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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10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 죄 용서 받았느냐?

너희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죄 용서 받았느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브리서 10:10).


   성경은 구원받은 자의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찬송가에서도 구원받은 자의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찬송가 405장은 그 대표적인 찬송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놀라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와 같이 죄용서 받은 기쁨을 노래하게 한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죄를 용서받은 기쁨을 볼 수 없다.

   필자는 어느 날 어느 기독교인을 만나서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에게 또 묻기를  "그러면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하니 "십자가에서 죄를 용서 받았으니 천국에 가는 것 아닙니까?" 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구원받은 것 같지 않아 다시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죄를 용서받은 기쁨이 있습니까?" 하니 그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조금 실수한 것을 용서받아도 기쁠진대 하물며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죄를 용서받은 것이랴. 만약 사형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사면을 받거나 교도소에서 몇 년 고생해야 할 죄수가 탕감 받았다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그러므로 멸망의 지옥에 갈 죄를 용서받은 기쁨을 모르면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여기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하며 성경의 여러 부분을 살펴보면서 구원받은 기쁨과 죄용서 받은 기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왜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성경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지옥에 간다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죄인으로 드러나면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지옥에 던져지게 된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복음 13:41,42).

   이 말씀은 진실로 크고 두려운 말씀이다. 다른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자들이 넘어지게 하는 자들이다. 또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하는 자들도 넘어지게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만 믿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방해한 자들이다. 또한 불법을 행하는 자들, 즉 죄인들이다. 여러 가지 죄에 얽힌 자들이다. 양심적, 언어적, 행동적인 죄 등 수많은 죄들이 그들에게 있다.

   그들은 지옥에 떨어져 죄 값을 치르게 된다. 그들의 고통은 영원하다. 그들의 고통은 이 세상의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없는 너무나 끔찍한 고통이다. 이와 같은 고통이 영원히 계속된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영원히 당하는 고통을 상상해보라! 무슨 말로, 어떤 형태로, 어떤 방법으로 이 고통을 표현하랴! 말로나 어떤 노력으로 나타낼 수 없는 멸망의 지옥을 가야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들의 정신적인 고통은 또한 어떠한가? 거기에는 울며 이를 간다는 말로서 증거되고 있다. 자기를 지옥에 오도록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과 함께 지옥에서 영원히 산다! 얼마나 끔찍한 정신적고통인가. 미워서 견딜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끝날 수 없는 시간에, 미워서 죽이고 싶은 사람과 영원히 이를 갈면서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 이것이 지옥의 실상이다. 이것이 죄 값으로 영원히 받는 형벌이다.

   그러나 죄 문제를 탕감 받으면 이 지옥이 면제된다. 그리고 영원한 희락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실상이 이러하므로 우리는 속히 죄 문제를 해결하여 멸망의 지옥에서 건짐 받아야 한다. 죄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은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떤 기쁨으로도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은 어떠한가? 병 고친 기쁨, 물질의 축복받은 기쁨, 출세한 기쁨, 사업에 성공한 기쁨 등 현실 축복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죄용서 받은 기쁨을 능가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러한 것들은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일 뿐이다.

   구약의 축복은 이 땅의 축복이다. 그러나 신약의 축복은 하늘의 축복이다.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지만 바울은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립보서 3:20).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말씀을 잘못 알고 속는다. 신약 교회에 주신 축복이 하늘의 축복이므로 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선진들이 땅에서는 비록 못 먹고 고생하고 거지처럼 살아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하여 살다가 가지 아니하였는가. 그들은 땅에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가 있었으나 모두 주님을 위해 반납하고 오히려 어리석은 자처럼 고생만 하다가 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지옥에서 건져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흘리신 보혈의 피가 너무 감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 갚아도 죄용서 받은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좋은 행복의 기회들을 다 버리고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한 것이다.

   죄 용서함이란 이와 같다. 감상적인 이야기나 사무적인 언어가 아니다. 종교적으로 교리를 배워서 그냥 죄 용서 받았기에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고백하면 넘어가는 과정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 용서받았다고 교리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단의 엄청난 영혼 사냥 전략에 걸려든 슬픈 이야기이다.

   두 번째로 필자가 살펴보고 싶은 것은,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죄 용서함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기쁨이 있을 리 없다. 그들에게 구원의 기쁨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어느 날 어느 구도자에게 물어보기를 "당신은 죄인입니까?" 하고 물으니 "당연히 죄인이지요" 하였다. "예수께서 당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물으니 "알지요"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죄인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는 기가 막힌 이야기를 쏟아 놓고 있었다. "그것은 그것이고 그래도 나는 죄인이지요" 하고 따지듯이 반문하는 것이다.

