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가정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온다

A Good Marriage Brings God's Favor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언 18:22).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잠언 12:4).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내려 주신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종 아굴(Agur)은 인생의 기이한것들 중의 하나는 한 남자와 한 여인이 함께한 자취(the way)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잠언 30:18-19). 구혼과 약혼과 결혼은 가정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참으로 아름다운 일들입니다.

글로리아 게이더(Gloria Gaither)는 그녀가 쓴 "나의 부모님들이 행한 옳은 일"(What my parents did right)이란 책에서 50명 이상의 저명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그들의 가정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들을 축복하셨는가를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과에서 결혼생활에서의 신실함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제 제6과를 통해서는 좋은 그리스도인 가정을 위한 세가지 원리들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분쟁의 근원을 피하라(Avoid power struggles)

역기능적인 가정 안에서는 언쟁과 위협과 다툼 그리고 오해와 잔소리와 적대적 행동들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반면에 정상적인 가정 안에서는 남녀 모든 식구들 각자가 평온함 가운데 자신들의 합당한 임무에 늘 충실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가정 안에서의 가정생활은 언제나 기쁨과 행복과 평화가 흘러넘칩니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언 17:14).

* 모든 식구는 저마다 각기 다른 의견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잠언 구절은 흐르는 물을 차단시켜 홍수를 막아주는 댐(dam)의 역할을 연상시켜줍니다. 이 댐은 마치 제방의 보호벽(protective wall)처럼 가족들 간의 상충되는 의견들을 억제해줌으로 가족을 지키고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언쟁의 발단은 결국 가족의 평화의 댐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결국 그 가정은 홍수로 말미암아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지키려면 "언쟁이 시작되기 전에 싸움을 멈추라."고 잠언은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 2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21:19).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심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방울이라.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과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잠언 27:15-16).

*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변론과 언쟁, 분쟁의 불씨와 불화를 초래하는 자입니다. 남자건 혹은 여자건 이러한 부류의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 이외에 다른 것들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의 타협이 불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이러한 사람들은 바람을 제어하거나 기름을 손으로 움켜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동물세계에나 있는 강자와 약자사이의 위계질서(pecking order)를 따라 삶을 살아갑니다. 신체적으로 강한 사람은 걸핏하면 남을 째려보거나, 약한 자를 괴롭힙니다. 그러면 신체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약자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심리전을 벌입니다. 그들은 종종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푸념하며, 투덜거리며, 시비를 걸며, 그리고 그들은 사랑과 애정을 거부하며, 쌀쌀하고 냉정한 태도를 나타내며, 때로는 위협을 목적으로 가출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가정안에서 일어나게 될 때 온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주게 됩니다. 가정 안에서 이러한 쟁투와 불화가 일어나게 될 경우 힘이 아무리 센 사람이라 할지라도 힘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유일한 해결책은 온 식구가 분쟁의 근원들을 피하고 서로 각자를 존경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들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움과 인내와 이해해주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족들 간에 서로를 존경하라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잠언 11:22).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잠언 12:4).

* 사 려 분 별 이 부 족 하 다 (lacks discretion)는 말은 상식이 부족하거나 합당한 분별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경험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때때로 결혼생활에서 상식이나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발과 아비가일의 결혼생활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사무엘 상 25장).

남편이든 아내든 결혼 배우자들이 그 상대방에 대해서 옳은 분별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잠언 13:22).

* 가장 기본적으로 귀중한 일은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그의 가족을 귀중히 여기는 선한 사람은 자신의 손자들을 위해서도 재물을 물려주고자 하는 자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징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잠언 15:5).

* 가정은 부모가 그의 자녀를 귀중히 여기고 또한 자녀는 부모의 충고와 훈계를 경청하는 상호 관계를 맺은 곳이어야 합니다. 상호존중 하는 마음이 있는 가정에서 자녀는 그들 부모의 충고와 훈계를 경청해서 듣습니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견책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잠언 15:12).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잠언 15:2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진정한 소중함을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드러내는 곳입니다. 이러한 가정의 자녀는 부모와 증조부들의 가정적인 전통을 대대로 이어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녀의 영화니라"(잠언 17:6).

