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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0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CHAPTER 4 대적들에 대한 바른 이해

          

                                             하여

                                                                             존 필립스

                                             CHAPTER 4

                 대적들에 대한 바른 이해

                                      Knowing Your Enemies


   아마도 당신은 잭과 콩 넝쿨(Jack and the Bean-stalk)의 주인공, 거인 킬러, 잭을 기억하실 겁니다. 잭은 언제나 자신이 용사인양 뽐내는 작고 보잘것없는 재단사였습니다. 당시 국경지대에는 거인들이 자주 출몰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잭은 종종 자신이 그 거인들과 싸워 그들을 모두 토벌해 버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잭은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윙윙거리며 성가시게 구는 파리 떼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잭은 단 한 번 손을 내리쳐 여러 마리의 파리들을 잡아 죽이게 되었습니다. "한방에 세 놈을!" 때마침 들어오는 손님에게 잭은 자랑스럽게 떠벌렸습니다. 그 손님은 잭이 자기 나라에 쳐들어 온 거인들을 물리친 무용담을 떠벌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꼬마 재단사 잭을 황급히 임금님 앞으로 이끌고 가서 여기 위대한 거인 킬러를 데려왔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엉터리 용사 잭의 스토리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마다 그 앞길을 가로 막는 세 원수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평안과 기쁨과 승리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원수들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 세 원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 외적인 원수 (The World-The External Foe)

   육신- 내적인 원수 (The Flesh-The Internal Foe)

   마귀- 지옥의 원수 (The Devil- The Infernal Foe)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의 원수들을 이기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사실입니다.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갈보리 십자가에서 원수를 이기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한 원수들은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이 세 원수들의 능력과 술수와 책략들을 파악하기 전, 그들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는 중요한 진리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 육신, 마귀가 하나님의 세 위격(The three persons), 성부, 성자, 성령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성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God the father Opposes the World)


   요한복음 17장은 우리 주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이 장을 읽어보면 거듭 거듭 서로 대비되는 두 단어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하나는 세상(the world)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부 하나님(God the Father)입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요 17:5, 9)라는 예수님의 기도내용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떠나신 후 이 세상에 남겨질 택하신 자들을 아버지께 의탁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또한 그의 자녀들을 대적하는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한층 더 날카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남녀들이여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가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고자 하는 것이니라" (약 4:4). 여기에서 하나님은 삼위 가운데 성부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야고보는 아주 분명하게 이 세상을 가리켜 하나님의 원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 하리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1서 2:15-16)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권고를 꼭 마음에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this world-대부분의 번역본)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2. 성령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 (God the Spirit Opposes the Flesh)


   육체는 성령님의 큰 대적입니다. 성경은 이미 구약시대 초기에 육체(the flesh)에 관하여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flesh)가 됨이라" (창 6:3)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인간 사회는 이미 육에 의해 전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도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라고 육과 영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자" (롬 8:4)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 함이라" (갈 5;17)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7장 전체는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은 이후 경험하게 되는 내면의 두 사람 사이의 쟁투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영적인 새 성품과 자연 출생을 통한 육신적인 죄악의 옛 성품을 함께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두 성품은 서로 항상 대적합니다. 이는 마치 성품이 다른 두 마리의 말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치닫는 것과 같은 투쟁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이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나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롤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법을 섬기노라" (롬 8:18-25).

   육(flesh)과 영(Spirit) 서로 대적하는 원수이며 이들 간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묘사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육은 성령님의 원수입니다.


   3. 성자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귀 (God the Son Opposes the Devil)


   마귀는 특별히 성자 하나님(God the Son)을 거역합니다. 성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약속과 예언의 말씀은 여자의 씨(그리스도)와 뱀(사탄)사이에 벌어질 첨예한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브를 유혹하여 범죄케 한 뱀을 저주하시며 "내가 너(뱀-사탄)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그리스도)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훗날의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승리하신 일로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주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신 분이로되 죄는 없으신 분" (히 4:15)이셨습니다. 우리주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temptation 문자적으로 시험 testing)과 그것을 이기신 주님에 관해서는 마태복음 4장 1-11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우리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그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1서 3:8)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세 원수들은 지금도 갖가지 무기로 무장하고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원수들이 이미 모두 패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원수들과 맞서 싸우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좀더 자세히 우리의 원수들에 대해서 배우며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떻게 승리 할 수 있는가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 외적인 원수 (The World- The External Foe)


