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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31 여성 제3과 여성에 대한 역사적 교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제 3 과


                      여성에 대한 역사적 교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평범한 남녀들의 삶을 통하여 일하시며, 또한 그들의 평범한 경험들을 사용하십니다. 그중 구약에서는 특별히 어떤 여성들의 이름이 이런 저런 이유로 두드러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중 몇몇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상고함으로써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그들 중  어떤 여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했으나,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도우려 했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그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했던 여성들


   구약에 나타난 헌신적이고 신령한 여성들 중에는 모세의 어머니인 요게벳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장 22절과 2장 1~10절의 간단한 기록만으로는 그녀가 어떠한 여성인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분별이 있는 여성이었고("그 준수함을 보고"), 또한 용기가 있는 여성이었으며("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고"), 실천적인 여성이었고(갈 상자에 아이를 담아 강 어귀에 띄워 놓고 아이의 누이에게 지켜 보도록 했음), 신앙적인 여성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히 11:23).

   그러나 그 아들의 인격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어머니에 관해서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궁궐을 등지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기로 결단을 내리고, 그들을 자기의 백성이라고 선언했을까요? 누가 그에게 하나님의 선민에 관해 가르쳤을까요? 누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해 주실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가르쳤을까요? 요게벳이 유모로서 모세를 데리고 있던 수년 동안에 끈기있게 이 어린 아이를 가르침으로써, 여러 날 후에 이러한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이로 보아 그녀가 얼마나 신실한 어머니였던가를 깨닫게 됩니다. 모세야말로 역사상 대단히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런 인물이 될 수 있도록 그의 인격을 형성시키고 그의 인생의 목표를 제시해 준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이 여인은 실로 하나님과 함께 일했던 것입니다.

   모세 시대 이후 거의 2세기가 지난 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인도할 사람을 준비 하셨습니다. 사사시대 이후 이스라엘이 타락과 혼돈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기도의 여인으로 더불어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삼상 1:1~2:11).

   한나는 무자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것은 커다란 수치요, 징계였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즉 한나는 하나님께 바칠 사내 아이를 달라고 오랫 동안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셨고, 한나는 사무엘이 장차 수행해야 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돌보며 준비시켰습니다. 즉 사무엘은 다른 소년들의 생활과는 달리 가정과 가족을 떠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성별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에 관해서나,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는 일에 관해서나, 소명의 귀중함에 관해서 가르쳤을 뿐 아니라, 이 모든 점에 있어서 한나 자신이 모본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들인 어린 사무엘을 포기했던 한나의 값진 희생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성전에서 누가 그를 돌봐줄 수 있을른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늙었고, 그의 아들들은 악했습니다. 그러한 곳에 어떻게 아들을 남겨둘 수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이미 서원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이행하려 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을 성전에 남겨두고 떠나면서 한나는 울기는 커녕 찬양으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삼상 2:1~11). 이 노래야말로 히브리어로 된 아주 훌륭한 몇몇 시가들 중의 한 작품입니다. 이 시에서 한나는 겸비하고 간절한 심령을 가진 모든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충만하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까요?  한나는 흔연히 그렇게 했고, 그 결과로 그의 아들은 전국적으로 칭송을 받는 사사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주님께서는 한나에게 사무엘 대신 다른 자녀들을 축복으로 주셨습니다(삼상 2:21). 이는 한나가 하나님과 함께 일했던 여인이었기 때문에 받은 축복인 것입니다.

   한편, 자녀를 통해서 유명해진 요게벳이나 한나와는 달리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다른 여성에게 있어서는 좀체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삿4:4).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저버렸고, 이방 신들을 섬겼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붙이셨습니다(삿 2:14). 그리하여 백성들이 고통 중에 주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일으켜 구출해 주셨지만, 백성들은 다시금 우상 숭배로 돌아서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드보라 당시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에게서 학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드보라가 여선지자였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상담하고 분별을 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찾아오곤 했습니다(삿 4:4,5). 그러던 중 드보라는 조국의 참상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어 과감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 전투에 나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바락이 드보라가 함께 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졸랐을 때에 일단 함께 가기로 동의했지만, 드보라는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었고,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바락을 격려해 주려 함이었습니다(삿 4:14). 마침내 주님께서는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주셨고, 드보라는 이후로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삿 5:31).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대중의 지도적 지위에 세우시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꼭 필요할 경우에는 서슴지 않고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실 때 즉각적으로 쓰임을 받았던 드보라야말로 얼마나 훌륭한 여성인지요! 요게벳, 한나 그리고 드보라는 하나님과 함께 일한 여성들이었으며, 민족 전체에 영향을 끼친 여성들이었으며,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함에 있어서 일익을 담당했던 여성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동역자들' 이 될 수 있습니다(고전 3:9).  우리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 외에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해서 일했던 여성들


   불행스럽게도,  우리는 성경에서 북 이스라엘의 왕비 이세벨이나 남 유다의 왕비 아달랴처럼 가정과 국가를 파멸로 이끌어 갔던 여성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악행을 결심하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경배에서 우상 숭배로 치달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악영향은 그들의 조국을 쇠망케 하는 데 박차를 가하게 했습니다.