* 존경은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조부모들이 그들의 손자들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길 때 그 손자들 또한 자기 조부모들을 존경할 것입니다.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잠언 17:21).

"미련한 아들은 그 아버지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잠언 17:25).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잠언 19:26).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 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잠언 28:24).

* 다른 사람을 귀히 여긴다는 것은 존경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항과 불복종으로 그의 가정에 수치를 초래하는 자녀는 자신의 부모를 매우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는 한결같이 언제나 그들의 자녀들로 즐거움을 얻고자 합니다. 그의 부모들에게 언제나 존경을 드러내는 자녀는 타인들로부터 귀한 칭찬을 얻게 됩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언 23:22).

* 자녀는 그의 부모님께 겉으로 말로서만 청종하는 척하지 말고 진정으로 그들의 부모님께서 수고하고 희생하신 일들에 대해서 항상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정한 감사와 존경심을 바쳐야 합니다.

부모들의 자녀훈련

자녀들의 훈련에 있어서 두 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그 첫 째는, 남성들이 성경적 권위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자녀와 아내들을 함부로 다루고 학대하는 일입니다. 둘 째는, 모든 육체적 체벌로 이것은 아동들에게 해를 입히는 아동학대에 해당됩니다. 이 두 가지 사상은 모두 그릇된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상반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책임은 그들 자녀를 위하여 음식과 거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부모는 자신들의 자녀를 가르치고 훈련함으로 능력 있고 성숙한 어른들로 자라게 해야 합니다. 포유동물들의 세계 역시 그들 어미와 수컷들은 그들의 새끼들을 훈련하고 때가 이르게 될 때 그들 스스로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길러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네 자녀를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편안케 하며 네 영혼에 기쁨을 안겨 주리라"(잠언 29:17).

* 만일 여러분이 축구를 할 줄 안다면, 교실 안에서 책을 가지고 게임의 규칙을 배우는 것과 운동장으로 나가서 실제로 훈련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후자를 우리는 훈련(training) 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의 자녀들에게 단지 옳고 그른 것을 말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훈련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 축구 코치가 선수들이 실수를 범할 때 소리를 지르기만 하고, 실전에서 잘할 수 있도록 그들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훈련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는 곧 코치직을 해임당하고 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사람의 군인이나 운동선수나 혹은 농부와 같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딤후 2:1-7). 이들 세 가지 전문적인 일들은 모두 장시간의 반복적인 훈련과 연습이 요구됩니다. 그들 전문직에는 단지 규칙들에 대한 지식적 배움 그 이상이 수반됩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만일 실수를 범했을 때 그 실수에 대하여는 마땅히 그에 상당한 처벌이 따른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잠언 12: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잠언 13:1(.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징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잠언 13:18).

*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자녀가 부모의 합당한 훈련과 징계를 감사히 여겨야 함은 마치 훌륭한 지도자를 존중히 따라야 하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운동선수나 음악도가 그의 코치에게 사례비를 내면서 훈련을 받는 것은 자신들의 성공을 위해서입니다. 하물며 자녀는 자신 생애의 성공을 위하여 돌보는 부모님께 얼마나 마땅히 이와 같은 태도를 지닐 때 더 훌륭한 자녀로 양육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언 13:24).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 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잠언 19:18).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말라 채찍으로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언 23:13-14).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29:15).

