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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20 주님 위해 핍박받는 사람들 - 6 승리하는 지하교회(1)

           주님 위해 핍박받는 사람들

                                                                                       -리챠드 범블란트


                  6  승리하는 지하교회 (1)


   나는 우리가 어떻게 비밀리에 복음을 소련 군대와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에게 전했는가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또 여러분에게 공산주의자들과 공산 통치하에 억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적극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나의 도전이 현실에 어긋나거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입니까?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 안에 지금도 지하교회가 존재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우리는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지난 반세기의 혁명이 마치 승리한 것처럼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는 공산주의를 이겼습니다. 소련의 신문에는 지하교회에 관한 소식들을 많이 기재했습니다. 지하교회는 점점 성장하고 세력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어 공개적인 활동으로 넘어가 공산주의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여러 방면의 다른 소식들을 종합하여 소련의 보도가 진짜라는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지하교회는 대부분이 빙산처럼 감추어져 있고 아주 적은 부분만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아래의 글들은 지하교회에 관한 중요한 소식들입니다.


   빙산의 일각


   1966년 11월 7일 소련 수후미에 있는 지하교회는 공개적인 집회를 가졌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도시에서 온 수많은 성도들이 참가했습니다. 집회 후 47명의 청년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흑해 해변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때의 광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로 사도시대를 연상케 했습니다.

   비록 신학자가 아니었지만 초대교회 당시 집사였던 빌립이 에디오피아 왕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내시는 "지금 바로 여기에 물이 있는데 그 누가 내가 침례 받는 것을 가로막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빌립은 "당신이 진심으로 믿는다면 침례를 줄 수 있습니다."하며 즉시 물에 들어가 그 내시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행 8:36-38).


   1966년 8월 23일의 "교사잡지"가 실은 소식에 의하면 돈강 유역의 로스토프 시에서 성도들이 공산당이 임명한 소위 "교회 지도자"들의 집회를 반대하여 거리에서 시위를 벌렸습니다.


   지하교회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새인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셨던 것처럼 국제 노동절을 계기로 정부의 독재 정권을 반대하여 나섰습니다. 5월 1일은 공산국가에 있어서 큰 명절이었습니다. 때문에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경축행사에 강제로 참가해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1,500명의 소련 그리스도인들은 공개적으로 용감하게 거리에 나섰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유를 박탈당하고 굶주림과 고문이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소련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르나울 시의 복음 전도협회 성도들이 발행하는 '비밀선포"라는 책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시베리아의 우마라 자매가 당한 비참한 사실을 실었습니다. 이 자매의 남편은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다가 4명의 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자매가 남편의 시체를 받았을때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두 손목에 남은 족쇄의 흔적, 손과 발에 남은 불로 지진 상처, 복부의 칼자국,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퉁퉁 부어있는 시체만 보고라도 공산당의 악독스러운 고문이 사람을 어떤 지경까지 만드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형제는 결국 주님을 믿은 지 3개월 만에 주님의 일에 자신의 귀중한 생명까지도 서슴없이 바쳤습니다. 장례식에는 많은 성도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들은 "나는 살아도 죽어도 주님의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무서워 마십시오"라는 힘찬 구호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날 로스토프 시의 시위에 참가한 성도들은 자기들도 희생된 그 형제와 같은 불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누구도 물로서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 바친 성도들을 생각할 때 그들이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시위에 참가한 성도들은 어느 한 작은 집을 에워싸고 집회를 가졌습니다.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붐볐고 근처의 지붕과 나무에 올라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삭개오가 주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가 앉듯이 말입니다.

   집회 후 80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다수가 젊은이들이며 그중 23명은 사회주의 청년동맹 열성원들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중심거리를 지나 침례식이 진행될 돈강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을 실은 장갑차들이 들이닥쳐 강가를 포위하고 교회 인도자들을 잡아가려고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1,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곧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켜주시고 집회가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성도들은 경찰들이 인도자들을 잡아가지 못하게 서로 어깨를 걸고 에워싸았습니다. 당시 상황은 매우 긴장되었습니다.


