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존 필립스


                                            CHAPTER 12

 

                                    교제의 기쁨

                           The Enjoying the Fellowship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일반인들의 견해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견해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일반인들의 교회에 대한 개념은 대략 이렇습니다. 주후 2내지 3세기경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이래 약 천년동안 로마교황이 지배하고있는 캐톨릭과 캐톨릭으로부터 분리된 희랍정교회(동방정교회), 그리고 15세기,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영국, 스위스,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생겨나게 된 수많은 종파, 교단 독립교회들, 그리고 현재까지 전 세계에 분산되어 발전되어 온 모든 교회들, 이들을 총망라하여 교회(church)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교회일까요? 아니면 전 세계의 기독교로 묘사되는 것이 더 나을까요? 교회는 무엇일까요? 신약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본과를 통하여 조심스럽게 연구해 보고자 합니다.


   교회의 신비 (The Mystery of the Church)


   구약 성경은 교회에 대해 직접적인 계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적인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교회의 그림자가 숨겨져 있었지만,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교회는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교회의 출현, 성격, 그리고 확장의 과정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에만 계시 되어 그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비밀(a mystery)이라고 하였습니다(엡 3:9-10; 5:32). 여기에서 말하는 비밀이란 어떤 불가사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 시대에는 감춰져 있던 것,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에 의해 일찌기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님에 의해 비로소 우리 인간들에게 밝히 계시되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는 여러 가지 비밀(신비)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교회는 이 비밀들 중의 하나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오순절(주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주님의 승천 후 10일 째 되는 날)에 탄생시키신 교회를 세 가지 비유로 우리들에게 설명합니다.


   1. 교회는 몸과 같다 (The Church As a Body)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몸과 같습니다(고전 12:12-27; 롬 12:4-5). 몸의 각각의 지체들은 중요하고, 각각 한 성령과 한 생명을 공유하고 있고, 각각 독특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고, 각각 다른 지체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으며, 각각의 지체들은 한 머리로부터 직접적인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인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검토하고,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인가?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참된 교회에 속한 지체인가? 나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 안에서 다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자인가? 나는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2. 교회는 신부와 같다 (The Church As a Bride)


   교회는 신랑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엡 5:22-32); 고후 11:2). 사도 바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통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주님은 교회의 신랑이시며, 교회는 또한 주님의 신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참된 교회 안에 속한 자인가? 나는 다시 오실 신랑을 기다리는 소망 가운데 살아가며, 그를 매일 사모하고 사랑하며, 신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가? 과연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진정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3. 교회는 건물과 같다 (The Church As a Building)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기초 반석이 되신 건물과 같습니다(엡 2:19-22; 고전 3:11; 10:4). 우리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교회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6:17-19). 그렇지만 주님은 그리스도이신 자신의 기초(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주님은 자신을 반석(the Petra, a Rock)이라 부르시고 베드로는 한 개의 작은 돌(a petros, a piece of rock, a pebble, a stone)이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4-8절을 보면 베드로는 그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것이라는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교회에 속한 작은 산돌들입니다(벧전 2:5; 엡 2:20-22). 사도 베드로 역시 주님의 교회의 한 개의 산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첫 번째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주님 자신이나 신약성경은 교회의 기초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심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 3:10-11; 엡 2:20). 여기에서 자신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께서 반석이 되신 교회에 속하여 있는가?

   이상의 교회의 개념은 매주마다 모여 신부나 목사의 집례에 따라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특정 장소로서의 교회의 개념과는 매우 다릅니다. 사실 그런 통속적이고 잘못된 교회의 개념은 문화, 역사, 전통, 배경에 의해 만들어져왔습니다. 진정한 교회의 개념은 신약성경에 의해 정립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형태 (The Mirror of the Church)


   지금까지 우리는 우주적인(universal aspect)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현실적으로 볼 수 없는 교회입니다. 우주적인 교회의 지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으며, 땅에 남아 있는 이들도 온 지구상에 널리 흩어져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또한 지역적인(local-ized aspect) 교회들에 대하여 자주 언급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는 대개 우주적인 교회를 언급하고 있는 반면 고린도서에서는 주로 지역적인 교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역적인 교회는 우주적인 교회의 축소판입니다. 신약성경 안에서는 오늘날처럼 수많은 교파와 교단들로 갈라진 교회들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지역교회 내에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분열이나 파당적인 운동에 대해서 엄히 정죄하고 있습니다(고전 1:11-17). 다만 신약 성경에는 여러 곳에 있는 지역 교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16:5, 15,16; 계 1-3장). 또한 같은 지역 안에있는 모임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음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서들에는 사도시대 당시 여러 지역 교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단과 그릇된 교리들에 대한 대응, 도덕적인 범죄자들에 대한 지역교회 내의 처리, 또 믿는 자들의 영적인 결핍에 대한 도움, 성도들을 바로 세워주기 위한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역 교회는 불가시적인 우주적인 교회의 연합과 실재, 신비한 교통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가시적인 유기체입니다.


