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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18 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 제4과 돌아온 탕자

      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4과

                              본문 : 누가복음 15장 11-32절


                       돌아온 탕자

                         (The Rebel Comes Home)


   그날 집안에서는 형언하기 힘든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자신이 꿈꾸던 이상을 실현해보고자 모든 좋은 환경을 버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돈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재산의 일부를 물려받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 냉정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청했습니다.

   "나의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나에게 주십시오. 지금 당장에 말입니다."

   아버지는 마치 비수에 그 마음이 찔리는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놀랍게도 아버지는 아들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로 하였습니다. 작은 아들은 그 돈을 받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죄의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는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더 이상 잔소리도 없고, 더 이상 세대차의 갈등을 겪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늙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하였고, 멋지게 보였습니다. 먹고 마시고, 마약을 하고 도박에 취하였습니다. 주위 젊은이들은 모두 그의 친구가 되었고, 특히 풋내기 처녀들에게 그는 정말 멋진 부잣집 귀공자로서 킹카가 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유흥을 즐기며 돈을 물 쓰듯 하였습니다. 빈 털털이가 될 때까지......그래서 그는 탕자(prodigal)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탕자란 낭비자(wasteful)란 뜻입니다. 그는 밤이면 밤마다 고급 바에서 친구들의 술값을 대신 지불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이 밤이 지나면 그가 어느 날에는 결국 "최후의 큰 지불 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날이 오자, 친구들은 모두 그를 비웃으며, 그의 곁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지붕이 날아가듯 돈은 다 날아갔고, 그는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낭비벽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은 떨어지고, 지불 기한을 넘긴 고지서는 쌓여만 갔습니다.


   플레이보이에서 돼지치기로(From Playboy To Pig Feeder)


   가련한 이 친구는 배가 고팠으나 그에게 먹을 것이 떨어진 이후로 예전의 친구들은 모두 그의 곁에서 흩어졌습니다. 그가 술을 마시고 싶을 때 아무도 그의 술값을 대신 지불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방세를 낼 돈도 없었습니다. 그는 길거리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직업소개 하나가 들어왔는데 그것은 돼지치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감사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다행한 일은 옛날 그의 아는사람들이 이와 같은 자기 처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은 더러운 돼지를 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배가 터지도록 먹이를 실컷 먹고 있는 돼지들이 그는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들은 꿀꿀거리며 마음껏 배불리 먹고 쓰러져 자다가 다시 일어나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야속하게도 이 탕자의 배 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도록 그가 굶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는 돼지우리 곁에 기대서서, 종종 그의 고향 집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잘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은 그의 가족들, 갓 구워낸 빵의 그 향기, 그리고 거기에 많은 종들... 그들은 지금의 나보다 얼마나 더 행복한 가!...그는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며 지내왔는가 회한의 눈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탕자가 된 자신의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떠나간 후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날마다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떠난 날 이후로 밤이면 대문을 열어놓았으며, 언제나 먼 동구 밖 길을 내려다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이 아버지는 그의 사랑채 의자에서 일어나, 급히 달려 나갔습니다. 그의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탕자 아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며 잘못을 고백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와 같은 자식의 고백을 만류하며, 그를 부등켜 안고 그의 입을 맞추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환영입니까! 아무 문책도 없었습니다! 조건도 없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말하지 않았니? 사랑한다, 아들아, 다만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곧 탕자가 집에 당도하자, 아버지는 종들에게 급히 지시하였습니다. "자, 좋은 의복을 내어 오고, 금가락지를 가져오고, 새 신도 가져 오도록 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양과 살찐 소를 잡아 굽도록 하라" 고 지시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갑자기 밀어 닥친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한편으로 기쁨을 진정시키며 "보라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이웃 친구들에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밤이 맞도록 연회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큰 아들이 들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큰 아들은 집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치의 연유를 알고 몹시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 그에게 잔치에 함께 참여하자고 권했을 때, 그는 볼멘소리로 이처럼 아버지께 항의햇습니다. "나는 결코 집을 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죄의 도시로 떠난 적도 없었습니다. 나는 젊은 여자들과 어울려 돈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나를 위해서 언제 한번이라도 잔치를 베풀어 준적이 있었습니까? 아버지는 나를 위해 어린 염소고기를 굽거나 송아지를 잡은 적도 없었습니다. 절대로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잘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놈을 위해서는 환영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나는 언제나 성실하게 일했고 칭찬 받을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얻은 것은 무었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정하게 그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들아, 이와 같은 잔치를 베푸는 까닭을 진정 너는 아느냐? 나는 나의 아들이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며 자신이 다른 사람 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탕자로 살았을찌라도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한단다."


