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과 이스라엘에 관한 경륜

                                                     (9장1절~11장 36절)


   유대인들처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선포한 복음은, 선민인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폐한다는 뜻인가?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주로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셨습니다. 동등하게 전파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신 여러 사실들을 페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해 잠시 버림을 받은 것에 불과하며,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께로 돌아오면 그들은 다시 선민의 특권에 은혜의 위치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누어 상고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림은 정당한 처사였습니다(9:1~29절)   1) 이스라엘 민족은 앞서 밝혔듯이 특별한 은혜를 입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를 뜻하는 영광의 구름이 그들에게 있었고, 언약과 모세의 율법과 성전의 예식과 약속의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주 예수님께서 그들 민족의 태에서 나셨습니다. 이모든 특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야를 배척하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1~5절)


   2) 그러나 이것으로서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저버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소수의 택한 사람들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6절).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택함을 입었습니다. 이와 같이 단순히 조상이 하나님께 택함을 입었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그 후손들이 축복을 받지는 못합니다.


   또한 리브가에게는 두 아들, 야곱과 에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야곱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그 뜻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창 25:22~26).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선한 행실이 그의 뜻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3) 그런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자는 누구에게나 긍휼을 능히 베푸실 수 있습니다(14~18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 그 누구도 불평하거나 비난 할 수 없습니다(14절). 하나님은 이미 모세에게 그 뜻을 밝히신 적이 있습니다(15절). 그것은 사람의 노력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16절). 바로가 하나님께 대해 그 마음을 강퍅하게 가질 때, 하나님은 바로를 통해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17절) (-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택하시지, 저주하기 위해 택하지 않음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4) 아무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19~21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자신과 하나님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려는 행위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악의 구덩이에 빠져 있습니다. 만약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모든 사람들은 다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 그가 자기 집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하십니다. 그에게 그럴 권이 없겠습니까?  *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구원 받은 사람을 정죄하는데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멸망받아야 마땅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데 쓰이는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 찰스 어드맨


   5)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지만, 부득이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셔야 했습니다(22~24절)


   6) 이방인이 구원을 받을 것과 이스라엘 중 남은 자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버림 받을 것이 구약에 예언되었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는 25,26절 또한 믿는 자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버림 받음에 대해서는 27~29절에 인용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의 버림 받음은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습니다(9:30~10:21절).


   1) 그들은 자기들의 방법으로 의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즉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를 이룬다고 믿었습니다(9:30~33절)


   2)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기를 거절하였습니다(10:1~4절)


   3) 이스라엘은 구약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만 했습니다(10:5~11절)

      모세는 율법과 믿음의 차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율법은 '하라' 고 명령하지만, 믿음은 '할 것이 없다' 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에 오셔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여 고백하고,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라는 것뿐입니다.


   4) 이스라엘은 구약을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모든 사람, 곧 유대인과 이방인 전부를 위함인 것을 깨달아야만 했었습니다(10:12~21절).

   이사야는 "누구든지 믿는 자는 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전파하였습니다(11절)

   요엘도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13절).

   이사야와 다윗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5절,18절)

   모세와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이 복음을 배척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21절).


   3. 이스라엘의 버림 받음은 전체적이거나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11장).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버리지 않습니다(1~6절). 사도바울이 이에 대한 증거입니다(1절). 엘리야 때처럼 은혜로 보호하심을 받는 자들도 있습니다(2~5절)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혼미케 하셨습니다(7~10절). 이것은 물론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일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영안을 마비시킨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버림 받음이, 그들의 영원히 넘어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11~16절). 그들의 버림 받음은 이방인에게 구원이 베풀어지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11,12절). 이방인의 축복은 유대 민족으로 시기가 나게 하기 위함입니다(14절). 만약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세상의 축복이 되었다면, 그들의 회복은 더욱 큰 축복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15,16절).


   4)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버림 받게 된 동일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7~25절). 이방인은 자긍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축복의 도화선은 유대인들이었는데, 다만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버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7~24절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그가 가르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감람 나무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원 감람나무가지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리고 돌 감람나무는 이방인입니다.  감람나무 자체는 세계 역사상에서 특혜를 입는 계층을 뜻합니다. 불신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큰 위험물입니다 (21,23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은 이방인에게 축복을 가져다 준 것보다 훨씬 덜 엄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22~24절).

   이스라엘이 혼미케 된 것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25절). 이스라엘은 머지않아 회복될 것입니다(26~32절).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놀라울 정도로 완전무결하십니다(33~36절).

   이상의 여러 말씀들을 특별히 주목하셔서 이 말씀들이 하나님만이 절대 전지전능하시며 사람은 피조물에 불과함을 마음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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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한 믿지 않는 선장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장이 타고 있던 배는 바다 한 복판을 항해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이 선장은 선장실 방안에서 곧 자신에게 들이닥칠 죽음을 응시하면서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생명을 취해가기 위하여, 몹시 무겁게 내리누르며 괴롭혀 온 이 영원한 두려움의 존재인, 공포의 왕이 마침내 목전에까지 출현하여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 오는 것을 보자, 그는 움찔 놀라면서 뒷걸음 쳤습니다. 그는 즉시 사람을 보내 그의 조수인 일등항해사를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윌리암즈, 자네 나를 위해 기도 좀 해주게.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 몇 구절만이라도 좀 읽어주게.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나는 평생 몹시 사악한 죄 가운데서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제 나는 곧 죽게 될터이니 제발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게나."

