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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13 야고보서 -제7과 탐욕(야고보서 4:1-5)

               야고보서


            제7과 탐 욕(야고보서 4:1-5)


   야고보는 지혜로운 사람이 평화를 사랑한다고 옳게 지적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는 비참한 다툼에 대해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도 많은 불행한 가정이 있는 것이며 왜 그렇게도 많은 교회들이 분열되는 것입니까? 왜 본국 교회의 그리스도인 일군들 사이에 그토록 지독한 불화가 있으며, 해외 선교사들 사이에 다툼이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쾌락과 소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고자 하는 우리의 정욕을 만족시키려고 끊임없이 애쓰기 때문입니다.


모든 다툼의 근원(4:1-2상)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싸움이 있다는 것은 슬픈 사실입니다. 이 구절이 신자들에게 비현실적인 것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비 현실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 구절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가치를 앗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싸움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만족하기 위해 늘 애쓰는 우리 안에 있는 강한 욕망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1절). 거기에는 재산을 축적하려는 욕망, 명성을 얻으려는 야망, 쾌락과 육체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강한 힘들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욕망 속에서 우리는 늘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매우 강하게 되어 우리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짓밟아 버리게 됩니다. 야고보는 "살인하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비유적인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자적인 살인은 아니지만 분노와 시기 그리고 살기를 품은 잔혹함입니다(2상).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4:2하-3)


   사람들은 탐내지만 얻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나은 것을 갖고자 합니다. 그렇게 시도하고 있노라면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투고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존과 제인은 갓 결혼한 신혼부부입니다. 존은 적절한 월급을 받는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인은 교회의 다른 부부들처럼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했습니다. 존은 최신형 자가용을 갖고 싶어했고, 제인은 훌륭한 가구와 설비를 갖추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할부로 구입하였습니다. 존의 월급은 그것을 갚기에 벅찼습니다. 그 후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이는 그들의 살림이 늘어나 가계지출이 균형을 잃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인의 요구가 늘어나자 존은 짜증과 화를 내게 되었고, 이제 제인은 험담과 눈물로 응수하였습니다. 곧 그 가정은 심한 부부싸움으로 파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질주의는 가정을 파괴합니다.

   다른 면에서, 제인은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봅과 슈스미스 부부가 교회에서 존과 자신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곧 제인은 슈에 대해 나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사이의 싸움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자, 존과 봅이 그 싸움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편을 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드러나고자 하는 야망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된 것입니다.

   여기에 신자들 사이의 다툼과 싸움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낫고자 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말라" 는 것은 이에 대한 완곡한 표현일 뿐이며 이것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탐욕, 탐심, 시기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욕망이 매우 강하게 되면 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참된 기쁨이 이러한 방법으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임을 깨닫기 어렵습니다(딤전 6:8).

   기도는 이러한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말다툼하지 말고 싸우지 말며, 오직 기도하라."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주님께 기도함으로 얻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의 노력으로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갖지 않은 어떤 것을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했는데도 응답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간단하게 우리의 동기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3절).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나 다른 동료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해 그러한 소유물들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 그것을 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것을 원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 구절의 말씀은 심리학적으로 얼마나 심오한 가르침입니까!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으로 만족한다면 싸움과 불안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한다면, 받기보다는 주는데 더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울까요!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더 가지기보다는 버리며,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기 보다는 하늘에 쌓아둔다면 싸움은 그쳐질 것입니다.


탐심을 꾸짖음(4:4-5)


   4절에서 야고보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과도한 사랑을 영적 간음으로서 정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사라져 가는 것들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 불성실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간음하는 여자들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의 한 형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것을 갖고자 하는 갈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마음속에 우상을 세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보다 물질적인 것들에 더 가치를 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우상숭배이며, 우상숭배는 주님께 대한 영적인 불성실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4절에서의 세상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본능적인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자기 자신 안에 세운 조직입니다. 이 조직에는 하나님이나 그 아드님을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이는 아마도 예술과 문화, 교육, 과학 그리고 종교의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영역은 환영받지 못할 뿐 아니라 금지되고, 제외되며, 텅 빈 형식주의만 남아 있습니다. 요컨대 인간 세상의 바깥이 교회의 영역입니다. 이러한 조직과 벗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주님의 생명과 영광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사실 주님을 죽이는데 종교계가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신자들이 세상과 손을 맞잡고 자기들의 구주를 살해하려 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5절은 이 서신에서 가장 어려운 구절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첫째 어려움은 야고보가 이 구절의 말씀을 구약에서 인용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은 어떤 구약성경이나 외경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첫째, 비록 그 정확한 구절은 구약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지만 야고보는 성경의 일반적인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 구절을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의 둘로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경쟁하고 세속적인 정신을 정죄하는 성경이 헛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5절에 있는 두 번째 어려움은 이 구절의 두 번째 부분에 있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이 구절에 있는 영이 성령님이냐 아니면 강한 시기의 영이냐 하는 것입니다(한글 개역 성경은 성령님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만일 성령님이라면, 그 견해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성령님은 싸움의 원인이 되는 정욕과 시기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전적인 헌신 때문에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시기의 영이라면, 우리 안에 거하는 그 정욕적이고 질투하는 영이 우리가 하나님께 불성실하게 되는 모든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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