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경력을 내세우는 신자들


   "그 날에 많은 사람이...선지자 노릇하며...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태복음 7:22).


   천국에 들어가는데 경력은 필요 없다.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은 경력을 내세웠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하나님의 일꾼)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을 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면당했다. 그렇다. 천국에 들어가는 데는 어떤 경력도 소용없다. 오직 예수님 피로 거듭난 자만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올해로 거듭난 지 42년이다. 그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전도해보았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경우를 많이 만나보았는데 그 중에 경력을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면 "제가 교회를 40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또 묻기를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면, '제가 예배당을 2개나 지었습니다." 하였다. 필자는 끈질기게 물어보았다.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그는 "제가 10여 년 전부터 장로입니다" 하였다.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또 묻는 필자의 말에 그는 화를 버럭 내면서 "장로면 천국 가는 것이지 지옥에 가겠습니까?" 하고 내뱉었다. 그러면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물으니 "장로니까 천국에 가고 또 믿음으로 간다고 했으니까 내가 예수를 믿으니 천국에 가는 것 아닙니까." 하였다.

   이 장로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지옥에 간다. 왜냐하면 그는 화려한 경력으로 천국에 가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9)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그대는 장로인가, 집사인가. 성가대원인가.주일학교 교사인가. 목사인가? 존경받는 목사일지라도 예수님 피로 거듭난 사실이 없다면 틀림없이 지옥에 간다.

   오래 전 부흥회에서 부흥강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집사님이 천국에 갔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올 때마다 예수님이 자리를 권하고 앉아서 영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보통 성도나 집사님들이 올 때는 앉아서 영접하시던 예수님이 어떤 분이 오니까 문밖에까지 쫓아 나가서 영접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누군가 하고 자세히 보니 목사님이었다.

   약간 상한 마음으로 예수님에게 물어 보았다. "집사나 평신도가 올 때는 앉아서 영접하시더니 목사님이 오니까 문밖에까지 나가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차별 받았는데 여기서도 차별하십니까? 섭섭합니다."

   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애야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목사님이 많은데  이 곳에서 목사님을 만난 지가 오래되어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뛰어나갔단다."

   우스개 소리 같지만 이것은 현실일 수도 있다. 무슨 이야기인가? 천국에 가는 것은 목사라고 안심하고 있어도 안 되고, 장로라고 장담하고 있어도 안 되고, 집사라고 집사의 직책에 집착하고 있어도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큰 교회 다니거나 유명한 교파에 다니거나 교회의 직책을 맡았으니 천국에 가겠거니 하고 마음 놓고 있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갈 줄 알았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날 그 충격은 어떠하겠는가! 더구나 그 지옥에서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자기가 의지했던 유명한 교파, 훌륭한 직책, 능력있는 목사, 수십년을 섬긴 경력, 수많은 물질을 드린 봉사, 고난을 이기면서 힘들게 살아 온 신앙의 자랑,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지치도록 섬긴 희생, 피곤한 가운데서도 수십 년을 빠지지 않고 나간 새벽기도, 믿음으로 기도하고 담대히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수많은 간증, 기도 응답, 병 고침,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목사님에게 들었던 그 많은 칭찬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어찌할 것인가! 거짓 목사에 대한 울분과, 큰 예배당으로 포장하여 자기 영혼을 노략질한 사단에 대한 미움과, 무엇보다도 생명의 문제를 점검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목사님 말만 맹종했던 멍청한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고통할 것이다. 그 분노와 그 괴로움과 슬픔과 원통한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적고 있다.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복음 13:42).

   이 얼마나 확실한 표현인가. 그들은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거짓 목사에 대해 이를  갈 것이다. 그들은 훌륭한 하나님의 종인 것 같았지만 잘 포장된 가짜였다. 주의 종에게 복종하라고 해서 무작정 복종했는데 알고 보니 거짓 목사였다.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삯군 목자였던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참 목자를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대가 거듭나 보라. 구원을 받아 보라. 즉 영의 눈을 떠보라. 당장에 구분할 수 있다.

   거듭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성경에서는 여러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에 소경이 눈을 뜨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그대가 눈을 뜨는 것이다. 눈을 뜨면 보인다. 모든 것이 보인다. 눈을 뜨지 않고 손으로 만져 보라. 무엇을 구분할 수 있는가? 그대가 지금 직접 실험해 보라. 눈을 감고 손으로 더듬어 보라. 구별할 수 있는가?

