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 15:5). 따라서 '그리스도의 가지' 란 말은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신약성경의 많은 칭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약교회 진리 안에서도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신분을 가장 잘 표현한 말 중의 하나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이 '가지' 라는 칭호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묵상해볼 만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나무에 붙어 있는 생명 있는 가지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자라야합니다. 생명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성장하지 않는 가지는 죽은 가지입니다. 또 만일 가지가 살아있긴 하지만 자라지 않는다면 이는 어딘가 잘못된 기형적인 가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믿음에도, 믿음의 삶에도 또 말씀을 먹고 분별하는 깊이에도 항상 성장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성장이 없는 가지가 기형이듯이 성장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기형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인의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만심 곧 교만입니다. 자만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서는 신앙의 건전한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자만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대개가 거의 처음 그리스도인으로 들어올 때의 영적으로 어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어린아이의 상태로 오랜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렇게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생명에 자양분이되고 생명을 양육시킬 수 있는 생명의 진리의 말씀에 눈을 감고 귀를 막습니다. 나아가 다른 앞선 성도들의 경험이나 가르침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도 스스로 높은 수준의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서신서들을 읽을 때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생각이 어떻게 성장하였으며 어떻게 꽃을 피웠으며,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중이라도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자로서의 전도의 일을 시작한 초기에 쓴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주로 주의 오심에 대한 성도들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쓰여 졋습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그의 심오한 이신칭의(以信稱義)에 대한 복음(福音)에 관한 진리(眞理)나 신약의 교회의 본질인 그리스도와의 한 몸 연합에 관한 신약교회진리(敎會眞理)등의 진리체계와 그 실행 등에 대하여는 충분히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3차 전도여행 중에 이신칭의(以信稱義)에 관한 심오한 진리체계를 로마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도 생활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옥중에서 쓴 에베소서나 골로새서 같은 책에서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감추어진 비밀인 그리스도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敎會)에 대하여 가장 심오한 진리체계인 신약교회진리(新約敎會眞理)가운데서도 핵심 진리인 한몸 연합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진리를 잘 기록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지혜와 그 키가 자라났듯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지혜와 키도 자라나야합니다(눅2:52).

둘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나무의 본분은 열매를 맺는 것인데, 그 열매는 몸 된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에서 잘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잘 붙어 있으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할 때 그 때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잘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갈5:22-23).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 주인에게 열매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버림받는 미운 가지와 같은 삶을 사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는 자로, 한 몸 지체로, 형제의 우애가 있고, 형제 사랑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의 몸에 잘 붙어 있음으로 인해서, 가지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타난 우리의 잘 익은 성령의 열매로서 판단을 받기 때문입니다(마7:16).

셋째,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도 살다가 겨울이 오면 죽음과도 같은 시련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가지가 나무에 튼튼하게 잘 붙어 있는 한 시련의 겨울은 결국은 지나가고 맙니다. 그리고 어느덧 다시 봄이 찾아오게 되면 끝까지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는 또다시 움을 틔우는 것입니다. 끝까지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는 봄이 되면 마침내 푸른 잎을 내놓습니다. 여름엔 녹음을, 드디어 가을엔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렇지만 겨울이라는 세파와 환란과 역경과 핍박에 부딛치면 가지는 벌거벗은 채 마치 죽음과 같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서도 살아있는 나무에 잘 붙어 있는 살아 있는 가지는 자신의 앙상한 삶에서 또다시 열매를 맺는 풍요로운 삶으로 옮겨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온전히 연합된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포도나무에 온전히 잘 붙어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온전히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포도나무 가지처럼 죽음 같은 시련을 겪을지라도 그 몸의 머리 되시는 주님께로부터 사랑으로 돌보심을 받음으로 인하여 이 세상의 어떠한 무서운 세파에서도 온전히 보존되는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 같은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땅에서 우리와 동일한 시련을 체휼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동일한 고통을 느끼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잎을 모조리 떨어뜨리고 거무스름한 빛깔로 벌거벗은 채 서 있는 앙상한 가지들의 모습은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지나 봄이 오면 그 몸통의 뿌리로부터 수액과 자양분을 풍성히 공급받음으로 그 앙상했던 가지들이 생명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 또한 하나님의 섭리로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 자이므로 삶에서 죽음 같은 겨울이 오나 머리되신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자로서 영원히 안전한 자들임을 또한 믿습니다.

