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제6과 지 혜(야고보서 3:13-18)


   야고보는 이제 참된 지혜와 거짓 지혜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는 어떤 사람이 그 머리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가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가 어떻게 그의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올바른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 참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그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육체로 오신 지혜이십니다(마 11:19 ; 고전 1:30).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리스도의 삶을 나타내는 자이며 성령의 열매가 그 증거입니다(갈 5:22, 23).

   또한 우리는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는 모든 행동을 이 세상의 원리에 의해 행하는 자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영광을 취하는 모든 특징을 구현하는 자입니다. 그의 행동은 그 안에 거룩한 삶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3:13)


   어떤 사람이 지혜롭고 총명하다면, 그는 참된 지혜로부터 나오는 겸손한 모습과 선한 삶으로 그것을 나타내야 합니다(13절). 참된 지혜의 현현이신 주 예수님은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온유하시고 그 마음이 겸손하십니다(마 11:29). 그러므로 모든 참된 지혜 자는 참된 겸손으로 인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자(3:14-16)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에 독한 시기와 이기적인 야망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그가 지니고 있는 한가지 욕망은 자신을 크게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경쟁자들에 대해 시기하며 무자비하게 대합니다. 그는 성공을 가져다 주는 자신의 지혜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것이 지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자랑은 공허한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참으로 겸손한 자라는 진리를 실제적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14절).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있어서도, 세상적인 지혜는 다른 일군들에 대해 독한 시기를 내며 자신을 나타낼 유리한 위치를 구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자가 교회 안에서 인도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세상적인 원리가 영적인 일을 인도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야고보는 이 잘못된 지혜를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고 불렀습니다(15절).

이 세 가지 형용사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의도한 것입니다. 세상적이라는 것은 그 지혜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욕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사람의 저급한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마귀적이라는 것은 그 행동이 사람의 행동을 닮기보다는 마귀의 행동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시기와 다툼을 보게 된다면 또한 무질서와 부조화 그리고 모든 다른 악한 일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16절). 이 얼마나 진실입니까! 오늘날 세상의 불안과 소요를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착각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지혜를 거절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의 특징(3:17-18)


   참된 지혜가 17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이 그곳에 계십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합니다. 말과 행동과 생각이 깨끗합니다. 정신이나 육체나, 교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믿음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더럽혀지지 않은 것입니다. 참된 지혜는 또한 화평합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사람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의미이며, 자신의 순결을 희생시키지 않는 한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깊은 물위에 놓여있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만난 두 마리 염소에 대한 루터의 이야기가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염소들은 뒷걸음질 할 수도 없었고 감히 싸우고자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잠깐 이야기 한 후에 한 마리가 엎드려 다른 염소가 자기 위로 지나가도록 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지나가게 되었다. 도덕은 쉬운 것이다. 당신 자신이 화평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내가 말한 것은 당신 자신에 대한 것이지 당신의 양심을 말한 것은 아니다." 참된 지혜는 관용합니다. 이는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며, 제멋대로가 아니라 예의 바른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신사입니다. A. B. 심슨(Simpson)은 "무례하고, 비꼬는 태도와 날카로운 말, 냉혹하게 마음을 도려내는 이 모든 것들은 일반적으로 보혜사의 온유한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특징은 양순입니다. 이는 부드럽고, 가까이 하기 쉬우며, 이성적으로 열려 있고, 진리가 요구하면 언제나 양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고집세고, 완고한 것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이는 잘못한 자에게 긍휼을 크게 베푸는 것이며, 그들이 바른 길을 찾도록 도우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혜는 동정하며 친절합니다. 거기에는 복수심이 없습니다. 참으로 무례를 자비로 갚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즉 편애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차별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지혜는 위선이 없습니다. 진실하고 참됩니다. 사실과 다르게 가장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 모든 생각과 함께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의 모습과 거짓 지혜를 가진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참 지혜를 가진 자의 모습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참으로 겸손합니다.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깁니다. 허세를 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 사람의 행동은 그를 둘러싼 세상과 같지 않으므로 세상을 초월해 있습니다. 그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의 소욕을 따라 삽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당신에게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의 삶은 성결합니다.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깨끗합니다. 또한 그는 화평합니다. 그는 모욕과 거짓 참소를 참아낼 뿐, 그에 대항 하지도 자신의 정당함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관용하고, 온화하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이야기하기 편하며,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보복하지 않으며 늘 자신에게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특히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도 친절히 대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대하며, 결코 편애하지 않습니다. 부자에게도 가난한 자와 동일하게 대하며 유명한 인사일 지라도 평민과 동일하게 대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외식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뜻을 가지고 어떤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가 아첨하는 것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진실을 말할 뿐이며 결코 가면을 쓰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자의 모습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시기와 다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 때문에 그는 모든 경쟁자나 자신과 필적한 자를 참을 수 없게 됩니다. 그의 행동은 이 땅보다 조금도 높지 않기 때문에 고상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동물처럼 본능적인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의 방법은 잔인하고, 믿을 수 없으며, 마귀적입니다. 그의 잘 차려입은 옷 아래에는 더러운 생활이 있습니다. 그의 모든 생각은 불결한 것뿐입니다. 그의 도덕은 타락했습니다. 말은 더럽고 그를 인정하지 않거나 어떤 면으로든 반대하는 모든 사람과 말다툼하기를 좋아합니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사회생활에 있어서 그는 늘 논쟁하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그는 거칠고 위협하며, 무례하고 조잡합니다. 그는 항상 사람들과 팔 길이 만큼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와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의 생각은 이미 굳어져 있기 때문에 그의 견해는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용서하지 않고 보복하는 자입니다. 그가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알게 되면 자비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는 속박을 풀기보다는 모욕과 무례와 천박함을 쏟아 냅니다. 그는 사람이 자기에게 어떠한 유익을 끼칠 것인가에 따라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 더 이상 자신에게 유익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면 더 이상 그들을 "사용" 하지 않고, 그들에게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이중적인 사람이며, 신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의 말이든 행동이든 전혀 그를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예


   야고보는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8절)는 말씀으로 이 장을 끝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한 것과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연결해 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이제 막 참된 지혜는 평화를 사랑한다고 배웠습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에 대해 볼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삶이란 농사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농사에는 농부(지혜로운 자인 화평케 하는 자)가 있고 기후(평화)와 결실(의)도 있습니다. 농부는 의 의 싹이 자라기를 바랍니다. 불화와 다툼의 환경 속에서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평화로운 환경에서만 씨가 뿌려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로운 품성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르게 자란 곡식은 그 자신들의 삶과 그들이 섬긴 자들의 삶에서 결실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게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조용히 씨를 뿌리러 나가는 화평케 하는 자이다"(18절, 필립스 역).

   야고보는 우리가 매일의 생활에서 어떠한 지혜를 나타내는가 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주 예수님의 겸손한 신자보다도 이 세상의 교만한 자를 더 존중하고 있습니까? 나는 신뢰를 얻고 있는 사람을 무시하면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나는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미심쩍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해 아첨하는 자입니까? 나는 마음속에 시기와 원한을 품고 있습니까? 나는 비꼬는 말이나 냉정한 말을 즐깁니까? 나는 생각이나 말이나 도덕적으로나 깨끗합니까?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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