 

"선장님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평생 기도라고는 해 본 적도 없고 또 기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읽어드릴 수 있기는 해도, 읽어 드릴 성경책이 여기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네 네 조수 중에 이등항해사 토마스를 좀 불러주게. 아마 그 사람이라면 몇 마디라도 기도는 해줄 수 있을 걸세." 그러자 두 번째 조수인 이등항해사 토마스가 금방 다 죽어가는 선장 앞에 불려오게 되었습니다. 선장은 그의 조수인 토마스에게 다시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보게, 토마스 나는 이제 곧 영원을 향한 긴 여행을 시작할 것일세. 나는 지금 정말 두렵다네. 여기 앉아서 나를 위해 기도를 좀 해 줄 수 없겠나? 하나님께 나같이 불쌍한 영혼에게 자비를 좀 베풀어 주시라고 말일세."

 

"선장님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선장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는 일인데 기꺼이 해드려야지요. 그렇지만 선장님, 제가 청년 때 언젠가 한번 기도해 본 것 말고는 이제껏 기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불러오기 위해 배안을 샅샅이 찾아보았습니다. 성경을 읽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선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선장에게 말하기를 배의 전속 요리사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고 있는 월리 플랫이라고 하는 매우 작고 어린 친구가 있는데, 그가 성경책처럼 보이는 책을 들고 있는 것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즉시 그아이를 찾아 선장실로 데려 왔고 선장은 그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거기에 좀 앉게나. 그리고 성경에서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좋은 말씀이 있는지 좀 찾아 줄 수 있겠나, 나는 곧 죽게 될 터인데, 지금 나는 몹시 두렵다네. 나 같은 죄인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말씀이 있으면 제발 그와 같은 말씀을 찾아서 내게 좀 읽어 줄 수 있겠나?"

 

윌리는 어디를 찾아서 읽어야 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윌리는 그가 집을 떠나기 직전에 그의 어머니가 이사야 53장을 찾아서 읽어주신 것이 기억났습니다.

 

윌리는 존 카웃츠 선장과 같이 불쌍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에 관하여 완전무결하게 이야기해놓은 하나님의 복된 말씀인 이사야 53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서 이 복된 하나님의 말씀을 선장에게 조용히 읽어 주었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을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 마침내 53장 5절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위하여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듣고 있던 선장은 순간 아직도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확실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잠깐만, 젊은이! 그 말이 내가 아직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말씀같아! 그 말씀을 한 번만 더 읽어 줄 수 있겠나" 소년은 이 복된 이사야서 53장 5절 말씀을 한 번 더 읽어 주었습니다.

 

"그래 맞어, 나의 젊은 친구, 그 말씀이 너무 좋아 그게 내가 찾던 바로 그 말씀이야 이 말은 진심이야."

 

이 말을 듣는 순간 소년 윌리는 크게 고무되었고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윌리는 용기를 내어 선장에게 말했습니다. "선장님 제가 집에서 이사야 53장 5절을 읽을 때, 제 어머니께서는 제게 그 절속에 우리라는 말 대신에 저의 이름을 넣어서 읽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제게 시키신 대로 이 말씀구절 속에 제 이름을 넣어서 읽어드릴까요?"

 

"물론이란다 아들아, 너의 어머니가 네게 말씀하신대로 그 속에다 네 이름을 넣어서 다시 한 번 읽어다오."

 

이 소년은 경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넣어 천천히 이사야 53장 5절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예수님)가 찔림은 월리 플렛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윌리 플렛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윌리가 말씀 구절을 다 읽어주자 선장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상반신을 침대 밖으로 내밀면서 소년을 향하여 손을 뻗으며 부탁하기를, "내 사랑하는 아이야, 그 구절 속에다 내 이름을 넣어서 한 번 더 읽어다오, 그래 줄 수는 없겠니---내이름 죤 카우츠이니까, 죤 카우츠를 그 구절 속에 넣어서 말이야."

 

소년은 선장의 이름을 넣어 천천히 이사야 53장 5절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예수님)가 찔림은 죤 카우츠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죤 카우츠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죤 카우츠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죤 카우츠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소년이 성경말씀 구절을 읽어주는 일을 다 마쳤을 때에, 이 선장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 그래. 그 정도로도 이제 충분하다. 내 사랑하는 소년아, 이제는 네 자리로 돌아가도 좋다."

 

그리고서 선장은 그의 베개를 등에 대고 누워서 이사야 53장 5절에 있는 이 보배로운 말씀을 계속 반복해서 말하되 매번 자기 자신의 이름을 그 속에 넣어서 그 말씀을 반복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이 말씀을 그렇게 반복할 때에 천상에 속한 사람들만이 누리는 기쁨이 그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인가요? 물론입니다. 이 사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사람은 정녕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또 한 사람의 불쌍한 죄인이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요1:12)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죤 카우츠 선장이 예수님 품 안에서 잠들기 전에 그는 자기 배에 타고 있던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사람에게 인자로 오셔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찔림은 죤 카우츠 선장 자신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죤 카우츠 선장 자신의 죄악 때문이라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거해주었습니다. 선장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하는 징계를, 기꺼이 자신의 복된 대속물이 되어주신 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으므로 죤 카우츠 선장 자신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이 채찍은 십자가 위에 계실 때에 예수님에게 가해진 채찍을 말합니다.--- 맞으므로 죤 카우츠 선장 자신은 나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배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증거입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이 글을 읽고 계신 사랑하는 독자여러분, 이와 같은 구원에 대하여 알고 계셨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한 사람의 불쌍한 "경건치 않은 죄인" 또는 "믿지않는 죄인"의 모습으로 여러분의 위치를 그대로 고수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를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8.39) EMM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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