   "교사잡지"는 또한 로스토프 시의 기독교인들이 지하 인쇄소를 가지고 있다는 글을 실었습니다.

    성도들은 책이나 잡지를 통하여 청년들에게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를 끝까지 버리지 말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중 한 문장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장레식에 참가할 때 자녀들을 데려가 그들로 하여금 인생은 단지 일시적인 것이므로 염려할 것이란 하나도 없다고 가르쳐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나도 이말에 찬성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성경의 진리로 자녀들을 가르쳐 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무신론 사상에 물들지 말도록 해야 한다고 간절히 부탁햇습니다.

   끝으로 "교사잡지"는 "왜 교원들은 학생들의 가정을 간섭하기를 무서워하여 학생들이 종교사상에 물들게 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어떤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은 비밀리에 침례를 주다가 경찰에게 잡히는 때가 많았습니다. "교사잡지"는 그들이 재판소에서 판결을 받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젊은 성도들이 증인으로 재판에 참가하였는데 이들은 재판관을 무시하고 완강한 태도로 그들과 맞섰다. 관중석의 어떤 젊은 여성은 피고를 대견스러운 눈길로 보면서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쏘아보는 정도이다."


   지하교회 성도들은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에서 종교의 자유를 실시할 것을 청원하여 나섰습니다.

   소련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침례회 동맹"은 변절자 까레프가 우두머리로 있습니다. 그는 "오늘의 소련 생활"(1963년 제6기)이라는 잡지에서 정부가 그리스도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것을 찬양했으며 소련의 "자유"에 대하여 거짓 선전을 했습니다.

   소련의 비밀 침례교회는 "침례회 동맹"을 반대하는 조직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조직에서 비밀 통로를 통해 얻어낸 문건이 있습니다. 이 문건에는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대담한 공개 활동을 실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이 내용을 실어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긴급통지서 ;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긴히 알려줄 소식은 5백명의 대표들이 1966년 5월 16일 모스크바에 있는 당중앙위원회 청사 앞에서 소련 공산당 총비서 브레즈네프에게 쓴 청원서를 받아줄 것을 강요했습니다."


   이 통지서에서는 500명의 성도들이 온종일 청사 앞에 서서 물러 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첫 반공시위 투쟁이었습니다. 저녁 무렵 성도들은 스뜨로가노프라는 "동지"가 청원서를 브레즈네프에게 전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성도들에게 위협까지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두 번째 청원서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화물 자동차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청사앞에서 밤을 지새는 500명의 성도들에게 오물과 흙을 마구 퍼부으며 모욕했습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위협은 더욱 심해졌지만 성도들은 물러서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이튿날 정부는 직위가 낮은 간부등을 만나게 하겠다는 제의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전에도 정부 인사들을 만나러 들어갈 때면 증인이 없다는 구실로 먼저 몰매를 당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일제히 거절하고 브레즈네프가 나와 자기들을 만나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건은 끝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오후 1시 45분, 28대의 군용차들이 들이닥쳐 성도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성도들은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운 때는

   십자가를 지는 그때이다."

   경찰들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끌어내어 얼굴이며 머리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짓밟았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또 어떤 성도들은 경찰에게 머리카락을 잡힌 채로 질질 끌려갔습니다.

   성도들을 가득 실은 자동차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차안에서도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당시 거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잡혀간 성도들이 고문을 당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후에 사람들을 더욱 감동시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500명 모두 체포되고 고문을 당한 후 빈스,호레프 형제는 용기를 내어 당 중앙위원회를 찾아가 붙잡힌 성도들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잡혀간 후 바로 그 지역에서 "하늘 나라가 가까웠다. 회개하라!"고 사람들에게 전도하셨던 그때를 연상케 했습니다. 결국 두 형제도 곧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들은 지금 레프토로브스까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합니다.

   비록 공산당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썼지만 지하교회의 성도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성도들은 곧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의 경위를 인쇄하여 성도들에게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분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위해 고난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빌 1:29).

