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제 12 과


                                               여성의 은사 활용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 중 어떤 은사가 남성적이며, 어떤 은사가 여성적인 것일까요? 이에 대해 상고해 보노라면 어떤 은사도 남녀중 한 쪽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이에 은사에 관해 상고하면서, 당신의 은사가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십시오.


                                                    은사의 정의


   신령한 은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뚜렷한 역량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교훈하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신약에 기록된 '은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은혜' 라는 의미의 '카리스' 라는 어원에서 나온 '카리스마'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은사들은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지 개인적인 기쁨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은사의 유래


   영적 은사에 관해 기록되어 있는 주요한 세 대목을 살펴보면, 은사의 근원에 대해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고  말씀하시며, 에베소서 4장 7절에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라고 말씀하시며, 고린도전서 12장 1, 11절에서는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종류


   로마서 12장 4~8절, 고린도전서 12장 7~11절, 27-31절, 에베소서 4장 7,8절, 11~13절을 주의 깊게 읽으면서 기록되어 있는 은사들을 열거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편의상 말씀의 은사, 봉사의 은사, 표적의 은사로 구분해 봅니다.


 말씀의 은사 : 사도, 예언, 전도, 목회, 교육, 권위, 지식, 지혜

 봉사의 은사 : 협력, 구제 ,다스림, 긍휼, 믿음, 분별,

 표적의 은사 : 이적, 신유, 방언, 통역,


1. 말씀의 은사

(1) 사도

   이는 '보냄을 받은 자' 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선교사와 같은 의미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성도는 선교사로서 말씀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사도의 은사는 주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부터 함께한 자들로서, 주님께서 친히 부르신 자들이며, 주님의 부활의 증인인 12사도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기초를 세웠으며(엡2:20),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특별한 표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이 특수한 은사는 초대 교회 당시에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2) 예언

   예언의 경우에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각기 쓰여지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예언이란 미리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가 곧 예언입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예언의 은사는 특수한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이를 선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은사는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필요했으나, 하나님의 계시가 다 기록되어 성경이 완성됨으로써, 새로운 계시가 더 이상 필요치 않으므로 불필요하게 되었습니다.

(3) 전도

   이 은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분명하게 전하는 특수한 능력으로서 결과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은사는 개인적일 수도 있고, 대중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이 은사를 특별히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전도인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딤후 4:5).

(4) 목회

   이 은사는 목자가 자기의 양을 돌보는 것처럼 성도들을 인도하며 먹이고 악으로부터 보호하며 돌보는 특수한 능력을 가리킵니다.

 (5) 교육

   이 은사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효과적으로 적용하게끔 가르치는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이 은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성경의 교훈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6) 권위

   권위(權威)는 신앙의 동지들에게 어떤 행동을 강권하거나, 실패와 시련을 당하는 자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남녀가 곧 영적 상담자입니다.

 (7) 지식

   이 은사는 믿는 자가 하나님의 교훈을 연구하고 요약함으로써 거룩한 진리에 대해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해줍니다.

 (8) 지혜

   이 은사는 성경의 진리를 필요에 따라 생활상의 문제에 적용함으로써 말씀의 지식을 매일의 체험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2. 봉사의 은사

(1) 협력

   이 은사는 배후에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충성스럽게 봉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은사는 다른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와 줌으로써 다른 성도들을 영적으로 격려하고 강건하게 해 줍니다. 이 은사에는 신약 성경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기도와 접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구제

   이것은 자신이나 자신의 재물을 주님의 일과 믿는 자들에게 희생적이면서도 슬기롭게, 자원함으로 바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3) 다스림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일과 믿는 자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이를 실행하도록 성도들의 동기를 유발시키는 일을 합니다.

 (4) 긍휼

   이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각 지체가 당하게 되는 고난에 실제적이고 동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며, 말로만 동정하지 않고 행동으로 희생을 보여주는 성령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5) 믿음

   물론 이것은 구원받는 믿음 이상의 것입니다. 이 은사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깨닫는 능력이 있으며,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능히 하실 것이라고 믿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큰 꿈을 꾸며,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해냅니다.

 (6) 분별

   모든 성도들에게 영을 분별할 책임이 있지만(요일 4:1), 어떤 성도들은 남다른 분별력을 갖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과 거짓 영을 분별하는 능력, 하나님께로서 온 영과 그런 것처럼 가장하는 영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은사는 신약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특별히 필요했습니다.


3. 표적의 은사

 (1) 이적

   이 은사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경이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며, 설교자 자신과 그가 하는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확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은사는 사도시대에 필요했습니다.

