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영원한 속죄를 받았느냐?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며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스가라 7:5).


   한국의 기독교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길로 달려가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 중에 예배당에 가서 울며 통곡하는 일이 마치 대단한 신앙생활의 모본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신자들이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때때로 울며 기도할 뿐만 아니라 금식하며 기도하여야 하는 것은 기독교가 들어간 곳이면 어디나 어느 나라나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습관적이고 종교적인 눈물과 금식은 오히려 주님을 슬프고 탄식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죄 때문에 우는 사람들의 문제를 파헤쳐서 참된 믿음의 길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먼저 필자의 경험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서 초등학교를 기독교 사립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도 기독교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기독교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지냈고 고등학교 1학년 9월부터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 교회생활에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부흥회도 열심히 나가고, 또 새벽기도도 열심히 나가고, 성경도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 주일학교 교사를 비롯하여 교회활동과 학교의 기독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열심을 내면 낼수록 내 마음의 텅 빈 구멍은 커져만 갔다. 교회생활에 열심이지 않을 때는 편하게 살았는데 율법을 알면 알수록 더욱 죄에 대한 부담감도 커져갔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 채로 힘들게 살아갔다. 그러나 힘들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단번에 믿음이 없다고 정죄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믿음이 약한 이유라고 치부하고 더욱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열심에 열심을 내었다. 그러나 열심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음을 알아가면서 방황하는 생각도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심하는 것은 죄라는 부흥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조차도 두려워 방황의 싹을 마음에서부터 잘라버리기 위하여 몸부림쳤다. 그러니 결국 예배당에 가서 우는 것이 일과가 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나날을 예배당에 가서 우는 것으로 보냈다.

   필자는 이와 같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우는 자들의 이유와 그 처방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죄 때문에 우는 자들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한국의 교회가 그렇게 가르쳐 왔다. 부흥회 때마다 죄를 지적하고 말씀과 다른 생활의 위선적인 삶을 지적하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들의 심령을 일시적으로 흥분시켜 기쁨을 누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열광하게 하며 기뻐하게 하여 그들로 아낌없이 헌금하게 하고 충성을 서약하게 한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기쁨이 사라지고 공허한 그 무엇이 마음을 짓누른다. 왜 부흥회 때는 믿음이 살아나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쁨이 없어지는가? 왜 믿음이 사라지는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필자는 새벽기도를 하였는데 그 이유는 부흥강사님이 새벽기도 할 사람 일어나라고하여 흥분된 상태에서 일어났다가 그 이후로 한동안 새벽마다 에배당에 가서 울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주님 앞에 나와 눈물로 회개하는 것이 대단한 신앙의 표본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을 곧잘 인용하여 울게 하는 것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의 말씀은 내면적으로 간절히 기도하라는 주님의 권면이지 외형적으로 울부짖으라는 말씀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솔직하게 한국의 교회 지도자들이 회개하여야 할 부분 중 하나는 감정을 자극하여 분위기에 편승하여 부흥을 도모한 것이다. 신앙은 감정 자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지한 진리 탐구를 통하여 진리를 깨닫고 내적인 변화를 입어 주님을 인격적으로 섬기고 따라가는 인격적인 삶의 변화이다. 이와 같은 인격적인 변화를 경험한 거듭남의 신앙생활 속에서 때로는 주님 앞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기뻐 뛰기도 하는 것이다.

   부흥회 때마다 눈이 퉁퉁 붓게 울고 통곡하며 부르짖어, 쉬어버린 목소리로 "은혜 많이 받았습니까" 하는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성령 충만으로 비쳐지는 현실은 슬픈 것이다. 새벽마다 물 떠놓고 빌던 우리의 선조들은 새벽마다 하나님께 공들이러 가는 새벽기도에 쉽게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한 많고 눈물 많은 민족이라 슬프고 비통한 일을 너무 많이 겪어 울부짖는데도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여 보라. 강단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수많은 죄를 샅샅이 지적하며 질책하여 가는데 울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새벽마다 모여서 울고 통곡하는 나라는 우리뿐임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잘 풀어 일러서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양심에 스며들게 하여 진정한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인격적인 변화를 입어 주님을 사랑하되 소리 없이 사랑하게 해야 한다.