   "박해 가운데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살전 3:3).

   그리고 히브리서 12장 2절을 인용하여 성도들을 고무,격려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과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으며 지금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지하교회는 로스토프와 모스크바 등 전국 각지에서 무신론이 청년들에게 주는 해독성과, 양의 가죽을 쓰고 정부교회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자들을 반대하여 공개적인 투쟁을 벌였습니다.

   지하교회가 작성한 비밀통지에는 이런 글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단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자기의 지시를 받는 교회를 세울 정도까지 미쳐 날뛰고 있다"(1966년 10월 4일 프라우다 우크라이나 신문에 기재).


   보스토까 프라우다 신문은, 아메리카의 복음 방송을 녹음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준 것이 죄가 되어 알렉쎄이,네베로프,보리스 가마쇼프,아쎈쥬보프 형제들이 재판을 받은 소식을 실었습니다. 3명의 형제들의 또 다른 죄명은 "들놀이", "예술토론회"를 조직한다는 구실 아래 복음 전도집회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지하교회는 로마제국 시대의 카타콤의 성도들처럼 주님의 사업을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썼던 것입니다.

   1966년 9월 15일 몰다비아 쏘베르 일보는 지하교회들이 작은 복음지를 인쇄하여 "불법"적으로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전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신문은 레니에서 키씨나우로 가는 열차에서 3명의 형제들과 4명의 자매들이 "우리의 청춘을 주님께 바치세!"라는 찬송을 불렀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를 실은 신문기자가 말하기를 자기가 아주 놀란 것은 거리나 정거장이나 열차에서나 버스에서, 심지어는 국립학교 그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목음 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는 소련의 지하교호의 활동이 얼마나 활발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찬송을 불러 유죄판결을 받은 몇 명의 성도들은 재판이 끝난 후 곧 무릎 꿇고 이렇게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님의 손에 의탁합니다. 또 주님을 위하여 고난 받을 수 있는 것을 매우 기쁘게 여깁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성도들과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5월 1일 에배당이 없는 코프섹 마을과 자하로브까 마을의 성도들은 숲속에서 비밀리에 집회를 가졌습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생일 연회를 차린다는 구실로 복음집회를 가지곤 합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 가정들에는 4,5명의 식구 밖에 없지만 이런 생일을 한해에 35번씩이나 갖곤 합니다.


   그 어느 감옥이나 무서운 고문도 우리 지하교회 성도들의 영웅적 기개는 꺾지 못합니다. 마치 초대교회와 같이 핍박이 심하면 심할 수록 점점 성장하고 성도들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1966년 10월 4일 우크라이나 프라우다 신문은 소련 지하교회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프로코피에프 형제에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세 번이나 갇혔지만 석방되자 일요일 비밀집회를 지도하다 다시 잡혀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한편의 비밀성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정부교회는 인간이 만든 법률(즉 사회주의 법)에 순종하므로 우리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소련의 한 형제가 감옥에서 고문 받는다고 할 때, 그 감옥이 서방나라의 감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소련의 감옥은 굶주림, 무서운 고문과 세뇌의 대명사와도 같습니다.


   1066년 제 9기의 "과학과 종교" 잡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잡지의 표지로 위장하고 그 속에 복음전도지를 끼워 넣어 전도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눈으로 볼 때에는 그들이 주는 책이 레오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닌나"와 같은 책이지만 실제로 책속의 내용은 성경이었습니다. 또한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는 "국제적 공산주의"의 곡이지만 가사는 다 주님을 찬송하는 글이었습니다(1966년 6월 30일 카자흐스탄 프라우다 신문).


   시베리아에서 인쇄한 성도들의 비밀편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침례교회의 정부 측 지도자들은 이전의 제사장,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팔아먹은 것처럼 교회와 충실한 주님의 종들에게 큰 해를 가져다주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우리 지하교회 성도들은 계속 주님의 사업을 활발히 해나갈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을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사업에서 반드시 승리하고야 말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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