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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23 잠언강해 제 12과 자기 절제를 통한 승리의 삶

                                  자기 절제를 통한 승리의 삶

                                   Self-Control Brings Victory

 

   본문말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마가복음 7:21~23에서,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을 지키라. 왜냐하면, 모든 종류의 악한 것들이 다 마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취하느냐에 따라 참되기도 하며,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더욱 진실하게 되기도합니다. 잠언 23:7에서는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들은 결국,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절제하고 통제해야하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감정을 만들어 내고, 감정은 그 사람의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은 자기 절제 없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농구를 하는 것이든, 노래를 하는 것이든, 물건을 판매 하는 것이든, 운전을 하는 것이든,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것이든 그 어느것 어느 분야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어느 분야에서든지 그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부단한 자기 절제와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가령 천재적인 골프선수라 칭송받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가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부단한 노력과 자기 절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수한 체육선수나, 탁월한 음악가나, 훌륭한 기능공이 되기까지 그들 모두가 다 그와 같은 노력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끊임 없이 자신을 연마하고 실습을 거듭하며 철저한 자기절제를 실천함으로 승리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 사람들입니다.

 

   아래의 각 문항은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네 가지 특징들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유형의 인격적인 특징

 

   1. 맨 먼저 그들은 화평케 하는 자들입니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 17:14).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 19:12).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의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 20:3).

 

   "길로 지나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잠 26:17).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함으로 분란을 일으키고 친구간의 우정이나 자신의 가정까지 파탄시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관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며 그것으로 만족감을 취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강한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해치거나 피해를 입히는 일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일부 청소년들은 절제되지 않은 감정에 이끌림을 받아 떼로 몰려다니며 남의 건물을 파괴시키거나 건물에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청소년들에게는 일종의 힘의 과시이며 스스로 힘 있는 자라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감정에 지배를 받는 자들은 이처럼 강력한 악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사랑은 미움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물을 파손시키는 방화범들보다 건물을 세우는 건축자들이 훨씬 존경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분쟁이 있는 곳에 찾아가 문제를 예방시켜 주는 일을 돕거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힘은 사회를 깨트리고 파괴하는 사람들의 힘보다 훨씬 강하며, 많은 존경을 받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보다 화평케 하는 자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젭(Jeb)은 이와 같이 화평케 하는 사람에 속합니다. 교도소에 들어와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하기 전 그는 무절제한 생활로 끝내 결혼생활까지 파탄시켜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수감되어 있던 중에 이혼을 당했기 때문에 가석방으로 풀려나온 후에도 혼자 지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 때 자신을 떠나 이혼을 해버린 전 부인에게 찾아가 그들 부부 사이에 상처를 입고 이혼을 하게 된 것이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라고 사과 했습니다. 또한, 그는 부모님에게도 찾아가 마음의 상처를 입혀드리게 된 것을 사과했습니다. 젭이 형무소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의 남동생도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의 여동생 역시 마약에 빠져 그녀의 아이마저 부모님께 맡기고 떠나버리게 되었는데 젭은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모두 자신에게 있음을 인식하고 부모님께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이처럼 젭은 거듭나기 전, 과거 자신의 죄악된 생활로 말미암아 그의 부모님들께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혀드리게 된 사실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젭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난 날 자신의 잘못된 삶으로 세 남매들이 부모님께 입혀드리게 된 마음의 상처들을 남은 생애 동안에 치유시켜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후 젭은 화평케하는 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갔고, 마침내 그의 부모님께 자랑을 기쳐드리는 아들로까지 변화되었습니다.

 

   2. 그들은 즐거움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심령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잠 12:25).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4:30).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 15:2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 매사에 긍정적이고, 근심이나 걱정보다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울하고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항상 즐거워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그들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우물물처럼 다른 이들을 말끔히 씻겨주는 역할을 해줍니다.

   특히 구치소나 교도소나 재활원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기쁨을 찾기가 더 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는 부정적인 생각, 불평 혹은 자기비관에 빠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곳에 들어와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우울증을 앓았거나 아니면 절망을 이기지 못해 마약과 같은 약물에 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약물이 가져다주는 효능에 의지해 인위적으로 자신을 현실세계에서 벗어나게 하여 환각상태에 빠짐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해방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약물은 그들의 뇌 속에 있는 호르몬과 뇌세포에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 단지 순간적인 만족감을 그들에게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환각적 만족감은 순간적일뿐이며 결코 진정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에 기쁨을 가져다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에게는 기쁨을 전염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의 심령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병을 치료하는 약효를 능가합니다. 그것은 단지 치료의 효능뿐만 아니라 장래에 겪게 될 심령의 정서적 장애를 예방하는 면역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미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감옥으로부터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그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하였고 계속하여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웟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나"(빌 4:11-13)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적극적인 생각을 하도록 하기위하여 다음과 같은 처방을 해주었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라"(빌 4:8).

 

   빈센트(Vincent)는 경제적 기능장애를 겪고 있는 역기능가정(신체적 결함은 없어도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그가 범죄로 인해 재판정에 처음 선 것은 불과 그의 나이 9살이었습니다. 이제 30대가 된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교도소를 전전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 빈센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빈센트(Vincent)는 아주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는 늘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마음의 평안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미소를 띠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이 속해 있던 갱단으로부터 탈퇴를 결행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교도소내에서 그는 두 번이나 거의 죽임을 당할뻔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일도 그의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누리는 즐거움을 빼앗아 가지 못하였습니다. 여전히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의 평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빈센트(Vincent)의 그러한 미소는 교도관들로부터 늘 호의적인 반응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빈센트는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평강과 즐거워하는 마음을 억누르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번은, 빈센트(Vincent)는 교도소의 목사에게 조차도 그의 설교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정중하게 전하면서 조금만 미소를 지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부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다른 여러 그리스도인들이 빈센트(Vincent)를 찾아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빈센트의 충고와 조언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빈센트는 그와 같은 상담을 통하여 행복한 심령은 다른 사람들을 치료 할 수 있는 치료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3. 그들은 지위가 낮고 가난한 자들에게도 차별하지 않고 늘 친절한 사람들입니다.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잠 31:26).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 14:31).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서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 14:20-21).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잠 29:7).

