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5과

                                    본문 : 누가복음 16장 19-31절


                             가장 참혹하고 비극적인 장면

                                (The Bad Scene That Tops Them all)


   사람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우리 인간들의 사후(死後) 문제를 알기 원하는 열망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그 부자는 최상류사회의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최고급 의상만을 입었고, 그의 식탁에는 언제나 풍부한 산해진미로 가득했으며, 그의 최고급 저택은 최고급 가구들과 소품들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저택의 넓고 아늑한 거실로 들어가 커튼을 젖히면, 이런! 한 가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지 나사로가 그 커다란 저택의 정문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려 구걸하고 있는 가련한 모습이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몸은 모두 헐어 있었고, 그 상처로부터 피와 고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 집 개가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는데, 나사로에게는 그 개를 쫓아 낼 힘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여기 이 두 주인공 가운데,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부자(rich man)라고만 알려진 이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나사로는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자였습니다.

   어느 날, 나사로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보나마나 간소했을 것이며,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지자체 소유의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나타나 있는대로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의 영혼은 천사들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 갔습니다. "아브라함의 품" 이란 말은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늘나라로 간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나라는 가장 행복한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품에 안식한다는 말을 아브라함과 함께 하늘나라의 기쁨과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당신의 장래, 죽음 후의 계획은? (How Is Your Lay-Away Plan)


   이번에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부자 역시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대로 그의 장례식은 매우 화려했습니다. 최고급 관, 여러 유지들이 보낸 많은 화환들, 그가 이룩한 업적을 나열하는 긴 설교 등으로 장례식은 엄숙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가 입던 의상들은 자선을 위해 구세군으로 기부되었고, 부엌 음식찬장(pantry)에 가득했던 식료품들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점은 그의 영혼은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음부(Hades)에서 고통 중에 위를 쳐다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음부는 믿지 않는 자들이 죽은 후에 가서 고통 당하는 곳입니다. 그들은 몸이 다시 일으켜져서 영혼과 재결합하는 마지막 부활 때까지 그곳에 남겨지고 후에 지옥(불못으로 불리는)으로 보내질 것입니다. 음부는 범인이 체포되어 최종 판결을 받을 때까지 임시로 수감되어 있는 지방 구치소(county jail)와 같다고 비유한다면, 지옥(Hell-Lake of fire)은 최종 판결을 통해 형이 확정된 자들이 이송되어 형을 사는 연방 형무소(State prison or Federal penitentiary) 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주-이것은 천주교의 연옥설과 근본적으로 별개의 개념임)

   음부에서, 부자는 자신이 있는 곳과 아브라함과 나사로가 있는 곳을 분리하는 거대한 구렁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부자는 부르짖었습니다. "오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 한방울이라도 찍어 제발 제 혀를 서늘하게 하여 주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롬과 고통을 당하나이다. 이 불꽃의 고통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원하는 대로 모든 좋은 것을 가질 수 있었으나. 나사로는 많은 고난을 받았음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덧붙여서, 그들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서로 오갈 수 없는 사실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이어서 부자는 아직 세상에 살아있는 그의 다섯 형제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청하였습니다. 나사로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 그의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이 음부로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청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직 세상에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주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성경을 읽는다면 그 말씀을 통하여 복음을 깨닫고, 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부자는 그런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만일 누군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그의 형제들을 찾아가서 직접 목격한 죽음 이후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아마 그들이 사실을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대답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을 통해 이미 전해주신 분명한 구원의 복음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성경은 죽은 자의 말을 빌릴 필요 없이 매우 분명하게 구원의 길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느니라"(고전 15:1-3).