   둘째로 오늘의 기독교인들을 울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은혜의 종교인데 율법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가르치므로 자신의 모습이 율법의 높은 수준 앞에서 너무 초라하므로 낙심과 절망만이 엄습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고통스러움을 상담하면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니 이기라고,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지만 그러나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생각하여 보라. 똑같은 실수를 수없이 반복하는데 얼마나 낙심이 되겠는가.

    세월이 지나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온다. 그냥 포기하고 죄를 합리화하면서 적응해 나가든지 아니면 신앙을 포기 하든지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합리화하면서 자주 자주 주님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한탄하며 회개하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면서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스스로를 위로한다. 또한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하여 하나님이 잘 봐줄 것으로 착각하면서 종교생활을 유지하여 나간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존경을 받는다. 그 중에는 목사님도 있다. 또한 교회에서 직분도 받았고 선행도 한다. 이와 같은 외적인 요인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 외에 경건한 모습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새벽기도에 눈물로 기도하니 이보다 더 잘 포장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경건한 종교인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속에는 시체가 썩어가고 있는 회칠한 무덤이다. 자신의 양심으로 볼 때 자신의 속에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진동하는데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그것도 세월이 지나가면서 점점 무디어져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포기하기에 이른다. 신앙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성경지식이 점점 늘어가면서 아는 성경을 자신에게 합당하게 해석하여 그와 같은 현상이 정상이라고 강변하는 데까지 간다.

   필자는 어느 날 어떤 집사님을 만나서 "날마다 같은 죄를 지으며 계속 울고불고 하며 회개만하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까?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참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항변하기를 "겸손한 신앙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깨달아 겸손히 회개하면서 기도하는데 어찌 함부로 말하느냐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 정말 그러한가? 그들이 겸손하여 울며 기도하는 것인가? 오히려 자신의 못난 모습과 위선적인 모습을 발견하여 통곡하는 것 아닌가?

    혹자는 말하리라. 성경 여러 군데서 죄를 뉘우치고 회개의 눈물로 주님 앞에 나올 것을 외치고 있다고! 그러나 밝히 알아야 할 것은 불신자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올 때 눈물로 돌아옴이 합당하며 그 후 구원받게 되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 속에서 오순도순 대화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신앙생활의 진면목이다.

   세 번째로 우는 신앙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시원하게 죄용서 받지 못한 까닭이다. 십자가의 도의 본질은 무엇인가? 평생을 따라다니다가 지옥까지 따라와서 괴롭히는 죄, 아무리 몸부림쳐도 떨쳐버릴 수 없는 죄,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에서의 해방이 아니던가. 죄로부터 오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 원망과 시비, 분쟁과 비방과 그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문제들, 죄가 주는 낙심과 열등의식과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가 삶의 태반을 장식하는데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다(요한복음 8:32). 또한 사도 바울은 이 진리의 말씀을 더 확실하게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 :1,2).

   이 얼마나 놀랍고 힘찬 선언인가! 우리가 죄에서 영원히 해방되었다는 말씀이다. 일시적이거나 한시적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고 영원히 해방되었다는 선언이다. 이런 사람에게 어찌 통곡이 있겠는가! 이런 사람에게 눈물이 있다면 다음의 눈물일 것이다.

