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2월 12일


                                요한복음 4장 39-42절


                                      세상의 구주


   제자들과 그 여인이 다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8절).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8절). 그러나 비슷함은 여기서 끝납니니다. 제자들은 거기서 "먹을 것"을 가져왔습니다. 이에 반해 그녀는 거기서 "사람들" 을 데려왔습니다. 제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한 반면 그녀는 사람들을 얻으려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수가성은 상점들이 있고 물건을 살 기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수가성은 영혼들이 있고 그리스도를 증거할 기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무엇을 보고 있나요?

   수가성의 사람들은 "예수께로 왔습니다" (30절). 이뿐 아니라 그들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39절). 이것은 다음 구절과 대조적입니다."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마 8:34). 또한 여기의 사마리아인들은 다음에 나오는 사마리아인들과 크게 달랐습니다.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눅 9:52,53).

   수가성의 사람들은 "예수께로 왔습니다" (30절). 이뿐 아니라 그들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39절). 또한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했습니다" (40절). 이것은 다음 구절과 대조적입니다.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마 8:34). 또한 여기의 사마리아 인들은 다음에 나오는 사마리아들과 크게 달랐습니다.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눅 9:52,53).

   수가성 사람들이 주님께로 온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일반적이고 일시적인 원칙에 의해 주님 및 사도들은 이렇게 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 10:5). 그러나 사마리아의 이 동네는 이틀간 주님의 임재로 인해 은혜를 얻었습니다.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0절). 오, 그분은 우리와도 함께 유하실 수 있습니다(눅 24:29).

   주님의 사마리아 여행이 이뤄낸 고귀한 결과는 이 마지막 구절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42절). 우물가의 여인은 주님에 대해 "유대인"에서 "선지자"로, "그리스도" 로 그 이해가 점점 더 깊어져 갔습니다(9,19,25,26절). 그러나 이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이해에 이르러 그분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틀간 머물면서 친히 베푸신 가르침의 유익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구주라는 것은 인류의 구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 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 12:47). 우리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 (22절)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오직 유대인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수가성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포함하지만(행13:23) 분명 그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구원 사역을 행하시는 주님을 믿었습니다.

   복음의 창시자이신 분과 함께 거하면서 그들은 그분께서 "세상의 구주"로 보내심 받았음을 보았고 증거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도 증거하노니" (요일 4:14).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 하나님의 구원은 민족적인 장벽 및 인종적인 차별을 알지 못합니다(행 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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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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