(창 32:33).

 

"분을 쉬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분을 참지 못하는 자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다툼이나 분란이 일어나며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자는 어떻게 하든 싸움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체득한 사람입니다. 그는 때때로 자칫 싸움판이 진짜로 벌어질 상황에 이를 때면 그 가운데 직접 개입하여 상황을 적극적으로 중재시킴으로 화해를 가져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합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12:16).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짜증이나 불쾌감을 그의 얼굴에 즉각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이 방안에서 이야기할 때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피해과다망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화를 낼만한 일을 당해도 동요하지 않고 그런 일을 너그러이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

 

지혜로운 사람은 분노를 잘 피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잘 배운 사람입니다. 그들은 부정적인 상황에 빠져들어 자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분노로 인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인내심을 배워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내(patience)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롬 15:5). 욥은 경건한 인내의 사람(약 5:10-11)의 본보기였습니다.

 

인내(patience 시련이나 고통을 꿋꿋이 참아가는 능력)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나 환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쌓아가도록 하신 그리스도인들의 품성(character)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여러 어려운 상황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인내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 내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롬 5:3).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부딪치는 여러 어려운 상황들은 결국 남은 여생에서 인내가 온전히 이루어 질 때까지 계속해서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교훈을 터득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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