   진리를 아는 자는 어찌 그런 일이 있을까 말하겠지만 의외로 그런 일이 많은 것을 필자는 알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죄를 용서받은 적이 있느냐?" 는 필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죄인입니까?" 물으니 죄인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죄용서 받았다고 하면서 왜 죄인입니까?" 하고 되물으니 그는 대답하였다. "나도 그것이 고민인데 날마다 나의 생활이 죄인인데 죄를 용서받았다 하여도 양심에서 의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어찌합니까?"

   참으로 슬픈 이야기이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 뜻을 좇아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브리서 10:10).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다고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 우리의 원죄, 과거 현재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어찌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을 자가 있으리라. 그렇다면 근거는 무엇인가? 요한복음 1장 29절에 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여기에서 요한은 "세상 죄"라고 증언하고 있다. 세상 죄라 함은 세상의 모든 죄를 의미함이 분명하다. 그러하다면 우리의 미래의 죄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의 모든 죄가 이미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다 해결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죄를 용서해달라고 부흥회 때마다 울고불고 통곡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우리는 이미 죄를 용서하여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죄 용서받은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우리가 또 짓는 죄가 있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가. 필자는 날마다 크고 작은 죄를 짓지 않는단 말이요?" 그렇다. 모든 죄를 용서받아 구원받은 기쁨에 충만한 성도들도 죄를 짓는다. 그러나 그 죄는 나를 주관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는 능력을 상실한 죄다. 다만 내가 그와 같은 죄로 인하여 부끄러운 성도, 부끄러운 자녀로 나타남을 걱정하여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백하고 뉘우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다만 율법 아래 있는 종의 자격이 아니라 자녀의 권세로... . 종이 죄를 지으면 쫓겨나지만 자녀는 쫓겨나는 일은 영원히 없다. 다만 부끄럽고 죄송하여 아버지 앞에 나가 뉘우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요한일서 1:8,9).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라디아서 4:6,7).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우리의 모든 죄가 탕감 받아 아들의 명분을 얻은 것이다. 그 이후에도 때때로 죄를 짓지만 우리의 신분은 영원히 바뀔 수 없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한복음 8:34,35).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대는 모든 죄를 용서받은 적이 있는가? 그리고 죄에서 자유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등록된 경험이 있는가? 이러한  경험이 없다면 그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 차라리 "하늘에 계신 의붓아버지여"라고 외쳐라.

   죄를 용서해 주셔서 지옥을 면하게 해준 것만 해도 천지에 충만할 기쁨인데 아들로까지 삼아주셨으니 그 기쁨을 어찌 다 표현하랴. 그대에게 이와 같은 기쁨이 없다면 그대의 구원을 점검해보라. 신앙은 경험이다. 죄용서 받은 경험이요, 지옥을 면제 받은 경험이요, 영생을 얻은 경험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오직 모든 죄를 용서받아 멸망의 지옥에서 건짐 받은 그 놀라운 기쁨을 평생 잊지 못하여 감사의 눈물로 인하여 찬양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이다. 이와 같은 말씀은 에베소서 1장 5절과 6절에 기록되어 있다.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엄청난 기쁨을 찬미하게 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라고 하지 아니한가.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없는 은혜를 평생 찬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심지어 죄 용서를 교리적으로 알면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교리적으로 어떻게 분석할 수 있겠는가. 로마서 6장 14절에 이 문제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법아래 있다는 말은 로마서 3장 19절에서 설명한 대로 율법 아래 있음을 의미한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누구나 율법 아래 속한 자들이다. 그들은 법대로 심판받아야 하는 죄인의 입장에 있다. 다시 말하면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와 같은 것이다. 오직 그들은 법대로 재판받고 법대로 처벌받아야 하는 두렵고 무서운 입장에 있는 절망적인 죄인이다. 그런데 이제 어느 날 대통령 특사로 그가 풀려 났을 때 그는 나라의 형법 아래에서 은혜의 법인 특별사면법 아래로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특별사면법에 의해서 풀려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든 사람이 율법대로 지옥 형벌을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죄인들인데 십자가의 은혜의 법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를 심판하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로 온 것이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14절에 기록된 대로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 아래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죄용서 받은 기쁨이다.

   오 그대여, 죄용서 받은 기쁨이 있는가? 저주의 죄에서 십자가의 은혜로 해방 받은 적이 있는가?  이것이 없다면 그대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구원의 교리를 완벽하게 알고 말한다 할지라도 나는 그대를 천국에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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