   교회의 구성원 (The Membership of the Church)


   교회란 기독교란 간판 아래 일정한 건물에 모이는 무리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고 거듭나서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자들이 모인 유기체라는 사실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지역 교회는 반드시 이러한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지역 교회는 오직 거듭남으로써 주님과 연합된 자들로만 구성됩니다. 이렇게 교회의 구성원이 된 각 지체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는데, 특히 전도와 양육을 위해 협력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놀라운 간증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감히 그들과 상종할 수 없을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행 5:11-14). 또한 교회는 그 순결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하여 엄한 징계로 죄를 범한 지체들을 치리(징계)하였습니다. 지역교회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훈련과 치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고전 5:1-13).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가 필요한데, 이는 지역 교회를 통하여 이뤄지게 됩니다. 교회가 처음 태어나던 날,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가 일시에 구원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무리는 즉시 지역교회에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1-42).


신약 성경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교회안에서 두 가지 중요한 예식을 시행하도록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그 첫째는 침례(Baptism)이며, 둘째는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입니다. 이 두 가지 예식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주의 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위해 죽으신 우리 주님을 기억하며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나 자신도 죽었음을 공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예식의 시행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마 28:19-20); 행 8;12, 16, 36; 9;18; 10:47; 16:15,33; 18:8; 19:3). 그들은 주의 날에 모여 떡과 잔(포도주)을 나누며,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서 자신의 몸을 드리신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고전 11:23-26).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로부터 받은 크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들을 기억하도록 하며, 은혜에 빚진 자로서 온 몸과 마음을 드려 헌신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롬 12:1-2). 침례와 주의 만찬에 관해서는 엠마오의 다른 교재들을 통하여 더욱 자세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 (The Ministry of the Church)


   주님께서는 각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은사들을 주셨는데 그 목적은 "모든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엡 4:11-12)입니다. 신약성경 안에는 능히 기쁨으로 남을 섬기기에 충분한 다양한 은사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고전 12;29). 또 특별한 은사들도 있는데 바로 "사도들, 선지자들, 전도자들, 목사들, 교사들" 입니다(엡 4:11). 사도들(Apostles)과 선지자들(Prophets)의 은사는 초대교회 시대에 성령님에 의해 교회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특별히 부름받은 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엡 2:20; 3:4-5). 이런 은사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 있어서 오늘날 선교사들이나 설교자들의 사역이 이러한 은사의 역할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도자들(Evangelists)은 성령님에 의해 복음을 전하여 불신자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에 으르도록 돕는 은사입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생활 간증을 통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님을 증거할 책임과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도자는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로부터 특별히 은사를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목사들(Pastors)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필요를 도와주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목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교사들(Teachers)은 성령에 의해 성경의 진리와 교리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바르게 깨우쳐 주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지역교회는 집사들과 장로들의 사역이 필요합니다. 집사들(Deacons)은 지역교회 안에서 주로 비영적인 일이나 일반 사무적인 일들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은사를 가진 자들입니다(행 6:1-7, 딤전 3:8-13), 장로들(Elders) 혹은 감독들(Bishops)은 지역교회 성도들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특별한 은사들을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은사의 자격들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교훈하고 있습니다(딤전 3:1-7; 디도 1:5-9). 사도 베드로 역시 자신이 장로들 가운데 하나임을 말씀하고 있으며(벧전 5:1-4), 그는 장로의 은사를 맡은 자들에게 "맡기운 자 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말씀 선포 (The Message of the Church)


   지상의 교회는 잃어버린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향해서는 신약의 중요한 진리들을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믿음을 건축해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유다 20절). 이러한 가르침을 사도들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성경 속에 감추어진 위대한 진리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밝혀내어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모든 잃어버려진 자들을 향하여 우리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구원의 길과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증거해야 합니다.

   교회가 선포해야 할 말씀은 반드시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더 보태거나 뺄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계 22:17-19). 교회는 그릇 가르치는 자들을 주의하여 살피며 경계하고 이러한 자들을 제거해야 합니다(롬 16:17-18; 갈 1:6-9; 골 2:4-23).

   교회가 선포해야 할 말씀은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합니다(고전 1:23-24).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하여야 합니다(고전 2:4, 13). 중요한 여러 진리 가운데, 무엇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선포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 동정녀 탄생, 신성과 인성이 함께 조화 된 흠 없고 놀라운 생애, 속죄를 위한 죽으심, 육체적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 보좌 앞에서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사역, 재림에 관한 진리 등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 (The Mission of the Church)


   이 지상교회는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은 어느 때에도 이런 것을 계획하신 일이 없습니다. 교회란 낱말은 희랍 원어로 에크레시아(ecclesia)로써 "밖으로" (ecc)란 의미와 "불림을 받음" (lesia)이란 의미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란 곧 "밖으로 불림을 받은 무리"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이러한 성격을 분명히 나타낸 좋은 예로서 초대교회 예루살렘 회의 중에서 야고보가 사도 베드로의 선교 보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언급했던 말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처음으로 이방인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일'을 시므온이 우리에게 밝히 드러냈으니" (행 15:14).