   세상의 정의 (The World Defined)


  세상(the world)이라고 하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별인 지구를 먼저 생각하기 쉽습니다. 성경도 때때로 세상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세상을 아주 다른 측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최초로 죄가 들어오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떠난 그 자리에 대신 구축된 인류 사회를 가리켜 세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이란 죄인들의 소굴이며,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는 사탄의 본거지임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과에서는 이와 같은 세상의 본질과 그 성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이 표현하고 있는 바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세상의 정의를 좀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대의 강대한 제국 애굽이 구약 성경에 자주 언급됩니다. 이 애굽은 종종 세상으로 비유됩니다. 그 화려함, 융성함, 교육, 종교, 문화, 강력한 왕권, 향락, 역사, 야망, 권세, 부, 하나님을 무시함, 교만,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증오심 등등... 이와 같은 성격의 애굽은 전형적인 세상의 모형입니다. 성서의 아주 초기 이야기 중 한 사건에서 이와 같은 성격의 애굽을 볼 수 잇습니다. 애굽은 아브라함의 순례 길에서 큰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순종의 훈련 안으로 이끌어 내시고 의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곤경에 처하게 될 때 환경과 타협하려 했고 결국 애굽(세상)으로 내려갔습니다. 결과는 매우 비참한 실패와 혼란과 치욕과 부끄러움이었습니다(창 12:10-13:4). 이처럼 애굽은 세상의 표상이며 이와 같은 예들은 성경 여기저기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그 외에도 여러 지역이나 민족들, 또 나라들과 사건들을 통하여서 세상의 모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약 성경도 여러 사건들(세상적인 상징)과 일화를 통하여 사탄의 본거지가 된 세상의 다양한 형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0:11).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환경과 영향 속에 태어납니다. 이 반역은 종종 그럴듯한 위장을 하지만 본질적 입장에 있어서는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의 인류 사회는 아주 화려하고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세상은 참된 영성, 거룩함, 경건함을 대적합니다. 이 세상은 온통 사탄으로부터 온 문화, 종교, 그리고 사상들의 지배 하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존중과 공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을 때 이 세상은 모두 조직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도모했습니다. 이 세상은 종교의 위장을 쓰고 성경적인 모든 것들을 대항하였습니다.


   세상을 이김 (The World Defeated)


   1. 그리스도인의 신분적 상태 (In a Positional Sense)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신분적으로 모두 하늘나라의 시민권(Citizenship)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또한 그곳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빌 3:20, 역자 의역)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향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들" (고후 5:20)임을 사도 바울은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대사는 외국에 나가 살고 있지만 자국의 시민권을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타국에 와 있는 목적을 잊지 않습니다. 그의 직책은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인 우리들도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 이 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하늘나라를 위한 대사들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의 목적과 관심은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실제적 상태 (In a Practical Sense)


   세상은 위장의 가면으로 그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온갖 유혹과 환락과 흥미와 고상한 유행 등이 가득합니다. 이런 것들은 과거 구원 받기 이전의 본성에서 나온 우리의 육적 소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분리되라고 경고하십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저희 중에서 나와서 분리하라" (고후 2:14-17 역자 의역). 그러나 성서에서 말하는 분리는 어떤 사람들이 오해하여 말하는 분리와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은둔생활로써 이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어느 곳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분리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셨으며, 결국 그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마 11:19)라는 조롱까지 당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과 접촉하신 목적은 언제나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적인 분리는 격리(insulation)를 의미하는 것이지 고립(isolatio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은 한쪽 끝을 전력 공급원(하나님)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이 세상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연결되어 있는 생명전선줄(a live electrical wire)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자신의 임재를 단전시키는 세상과의 접촉을 대적하십니다.

   사도 베드로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아마도 가장 잘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인과 나그네" (벧전 2:11)라고 말합니다. 행인 (stranger)은 집을 멀리 떠난 자를 의미하며, 나그네(pilgrim)는 집으로 돌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육체- 내적인 적 (The Flesh- The Internal Foe)


   육체의 성격 (The Character of the Flesh)


   육체는 성경 안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때로, 육체란 우리 신체의 일반적인 육체적 감성을 의미합니다. 즉 이는 종종 특별히 감각적인 욕망과 탐욕 등으로 묘사되는 인간의 본성적 성격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어찌하든지 하나님 앞에 의롭게 행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내 속(육체)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 한다" (롬 7:18)고 말하였습니다.


