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려느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갈라디아서 3:3).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을 생각할 때, 패역한 세대와 우상종교 속에서 신음하던 자들을 성령의 역사로 건지셔서 성령께서 저들을 양육하시고 인도하여 아름다운 교회로 이루어감을 보면서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갈라디아 뿐만 아니라 각처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얼마나 놀랍고 기이한 일들을 행하셨는지 모른다.
성령의 사역은 거룩하고 진실하며, 억지나 무리함이 없으며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기쁘게 하는 열매를 맺는 사역이다. 이것은 무더운 여름날 땀흘려 일하는 농부에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같은 것이어서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는 분명하고, 그 역사는 하나님과 사람을 시원케 한다.
성령의 사역은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 능력을 뛰어넘는 지극히 초자연적인 것이어서 놀라운 이적과 기이한 역사를 이룬다. 이 놀라운 역사가 갈라디아 지방에서 일어난 것이 바울의 마음에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겠는가? 필자는 여기에서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생각하며 성령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본질을 알아보고자 한다.
구원에 대한 성령의 사역은, 인간의 본성으로 이룰 수 없는 속죄나 거룩하여짐을 이루시고, 거룩할 수 없는 죄인에게 의인의 신분을 선물로 주시며, 또는 거룩한 행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는 자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일을 하신다.
복음의 차원에서 성령의 사역을 알고자 하면 먼저 우리의 육체의 본성부터 깨달아야 한다. 성경은 자신의 육체적 노력(행위)으로 의로워지려 했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부분에서 증거하고 있다.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가인은 죄의 성품을 타고나서 그의 성품을 억제하지 못하고 아벨을 질투하여 죽이고 말았으므로 아담 이후 최초의 실패자로 나타나고 있다.그는 왜 동생을 죽였는가? 그것은 아담의 육체의 정욕을 어어받은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한 우리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볼 수 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이방인에게도 대단히 칭찬을 받았던 선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에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창세기 23:6).
이것은 아내 사라를 장사 지내기 위해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땅을 구입하고자 했을 때 헷 사람이 한 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간증인가! 이방인의 입으로 아브라함을 주(主) 또는 방백이라 칭했으니 놀라운 간증이 아닌가? 방백이라는 뜻은 어른, 두목, 왕으로 번역될 수 있는 대단한 존칭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방인을 두려워할 때가 있었고 그로 인하여 아내를 빼앗길 뻔한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창세기 12장, 20장).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브라함의 육신적 연약함을 잘 드러내준 것이다.
또한 모세를 생각해 보자. 그는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다(민수기 12:3). 온유는 주님의 성품이었던 바(마태복음 11:29)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던 모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도 또한 므리바 물가의 실수로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긴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민수기 27:12~14). 이 모세는 율법의 상징이 되고 있는 바, 이 실수로 인하여 인간이 율법의 행위로는 천국에 갈 수 없음이 명백히 증명되었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수많은 선진들이 믿음의 큰 발자취를 남겼으나 그들의 육체적 약점 또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인할 수 없었다. 우리의 육체는 때로는 하나님의 도구로, 때로는 사단의 도구로 곧 잘 이용되곤 한다(로마서 6:12~13).
만약 어떤 종파나 혹은 교회지도자가 말하기를 우리의 영혼과 함께 육체가 온전하게 변화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가르친다면 이는 그릇된 가르침이다. 육체의 본성은 이 세상에서 온전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차 오실 주님을 통해서 몸의 구속(몸까지 변화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로마서 8:2).
신구약을 막론하고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육체는 온전하게 변화되지 아니한 채 다만 그들의 신분과 상태가 변화되었던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교회사 2,000년 동안 꾸준히 인간을 속여왔다. 사단은 교회에 한 가지 불순한 사상을 은밀하게 침투시켰는데 그것은 거듭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정직하고 의롭게 말씀을 순종하여 살것을 꾸준히 가르쳐 온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데도 사단은 열심히 순종하고 노력하여 육체의 정욕을 억제하여 천국에 가거나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처럼 속여왔다. 지금도 수많은 종파나 목사님들이 이와 같이 가르치고 있는 것을 필자는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예배당에 처음 나가는 사람에게는 거듭남의 필요성과 거듭남의 방법을 열심히 전하여 그 사람이 확실하게 거듭날 때까지 이러한 노력을 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어떤 교인을 만나보니, 그는 날마다 거듭나야 하며 또한 자신은 날마다 거듭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거듭남의 뜻도 모르는 교인이었다. 거듭남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두 번 난다는 뜻이다. 생일이 두 번이라는 말이다. 즉 이 세상에 육체로 출생한 생일과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한 생일을 말한다.