넷째, 나무에 잘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나무에서 떨어질 때 곧 죽습니다. 가지는 나무에서 생명의 원천을 찾습니다. 그래서 나무에서 떨어지면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원천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라는 성장의 능력도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의 착한 행실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능력 또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으로부터 나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에서 결코 떨어져 나가 살 수 없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교제권에서는 떨어 나가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교회의 교제권 밖에서 살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면, 이때의 그리스도인은 가지가 나무로부터 수액과 자양분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거의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되어 믿는 자로서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나무에 잘 붙어있어 열매를 많이 맺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나무이신 그리스도로부터 현재의 삶을 살 수 있는 생명과 힘을 얻는 자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그날에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그리스도로부터 풍성한 상을 기대하며 이 놀라운 주님의 오심을 참 유일한 소망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우리가 그에게 붙어 있어야지만 살수가 있으며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EMM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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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그를 신뢰하는 자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Trusting God Brings Guidance)

(Trusting God Brings Guidance)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첫째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결단은 반드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께를 맺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 앞에서 항상 올바른 길을 걷는 일입니다. 성경은 오직 믿음 혹은 신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6 는 "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빈드시 그가 계신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 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 혹은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근본적인 열쇠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관계 회복을 위해 먼저 우리의 구원과 속죄를 위한 제물을 예비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단번에 희생 제물로 드려 우리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셨느니라" (히 9:26-28).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 하였고 그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이사야 59:1,2).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죄를 그 앞에 회개해야 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와 그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교제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친히 예비하셨습니다. 오직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믿음으로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입니다(요 1:12). 그리고 우리는 그 믿음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네 명철대신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라

우리는 우리들의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잠언에서 마음이란 단어는 우리의 전 인격(whole person)과 감정(emotions)(잠13:12)과 명철(understanding)(잠10:8)과 그리고 의지(will)(잠5:12)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로 교만한 자들은 자기 스스로의 견해(opinions)나 학문적 지식(book knowledge)을 자랑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교육적 지식을 자랑하며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회가 있으면 토론을 통하여 교리나 신학적 지식을 드러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아주 뛰어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강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기려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그들 스스로의 지혜와 지식으로 자신의 자만과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르기를 "지식은 교만하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전 8: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누구든지 마음이 교만한 자를 주께서 싫어하신다"(잠 16:5)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교만은 패망으로 이끌며 거만한 마음은 멸망에 이르게 한다. 겸손한 자들과 함께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들과 함께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잠 16:18-1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만은 다툼을 일으킬 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잠 13: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6-7 에서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지식적 교만에 빠진 자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누구도 교만함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지식을 자랑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교사들을 좇아 교회 내에 여러 파당을 지었습니다(고전 1:11-17). 교만에 대해서 성경 전체는 우리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어떤 사람들은 단순한 그들의 믿음을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자신의 지식에 의지하여 연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의 지적 지식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마음의 문제임을 잠언은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관

"사람의 행위가 자신이 보기에는 다 깨끗해 보여도, 그러나 주께서는 그 마음을 살피신다"(잠언 16:2).

"제비를 뽑는 일은 사람이 하지만, 그러나 모든 결정은 주께로부터 온다"(잠언 16:33).

"사람은 마음으로 그의 길을 계획하나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주님이시다"(잠언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만 이뤄지리라"(잠언 19:21).

"전쟁의 날을 위하여 말을 준비할지라도 그러나 승리는 주께 달려 있다"(잠언 21:31).

"사람은 어리석음으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도 그의 마음으로 주를 향해 원망한다"(잠언 19:3).