   활동적인 지역교회들은 자기 나라 안에서와 해외에서 활발한 선교활동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는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지금도 그리스도 밖에서 영원히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선교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승천 하시기 직전 그의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모든 교회는 이러한 선교 사역에 참여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일어나서, 길 건너편의 우리의 이웃이나, 버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그밖의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우리의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혹은 누군가는 직접 먼 나라에 나가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려 교회의 선교활동을 도우며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선교의 책임에 대해서 성경은 수없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하여 초대교회의 선교 현황과 사도바울의 선교 활동에 대해서 기록한 것들을 직접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롬 15:14-33). 한 순간도 쉼 없이 오직 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 열정을 다 했던 사도 바울의 맥박 위에 손을 얹어 보십시오. 빌립보서 3장 13절에서 그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 그는 이미 갈라디아와 소아시아 지방과 마케도니아와 희랍 지역에까지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수많은 도시에 주님의 교회들을 일으켰고, 수 천 명의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였으며, 수많은 남녀들을 선교 사역에 동참하도록 큰 감화를 끼쳤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대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한 일이 단지 시작에 불과 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배반자 가롯 유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해외에 교회를 세운 제자들의 사역, 그 교회들의 성장, 그들의 역동적인 활동, 그리고 헌신적으로 선교에 동참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사도행전을 통하여 장차 이루게 될 교회의 청사진이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 마지막 부분에 있는 성령님의 초청의 말씀은 전도 사역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수를 받으라" (계 22;17).

   "오라(come)" 성령님의 이 놀라운 메시지는 바로 오늘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의 초청입니다.


   교회의 운영 (The Methods of the Church)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은 주님의 교회 운영에 끼일 곳이 없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이 세상과 짝하지 않으며, 세상에 예속되지도 않으며, 세상적인 방법을 취하지도 않고, 세상의 운영 방식을 모방하지도 않습니다. 지상의 교회의 운영권은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소유하셔서 그분의 계획과 능력이 지상교회를 통하여 이 세대에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의 운영은 반드시 영적이어야 하며, 육적인 것을 배제하고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후 10:4). 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힘을 빌려서는 안 되며, 불신자들의 후원을 원해서도 안 됩니다(고전 1:26-29; 2:6-8; 요한 3서 7절). 또한 교회는 세상적인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타국과 같은 이 땅 위에 심기워 졌습니다. 그 뿌리는 하늘에 두고 있으며, 위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교회가 하늘의 기준보다 더 낮은 기준을 따를 때, 세상의 멸시와 혐오감을 받았고,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그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모든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의 표준을 따르는 지역 교회를 찾아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마 당신은 지상에서 완전한 교회를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지역 교회든지 간에 불완전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배우고 살펴보았던 교회들 중 가장 표준에 가까운 교회를 당신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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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윌리암 맥도날드

                                     6장

                        땅에 거하라


   1965년 스티브와 다이앤 리차드는 선교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정착해서 첫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동안 주님을 기뻐하며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희생과, 열정적인 전도와, 열심 있는 기도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필요를 주님 외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곳의 삶은 항상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터키 전체에서 구원받은 사람 열 명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헌법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당국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공개적인 전도는 극심한 반대를 받았습니다. 위협으로 안 될 때는 경찰이 개입해서 기독교 신자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들을 법정에 넘기는 것도 흔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수단은 추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사도행전의 재현이었습니다.


   6년이 흐르는 동안 리차드 부부는 네 아이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터키를 고국처럼 여기며 그곳 언어와 풍습을 익혔습니다. 그들은 터키인을 사랑했으며 터키인이 구원받아 신약교회로 모이는 것을 보기 위해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7년을 보낸 뒤에 스티브는 독일로 사역지를 옮기는 것이 전략상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는 터키인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정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전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티브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자신의 지혜였을까요? 그는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머물러 있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라는 말을 기억했습니다. 또한 "밝은데서 배운 것을 어두운데서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기억했습니다.


   그는 다이앤과 함께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분명한 인도하심 없이는 움직이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경건의 시간에 스티브는 시편 37편을 읽고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3절). 그 중에 눈에 띠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땅에 거하라."


   스티브와 다이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아주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고 느끼고는 시편 37편을 근거로 터키에 4년을 더 머물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독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독일에서 일하다가 스티브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간 삶은, 주님께서는 그분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분명히 알리실 수 있으며 또 알리신다는 사실을 증거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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