또 어떤 종파는 거듭난 경험도 없는 사람에게 거듭난 생활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아이를 임신하지도 아니한 사람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고, 여자에게 남자답게 살라고 괴롭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거듭나지도 안은 채 거듭난 자답게 살려고 육체적인 노력으로 고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결국은 위선된 생활로 자기를 포장하며 살아가는 위선자의 길을 가든지, 양심을 선언하고 힘들어서 예수 못 믿겠다고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의 길을 갈 것이 분명하다.
사단이 교회를 속이는 또 한 방법은 이제 육체를 학대하므로 거듭난 자다운 생활을 하여 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산으로 기도원으로 수도원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성경이, 신성하고 존귀하다고 말하고 있는 결혼을 죄악시 여겨 금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결혼을 금하는 사상은 귀신으로부터 왔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였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할 터이나..."(디모데전서 4:1~3).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수도원 사상은 성령으로부터 오지 않고 사단으로부터 왔다. 기독교의 본질은 현실도피에 있지 아니하고 더럽고 어두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여 죄인들 곁에 가서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이와 같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이 의로워질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결단코 아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여러 지방에서 경험했던 성령의 역사는 결코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복음을 들고 가는 곳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역사만 활발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죄인들을 회개시켜 우상과 더러운 죄악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고, 그와 같은 것들이 마귀로부터 온 것임을 깨달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와 용서를 받아들이고 거듭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이며 그러한 사람들의 초기 신앙생활은 성령으로 인도 받아 살았던 것이다.
참 신자는 모름지기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생활하여야 신자다운 삶을 누리게 된다. 거듭난 신자의 마음에 성령께서 거하시며(로마서 8:9, 요한복음 14:17), 신자의 생활을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셔서 죄를 이기고 말씀의 뜻을 분별할 뿐만 아니라 순종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성령의 선물로 받는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역사는 온전히 성령의 선물로만 이루어진다.
오, 독자여! 사랑하는 독자여!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언제 수도원을 지었던가? 수도원을 통하여 육체를 정죄하고 억제하며 말씀을 좇는 것처럼, 거룩해진 것처럼 잘 훈련된 수도사들을 양성하였던가? 바울이 언제 특정 종파를 만들어 조직을 강화하고 총회를 창설하였던가? 무슨 종파 이름을 붙이고 교주나 총회 어른으로 대접받은 적이 있었던가? 믿음이 아닌 육체적 노력, 즉 육체를 학대하여 의로워진다고 가르쳤던가? 교회 조직에 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여 믿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아 감사패나 상장을 나누어주어 방에 걸어 놓게 하였던가? 오! 이 모든 것은 육체로부터 온 육신적인 방법이 아닌가? 언제 바울이 교회 재정이 어려워 헌금을 호소하여 헌금 봉투에 이름을 쓰게 하며, 공개하며, 육신적인 방법으로 헌금을 강요하였던가? 성령으로 시작한 초대교회가 오늘날 육체로 마치게 되었다고 탄식하지 않겠는가?
성령의 사역은 거룩하고 진실하며 억지나 무리함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기쁘게 하는 것이다.
독자여! 사랑하는 독자여! 깊이 생각하고 성찰하여 보기 바란다. 기독교는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진행하여 성령으로 마쳐져야 한다. 성령은 말하고 듣고 가르치고 진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시며 인격이시다. 성령은 신자를 양육하고 바로잡고 깨우치는 인격이시다(요한복음 14:26, 16:13).