   어떤 집사님은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직장 관계상 여러 군데 이사하며 교회를 여러 번 옮겼다. 문제는 만나는 목사님마다 기본적인 가르침에 차이가 있으니 어느 목사님 말씀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지금은 포기하고 있단다. 그는 열심히 더듬었지만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낙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방법은 한 가지다. 그대가 거듭나는 것이다. 그대가 눈을 뜨는 것이다.

   다시 경력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해서 심각하게 논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단은 구원문제를 계속 공격하고 있다. 사단이 구원문제를 공격하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대하여 오해나 착각을 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하여 그 영혼을 노략질하는 것이다. 사단이 구원문제를 공격하는 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구원은 단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원은 차츰차츰 경력을 쌓아 가면서 신앙의 경험을 축적하여 완성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사단의 주장에 잡힌 사람들은 필자가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면 눈을 크게 뜨면서 어떻게 그런 교만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필자는 이런 반박을 기독교인들에게서 수없이 들어 왔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단의 첫 번째 전략에 잡힌 사람들이다.

   구원은 단번에 주신 것이다. 어느 날 말씀을 통하여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지옥의 두려움 가운데 떨다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죄 용서함 받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아기가 단번에 태어나듯이 구원도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다. 학교에 단번에 입학 하듯이 구원도 단번에 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구원은 과정을 통하여 경력을 쌓으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요즘 한국 기독교는 사단이 더욱 교묘하게 역사하여 입으로는 단번에 구원받는다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지만 실제 깊이 교제하여 보면 그들은 과정을 주장한다. 사단의 교묘한 속임수다.

   바울 이래로 지금까지 사단은 이 문제를 주장해 왔고 전도자는 이 문제와 싸워왔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다서 3절).

   이 말씀을 자세히 보라.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하시지 아니하였는가! '싸우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단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사단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구원은 단번에 받는 것이다.

   어떤 장로님께 구원은 단번에 받는다고 하였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단번에 받았다는 간증을 하셨다. 간증인즉 자기가 중년 때 기도원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밤새워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고 엄청난 기쁨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절망적인 병을 고침받았다고 한다. 환상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기도하다가 입신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구원 간증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간증에는 예수님의 속죄의 피가 빠져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이 진리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진리이다. 경험한 사람은 일반적인 진리이다. 깨달은 사람은 쉽고도 쉬운 진리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게는 답답한 말이다. 목사님들도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있다. 슬프고 기가 막힐 일이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사단은 행위로 구원 얻는다고 주장한다. 모든 종교가 행위를 가르친다. 세상의 종교나 교육이나 기타 모든 가르침에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이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 멀리해야 하고, 선을 행해야 하며,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하며, 정직과 진실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에 따라서 금세와 내세에 상을 받든지 벌을 받든지 하는 것이다. 자기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자기가 받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피곤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 멍에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힘들게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형벌이 두렵고 죄과가 두려워서 선을 행하려고 무척 노력한다. 그들의 선은 지독한 이기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예컨대 불교의 경우를 보자.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자비는 같은 자비가 아니다. 불교는 자비를 얻기 위하여 자비를 베푼다. 그러나 기독교는 비참한 죄인이 십자가의 피로 죄 용서함 받은 엄청난 자비를 입었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동하여 자원함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종교적인 행위가 기독교에 들어와서 기독교인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는 것인데 마치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야, 죽도록 충성해야 천국에 가는 것처럼 사단이 속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죽으셔야 했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대와 나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죽으심으로 다시 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의인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나 신앙 경력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생각해 보라. 구원이 신앙경력으로 말미암았다면 예수님 한편에 있던 강도는 어떻게 낙원에 갈 수 있었겠는가? 그에게 무슨 경력이 있었는가? 그에게 무슨 선행이 있었는가? 그가 새벽기도를 다녔는가? 그가 예배당을 지었는가? 그에게는 순수한 믿음 만이 있었을 뿐이다.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인 것을 깨달았고 예수님만이 자기를 낙원에 데려갈 수 있는 구원자라는 사실을 시인한 것 외에 그의 경력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누가복음 23:29절 이하).

   구원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다. 단순히 믿음으로, 십자가의 피로 거듭나는 것이다. 거듭나는데 있어서 신앙경력은 아무 쓸모가 없다. 니고데모가 그 증인이다(요한복음 3장).

   오!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기독교인들이여, 진지하고 진솔하게 영혼의 문제를 검토해 보라. 그대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지옥에 버림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 성경은 말하기를 그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읽어본 마태복음 7장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대의 영혼은 그대가 사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은 그대의 영혼을 책임질 수 없다. 그대가 섬기는 훌륭한 목사님이라도...!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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