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매일의 양식 - 9월 12일


                                   누가복음 23장 44-49절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때가 제 육 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44-46절).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분의 사역이 완성되었습니다. 고통이 다 끝났습니다. 승리가 획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고요한 확신 가운데서 죽음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때 그분은 말씀으로 십자가를 끝내셨습니다. 시작할 때에 그러하셨듯이 끝낼 때에도 아버지께 아뢰는 말로써 끝맺음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전체 사역과 흡사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도, 그분의 말씀은 "내 아버지의 일" 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었고 마지막까지도 그것은 그분의 최우선순위였습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기도 역시 인용문을 담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시 31:5). 이 시편에서 우리는 현재의 상황과 꼭 들어맞는 구절들을 발견합니다. 이 시편이 십자가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시 31:11)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시 31:13) 또한 시편 기자는 다음의 사실을 인정합니다. "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시 31:15). 고통 속에서 주 예수님은 성경을 묵상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들을 인용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이에 그분은 자신의 영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했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자발적으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부득이 따르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에게 패배하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실상 주님은 의도적으로 죽음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죽음의 정복자가 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평온한 신뢰의 말씀은 임종을 맞은 많은 신자들에게 위로의 베개를 제공했습니다. 주님이 죽으시면서 하셨던 그 말씀은 그분을 믿는 모든 이들의 죽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첫번째 순교자인 스데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도 그분의 이 말씀의 변형이었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59). 위대한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가 세상을 떠나 영광에 들어가면서 했던 마지막 말 역시 이 구절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행복한 죽음의 비결로 삼으라는 목적에서만 주어졌을까요? 행복한 삶의 비결로 삼으라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온갖 요구들과 의무들을 이행할 때에도 우리는 이 말씀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모든 일들을 세밀하게 보살피시는 하늘 아버지의 손에 우리는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 우리의 건강, 우리의 가족, 우리의 직업 이 모든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관심사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립시다.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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