   첫째는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눈물흘림이 마땅할 것이다. 찬송가에도 그와 같은 눈물을 노래한 내용이 있다. 찬송가 141장 1절과 4,5절을 옮겨본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뵈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는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찬송인가. 십자가의 참 도를 깨달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찬송의 의미를 알 것이다. 슬프게도 오늘의 수많은 기독종교인들이 이 찬송의 참된 의미도 모른 채 종교적인 행사로 이와 같은 찬송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핍박을 받아 죽어 가면서도 기쁘게 부르면서 죽어간 찬송가의 내용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 내용은 요한계시록 1장 5절 후반부에 나온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필자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이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죄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죽음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를 입고도 육신이 연약하여 주님을 잘 따르지 못하고 죄 가운데 빠질 때 죄송하고 낙심이 되지만 그러나 오히려 나의 연약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가 더욱 커 보여 감사하고 죄송하여 뉘우치는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어떠한가? 진정 이와 같은 고백이 있는가? 죄에서 해방 받은 확신이 있는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죄는 공포의 문제가 아니다. 로마서에서도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로마서 6:14) 하지 아니하였는가. 죄를 용서 받은 자의 기쁨이 충만한 만큼 상대적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고뇌도 큰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한국의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이 이 문제에 걸려 있다. 죄 문제를 분명하게 해결 받지 못하니 천국의 소망이 분명치 않고 믿음의 뿌리가 분명치 못한 사람이 기쁨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신앙은 근본적인 문제가 중요하다. 죄 문제를 분명하게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이 천국에 가는 일은 결단코 없다. 그들이 목사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며, 장로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교회에 충성을 다한 열심 집사라 할지라도, 선교사로 나가서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였다 할지라도 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심각하게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혹 기독교 지도자들이 있다면 더욱 신중하게 자신의 문제를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인도하고 있는 기독인들이 예배당에 나가서 울며 기도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주기 바란다. 성경을 통해서 말하고 싶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보면 "영원한 속죄"에 대하여 나온다.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죄,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이미 해결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이 나의 문제 해결로 깨달아진 사람은 신분상으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며, 이제는 아들의 자격으로 살면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는 죄가 있을지라도 죄를 자복하는 삶을 통하여 부자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신앙생활만 남은 것이다. 이는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서 용서해달라고 울 필요가 없이 오히려 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용서하신 주님을 찬송하며 살아가는 감사의 생활이 있을 뿐이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니라" (히브리서 9;12).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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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본을 따라 교회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알려진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은 누구이며 어떤 교단에 속해 있습니까?

 

   여기에 있는 질문사항들은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초대교회의 본을 따라 성경적으로 경건하게 모이는 소위 플리머스 형제교회(Plymouth Brethren)의 형제들이 가장 흔히 받아보는 질문사항들로, 이에대한 질문자들의 이해를 도울 목적으로 요약, 설명한 것입니다.

   이 질문 사항에 대해 설명을 드리기에 앞서 어떤 특정한 한 지역교회나 어떤 특정한 한 개인의 견해를 대표하는 어떠한 권한도 어느 경우에도 위임받은 바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소위 플리머스 형제교회의 모든 교회는 각각 독립적이고 자치적입니다. 그 특성에 따라 여기에 있는 거의 모든 질문들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여기에서는 주로 미국과 영국의 교회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 속해 있는  각각의 플리머스 형제교회의 지역교회 견해의 편차는 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플리머스 형제교회들은 기독교 교회사와 기독교 교리사에 있어 오늘날 정통 기독교 교리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기독교 종교개혁을 완성했다고까지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19세기 형제교회운동(일명 19세기 신약교회운동)으로 말미암아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이 전통적으로 지향하는 신앙의 목표들과 내외부로부터 오는 많은 관심과 문의에 대한 이해를 도울 목적으로 기술하였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있을 수 있는 오류를 바로잡아 주시는 분의 권면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수용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건설적인 제의와 제안을 부탁드립니다.

 

   1.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은 누구이며 어떤 교단에 속해 있느냐? 하는 이 질문사항과 그에 대한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런데 왜 플리머스 형제교회에 속한 성도들 여러분은 파명으로서 일반적으로 불려지는 플리머스 형제교회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즐겨하지 않습니까?

   3. 플리머스 형제교회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까?

   4. 플리머스 형제교회의 주일 집회와 주일만찬예배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합니까?

   5. 플리머스 형제교회의 성경의 중요한 교리에 대한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이상 지난호까지 1-5번 질문에 이어집니다.

 