   1. 육체의 종교적인 성향 (Its Religious Aspect)


   인간은 육적으로 매우 종교적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나 또한 육체를 신뢰할만하였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그의 육체에 대해 신뢰할만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 (빌 3:4 역자 의역)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는 한 때 자신이 신뢰하고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종교적 성품 8가지를 열거하였습니다. 그는 육신의 종교적 업적들을 자기 생애의 회계 장부에 이윤(gain)목록으로 계산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와 같은 자신의 육신적 공로들이 자신의 영적 안전보험이 되어 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했던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손해로 여겼다" (빌 3:7 역자 의역)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더 노골적인 표현으로 지난날 자기 육신의 종교적 업적들이 똥(dung) 혹은 오물(refuse)과 같다고 말하였습니다(빌 3:8).


   2. 육체의 부패적인 성향 (Its Repulsive Aspect)


   육체는 또한 매우 부패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육체의 일들은 이와 같으니 간음, 음행, 부정함, 호색, 우상숭배, 점술, 미움, 분쟁, 시기와 질투, 분노함, 반목함, 파쟁, 이단. 탐냄, 살인, 술 취함, 방탕함,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이라" (갈 5:19-21 역자 의역)고 했습니다. 다른 구절에서도 "육신을 쫓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며...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니...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아니하며 그렇게 할 수도 없도다. 그러므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롬 8:5-8 역자 의역)고 말하였습니다.


   육과의 투쟁 (The Conflict with the Flesh)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그 본성으로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받게 되는 새로운 성품은 죄를 범치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범치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 난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할 수 없음이라" (요1서 3:9 역자 의역)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자연적인 출생으로 소유하고 있는 육적인 성품은 결코 선해지거나 의로워 질 수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거듭난 영적인 성품은 결코 범죄할 수 없는 거룩한 성품이라는 뜻입니다(참조-갈 5:16-24).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새 성품에 대해서 베드로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썩어질 씨가 아닌 썩지 아니할 씨로 난 것이라" (벧전 1:23 역자 의역)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실제적으로 두 성품을 소유한 자입니다. 자연적인 출생으로 인한 육의 본성과 거듭남으로 인한 거룩한 영적 새 성품입니다. 이들 두 성품은 전혀 이질적이며 끊임없는 투쟁의 관계입니다. 로마서 7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위대한 사도 바울 역시 육과 영의 두 성품간에 일어난 투쟁과 갈등을 체험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옛 성품으로 인한 탐욕, 정욕, 시기, 교만과 자만, 이기심, 죄의 승리로 인한 갈등들을 너무나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옛 성품은 너무나 강하며, 우리는 책이나 잡지, 영화나 텔레비전등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극받고 있습니다.


   육의 정복 (The Conquest Over the Flesh)


   1. 영원한 사실 (The Eternal Fact)


   우리는 어떻게 육신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오직 죽음에 의해서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것을 알지니, 우리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그 죽은 자는 죄로부터 벗어났으며... 이와 같이 너 자신 역시 진정으로 죄에 대하여는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라" (롬 6:6-11 역자 의역)고 말씀합니다. 이는 신약 중에서 가장 견고한 진리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 나도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와 함께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진실로 여겨야 하며, 또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은 참으로 심오한 진리입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자살과 같은 죽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상관이 없는 죽음입니다. 그러한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그 자신의 노력으로 옛 사람의 성품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악한 죄와 성품을 이길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음이 왜 필요했겠습니까? 오늘날 도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죽는 길 이외에 스스로의 경건과 절제와 인내와 심지어는 고행을 통하여 자신의 옛 성품을 이기고 죽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세상 종교가 바로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은 마치 자살과 같을 뿐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육체를 굶기거나, 그와 유사한 어떤 육체적인 노력으로 우리의 옛 사람을 죽이려는 시도는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게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옛 사람도 죽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구원의 계획입니다. 성경 가운데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장 명확하게 잘 표현해 주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2. 일상에서의 실천 (The Daily Act)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 옛 사람을 다루어 주시지만, 또한 우리 자신이 스스로 옛 사람을 다루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것을 적용해야 합니다. 로마서 6장 6-13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을 일상 가운데 어떻게 적용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세 단어를 언급합니다. 알다(know), 간주하다(reckon), 복종하다(yield).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예화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한 사무원이 있습니다. 그가 받을 봉급 액수는 5,000 달러인데, 그 회사의 경리원은 회사 계좌에 잔고가 50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은행으로 가서, 담보 융자 7,500 달러를 입금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경리원에게 자신의 봉급에 충분한 돈을 은행에 예치하였으니 봉급 5,000 달러를 지불해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경리원은 여전히 자신의 장부에 기록된 잔고가 50 달러뿐이기 때문에 5,000 불을 지불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이 경리원의 오류는 무엇일까요? 그는 사실을 사실로 간주(to reckon)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봉급을 지불할 만한 충분한 금액이 예치되어 대책이 마련된 사실을 무시했고, 어리석은 언행으로 조치를 취하였으며, 또한 그 사무원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든 유혹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신 것은 영원한 사실입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to know), 사실을 믿음으로 간주해야(to reckon) 합니다. 성령께 복종하는(to yield) 것은 날마다 그 사실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게 합니다.

