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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20 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제6과 나무위로 올라간 난쟁이

                               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 6 과

                                       본문 : 누가복음 19장 1-10절


                                      나무위로 올라간 난쟁이

                                (The Little man Who Was Up a Tree)


   예수께서 여리고를 통과하신다는 소식이 온 성내에 퍼졌을 때, 수많은 군중들이 그를 보기 위해 길가에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 군중들 가운데에는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며, 돈 많은 부자였으며, 나름대로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그 역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급히 길가로 달려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장소에 이르렀을 때, 이미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어 큰 혼잡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 보려고 애를 썼지만, 도저히 그 틈을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키가 매우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길거리 구경을 나왔다가 수 많은 어른들에게 가로막혀 그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것처럼 키 작은 한 남자가 군중들 뒤에서 갈팡질팡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만해도 웃음이 절로 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 삭개오는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과 유대관계가 별로 좋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 거렸습니다.

"유대인이 어떻게 우리를 압제하는 로마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가?" 이처럼 이웃과 사회로부터 소외 당하는 그는 매우 고독하였습니다. 당시 많은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보다 많이 거두어 그 일부 중 얼마를 착복하곤 했습니다. 삭개오도 이런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삭개오는 이제 예수님을 만나보기를 원하는 아주 강한 열망에 차 있었습니다. 근래에 어느 한 젊은 유대인 전도자가 나타나 각처에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며, 당시 일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진리를 전한다는 소식을 그도 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 사람을 몹시 시기하고 미워하며 적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그가 가는 곳마다 항상 그 주위로 모여들고 그를 따르며 환영한다는 사실도 들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단순한 호기심 이외에 내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심령의 갈급함에 목말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삭개오의 분명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은 것이 그에게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 나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그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는 그냥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곳 길가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섬광등처럼 놀라운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 주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적어도, 그는 세무장이라는 지방 유지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러한 자신의 체면을 생각할 만도 했습니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세무장이 나무위로 기어 올라가다니!"


   체면을 대던져 버려라 (Forgetting Your Image)


   그러나 일생에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가 아닌가? 그는 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기회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예수께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계신다." 고 하는 군중들의 외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은 그에게 있어서 결단의 순간이었습니다. 더 이상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체면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지체할 수 없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빠르게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길가로 가장 가깝게 뻗어 있는 가지 위에 앉았습니다. 자신의 발밑으로 군중들의 머리가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휩싸이어 그 지점으로 점점 다가오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내려다 보고 있을 때, 그 앞을 지나시던 예수님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무 위를 쳐다보셨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삭개오야" 예수께서 분명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의 이름을 이미 아십니다.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 밤을 유하실 집은 오직 한 곳, 삭개오의 집뿐이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삭개오는 급히 뽕나무에서 재빠르게 내려와 자랑스럽게 주님을 안내하여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날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웃 사람들,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처럼 의롭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의 집을 지나쳐 세리와 같은 불의한 죄인의 집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향해 수군거리며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의 집으로 돌아 온 삭개오는 이제까지 자신이 재산을 다 불법적으로 모으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부당하게 취득한 것을 되돌려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께 두 가지를 약속하였습니다. 첫째로 자신의 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둘째로 자신이 누구에게든지 부당하게 취한 돈에 대해서 네 배를 되돌려 갚겠노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실제로, 율법은 그와 같은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율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삶의 원리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가 변화되어 참으로 믿는자가 된 것을 아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너도 너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나타내었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비난하던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주위의 장애물들 (Getting Around The Obstacles)


   이제 다음으로, 이 이야기 가운데서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진 몇 가지 귀중한 교훈들을 더 배우게 됩니다. 삭개오는 비록 세상 적으로는 부자였지만, 세상물질 보다 더 귀중한 것에 대한 궁핍과 갈급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세상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가난한 자는 하나님께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물질이 부족할 때 오히려 영적으로 부유해 질 수 있습니다. 특히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될 자들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위해 그에게로 다가가려 할 때 거기에는 장애물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를 막는 장애물은 군중들이었습니다. 때로는 교만이 그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에 대한 두려워하는 마음과 체면이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잠 29:25). 때로는 부(富)도 장애가 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좋아하는 죄의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장애물이 생길지라도, 참된 믿음은 예수께로 나아가는 사람을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의심에게는 장애물들만 보이지만, 믿음에게는 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 구주에 의해 결코 외면당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어느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와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 주께서 그를 아시며 그의 이름을 그의 생명책에 기록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큰 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그의 손을 들거나, 집회 중에 앞으로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마음속 중심으로 그 앞에 참되게 아뢴다면 주님은 그의 마음을 다 아시며, 그의 간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한 후, 그는 주님 앞에 그가 원하는 다른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기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지하려면

   반드시 그 앞에 고백해야만 하오.

   비록 자신이 티끌 같은 존재임을 알지라도

   만일 그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말씀드리시오,

   바로 지금,


   그가 했던 가장 현명했던 일 (The Smartest Thing He Ever Did)


   나무 위에 오른 것은 삭개오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의 선택은 그가 결코 바랄 수 없었던 놀라운 축복을 그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삭개오는 그날, 그의 집에 하나님의 아들을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성경의 일부로 기록되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21세기 이후의 우리 후세들에게까지 그의 이름이 전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삭개오는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으며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영적 축복을 얻게 됩니다.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하여 또한 우리가 얻게 되는 중요한 교훈은 어느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했던 일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만일 그가 지난 날 연장기구들을 훔친 일이 있다면, 반드시 이를 그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돈을 훔친 일이 있다면 그는 이를 갚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로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일을 실행하는 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약 7년 전, 내가 당신을 위해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의 도구들을 훔친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난달에 구원함을 받았고, 그 후로 주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것들을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물건들을 훔쳤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물론 실제적으로 우리가 과거 지난날을 바로 잡는 일은 항상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옛 주소를 잊었을 수도 있고 혹은 이미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하간에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라면 지난날의 그 잘못들을 바로 잡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삭개오는 죄인이었으며 그는 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려 하심입니다. 모든 인간은 실제로 본성적으로 죄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거절함(unwillingness)과 무관심이 구원의 문을 닫아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는 자들만이 구원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여리고 방문은 삭개오에게 있어서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선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이었고, 십자가를 향한 최후의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삭개오에게는 구주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만일 삭개오가 그 기회를 잃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제로,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마지막 기회를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초청을 받았을 때 그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미루고 지체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영접해야만 할 시간이며,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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