    6.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을 완성된 종교개혁운동으로 이끌어낸 19세기의 플리머스 형제교회운동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도 거의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특히 19세기 초엽 영국의 기성 교회는 침체해 있었습니다. 오순절 이후 처음으로 형성된 1세기의 초대 교회에서 시작된 신약교회 그 원래의 모습에서 너무나 멀리 나가 있었고 이로 인하여 많은 성도들은 국교를 떠나 따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교회사는 끊임없는 개혁의 역사인데, 특히 16세기 이래 루터, 칼빈, 쯔빙글리등을 통한 개혁운동, 모라비안 형제들을 통한 경건운동, 웨슬레, 휫필드 등을 통한 부흥운동 그리고 이와 유사한 개혁과 부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시 냉랭한 형식주의로 전락해 갔습니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은 소총의 총신 내부에 강선을 만들어 넣어 사격의 정확도를 크게 높였고, 화포에 기동성을 부과하여 집중 배치를 통한 화력의 극대화를 꾀하여 나폴레옹 전쟁(1800-1814)을 일으켰습니다. 엄청난 포화 가운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군인들의 대량 살상을 경험하게 된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성경의 예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계시록의 사건이 인류 역사가운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에 성경의 예언을 풍유적(비유적) 해석과 영적인 해석에만 의존하는 종말론적 해석체계로 분별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이후, 계시록의 사건들을 인류의 미래에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보게 됨으로써, 그 모든 미래의 사건을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주님의 오심이 가깝다는 진리가 새롭게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세계 제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나아가 더 강력한 수소폭탄까지 개발이 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계시록의 사건을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문자적으로 계시해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종말론의 해석체계가 기독교 정통교리 안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을 만큼 더욱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고학적 발견은 고등비평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켜나갔습니다. 곧 모든 영적 분별에서 성경은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17세기 30년 전쟁 이후 독일에서 경건주의와 모라비안운동으로 시작된 영적각성운동은 18세기에 이르러 영국과 미국 두 대륙에서 크게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1726년부터 독립선언을 하였던 1776년까지 50년의 세월 동안에 '제 1차 대각성운동'(The First Great Awakening)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대각성운동과는 달리 영국의 18세기 부흥운동은 '복음주의 각성운동' (Evangelical Awakening)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18세기 영국에 만연하던 인본주의적인 종교사상인 *이신론, Deism)에 대항하여 성경적인 복음주의 운동이 크게 부흥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신론,Deismus, deism)- 16세기 중엽 무렵 프랑스에서 생겨나 17,18세기에 널리 알려진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고, 거기서 보이는 기적이나 부활, 재림 등 모든 비합리적인 기술을 부정함으로써 이성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신앙만을 신앙으로 수용함으로써 신앙의 이성화를 시도하는 전통적인 계시신앙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성에 기초한 신앙을 계시신앙보다 우선시한다.)

 