비유가 주는 마지막 교훈 (Getting In The last Word)


   아브라함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말해준다고 해도 여전히 믿지 않을 것을 우리들에게 상기 시켜줍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몇 일 후 예수께서는 동명이인인 다른 나사로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셨습니다(요 11:43-44). 그러나 이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직접 목격했던 자들이 오히려 예수님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요 11:1-53). 또한 예수께서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셨을 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부자의 형제들이 죽을 때까지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에게 찾아가서 "나는 죽었다가 당신 형님의 부탁을 받고 이렇게 당신에게 지옥에 대해 경고하러 왔소." 한다 해도 필시 그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기고 집밖으로 내어 쫓았을 것입니다.

   "너무 심한 이야기입니다. 지옥 이야기는 너무 심한 이야기예요!" 어떤 사람들은 성경 가운데서 음부나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그와 같이 말합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음부나 지옥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 같은 것을 허락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지옥이 어디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음부는 실존하며 또한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곳의 실존에 대해서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는 자들에게 반드시 큰 고통이 있을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지옥을 만들지 않았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그의 사자, 마귀들을 위하여 지옥을 만드셨습니다(마태복음 25:41).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 누구도 그곳으로 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벧후 3:9). 그는 우리들을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며, 누구든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아무도 지옥으로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만일 어느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이는 불행하게도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거절하고 그 스스로 다른 곳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밝히 가르쳐 주는 교훈은 몸이 죽은 후에도 영(Spirit)과 혼(Soul)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죽으면 몸이 잠들었다고 하지만, 영과 혼은 잠들지 않습니다. 믿는 자가 죽게 될 때, 그의 영혼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에게로 갑니다(빌 1:23 ; 고후 5:6-8). 불신자가 죽게 되면, 그의 영혼은 음부로 가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음부는 고통을 자각할 수 있는 곳입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느꼈고(23절), 보았고(23절),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23절). 그리고 말할 수 있었고(23절), 목이 말랐고(24절), 기억했고(25절), 들을 수 있었고(25절), 지혜와 지각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27-28절). 그렇지만 음부의 광경은 가장 고통스럽고 참혹한 것이었습니다(23-24절, 28절).


   진정한 내 인생의 최후는? (What Really Counts At The End)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부자의 재물이나 부유함이 그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때가 이르렀을 때, 그는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에 음부로 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나사로는 가난했었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간 것도 물론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였느냐? 거절했느냐? 에 의해 그 사람의 사후의 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요한 1:12; 3:16-18, 36 이 구절들을 꼭 읽어 보기 바람).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엄숙한 교훈은, 음부에 가 있는 사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자신이 그곳에 간 후에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자는 누군가가 그의 형제들에게로 가 복음을 전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음부에서는 불신자가 없다"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었지만,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천국과 음부 사이의 큰 구렁(great gulf) (26절)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의 운명은 영원히 확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거기에는 두번째의 기회란 없습니다.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전도서 11:3). 음부와 지옥에 갇힌 자(prisons)들은 그곳을 탈출할 길이 영영 없습니다. (주- 천주교의 연옥 설은 이와 다릅니다. 그것은 외경에 의한 비성서적인 교리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그의 다섯 형제들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들에게는 성경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 성경에는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그의 독자를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3:16). 하나님은 아무도 죽은 후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읽는 것과 믿는 것과 그리고 성경 말씀을 순종할 책임이 우리 인간들에게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것을 믿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말씀하신 이는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이신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아니하면, 우리는 그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기적을 요구하는 믿음(이는 실제로 불신)을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 (요한 20:29).

   음부로 다시 돌아가 보면, 거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않습니다. 단지 음부를 벗어나는 것, 그 하나만을 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주를 거절한 자들은, 스스로 음부에 가기를 선택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무시한 자들입니다(고전 1:18).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결정을 미루는 것은 이미 결정한 상태이다" 라고.

   우리들은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죽은 후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에서 나의 영원을 보낼 것인가?"

   짧은 세상 영화와 영원한 지옥 형벌, 어느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일까요?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롬 5:6-8),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요 3:16) 그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는 대가(히 2:3)는 음부의 영원한 고통뿐입니다. 이제 그 선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며, 그 선택의 기회는 바로 이시간입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죄인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지옥의 두려움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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