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윌리암 맥도날드 저
제 1 과
기록 목적 (1:1-10)
서론
사도바울은 그의 초기 전도 여행에서 소 아시아 지역을 방문하여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관한 은혜의 메시지를 전하엿습니다. 그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고 여러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중 몇 교회가 소 아시아 지역의 중심부인 갈라디아 지방에 세워졌습니다. 갈라디아인들은 고울 족의 후손으로 원래는 현재 우리가 서유럽으로 알고 있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참을성이 없고, 호전적이며, 변화무쌍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그 지역을 떠나자 거짓 선생들이 그 교회들 안에 들어 와서 잘못된 가르침을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에 율법준수를 더함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은혜와 율법, 그리스도와 모세를 섞어 놓은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이 진정한 주님의 종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전하는 말씀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말함으로 바울과 갈라디아 사람들을 떼어놓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게 함으로 그의 전하는 말씀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많은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악한 제안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소식이 갈라디아로부터 바울에게 전해졌을 때 바울의 마음은 얼마나 슬픔과 실망에 찼을까요! 그들 사이에서 했던 바울의 수고가 헛된 것이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유대주의와 율법주의의 가르침으로부터 이미 구원받지 않았나요? 바울은 즉각적이고 단호한 조처를 취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펜을 들어 믿음 안에서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이 분노의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이 서신의 처음부터 끝까지 율법의 전부나 일부분을 지킴으로 얻은 것이 아닌 은혜로 말미암아 얻게 된 구원의 참된 특성을 제시하였습니다. 선한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 그의 삶을 거룩으로 인도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개요
1. 바울의 문안(1:1-5)
2. 바울의 기록목적(1:6-10)
3. 바울의 메시지와 사역에 대한 변증(1:11-2:21)
4.복음의 위대한 진리(3:1-18)
5. 율법의 목적(3:19-4:7)
6. 율법에 매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어리석음(4:8-5:1)
7. 율법주의의 위험(5:2-12)
8.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참 뜻(5:13-15)
9. 실제적인 거룩에 대한 참된 능력-성령(5:16-25)
10. 경건한 삶에 대한 실제적인 권고(5:26-6:10)
11. 결론(6:11-18)
바울의 문안(1:1-5)
1:1 처음에 바울은 그의 사도로서의 소명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그것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한 분께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 한 분께만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자유를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열두 사도들과 모든 사람들로부터 독립되었습니다.
이 구절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선언되었고 암시되었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라고 말함으로 선언하였고 연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및...하나님 아버지"라고 함께 연결하여 놓음으로 서로 다른 것들을 동일시하는 방법으로 암시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으로 언급되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갈라디아인들에게 상기시키는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써 하나님께서 완전한 만족을 얻으신 것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갈라디아인들은 율법을 지키려는 자신들의 노력을 그 사역 위에 더하였기 때문에 구세주의 사역으로 완전히 만족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지상사역을 하시는 동안 부름을 입은 열두 사도들과는 대조적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부활은 후에 사도 바울의 메시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2 사도바울은 자신과 함께 한 형제들과 협력하였습니다.(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이 형제들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굳게 하라고 호소하는 일에 연합하였습니다.
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고의적인 냉랭함이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 ,"성도 ."그리스도 예수의 신실한 자" 라는 말로 신자들을 문안했습니다. 그는 종종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감사라든지 그들의 미덕에 대한 찬양을 나타냈습니다. 때로는 개인적인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러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 있는 잘못의 심각성 때문에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을 단호하고 냉랭하게 대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 이 로마 지방의 북쪽 부분에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할때에 남부 지역을 떠나 드로아로 옮겨가기 전에(행 16:6-8) 그곳에 교회들을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북부 갈라디아를 두 번째 방문한 것은 사도행전 18:23에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견해(남부 갈라디아 이론)는 2절에서 제시된 교회들이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와 더베라는 것입니다. 이 도시들은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세운 곳으로 특별히 이름이 밝혀진 곳입니다.
1:3 은혜와 평강은 복음의 위대한 두 낱말입니다.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는 경건치 않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과분한 친절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말하는 것으로 거저주시는 선물과 같은 구원을 받으라고 사람들을 청하는 것입니다. 스코필드는 "은혜는 그것을 나타낼 선한 사람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 거룩케하며, 영화롭게 하기 위해 저주받고, 정죄받고, 말할 수도, 도울 자도 없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한 죄인이 구주를 영접하면 그는 하나님과 화목됩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이 이미 치루어졌으며, 그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고,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지식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그런데 은혜는 구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의 복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도 필요한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때 갈라디아인들을 위해 구했던 복이었습니다. 분명히 갈라디아인들은 이러한 복들이 율법으로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은 그 가르침을 범하는 모든 사람에게 저주를 가져다 줍니다. 이 율법은 단 한 사람에게도 평강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이세대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부패 만이 아니라 예식과 의식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혼합시킨 종교계도 포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갈라디아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 죽으신 것에서 그 종교적인 조직 속으로 되돌아 가려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아주 시기 적절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보잘 것 없는 노력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속한 신뢰에 놓여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며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4 4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개선하거나 사람을 안락하게 하는 데 관심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세상에서 구원하시려는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1:5 은혜의 복음을 따라서 사람의 구원에 대한 모든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립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마치 구세주의 동역자가 된 것같은 영광을 나눌 수 없습니다.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이 첫 다섯 구절은 모두 의미가 깊고 몇낱말 속에는 많은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이 서신의 나머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두가지 주요 주제인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대한 진술을 준비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제 바로 그 문제에 대해 갈라디아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였습니다.
바울의 기록 목적(1:6-10)
1:6,7 바울은 갈라디아인들 앞에 그들이 잘못을 속히 받아들였다는 것을 제시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갑자기 복음의 진리를 넘겨준 것에 놀랐으며 거짓 복음을 위해 하나님을 버린 그들의 행동을 심각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들은 전에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부르심을 입었지만 이제 자신을 율법의 저주 아래에 놓았습니다. 그들은 전에 참 복음을 받았으나 이제 그것을 버리고 대신 전혀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받았습니다(7절). 그것은 단지 악한 길로 이끄는 메시지이며, 은혜와 율법을 혼합한 것입니다.
헬라어에는 "다른"이라는 말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같은 종류로서 다른 것이며, 다른 한가지는 다른 종류로서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인들은 바울이 전한 것과 같은 종류의 다른 것이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복음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1:8-10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엄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두 번 선언했습니다.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헬라어 아나데마는 "저주 받은"의 뜻임) 하나님은 죄인들의 운명에 대해 오직 한가지 메시지를 주셨는데 그것은 율법준수와는 전혀 별개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에 의한 구원을 제시한 것입니다. 구원의 어떤 다른 길을 외치는 자는 이미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얼마나 심각한 것입니까? 바울은 그 거짓 선생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람이 우리일지라도 관대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께로서 온 천사"라고 하지 않고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고 한 것에 주의하십시오. 하늘로부터 온 천사는 거짓 메시지를 가지고 올 수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천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말로는 복음의 독특성에 대해 더 이상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복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자신의 노력이나 인간적인 장점은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오직 돈이나 값없이 얻는 구원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율법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에 반하여 복음은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을 잘 말해줍니다.
바울은 아마도 그의 대적들이 자신이 청중들에게 맞추어 메시지를 바꾸었다고 비난했던 점을 상기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실상 "나의 주장에 있어서, 오직 한가지 복음만이 있을 뿐이며,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했는가?" 라고 묻고 잇습니다. 분명히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있다는 제안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울이 사람들에게 맞추어 그의 메시지를 바꾸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며, 실제로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에게 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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