   영적으로 아직 성숙치 못한 어린 그리스도인은 종종 무심코 저속한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와 같은 언어 습관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아야(to know)  합니다(골 3:8). 그리고 자신의 옛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간주해야(to reckon) 합니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다가오는 시험(temptation)을 만나게 될 때마다 즉시 성령님께 복종해야(to Yield)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쁜 언어 습관을 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제 5과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마귀 (The Devil)


   1. 그의 타락 (His Downfall)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다른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적을 약 40개의 다른 이름과 상징적 호칭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마귀 또는 사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사야 14장 12-17절과 에스겔서 28장 11-19절에 의하면 본래 사탄은 하나님에 의해 가장 존귀한 위치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임무를 담당하던 천사였습니다. 이처럼 신임과 특권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그가 교만해져 스스로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 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의 반역에 가담했던 무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지상으로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인류의 가장 잔혹한 원수가 되었고,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그러합니다.


   2. 그의 왕국 (His Dominions)


   사탄은 매우 강한 영적인 존재이나, 신적(deity)특성은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전지전능하거나, 편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치명적 결함을 영적 제국의 빈틈 없는 조직으로 할 수 있는 한 가장 잘 보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항 하는 것이 아니요 정사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 (엡 6:12)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 악령들은 영적인 세계에 속해 있으며, 천사들의 무리처럼 일종의 조직적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악령은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자, 가브리엘 천사가 다른 두 악령들의 의해 3주 동안 제재되었다가 천사장 미카엘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단 10:12-21).

   사탄의 휘하에 있는 악령들은 엄청난 수의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극악한 잔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각종 질병을 일으켜 육체적 피해를 입히는 악령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주님은 악령에 사로잡힌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1개 군단의 악령들을 몰아내신 일도 있었습니다(막 5:1-20). 당시 로마 1개 군단은 6천명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 심령술, 점성술, 신비주의. 점, 세속적인 예언과 같은 것들은 다 악령들의 활동입니다(딤전 4:1). 이들의 존재를 비웃는 형대인들은 마치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하여 들었을 때 이를 비웃던 옛날 사람들과 같습니다. 불신자들은 악령들의 존재나, 그들이 인류의 원수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사탄은 중요하게 3 가지 명칭으로 불립니다.

   첫째,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엡 2:2)- 그는 모든 악령들의 우두머리입니다.

   둘째, "이 세상의 임금" (요 12:31)- 그는 임금으로서 세상 국가들의 운명을 자신의 목적과 계획 대로 유도합니다. 이런 연유로 사탄이 주 예수님께 이 세상 왕국을 넘겨주겠다고 제의했고, 주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된 것으로 여기고 거절하셨습니다 (눅 4:5-6).

   셋째, "이세상 신" (고후 4:3-4)- 그의 임무는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것입니다. 그는 배반자요 살인자입니다(요 8;44). 그의 활동의 주목적은 온갖 거짓 종교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최종 목적은 자신이 사람들의 경배를 받고, 그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항상 기만하며, 그 목적을 이루려고 애쓰고 있습니다(살후 2:1-12).


   3. 사탄을 물리침 (His Defeat)


   우리가 먼저 감사할 일은 마귀는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강한 원수,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열쇠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일입니다. 야고보는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당하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를 물리치셨습니다(마 4:1-11). 우리들도 똑 같은 강력한 무기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고후 10:4, 히 4:12, 엡 6:17).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갑옷으로 완전 무장되어 있으며, 사탄의 공격에 맞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능히 사탄의 진영을 공격하여 파할 수 있습니다(엡 6:11-18). 이 부분을 특히 잘 살펴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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