 (2) 신유

   이것은 모든 질병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치유하는 은사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초대교회 당시에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필요했던 은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3) 방언, 통역

   이 은사는 자신이 배운 적이 없는 언어이지만,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언어로 말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것도 사도시대의 특징적인 은사로서 설교자와 그의 말씀을(the messenger and his message)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표적의 은사가 다른 은사와 다른 것은 어느 곳에서도 이를 행하라고 명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적이나 신유나 방언은 성도들에게 권하는 은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막 16:15), 목회(갈 6:2, 10), 교육(골 3:16), 구제(고전 16:2) 등은, 비록 특정한 은사가 없을지라도 행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은사의 발견


   내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은사를 알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는 일단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시도해 본 후에는 다음의 문항에 따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사대로 일하고 있다면 그 일을 하고 있는 당신은 만족할 것입니다.

   둘째, 다른 이들이 내가 이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가?

   대개 자기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활동에 대해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속기가 대단히 쉽습니다.

   셋째,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위해서 쓸모가 있는가?


                                                 은사의 계발


   은사를 계발하는 데에는 인내와 근면을 요하며, 더욱이 은사를 계발하기도 어렵거니와 은사를 활용할 기회를 찾아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사가 신실하게 활용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거나, "네 속에 있는 은사...조심없이 말며" (딤전 4:14) 라거나,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딤후 1:6) 하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로부터 받게 된 모든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올바르게 세우고 그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데 필요합니다. 비록 작은 악기인 피콜로도 장엄한 오케스트라에서 자신의 몫을 연주해 내며, 이것이 제 구실을 못했을 때에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이를 쉽게 알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상호간의 영적축복과 풍요를 위해서 그들의 은사가 적극 활용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사도 바울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 말씀하심으로 은사를 계발하거나 활용하기에 앞서 사랑의 필요를 역설했습니다(고전 12:31~13:13). 사랑이 없는 은사의 활용은 아무런 유익이 없지만, 하나님과 성도들을 사랑함으로 은사를 활용하는 성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상의 은사가 행해지는 것보다 성도의 생활 속에서 소리없이 맺히는 성령의 열매를(갈 5:22,23)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적 은사를 발견하고 계발함에 있어서 '더 좋은 길' 이며 더 중요한 길인 사랑의 길을 소홀히 하지 않음으로써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본 강좌의 서문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랑스러운 일은 없다' 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많은 교훈을 받았거니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롬 8:29). 우리 속에 주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심령을 그리스도로 채우고, 우리 속에 늘 주님의 말씀이 거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수고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만 매일 매일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복종시킴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할 때 성령님께서는 이렇듯 헌신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로 우리 주님의 형상을 닮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여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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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제 11 과


                            진정한 의미의 여성 해방


   여성 해방 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 생활, 일상 생활, 가정 생활과 관련된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는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신 여성 해방 운동자들은 성서적인 견해를 전혀 무시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예 제도 폐지론' 과 '부인 참정론' 을 주장하던 시대를 여성 해방 운동의 초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의 근본적인 목적은 노예에게도 인간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것과, 정치적으로는 여자들도 남자와 다름없이 선거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적이 달성되자 이제는 여성들이 동등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획득하는 데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든 여성들도 모든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지성적임을 인정하고, 이를 계발하고, 사용할 기회를 제공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아울러, 여러 가지 여건들이 여성 해방 운동을 부채질했습니다. 즉 남자들이 군에 입대하게 되어 일손이 달리게 되자 회사들은 여성들을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또 경제적인 위기가 오자 가정의 궁핍을 면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통한 부수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어떤 창의적인 여성들은 출판을 하기 위해서 가명을 쓰기도 하며 예술을 통해서 자기 표현을 하게까지 되자, 정치적인 압력이 입법자들에게 가해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운동이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되자, 여성들은 직장을 가진 가정 주부의 역할을 비롯하여 그들의 생활 전반을 재검토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만일 내가 남편과 똑같은 시간을 일하게 되면 남편이 퇴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도 피곤하게 되므로 가사도 분담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들에게 장보기, 부엌일, 아기보기, 집안청소 등의 가사의 균등한 분담을 요구했습니다. 이로써 결정에 있어서나 책임에 있어서 부부의 임무를 구분하지 않는, 이른바 결혼생활의 평등사상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심의 가정이라는 개념은 해방적인 여성들에게 굴레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직장을 마음대로 갖게 되었고, 가정 주부의 역할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경시하거나 가정 주부로서만 제한하려는 남성들을 가리켜 '남성 옹호주의자'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여성 해방 운동자들의 목적은 바람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남녀간 같은 일을 했을 때,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여러분도 모두 동의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킬 목적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 기독교 여성 해방 운동자들은 불신 운동자들의 많은 견해를 수긍하면서, 이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서 남녀평등 사상을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어떤 성구를 제시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은 다만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할 뿐, 이것들은 현대적인 상황에 맞게 해석 적용해야 하며, 주후 1세기의 교회나 성도에게 주신 명령을, 상황과 문화가 다른 20세기의 성도들에게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때때로, 성경은 점진적이어서 바울과 같은 저자도 여자들에 관한 생각이 '성숙함' 에 따라 바뀌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성경의 영감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이상한 일입니다(딤후 3:16).