   이와 같이 17세기 독일의 국가교회였던 "루터교"는 30년 전쟁 후에 로마 카톨릭과 공존하는 체제로 들어가면서 기득권에 안주함으로써 더 이상의 개혁의지를 상실하고 로마카톨릭의 잘못된 전통마저도 그대로 답습하는 허명뿐인 죽은 정통주의를 고수하였습니다. 이에 대항하여 영적 저항운동의 성격을 띤 경건주의가 나타났고 이에 영향을 받아서, 18세기의 모라비안 형제들(Moravian brethren)의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영국에서 요한 웨슬레(John Wesley)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가 이끄는 복음주의자들에 의한 영적각성운동으로 '복음주의 각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따라 19세기 영국에서는 3대 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선교열의 고조, 성경의 대대적 보급, 그리고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총체적인 종교개혁운동으로서 성경의 바른 교리, 바른 실행, 바른 분별, 올바른 거부 등의 완성된 종교개혁인 '플리머스 형제교회운동' (Plymouth Brethren Movement)의 시작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4 세기에 그리스도인의 교회를 교리적으로 완전한 암흑시대로 밀어 넣는데 크게 도움을 준 콘스탄티누스 대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즉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상과, 모든 성경의 핵심 진리들을 억제, 억압, 은폐 하는  일과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성경에 대한 문맹자로 만들어버린 일이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시대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안 되는 일이지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고 믿음을 고백하는 일이 그때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지되었습니다. 공인된 로마 카톨릭 교회 아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성경과 성경의 진리들이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이래 개신교의 종교개혁운동에 나타나기 시작한 성경의 진리에 더하여, 성경적으로 바른 교리, 바른 실행, 바른 분별, 바른 거부라는 면에 있어서 훨씬 더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진리를 발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실천을 강조하는 성경의 실행원리와 함께, 19세기 플리머스 형제교회 운동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세상에 성경의 진리가 올바르게 공개되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플리머스 형제교회 운동이전에 루터, 칼빈, 그리고 다른 종교개혁다들은 모두가 개혁자로 돌아서기 이전에는 로마 카톨릭교회 소속의 신부들이었기 때문에 개혁자로 돌아선 이후에도 로마 카톨릭교회가 가지고 있던 많은 잘못된 교리들과 많은 잘못된 실행원리들을 버리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따르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사실상 루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이해의 성숙한 수준에까지는 그 당시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그 이후에도 수세기기 지나기 까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성숙한 수준에까지는 도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만인제사장제를 성경에서 발견하는 개혁 수준에까지 이르렀지만  어떻게 실행하여야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였거나 실행에 옮겨보지도 못하였습니다. 바로 이점이 진리의 발견만으로는 완성된 개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경을 성숙한 수준에까지 이해하는 일을 위해서는 사실상 또 한 번의 종교개혁이 필요했고, 여기에 부응한 종교개혁으로서 완성된 종교개혁이 필요했고, 여기에 부응한 종교개혁으로서 완성된 종교개혁이 바로 플리머스 형제교회운동의 등장과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1825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성경 안에서 초대교회의 원형을 재발견하였으며, 이들은 성경을 상고하면 상고할수록 당시의 지금의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형식과 전통에 얽매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시작된 초대교회에서 성령침례로 말미암아 거듭난 모든 믿는 자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순하게 모이는 원래의 모습에서도 너무 동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27년 근세기의 신약운동(플리머스 형제교회운동)으로 알려진 이 플리머스 형제들의 모임은 7명의 신앙동지들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영국 국교를 떠나 교파를 초월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true believers)을 서로 영접해가며 한몸으로 모였던 것입니다. 7명의 이름은 치과 의사인 안토니 그로우브스, 변호사인 벨레트, 에드워드 크로닌, 허치슨, 파아넬경,스토우크스,성공회의 목사였던 존 다비(John Nelson Darby)였습니다.