   먼저 이세벨은 이방 나라의 공주로서 아합의 아내가 되었습니다(왕상 16:31). 그리고 그녀는 우상 숭배자로서 이스라엘에 바알 종교를 끌어 들임으로써 그녀의 남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노' 를격발하게 했습니다(왕상 16:33). 그녀는 850명에 달하는 바알 선지자들을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었으며(왕상 18:19),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왕상 18:13),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왕상 19:1,2). 그녀의 남편 아합에 대해서 성경은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왕상 21:2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로서 남 유다 왕 여호람의 아내가 되었습니다(왕하 8:18). 그뒤 그녀의 남편이 죽고 그녀의 아들인 아하시야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나 아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하였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왕하 8:18,27). 그러다가 그녀의 아들마저 죽게 되자 아달랴는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고"(왕하 11:1), 나라를 다스리려 했습니다. 다행히 주님의 경륜 가운데에서 그녀의 막내 아들은 도피할 수가 있었고, 아달랴는 6년 동안이나 치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어리지만 합법적인 왕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자 아달랴는 죽임을 당했고, 온 국민은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였습니다(왕하 11:20).

   열왕기하에는 왕의 모친, 곧 대비의 이름이 자주 기록되어 있음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열왕기하 21장 1,2절에서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세라 ... 그 모친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고 말씀하신데 이어,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라고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열왕기하 23장 36,37절에는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 그 모친의 이름은 스비다라 ...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르게 행하였던 왕의 모친에 대해서도 보게 됩니다(왕하 12:1,2 ; 18:1~3 ; 22:1,2). 왕의 인품을 기록하면서 그 모친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자 상호 간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런지요? 요게벳이나 한나처럼 경건한 어머니의 영향이 그의 자녀들에게 반영되었고, 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왕비들이 그의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면, 오늘날 믿는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갖는 그 책임이 얼마나 중대할까요? 우리는 우리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와 그 힘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바로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일할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될까요? 우리는 적어도 우상 숭배자는 아닐테고, 가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이 조각한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20세기의 성도들도  역시 나름대로의 우상을 갖고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나 공리주의나 무사 안일 주의에 빠져 있다면, 이것 역시 우상 숭배가 아니겠습니까?  우상이란 하나님과 우리 영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어떤 목적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혹시 자신의 재물을 통해서 보다 크고, 보다 좋고, 보다 안락하고, 보다 향락을 누리고, 보다 안정된, 아무튼 보다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나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들에 대해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본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어릴 때부터 조심스럽게 양육하는 것이 그저 이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인가요? 순간과 영원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명심하셔서 자신에게나 자녀들에게나 이점을 항상 유의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이것은 쉬 지나가리,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남으리"


                              하나님을 도우려 했던 여성들


   사라와 리브가는 족장이었던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내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때를 기다리는 데에는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바를 그들 자신의 계획으로 이루어 보려 했습니다.

   먼저 사라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한 씨를 통해서 뭇별처럼 무수한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나(창 15:5),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서둘러 하나님을 도와 드리고자 상속자를 낳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꾀했습니다(창 16:1, 2). 사라의 계획은 성공적이어서 마침내 이스마엘이 태어났으나,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가정 불화의 씨앗이 되었고, 이후로 그의 자손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되었습니다.

   다음, 리브가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서 쌍둥이 아들들이 태어나기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아들인 야곱은 리브가가 좋아하는 아들이었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지 못할 것처럼 생각이 들자, 리브가는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을 도와 드리고자 계획했습니다. 창세기 27:1~28:5 에서 이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됩니다. 리브가의 계획은 성공적이어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나, 대신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리브가는 에서와 멀어지게 되었고, 야곱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친히 역사하심을 보며 즐거워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우리에게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히10:36).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으실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장 적절한 시기가 우리의 생각하는 바 적기와 꼭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 인내를 통해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시려고 기다리시게 하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기다리며, 우리를 위해서 일하심을 보는 것은 실로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줍잖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우리에게서 믿음으로 주님을 잠잠히 기다리는 것을 보실 때 기뻐하십니다(시 27:14).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여성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실패한 자들까지도 다음과 같이 당신의 경륜을 성취하도록 사용하심을 볼 때, 격려를 받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와가 범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손을 통해서 사단을 물리칠 것을 확약해 주셨던 것입니다(창 3:15). 또 이스마엘 사건으로 잘못을 저질렀던 사라도 약속의 자녀를 낳게 하셨습니다(창 21:2). 라합은 이방 여인인데다 기생이었으나, 하나님을 믿음으로(수 2:1~21) 메시야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마 1:5). 여러 해 동안 모압 땅에서 허송세월했던 나오미는 자부 룻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안식하게 해 주었고, 마침내 룻은 보아스의 아내라는 영예로운 지위를 얻게 되면서, 다윗 대왕의 증조모가 되었습니다(룻 1:1~22 ; 4:13~17). 왕후 에스더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 한 나머지 몹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왕에게 그녀의 백성을 변호하여 그들을 구출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에 4:16).

   마찬가지로 우리의 개성이나 교육 정도나 은사나 생활 수준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가까이 동행할수록 우리는 주님과 일하기를 더욱 열망하게 되어, 더욱 크게 쓰임 받게 되므로 더욱 행복해 질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가사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삼갈의 막대기, 다윗의 물매

                             도르가의 바늘, 라합의 밧줄

                             삼손 나귀 턱뼈, 소년 도시락

                          작은 것도 바치니 하나님 쓰셨네!"


   이 과에서 언급된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상세하게 공부해 보십시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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