   기독교 여성 해방 운동자들은 여성들에게 교회에서의 설교를 허락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여성의 은사 활용의 기회가 없다고 불쾌해 합니다. 이들은 여성인 자신들이 교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영적 은사에 있어서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신령한 은사와 관련해서 어떤 은사도 남자에게만 주셨다는 대목은 없습니다(고전 12장 참조). 그러나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주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에서의 은사 사용에는 남녀의 구분을 두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인이시기에 그렇게 하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신령한 은사에 관해서는 12과에서 보다 상세하게 다루게 되겠기에 그 때까지 설명을 보류하기로 하겠습니다.

   기독교 여성 해방 운동의 대변자들은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결혼 제도 하에서 아내에게 순종이 강요되는 것을 특별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남성 우위를 반대합니다. 그들은 모든 성도간 상호 복종하는 것 이외의 복종은 비성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그들은 에베소서 5장 21절은 받아들이면서도 22절은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현행 결혼제도를 일방통행로처럼 보고 있습니다. 여자란 언제나 남자에게 주기만 하고, 복종하기만 하고, 양보만 하며, 자기의 권리는 포기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들은 결혼이든 사업이든 직업이든 목회이든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동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근에는 여자의 성직 안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여성 해방 운동자들의 일반적 주장은 소년 소녀들이 어려서부터 남녀 유별을 배워 왔고, 또 그렇게 처신하도록 세뇌를 받았기 때문에 남녀가 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녀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유행에 뒤떨어진 견해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여성은 우아하고, 정서적이며, 모성적이고, 남성세계에 대해서는 다소 무력해 보이는 반면에, 남성은 가족의 부양자로서 스포츠에 있어서나, 기계에 있어서나, 재정적 안목에 있어서 강인하고 우세하고 탁월하다는 견해는 고루하고도 인공적인 견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생리적인 차이점까지 해소되는 것일까요?

   '해방' 은 그 의미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어휘입니다. 여성들은 구태의연한 남녀유별에서, 남성의 지배에서, 전형적인 주부의 임무에서 해방되어야 하며, 여성들은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천부적 능력' 을 자각해야 한다며, 기독교 여성 해방 운동자들은 이에 대해서 성서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바울이 남성 옹호론자요 유대식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고 한 말씀을 보면, 그가 점차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생각으로 기울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의 주장대로 과연 사도 바울이 심경에 변화가 있어서 이 편지에는 이렇게 쓰고, 다른 편지에는 다르게 쓴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것일까요? 여성 해방 운동자들이 어찌 바울의 말을 취사 선택하여 이것은 인정하지만, 이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말씀은 하나님께로서 왔고, 어떤 말씀은 바울에게서 왔다고 분별하거나 비판할 권리가 있겠습니까? 성경 전체가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그 성경은 우리의 인생의 토대로  삼을 만한 권위가 없습니다. 여성 해방 운동자들이 인용하고 있는 구절들을 문맥적으로 주의 깊게 상고해 보면,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는 일관성이 있으며, 모두 주님의 말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고전 14:37).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여성 해방은 성경 말씀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따르기를 힘쓰는 여성이 발견하게 되는 자유입니다. 참된 해방은 순종에 따른 결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으신 곳에 물음표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강둑을 거닐다가 한 사람이 유난히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는 이 나무가 참으로 불쌍하다." 고 탄식했습니다. 이에 또 다른 사람도 '이 나무에게도 자유가 있어야 해!' 라고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이 나무를 뽑아 나무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교훈해 주려는 바는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나무는 정해진 장소에 있었을 때 자유로왔고 아름다왔지만, 뽑힌 후에는 말라 죽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소임을 감당하게 될 때,,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열차가 선로를 따라서만 제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으며, 돛단배도 바람의 원리에 순응할 때에만 영광스러운 자유를 보장받게 됩니다.

   남녀의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지혜로 남자를 지도자로, 여자를 돕는 배필로 정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 각자에게 적합한 임무를 구상하시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만족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 중에 불완전한 것이 있을까요? 결국 우리가 완성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경륜을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습니다. 만족하는 심령이야말로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는 창의력이 없다는 뜻일까요? 그리고 여성의 소임이 가사에만 국한된다는 뜻일까요? 그저 가정에서 여성의 존재가 문 앞에 놓여 있는 흙털이개와 같은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신구약 성경은 한결같이 여성의 활동이 가사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잠 31장 참조). 하나님을 앙모하며, 말씀을 경청하며, 순종하는 여성은 비록 최악의 극한 상황에서도 측량할 수 없는 만족을 누립니다.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막막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신다면 어찌 이를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힘쓰는 여성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삶을 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심령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시 37:4).

   요컨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자아 완성을 도모한다면 반드시 어떠한 목적도 달성할 수도 없을 뿐더러, 독선적인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진정한 행복과 자아 완성에의 길은 이기적인 추구가 아니라 사랑의 자아 희생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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