"왕의 마음이 주의 손 안에 있음이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아 그가 원하는시는 대로 이끄신다"(잠언 21:1).

이상의 여러 잠언 구절들은 사람이 이루기를 원하는 일과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허락하시는 일 사이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이해를 통하여 하나님께 접근하려는 자들은 혼란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에 맞게 모든 상황을 성취시켜주시리라 여기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길은 비록 우리의 환경이 항상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어가지 않거나 혹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일이 더 나쁜 상황으로 변해 가고 있다고 여겨질지라도, 오직 믿음을 통하여 온 마음으로 그에게 나아가는 길 뿐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처지 가운데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일에 성경 중에서 가장 위대한 믿음의 영웅이 되고 믿음의 모범이 되는 분은 욥(Job)입니다. 욥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비극적인 일들이 닥쳤을 때 그의 아내가 그를 찾아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욥 2:9)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욥은 그러한 자기 아내의 제의를 거부하고 오히려 "비록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욥 13:15)고 말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복종하라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매사에 주님의 주권(主權)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을 내 자신의 것으로 구분하여 분리시켜 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러한 일들은 종종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집회소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한 시간 후 농구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저주합니다. 우리는 교회당 안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회로 나아가서는 사람들을 저주합니다. 이와 같은 것을 야고보는 이처럼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와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형제들아 이것은 마땅히 삼가야 할 것이니라"(야고보 3:9-10).

솔로몬의 아가서 중에는 우리 생애 가운데 아주 적은 잘못이 엄청난 피해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아가서 2:15). 우리는 큰 문제와 마찬가지로 적은 일들에서도 반드시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형무소로부터 가석방된자가 그의 집행유예 기간 중에 마약을 소지하는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의 삶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면서도 어떤 경우 그의 자동차 안에 도구를 넣는 연장박스 속에다 마약을 숨기고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그러한 것이 자신의 집행유예기간의 불법인 줄을 알면서도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경찰에 의해 정지를 당하고 수색으로 발각되면 그는 오직 마약 소지죄 한 가지 이유로 다시 형무소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 인간은 숨겨놓은 과거의 어두운 비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삶 가운데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모든 죄들을 고백을 통하여 스스로 하나님 앞에 밝히 들어내야만 할 때가 올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언 28:13) 또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고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고보 5: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무소내의 재소자들은 그들의 사적인 생활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들을 서로 인정합니다. 아주 적은 수의 재소자들만이 다른 사람들의 과거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지난날의 자신의 죄와 범행을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어느 한 가석방자는 한 교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지난 날 자신의 생애 가운데 중요한 한 부분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기를 원치 않고 숨겨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살인을 범한 일이 있었고 그 사실은 당시까지 아무에게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이 일에 늘 가책을 느끼고 있었습니다(잠언 28:17 참고). 그는 만일 자신이 그 죄를 고백할 경우 또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 범행의 고백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결국 수년 동안 이러한 그 자신의 생애의 중요한 부분을 숨김으로 오는 자책감으로 인해 교회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이를 견딜 수 없어 예전의 마약생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삶은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심한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어 마침내 그는 자수하기를 결심하고 지난날의 살인죄를 스스로 고백하였습니다. 지금 그는 다시 형무소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다시 그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찾았고 형무소내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그동안 자신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 앞에 다 들어내 놓기를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어두움 가운데서가 아니라 빛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겸손히 하나님의 징계를 자신의 삶 가운데 받아드리기 위해 하나님을 복종해야 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그의 책망을 싫어하지 말라. 육신의 아버지가 그의 기뻐하시는 아들을 징계하고 책망하듯이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고 책망하시느니라"(잠언 3:11-12). 또한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그의 목이 곧은 자는 갑자기 멸망을 당하고 구제를 받지 못하리라"(잠언 29:1)하셨고 "그 때 그들이 나를 부를 지라도 내가 응답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부지런히 나를 찾을지라도 나를 찾지 못하리라. 이는 그들이 나에 대한 지식을 미워하고 그들이 나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아무도 나의 권고를 받지 아니하고 나의 책망을 무시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행실의 열매를 먹으며 그들 자신의 허망한 환상 같은 꿈에 배부르리라"(잠 1:28-31)고 하나님은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복종하는 일에 실패하게 될 때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매우 엄중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생애 가운데 어떤 어려움이 생기게 될 때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대신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험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약 5:9). 가령,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법적인 부당한 피해를 당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자신의 위신이 사람들 앞에 추락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 시험에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주님의 징계 아래 처하게 되었다고 하는 자각이 든다면 스스로를 먼저 되돌아보고 또 진정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살피며 혹 숨기는 어떤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까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즉시 다 드러내놓으며 그 앞에 복종하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히려 하나님을 피하려 들 때 그 종말에는 결국 자신의 행위의 열매를 스스로 먹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을 잠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녀들이 육신의 부모를 복종하지 않을 때 징계를 당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들의 영혼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자신의 삶 가운데서도 복종하지 아니함으로 징계를 당하게 될 때 그 대가는 그 삶에 매우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길을 지도 하신다.