  

   1930년부터 영국의 잉글랜드 플리머스에서부터 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빠르게 전 세계로 확장되어 졌습니다. 이 운동은 아일랜드를 비롯해 영국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중국, 인도 아라비아 등 세계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를 본으로 삼는 신약교회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 19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플리머스에서 이 운동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이를 가리켜 플리머스 형제교회(Plymouth Brethren), 기독교 형제교회(Christian Brethren), 형제교회(Brethren), 다비파 형제교회(Darbyites Brethren), 등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을 가리켜 후세에 역사가들은 신약교회 운동이라 하고 이 운동의 중심에 소위 플리머스 형제교회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19세기의 신약교회운동을 다른 이름으로 플리머스 형제교회 운동(Plymouth Brethren Movement)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에 의하여 성경에서 재발견된 초대교회를 모본으로 하여 신약교회의 원형이 회복되었고, 신약교회의 진리와 실행원리들이 재발견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실천함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생명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회복되었고, 성도의 양육을 위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의 진리의 말씀이 가르쳐지는 일이 회복되었고, 이를 위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신약교회가 심어지는 일이 회복되었고, 지역교회를 섬기는 데에는 모든 성도는 자유롭게 제사장일을 하는 만인제사장제를 실행하여 실천에 옮기는 일이 회복되었으며, 또한 모든 성도가 제사장의 신분으로 매주일 떡을 떼는일이 회복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일에 힘쓰는 일이 회복되고, 주의 보혈로 한 형제 된 은혜에 대한 감사로부터 넘치는 형제사랑을 나타내는 일이 회복되고,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신약교회의 유일한 참 소망이 회복되어, 이와 같은 총체적인 종교개혁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신약교회 회복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생명 있는 진리의 말씀이 회복됨으로써 말씀의 권위가 최고로 회복되었고, 생명 있는 복음이 회복됨으로써 생명 중심의 구원의 복음의 열정이 회복되었으며, 생명 중심의 구원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선교열기가 고조되었습니다. 또한 생명 있는 교회가 회복됨으로써 생명 중심의 진리의 말씀에 따른 신약교회의 진리들이 회복되었고, 생명중심의  진리의 말씀에 따른 신약교회의 정체성이 회복되었으며, 생명의 진리의 말씀과 생명의 구원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고, 성도의 구별된 삶이 회복되었고, 모든 믿는 자의 제사장의 지위가 회복되었고, 생명 있는 예배가 회복됨으로써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모든 교회 안에서  완전히 회복되었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도들이 그 몸이 되는 영광스러운 신약교회가 심어지고 땅 끝까지 심어지고 확장되게 되는 일이  전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신약교회 회복 운동은 교리적으로는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곧 신약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1 오직 성경으로 2 오직 믿음으로 3오직 은혜로 4 오직 그리스도로 5 오직 교회 중심으로, 하나님의 비밀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하나님의 충만하신것으로 충만케 하여,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영광스러운 신약교회의 모범을 실제 신앙생활  가운데서 보여주고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복스러운 소망가운데 거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신약교회 운동은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로 하여금 독특하리만큼 성경적으로 경건한 모범을 보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서 경건한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독보적이라는 말을 듣게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동의 독특한 의의에 대하여는 기독교계에서도 이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회복을 추구하는 많은 경건한 복음적인 기독교인들이 그 의의를 잘 알려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형제들 내부에 있는 플리머스형제들 자신들도 왜 자신들이 플리머스 형제교회 운동이 그와 같은 놀라운 인정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더 잘 알도록 하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기독교는 교회 역사 가운데서 많은 종교개혁을 보아왔습니다. 그 많은 종교개혁 중에서도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이 이룩한 총체적 종교개혁이야말로 그 전에 있었던 어떤 종교개혁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이 결과를 모든 기독교 교단에 성경의 올바른 교리와 성경의 올바른 실행과 성경의 올바른 강조와 비성경적인 것에 대한 거부 및 초대 교회의 원형을 회복한 일등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은, 형제들 자신들은 교단이라는 명칭이 비성경적이라고 하여 사용하기를 꺼려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가 교파의 명칭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소통의 편의를 위하여 형제들 모임을 하나의 교단형태로 표현하면, 그 특징상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의 모임으로 된 교회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도의 수가 적은 교단이고, 형제교회 형제들 전체는 보수적인 교단이며- 형제들 안에서는 개방적인 플리머스 형제교회로 알려진 형제들도 기독교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볼 때는 보수적인 교단이며-성경의 권위를 최고로 하여 믿는 교단입니다. 특히 성경강해에 있어서 또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성경적인 신앙생활의 원리를 성경적으로 실천하는 일에 모범을 보인 일에 있어서, 전 세계 기독교계에 독보적이면서도 크고 충격적인 족적을 남긴 교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교회 사가들은 이 플리머스 형제교회 교단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적은 수의 교회들을 비교해 생각해 본다면,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고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16세기 이래 미완성의 종교개혁을 총체적인 종교개혁으로 완성된 종교개혁으로 이끌어낸 1800년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플리머스 형제교회 운동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16세기와 그 후의 모든 종교개혁보다도 한 차원 위의 종교개혁 운동이었다고 교회 사가들은 말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진리만을 완전한 진리로 재발견하였고 이 진리를 다시 새롭게 하기 위하여 기독교로 하여금 성경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일에 있어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이 운동은 올바른 성경의 교리를 찾아내고, 올바른 성경의 강조점을 바르게 분별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성경의 실행원리는 신앙생활에서 실제로 실행, 실천하고, 나아가 성경의 교리, 성경의 강조, 그리고 성경의 실행에 있어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것과 올바르지 않은 비 성경적인 모든 것은 거부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종교개혁운동이었습니다. 이운동은 당시까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기독교 교회 안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면서 잘 못 적용된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종교개혁운동입니다.

 