길을 가다가 포스터를 보니 부흥회 광고였는데 "성령폭발" 이라고 쓰여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고 암흑에 갇힌 모습인가! 성령이 폭발한다고? 그들의 상태는 디모데전서 1장 7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대로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삼위 하나님이시요 능력이시다 하나님의 영이시다. 성령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능력이시다. 성령은 진리를 증거한다. 진리를 벗어난 역사는 성령의 역사라고 볼 수 없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한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5:26).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한다. 곧 그분은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초점은 잃어버린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는, 즉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이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로다"(누가복음 19:10).
집을 나간 자식, 길을 잃은 죄인, 선악을 분별치 못하는 타락하고 패역한 죄인, 더러운 죄인을 찾아서 건지시고자 하는 것이 주님의 사역이다.
삭개오를 변화시키신 주님께서, 죽음 직전의 강도를 변화시키고 건지신 주님께서,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동일한 일을 행하고 계신다.
인간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성령께서 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은 온전한 선물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사도행전 2:38).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요한복음 16장 8절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성령)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8).
'책망'이라는 말은 '엘렝코'라는 헬라어로서 '드러내다', 증명하다, 시정하다' 등의 뜻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즉 성령께서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드러내고 증명하고 계시다는 뜻이 된다. 9절부터는 무엇을 드러내느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한복음 16:9).
성령은 참된 죄가 무엇인가를 드러내신다. 죄가 무엇인가? 무슨 죄가 인간을 지옥으로 보내고 있는가? 그것은 '믿지 아니하는 죄'인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창세 이래로 발생하고 앞으로도 발생할 모든 죄가 단번에 사하여졌다.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죄는 모두 사라졌다.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는 이 한 마디는 인간 세계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하셨다는 선언이다.
이제는 이같은 놀라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믿기만 하면 죄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로마서 8:1), 구원을 얻은 것이며(에베소서 2:8), 확실한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요한복음 5:24). 이제 인간을 지옥으로 데려갈 수 있는 모든 죄(과거, 현재, 미래의 죄)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 청산되었다. 모두 해결되었다. 아름다운 십자가의 속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이 놀라운 구속의 사실을 믿지 아니함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을 드러내 증명하신다.
또한 둘째로 성령은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요한복음 16:10)라는 사실을 증거하신다. 로마서 3장 21절과 22절에 보면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없는 인생에게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는 의인의 신분을 얻게 되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의가 되신 것을 증거하시며 또한 그 예수를 믿는 자는 의로워지는 진리를 증거하신다.
셋째로 성령은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한복음 16:11)는 사실을 증거하신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결과이다. 성령께서는 이세상 임금(사단)이 심판을 받았음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이 성취된 것인데, 뱀의 머리가 깨어진 것, 즉 사단의 권세가 예수님 앞에 완전히 굴복된 것을 말한다. 사단은 사망을 무기로 하여(히브리서 2:14) 인간을 멸망의 지옥으로 끌고 가던 바,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사망 권세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주님의 부활 권세가 온 세상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었다. 비록 아직도 많은 사람이 사단의 속임수에 속고 있지만 성령께서는 이 승리의 소식을 드러내 증거하신다.
이 세 가지 사역을 종합하면 우선 예수님은 인간의 불행의 근원인 죄악을 다 청산하셔서 인간을 죄로부터 완전하게 해방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책망 받고 심판 받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완전한 의가 되셨으니 그분에게는 불의가 조금도 없으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은 장차 의와 불의를 심판하시는 주가 되신다. 끝으로 그분은 이 세상 사단의 권세를 심판하셨으며 이제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잡으셨다(빌립보서 2:9~11). 그분은 인생 구원의 근원이시다. 모든 속죄와 권세와 다스리심이 예수님에게 돌아왔으니 그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은 것이며 그분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자처하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36).
'좋은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 저주 아래 있는 거짓 기독교인들이여! (0) | 2015.12.09 |
---|---|
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0) | 2015.12.08 |
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 죄인도 의인도 아닌 기독교인들이여! (0) | 2015.12.05 |
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 다른 복음으로 고통받는 기독교인들이여! (0) | 2015.12.04 |
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 사람을 따라 몰려다니는 기독인들이여! (0) | 2015.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