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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28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성 - 제7과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제 7 과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고린도전서 11장 3~16절)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관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 많은 사람들이 기르치고 저술해 왔기에, 이 책에서는 너무 상세히 다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16절의 말씀을 상고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남녀는 하나님 보시기에 신분에 있어서나 영적 특권에 있어서나 평등합니다.

   둘째, 신분상 평등하다는 것이 기능과 책임에 있어서도 평등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남녀 간의 차이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셋째, 여자들의 활동이 교회의 건전한 발전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남녀 평등


   사도 바울은, 남존여비(男尊女卑)를 주장하던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공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여성들에 대해 갖고 계셨던 것과 같은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여자들이 기도하던 모임을 인정하여 참석했고, 루디아의 접대를 받아 들였으며, 루디아의 집에서 유럽 최초의 교회를 시작했습니다.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가리켜 동역자라고 말했으며, 브리스길라와 뵈뵈를 극구 칭찬했으며, 또 다른 여인들을 가리켜 많이 수고했다거나 주의 일을 도왔다고 격찬했습니다(롬 16장). 바울은 남녀의 영적 평등을 아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6~28)

   이처럼 우리는 남녀에 상관 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동일한 신분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그러나 남녀평등을 주장한다고 해서 남녀 구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은 여전히 유대인이며, 헬라인은 여전히 헬라인이듯이, 남성도 여전히 남성이고, 여성도 여전히 여성인 것입니다.


                                  남녀 구별


   남녀 간의 구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선하신 목적을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남녀 간에 각각 다른 기능과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심에 있어서는 남녀 간 쌍방이 다 중요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지으신 만물에게 우주적인 질서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특수한 책임적 지위를 부여하셨고, 여자에게는 남자의 협조적 지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이러한 지위의 차이는 우열의 구분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질서와 섭리이십니다. 평등한 신분이지만 기능상 구별될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 예수님께서 여자들을 환영하시고 인정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 중 여자를 택하시지는 않으셨으며, 주의 만찬을 분부하실 때에도 여자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고, 신약에도 순회 전도자나 저자 중에 여성이 없었으며, 교회 중에 여성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회중 앞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교회를 지도해 나가는 지위는 여자에게 주신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의 역할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거나 무가치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여자의 봉사


   모든 성도들은 남녀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영적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은사는 지역 교회의 번영을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 개개인은 온 몸의 필요를 공급해 주어야 할 사역자인 것입니다(엡 4:16). 따라서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할 일이 없다면, 이것은 은사나 기회의 부족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영적 고갈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은사와 그 사용에 관해서는 12과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6과를 공부하면서 신약 여성들의 활동으로서 찬양, 경배, 접대, 교육, 선행, 복음을 위한 수고 등을 살펴 보았습니다. 또 그외에도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다락방에서 가졌던 제자들의 기도집회에 여자들이 있었습니다(행 1:14).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이 강림했던 경우에도 여자들이 참석했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많은 여자들이 구원을 받았고(행 8:3), 이들은 또한 1세기 기독교 확장에 있어서 훌륭한 공헌을 했습니다. 게리 인리그(Gary Inrig)는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주신 은사 중 교회에 불필요한 것이라고는 없을 뿐더러, 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성서적인 방법으로 활용하는 한, 활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은사란 없다" 고 말했습니다.

   그가 '성서적인 방법으로 사용한다' 고 말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신약적 본질과 교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봉사할 것을 원하시는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일례로 훌륭한 군인은 고도의 훈련으로 완전 무장을 한 후,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상관의 지시를 기다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장 훌륭한 결과를 기대한다면 조물주의 지시에 순종하라" 고 말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하신 대로 교회의 머리 되신 분의 지시사항을 알아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주신 은사를 억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체계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지도적 권위와 순복


   지도적 권위와 순복, 그외에 권위에 관한 제원칙은 창조의 질서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후에 하와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먼저 지음을 받은 자에게 권위의 책임이 있으며, 나중 지음을 받은 자에게는 순복하며 따라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8,9)

   대체로 여자들은 창조의 질서에 대해서 반박하려는 반응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남자들이 우선권을 우월권인양 착각하여 오만하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지도적 권위의 원칙에 대해서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 11:3)

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속적 의미는 세 가지 교훈을 제시해 줍니다. 지도적 권위의 문제는 결코 누구를 낮추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복종하셨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하나님만 못한 분이십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지도적 권위는 결코 주님의 인성과 신성을 무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우주적인 질서에 맞추어 분수를 정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질서에 따른 권위와 순복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지도적 권위를 주셨을진대,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주신 분수를 책임과 특권과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순복이 하나님의 경륜으로 보아 우리를 위한 축복과 완성의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꺼이 받아 들여야 합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남자와는 다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해야 합니다.


                                   머리를 가리움


   지도적 권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고린도전서 11장 3~16절에서는 여자들이 너울로 머리를 가리우는 것으로, 지도적 권위와 순복의 원칙이 교회에서 드러나도록 하라고, 교훈하십니다. 니콜슨(J. B. Nicholson)은 "남자가 너울을 쓰고, 아니면 여자들이 너울을 쓰지 않고 나타나는 것은 지도적 권위에 관한 신성한 가르침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남자는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 하나님의 영광이 도전을 당해서는 안되며 그 영광이 가리워져서도 안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자신의 영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일진대 남자의 머리는 가리워지지 않아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다. 그러기에 이 영광이 드러나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여자는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 고 설명합니다.

   '가리운다' 는 것은 그저 여자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그렇다고 말하지만, 원어상 5절의 머리카락과 관련해서 쓰여진 단어는 4~7절에서  쓴다든가 벗는다고 말할 때 쓰여진 단어와는 다르다는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에서 요구하는 바 쓰는 것이 머리카락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4절 참조).

   그렇다면 여자가 언제 너울을 써야 할까요? 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의견이 구구하지만, 우리는 남자들이 참석하는 교회적 집회에서는 너울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이러한 명령을 당시 시대적인 특수성으로 적용해야 좋을까요? 아니면,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일까요? 다시금 사도 바울이 주장했던 기본적 원칙을 살펴봅시다.

   첫째, 지도적 권위에 관한 원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며,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다(고전 11:3).

   둘째, 이것을 창조의 순서에 기초한 것이며,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지방적 풍속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고,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 되었다는 사실은 근본적인 것으로서, 장소와 시간 등의 여건이 변한다고 해서 변경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지도적 권위의 원칙은 영구적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한다면 순복의 시인과 표현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을 만날 때 면박을 취하여 자신을 가리웠습니다(창 24:65~67). 이것은 결혼식에 있어서 의미 심장한 의식으로서 이제 남편이 그의 머리임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너울이나 모자로 머리를 가리우는 것이 현대 문명에 있어서, 적어도 서양에서는 이러한 순복의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순복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 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기독 여성이라면 흔연히 이러한 방법으로 주님께 순복하려는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뿐더러 천사들이나 뭇사람들에게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을 보여줄 수 있는 은혜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령을 아주 귀하게 여기십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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