   이야기가 주는 교훈 (The Meaning of The Story)


   예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예수님을 향하여 죄인의 친구라고 조롱하고 비판의 손가락질을 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2절 참고).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라킵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작은 아들은 죄인의 모본입니다. 큰 아들도 역시 죄인이었지만 그는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였고, 자신의 행동은 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의 선행과 무죄를 자랑하고, 통회하지 않으며, 회개치 않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교훈을 지나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이 상속 받을 재산을 요구하고 집을 떠나기 원했을 때,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갔고, 그곳에서 한 때 큰 죄악 중에 빠져 자기 육신의 온갖 정욕을 즐겼고 가진 모든 소유를 잃을 때까지 허랑방탕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대부분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주는 죄의 쾌락과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우리에게 일시적인 쾌락을 주며, 영원한 만족을 결코 가져 다 주지 못합니다.

   탕자의 지갑이 든든한 동안에는 많은 친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탕자가 진정으로 그들을 필요로 할 때 친구들은 그를 외면하고 밀쳐내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마귀의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오히려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곳에는 시련, 궁핍, 그리고 위장된 거짓 축복 뿐입니다. 그곳에는 질병, 궁핍, 재앙, 시련, 비극, 슬픔, 그리고 위장된 축복 뿐입니다.

   이 젊은 친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지 돼지 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대단한 치욕이었고 거지 신세와 다름없는 비참함이었습니다. 죄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죄는 사람을 밑으로 끌어 내리는 것입니다. 비참하게 만듭니다. 파멸의 길에 빠지게 함입니다.

   끝으로, 이와 같은 고통가운데서 그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작이었습니다. "인간의 종점은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빠져 나갈 길이 없을 때 우리는 언제나 위를 올려다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탕자의 아버지는 그가 떠난 후 언제나 그를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듣습니다. "나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기도로 인해서 내가 복을 받았습니다.

   집을 떠날 때 그 아들은 말하기를 "내 몫을 내게 주십시오."라고 했으나, 그가 돌아와서는 "당신의 종의 하나로 나를 삼아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떠날 때는 자신이 아들의 대접을 받을 만하다고 느꼈으나 돌아 온 후에는 종의 하나처럼 은혜와 자비를 구했습니다. 은혜는 의(義)보다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환영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성경의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는 마치 탕자가 돌아올 때 달려 나가서 탕자를 맞이한 아버지처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동정심을 극적으로 가장 잘 묘사해주고 있는 유일한 부분입니다.

   '가장 좋은 겉옷'은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義)의 옷을 상징합니다 (고후 5:21 ; 이사야 61:10). (shoes)은 믿는 자들을 종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후사(상속자)로서 하나님의 가정 안으로 받으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종은 신을 신지 않습니다. 그리고 환영 잔치는 돌아온 자들의 기쁨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죄인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시작 된 그 기쁨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현대판 탕자 이야기 (Modern Prodigal)


   몇 해 전, 한 젊은이가 그의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 년 후, 그는 정말로 빈털털이가 되었고, 자신의 부모님에게 수치와 오명을 끼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탕자 신세가 된 그는 그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 바른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연 가족들이 자신을 영접해 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통하여 그의 귀가 계획을 말하고, 그의 어머니에게 청하기를 만일 자신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 그 증표로 집 앞 라일락 나무가지 위에 흰 천을 걸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그는 고향 가는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를 실은 버스가 그의 집 마을 앞에 가까이 이르게 되었을 때 그는 만일 흰 천이 라일락 나무가지 위에 없다면 그대로 지나치리라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버스가 그의 집 가까이 이르게 되었을 때, 그는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그의 정든 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라일락 정원수도 그대로 있었으며, 그 가지마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수백 개의 힌 천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버스에서 뛰어 내려 그의 집 대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부모님이 자신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도 이와 같습니다. 그 앞에도 나무가 있는데,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죄인의 귀가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팔은 항상 크게 벌려져있고, 그는 죄인들의 회개를 촉구하시며, 그들이 자신의 죄로부터 돌이키고, 우리의 구주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원하십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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