 

   청소년 중에는 다른 친구들을 자신이 보기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들과 자신을 구별하여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학생들 중에서도 자신만을 인기 있고 멋지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다른 친구들을 외톨이 취급하고 그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위 학교에서 일부 동료 학생을 왕따(bully)로 몰아 그들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문제는 오늘날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에서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 문제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좀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어느 교수의 연구조사 보고에 의하면 자신이 다른 친구를 따돌린 경험이 있는 학생이 50%,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30% 정도나 된다고 하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왕따시키는 방법에는 별명부르기, 신체외모에 대해서 놀리기, 멍청하다거나 바보라고 놀리기, 무시하며 비웃기, 함께 놀아주지 않기, 말을 따라 하기, 빈정거리기, 말로 상처를 입히기 ,몸을 건드리기, 때리기, 물건을 빼앗거나 손상시키기, 째려보기,외면하기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의 경우, 그 영혼이 파괴되고 정신적인 병을 얻는 데까지 발전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와 같은 피해자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기피하거나, 대인 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거나,고립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하게 발전하는 경우에는 자살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남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왕따문제가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와 같은 청소년들 속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청소년들 마음이 각박해 있고 그들의 심성이 잔인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악한 죄악의 쓴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거듭남으로써  새로운 성품을 소유한 자로 변하지 않는 한 이런 악한 쓴 뿌리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일찍부터 마음속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잘 양육된 청소년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런 악한 쓴 뿌리를 넉넉히 이기며 성실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있고 예절 바르고 공손한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성인이거나 할 것 없이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며 친절하며 남을 위하며 섬기며 봉사하고 돕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당대의 종교 및 사회적 지도자들은 문둥병자들이나 사회적으로 천시받는 사람들이나 창기나 세리 같이 죄인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을 항상 가까이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법과 의로움과 거룩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과 죄인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하게 구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반대로 오히려 그러한 낮고 천하고 가난한 자들과 친구가 되어주시고 가까이하며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심으로 당대 종교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고 금기시하던 사회적 관습과 통념을 깨트리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누가복음 6:20-22).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 전서 1:26-29).

 

   델버트(Delbert)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훌륭한 경력을 쌓는데 초석이 될 만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강력하게  부인하였지만, 그는 어떤 부정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불쌍하게 보았고 전적으로 자기 연민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 그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맡기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생활에 전념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안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부정적인 환경들에 굴복하기 보다는 맞서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델버트는 자신이 참기 어려운 현실에 대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무리 참기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범사에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생활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방 안에서 성경공부반을 만들어 감옥 안의 동료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때로는 일부이지만 성경공부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감방 동료 중에는 어떤 번역 성경이 제일 좋으냐는 등의 사소한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그와 변론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들에게 조차 변론을 피하며 계속해서 사랑과 은혜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거기에 자신이 직접 쓴 성경구절들을 함께 묶어 감방 안에 있는 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변화된 델버트는 전에는 세상에서 거의 쓰레기 취급을 받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동료 죄수들을 꾸준히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랑하며 주님의 친절을 온전히 나타내 보여주었습니다.

 

   4. 그들은 선으로 악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 28:1).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잠 31:10-12).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하라"( 잠 25:21).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bloat: 고소하게 느끼는 감정을 의미)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잠 24:17-18).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잠 25:15).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잠 24:26).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잠 11:8).

 

   칼(Carl)은 40세로, 전직 마약 밀매꾼이었고 연립주택단지에서 자랐습니다. 지난날 그의 동료였던 사람 중 다수가 현재 교도소 안에서 무기수로 복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은 교도소 내에서 그들과 함께 불의한 생활에 동참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 그는 매사에 아주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교도소 내에서 재소자들의 상담과 전도를 담당하는 교도소 목사의 보조원이 되어 동료 죄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석방으로 출소한 후에는 길거리에 나가서 노방전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언제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면 달려가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가석방 후 2년이 지나고, 드디어 그는 완전한 자유인의 신분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칼(Carl)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승리자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사자처럼 담대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속한 지역의 교육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편지를 통하여 교도소 안에 있는 옛 동료들을 격려하는 일까지 하면서  그들이 믿음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독려하였습니다. 칼은 굳은 확신 위에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승리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잠 10:9) 하는 잠언의 교훈을 실천에 옮기며 살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법을 삶 가운데 확실하게 배웠으며 이로 인하여 그가 속한 사회안에서 강력하고도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칼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침내 그의 삶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결론

 

   세상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에 쉬이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환경의 피해자로 보게 됩니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절망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국 그들의 종말은 자신들을 멸망시키려는 자들의 먹이가 되어 그들의 의도대로 파멸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요 10:10). 반면에, 잠언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이기는 자 곧 승리자가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하는 말씀을 따라 자신의 마음을 절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주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들을 강하게 함으로 앞으로 닥칠 시련들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대비를 미리 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믿는 자들은 겸손하지만,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사자처럼 담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들의 친절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까지도 자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로 바꿔 놓습니다. 실로 믿는 자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들입니다(롬 12:21).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과 또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고 한 사도 바울의 권면을 기억하며 이 땅을 떠나는 마지막 날 까지 적극적인 믿음 안에 거하며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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