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제 5 과
주 예수님과 여성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당시의 여성들은 희랍에서도, 로마에서도, 유대에서도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즉, 희랍에서 여성은 노예와 동등한 지위에서 남편의 지배와 권위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아내는 법적으로 남편의 소유였습니다. 로마의 여성들이 희랍의 여성들보다는 자유가 있었지만, 이것은 오히려 도덕적 방종과 이혼률의 증가를 초래했습니다. 물론 유대에서도 여성은 남편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었으나, 가정에서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여성들에게는 법적 권리가 거의 없었고, 종교 교육조차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과는 달리 여성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매우 특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성에 대해 편견을 보이신 적이 없으셨고, 경멸의 어조로 말씀하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성 특유의 능력을 인정하셨으며,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성들의 소원에 대해서 동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마 8:14)와, 자기의 겉옷을 만졌던 혈루병 걸린 여자(마 9:20)와, 18년 동안이나 꼬부라져서 펴지 못한 가련한 여인(눅 13:11) 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나인성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죽었던 아들을 살리셔서 과부에게 돌려 주셨습니다(눅 7:12~15). 심지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에도, 주님은 그여인을 신중하면서도 은혜스럽게 대해 주셨습니다(요 8:3~11). 이렇듯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당하던 여인들, 그리고 주님의 사랑에 이끌려 주님께 나아온 여인들은 "내게 오라...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틀림없이 큰 위안을 받았을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까지도 모친에 대한 연민의 정을 보이셨습니다(요 19"25~27).
한편 주님께서는 몇몇 여인들을 칭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간구하던 가나안 여인에게 주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1~28)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어느날 성전의 연보궤 옆에 앉으셨던 때에, 부자가 푸짐하게 헌금하는 모습과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지켜 보시고서 주님은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1~4)라고 이 과부의 희생적인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헌금의 분량을 보신 것이 아니라, 헌금하는 자의 중심을 꿰뚫어 보셨던 것입니다. 부자는 별 손해가 없을 정도로 바쳤지만, 이 여인은 그의 소유를 모두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렸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여성들의 지성적이고도 영적인 능력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별도로 소녀들이나 부인들을 교육하신 적은 없으셨으나, 주님은 개인적으로 대중적으로 여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 자신에 관해서나 성부에 관한 깊은 계시를 여인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시기도 했던 것입니다.
실례로 요한 복음 4장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으로 더불어 우물가에서 대화하시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비록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했으며(요 4:9), 유대인 선생들은 자기의 부인과도 여럿 앞에서는 대화를 하지 않았으나, 주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 여인과 대화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예배에 관해서,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에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요 4:24). 이로써 주님은 자신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야임을 계시하셨는데, 이러한 계시는 이 여인 외에 아무에게도 계시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이 여인은 이것을 믿었으며, 자기가 살고 있던 동네에 가서 예수님을 증거함으로써 여러 이웃 사람들도 주님께로 나와 믿게 하였습니다.
또한 베다니에 살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에서 마리아는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 을 들었습니다(눅 10:39). 주 예수님은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마리아에게 음식을 장만하라고 타이르시지 않고, 도리어 주님의 가르침을 사모하는 그녀의 열의와 태도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르다의 봉사를 무시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봉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마르다에게 부드럽게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 을 배우는 시간을 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봉사' 보다 '우리 자신' 을 더 원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보다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 후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 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여자들의 봉사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주님은 베다니에 있던 가정에서 헌신적인 두 자매의 영접과 접대를 받으셨습니다. 그 밖에도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 (마 27:55)나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눅 8:2,3) 섬겼던 사실도 볼 수 있습니다. 한 무리의 여자들이 주님을 좇아, 순회하면서 사역하는 데 따르는 갖가지 불편과 고난을 감수하면서, 주님과 제자들의 신변을 보살펴 드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라이리(C. C. Ryrie)는 "예수님을 측근에서 섬긴 자들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되면 예외없이 여자가 아니면 천사였다. 주님을 섬기는 무리 중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성들의 호의와 친절을 고맙게 여기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서 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셨을 때 일어났던 사건을 보게 됩니다. 식사 중 죄 많고 가련한 한 여인이 주님의 발치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눈물이 주님의 발에 떨어졌을 때 이 여자는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으며, 아주 값비싼 향유를 그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이 여인을 부정한 것이나 되는 것처럼 쫓아 버리려 하였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서 사랑의 선물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의 많은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이처럼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보여준 호의에 데해서 칭찬하셨을 뿐 아니라, 바리새인의 냉담한 반응에 대해서는 묵살하고 계심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눅 7:44~46). 그렇다면 주님이 오늘날 우리들에게서는 무엇을 받고 계실까요?
주님의 지상에서의 사역이 마지막에 이르렀을 무렵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마 26:6~13 ; 요12:1~8). 주님이 베다니에 있는 그의 사랑하는 친구의 집에 계셨을 때, 주의 발 아래 앉아 있던 마리아가 값진 향유를 가져다가 그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제자 중 한 사람은 낭비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주님께 드릴 수 없을 만큼 아까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도 마리아에게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주님께 드리기에 너무 귀하고 값진 것이 있을까요? 더욱이 제자들이 주님의 죽으심이 가까왔음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그때에 마리아의 헌신이야말로 주님께 너무나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바름으로써 주님의 죽으심을 예표했던 것입니다. 주님을 돌보던 다른 여인들은 너무나 늦게 향품을 갖고 왔기 때문에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눅 23:55 ; 24:3). 그러므로 구속을 받은 자들은 바로 오늘 '찬미의 제사'로, 그의 이름에 감사함으로, 사랑과 경배로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히 13:15).
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여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써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뵙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주님은 그 여인들에게 자신이 부활한 희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특권도 주셨습니다(마 28:1~10 ; 막 16:1~10 ; 눅 24:1~10 ; 요 20:1~18). 우리가 아는 바로는, 요한을 제외한 어느 제자도 십자가 곁에 없었으나 여인들은 있었습니다(마 27:55). 그리고 부활하시던 "아침 일찍 아직 어두울 때" 에도 여인들은 무덤에 왔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낙심 가운데 있었음을 볼 때 그들의 믿음이 제자들의 믿음보다 더 위대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는 다르셨던 주님, 그들의 생애를 변화시켜 주신 주님에 대한 사랑이 주님이 계셨던 곳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나신 승리의 주님을 뵈었을 때, 그들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고, 애곡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달음박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으로 주님을 찾는 자는 그 보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위대한 자나 유능한 자나 똑똑한 자에게는 자신을 숨기시고, 비천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사모하는 자에게는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주님을 더욱 잘 뵐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어디에 계실까?' 하며 애타게 찾아 부르짖던 마리아에게 주님께서 친히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으며, 그 순간에 마리아는 애타게 찾고 있던 주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사모하여 찾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주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과에서 인용된 대목을 더 자세히 연구해 보시고 각각의 사건에서 여성들에 대한 주 예수님의 태도를 묵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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