아담(Adam)이란 청년은 그의 두 번째 교도소 생활 중에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열 번이상의 다른 가정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10대에 청소년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또 다른 범죄로 인하여 교도소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그는 비로써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망한 인생을 걸어왔는가를 자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지난 날 자신이 2년간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노숙자 생활을 하는 자신을 죽든지 살든지 그 아무도 자신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던 시절에 자신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주며 도와주던 어떤 사람들을 기억하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왜 나 같은 자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베풀려 했을까? 이와 같은 생각들로 그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일요일 아침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발걸음을 형무소 내 예배당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심정으로 성경을 스스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 용서함과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고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점점 더 깊은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내의 모든 사람들은 곧 그의 놀라운 변화와 간증을 주목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를 장로로 천거하여 형무소 교회의 공동사역자가 되도록 했습니다.

Adam이 형무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되어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어느 한 목사가 그를 자신의 교회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거처할 곳을 마련해 주고 몸을 깨끗이 목욕할 수 있도록 선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Adam은 날로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깊어져 갔으며 여전히 계속 하나님께서 그의 앞길을 지도해 주실 것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Adam은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크리스천홈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 때때로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계속적으로 Adam은 적어도 일주일에 4번씩 기도 모임을 참여하였고 전체 삶을 하나님께 복종하며 앞길을 의탁했습니다.

그 후 일년이 지난 후, Adam은 주님 앞에 주님의 뜻이면 나머지 그의 여생을 독신으로 바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더욱 자신의 온 생애를 주님께 헌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하나님께서 어느 갓 구원 받은 한 여인을 Adam의 생애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Adam의 생애를 계속 지도하셨고 Adam 역시 결혼으로 자신을 인도하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 여성도 기꺼이 그의 청혼을 받아드렸습니다. 그러나 Adam은 약 2년 동안 그들이 교제하는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태도를 유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장성한 교회 장로들에게 자신들의 교제관계를 감시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처럼 약혼자와의 교제관계도 이처럼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마침내 Adam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 교회가 그의 결혼 비용 모두를 부담해 주었습니다. 온 교회 성도들이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했음은 물론입니다. 감옥에서 출소하여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한 약 3년 반 기간 동안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보여준 Adam의 훌륭한 간증을 교회 온형제자매님들은 모두 잘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날 Adam과 그의 신부는 기쁨과 행복이 넘쳤습니다. 이들 젊은이들은 잠언 3:5-6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들 새 부부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행복의 길로 그들의 생애를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며 그가 나의 생애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예레미야 29:11-14).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조종하려 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와 미리 흥정하려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매우 그릇된 생각입니다. 결코 많은 신학 서적을 읽음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역시 헛된 일입니다. 오직 온전한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복종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비록 아무리 나쁜 환경이 당신에게 미칠지라도 마치 어린 아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를 따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생애를 하나님 앞에 인정하며 당신의 앞길을 지도해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는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이미 많은 좋은 읻들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엠마오성경학교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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