* 자신의 자녀들을 방임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입니다. 부모가 그의 자녀를 징계하고 때로 채찍질하며, 훈계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을 진정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아주 성숙한 지혜와 방법으로 자녀를 다루며 양육하였을 때 그 자녀는 부모에게 큰 보람과 자랑과 기쁨의 열매들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잠언에서의 "채찍"(rod)이란 부모들의 자녀를 위한 여러 가지 합당한 훈련과 징계를 위한 도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죄인을 취급하듯이 채찍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모는 결코 그의 자녀를 죄인을 다루듯 형사적 처벌을 줌으로 바르게 만들 수 없습니다. 성공적인 부모들은 채찍 사용과 책망(rebuke)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자녀를 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징벌(puni-shment)은 항상 합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약한 징벌이나 혹은 반대로 지나친 징벌은 모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 마다 징계 종류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떤 자녀는 이런 징계방법에 반을을 나타낼 수도 있고 어떤 자녀는 저런 징계방법에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언 20:11).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으리라"(잠언 22:6).

*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모들의 가장 큰 실수는 단지 감정에 의해 행동하는 경향입니다. 만일 그러할 경우 부모는 무절제한 분노와 질책으로 그의 자녀에게 자신들의 불쾌한 감정을 쏟아 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잠언의 구절들은 자녀의 양육과 훈련의 목적이 단지 잘못한 자녀를 처벌하기 위해 부모들의 분노를 쏟아내는 수단이 아니라, 온전한 훈련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훌륭한 품성을 길러주며 훗날 부모 자신들에게 돌아 올 기쁨을 기대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제이(Jay)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는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결코 제이의 곁에 있어준 적이 없으며 그의 어머니는 마치 제이를 싫어하는 것 같은 행동을 보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제이는 위탁가정(foster home)에 맡겨져서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때 그는 매우 분노로 가득 찬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십대 어린 나이에 길거리로 풀려나오게 되었습니다. 아직 성숙한 나이가 되기도 전에 그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국 두 아이들을 가진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범행에 연루되어 15년 형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이혼을 하고 바로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해 버렸습니다. 제이는 매우 분노하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궁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뜻밖에도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삶으로서 이전보다 도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생부를 찾으려고 애썼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과 수고 끝에 어머니를 찾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녀는 그를 면회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이는 이와 같은 긍정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씩 열매가 맺기 시작하며 그의 형제들과 누이들 역시 그를 찾아 면회를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년 간 제이는 그의 아들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드리는 제이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그의 아들들과 다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편지 쓰기를 시작하였고 결국 아들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따뜻하고 가슴 벅찬 만남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아들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제이 자신이 그 나이에 가지고 있었던 문제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다행이 그의 작은 아들은 문제가 없이 그의 아버지와 긍정적인 관계를 아주 잘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들은 정기적으로 그의 아빠에게 그의 의견이나 행동에 대한 충고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비록 제이는 형무소 내에 있는 몸이었으나 그는 그의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살아 갈수 있게 된 것을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결론

시편 68:5에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인간이 가정을 이루고 가정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인류 최초의 가정 안에서는 형 가인이 아우 아벨을 살해하는 끔찍하고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머물러야 할 가정생활은 죄로 인해 뒤틀어지고 말았습니다. 로마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떠한 공권력의 제재도 없이 그의 아들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종종 그들의 원치 않는 자녀들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과도한 성적개방으로 말미암아 태어나게 된 많은 나라의 아이들은 잔인한 취급받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동에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곳에서 여자 아이들은 성적 노리개 취급을 당하며 구타와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도 매해 3백만명의 어린이들의 학대 건수가 보고되고 있습니다(Scientific America, March 2002). 그리고 자살을 고려해 본적이 있는 또 다른 3백만 명의 청소년들이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있었습니다(Associated Press, July 2002). 1985년에서 1995년까지 미국에서 총상을 입고 죽은 어린이들이 미국 안에서 50,0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죄로 인한 이와 같은 사악한 죄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가정생활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시며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또한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시기를 원하십니다(말라기 4:6). 이 아름다운 구절은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 구절입니다. 놀라운 일은 그리스도께서 그 가정의 주인으로 오시면 그는 사랑과 평안과 인자함과 선함을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가정의 온 식구들은 서로를 존경하며 서로를 돌보는 사랑의 보금자리와 같은 가정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 속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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