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묵상(진리의 말씀 365) 11월 3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딤후2:19).


   사도시대조차도 기독교 안에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신자들의 부활이 이미 지났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러한 주장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릴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우리는 자연 "이 두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날 종종 동일한 질문에 직면합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의 동정녀 출생을 부인하는 유명한 성직자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경이 오류를 내포한다고 가르치는 신학교 교수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면서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고수하는 신학생이나, 구원받았다고 간증하면서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성례전을 통한 구원을 가르치는 교회에 머무르며, 그 지도자가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 있어 무오하다고 주장하는 사업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일까요?

   솔직히 말해서, 위의 예들은 그 사람의 신앙이 진짜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분명히 분간할 수 없는 예들입니다. 요컨대 참과 거짓,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회색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역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있어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터(기초)입니다. 그분이 지으시는 것은 무엇이든 확실하고 견고합니다. 그분의 터에는 인침이 있으며 그 인침 위에는 두 가지 비명(碑銘)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측면을 보여주며 하나는 인간의 측면을 보여주는데, 전자는 선언문이며, 후자는 명령문입니다.

   하나님의 측면은,주님은 그분의 백성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비록 그들의 행실이 항상 합당하지는 않더라도 진실로 그분에게 속한 자들을 아십니다. 한편 그분은 외양은 갖추고 있으나 내적인 실제가 없는 모든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자들도 아십니다. 우리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지 못할 수 있으나 그분은 구분하실 수 있으며 또 구분하십니다.

   인간의 측면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는 불의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그의 신앙고백의 실제성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죄 가운데 계속 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자신의 고백에 관한한 신뢰성을 상실하게 마련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위의 사실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백성을 아십니다. 그분께 속했노라고 고백하는 모든 이들은 죄를 멀리 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고백의 진실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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