   이와 같은 신약교회 운동의 확산에 힘입어 진리와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일에 시작된 인물들로는 성경학자로 근세의 터툴리안(Tertulianus)이라 불리는 존 다비(J. N. Darby), 고아원 설립자로 고아의 대부이자 일생을 통해서 5만 번 기도응답으로 믿음의 기도를 회복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초기 플리머스 형제교회 지도적인 인물 조지 뮬러(George Mueller), 사랑의 사도 R. C. 채프만(R.C. Chapman), 모세오경을 주해한 강해자 C. H.매킨토쉬(C.H. Mackintosh),  트리니티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수많은 주해를 썼고 다비의 저작 전집을 발행한 월리암 켈리(William Kelly), 다니엘서를 주해하여 예언의 기초를 확립시켰던 다니엘서의 주해자 로버트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 원어에 뛰어난 학자이자 저명한 본문 비평가인 S. P. 트레겔레스(S. P. Tregelles), 최초로 예언적 역사관의 관점에서 교회사를 쓴 앤드루 밀러(Andrew Miller), 주해 성경의 저자인 토마스 뉴베리(Thomas Newberry), 탁월한 성경교사요 저술가였던 에릭 사우어(Eric Sauer), 퀘이커 지도자였던 뉴톤(Benjamin Wills Newton), 여왕의 보좌관이었고 가장 방대하고 완벽한 신구약 성구사전을 출판한 조지 위그람(G. V. Wigram),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목사로 안수 받았고, 개신교계통에서 가장 탁월한 70인역 헬라어-영어구약성경번역학자 중의 한사람이었으며, "그리스도인 증인(Christian Witness)"이라는 정기 간행물을 발간한 란셀롯트 브랜톤 경(Sir Lancelot Brenton of Oriel), 영국 자유당 출신으로 수상을 네 번이나 역임한 윌리암 글래드스톤(William E. Gladstone) 등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역량을 갖춘 인물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셀 수 없이 많은 영적으로 뛰어난 형제들을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플리머스 형제교회운동에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복음으로 백만명을 감동시킨 미국의 복음 전도자 D. L. 무디, 무디를 복음으로 감동시켰던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놀라울 정도로 정열적으로 전했습니다. 안토니 그로우브스(Anthoy Noris Groves)는 인도에서 주님만 의지하고 선교했습니다. 프레드릭 아르놋(Frederick Stanley Arnot)은 리빙스턴을 이어 아프리카에서 초교파적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수많은 찬송가의 저자인 J. G. 데크(J.G. Deck )는 캠브리지 7인 등 대학생들의 회심과 해외 선교 운동에 크고 놀라운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구원의 안전, 확신, 기쁨"의 자자로 잘 알려진 조지 커팅( George Cutting),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 숫자를 통해본 성경(Numerical Bible)의 저자인 F. W. 그랜트(F.W. Grant), 미국 무디성경학교 설립자 D.L. 무디(D.L. Moody)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경학자인 F. F. 브루스(F.F. Bruce). 미국에서 방송설교자로 유명한 M. R. 디한(M. R. Dehaan)등 이밖에도 1000여명의 기독교계 석학과 지도자들을 배출하였으며, 그들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경에서 보여준 초대교회의 본을 따라 신앙 양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단순하게 모이는 신약교회 운동을 하면서 1000여명의 선교사를 세계각지에 파송하게 됨으로써 기독교계에 커다란 감동과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기독교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에 있어서는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피스(Thomas Griffith)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 진리를 가장 바르게 해석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으며, 학자요 저술가였던 아이언사이드(H.A. Ironside)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형제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으며, 무디(M.L. Moody)는 "전세계의 책이 다 타버릴지라도 나에게 한 권의 성경과 매킨토쉬의 모세오경 주해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스펄젼(C.H. Spurgeon)은 켈리에 대해 "그의 생각은 우주처럼 크다"고 말했으며, 판톤(D.M. Panton)은 "형제 운동의 영향력은 종교 개혁보다 훨씬 컸다"고 했습니다.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은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에 전력했으며(스 7:10), 세상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형제교회 'Brethren', 기독교 형제교회 '(Christian Brethren', 플리머스 형제교회 'Plymouth Brethren' 등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플리머스 형제교회 형제들 그들 스스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모두는 내주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이므로 서로 나뉠 수 없다고 믿음으로 어떤 종류의 교파의 파명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교파를 나누는 어떤 형태의 형식도 취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 모두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뛰어난 신분을 소유한자임을 알아,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에서 말하는 믿는자, 성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였고, 상호 부르는 호칭으로는 성경에서 '성도'라는 호칭 외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호칭으로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 형제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호칭인 '형제'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머리를 대신하는 어떤 계급적 호칭도 배격했습니다. 거룩해졌으니 성도로, 믿음을 가졌으니 신자로, 사랑을 인하여 형제로, 순종을 인하여 제자로, 경배를 인하여 제사장으로, 증거를 인하여 증인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했으니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했을 뿐입니다.

 

   현재 국내에는 1890년대부터 시작한 기독동신회를 포함하여 플리머스 형제교회에 속해 있는 교회가 전국적으로 300여개 세워졌고, 14개국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세계선교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 한인지역교회들이 개척 되었으며, 이들과 같은 믿음을 따라 모이는 영국,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싱가폴, 말레이시아, 대만, 일본 등 전 세계 플리머스 형제교회 모임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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