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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09 잠언강해 제11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

잠언강해

 제11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

                         Truthfulness Brings God's Delight

 

   본문말씀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

 

   하나님은 진실을 사랑하십니다. 이는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입니다. 이사야는 주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사 65:16)이라고 불렀으며 주 예수님께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진리의 사람들이 되므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게 되리라"(슥 8: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진리를 말함으로 진리의 성읍을 이루고 사는 것을 원하시며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진리의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부부와 온 가족들이 서로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않고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며 진리의 가정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인하여 기뻐하실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서도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령은 신명기 19:15-21에서 아주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언에 대해서 경고하시며, 만일 그와 같은 위증이 사실로 들어날 경우 그 징벌은 엄중한 형벌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령 어느 사람이 재판정에서 살인에 대하여 거짓증언을 했을 경우 재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그를 처형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골 3: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사탄의 속성입니다. 예수께서는 사탄에 대하여 "그는 진리에 서지 못하고...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는 행동은 바로 사탄의 행동과 같습니다. 반면에 진리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자가 되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3:3-4).

 

   여기에는 균형(balance)이 있습니다. 인자(mercy)와 사랑(love)이 없는 단순한 진리는 거칠게 됩니다. 잠언에서는 동시에 인자와 진리에 대해서 다섯 번 다르게 언급하고 계십니다. 신약에서도 역시 "사랑 안에서 진리로 말하라"(엡 4:15).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말은 진리(truth)와 인자(mercy)그리고 진리(truth)와 사랑(love)의 속성들이 모두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7-18).

 

   어떤 이는 사랑 없는 진리의 말을 함으로 사람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는 사랑과 함께 진리를 말함으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뚫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잠 4:24).

 

   본래 거짓말쟁이는 때로는 전적으로 다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거짓을 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하간 증인으로서 전체 진실이 아닌  반만의 진실을 증언하게 될 때 배심원들에게 그릇된 판정을 내리도록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전체 진실이 아닌 절반의 진실을 말하는 것 역시 거짓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잠 8:7-9).

 

   솔로몬이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반만의 진리를 말하는 거짓된 사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속담에 "반만의 진리는 모두 거짓말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

 

   하나님께서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늘 감찰하고 계십니다. 조작된 작업시간표, 속이는 저울, 가격 조작, 거짓 영수증 등은 모두 주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입니다. 만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방법으로 사업을 해야 합니다.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언제나 남을 속이는 말(loathsome) 하기를 즐겨하다가 종국에는 수치를 당하느니라"(잠 13:5).

 

   남의 말을 엿듣고 악한 의도로 거짓말을 꾸며 대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사탄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은 사탄이 항상 즐겨하는 행동이요 사탄은 또한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잠 14:25).

 

   누구의 청을 받지 아니할지라도 믿는 자들에게는 입을 열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억울한 고소를 당했을 경우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진실을 말해 줘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사람의 제안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지니라"(잠 17:4-5).

 

   거짓말과 중상과 험담을 즐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수로 넘어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거짓말로 꾸며진 고소에 의해 고난을 당하시고 재판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온갖 희롱과 조롱하기를 기뻐했습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잠 17:9-10).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가 보고 듣고 아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믿는 자들은 때로 형제자매들이 실수하거나 혹은 죄로 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믿는 자들은 사랑가운데서 그 사람을 사적으로 권고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권고를 받아들이며 합당한 태도를 보이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 함으로 다시 회복될 경우 그 일을 비밀로 지키는 것이 합당하고 옳습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

 

   거짓 보고는 종종 남의 자초지종을 다 듣는 데 실패함으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종종 자신들이 외부에서 당했던 일들을 자기 부모에게 고합니다. 그럴 경우 어떤 부모들은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 듣거나 자초지종을 다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먼저 화부터 내며 자기 자녀의 친구들을 혼내 주어야 한다고 속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말하는 사람의 온전한 의미와 그 뜻을 먼저 조심스럽게  모두 다 듣고 그 의미를 확인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의문이 있을 경우 더 질문을 하고, 그 전체적인 진실을 좀 더 확인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9:22).

 

   거짓과 속임수로 직장을 지키는 것보다 진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직장을 잃어 가난하게 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참고: 시 23:3).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 20:6).

 

   충성된 사람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떤 약속한 일을 끝까지 지키며 선히 완성하는 사람입니다. 진실함과 충성됨은 서로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잠 20:17).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 21:6).

 

   거짓말과 부정직한 속임수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듯 보기에 처음에는 달콤해 보이지만 종국에는 마치 돌들을 씹는 것과 같이 그 자신에게 큰 불행의 열매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부정직한 재물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세에도 내세에서도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속임수로 삶의 방편을 삼는 자는 항상 남의주머니의 돈을 자신의 주머니로 긁어모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영적으로 자살 행위와 같습니다. 믿는 자들은 이러한 생활태도를 멀리해야 합니다.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경계표)을 옮기지 말지니라"(잠 22:28).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계석(경계표, landmark)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배분해 주실 때 각 지파대로 나눠주신 땅의 경계표를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신명기 19:14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오늘날에도 매우 실제적인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거짓말을 다릉 방법으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자신의 집 뒤뜰의 담장을 이웃집 쪽으로 슬쩍 옮겨 자기 땅을 넗히는 것은 속이는 말을 하는 행동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거짓된 행위는 주님 앞에 미움이 되는 것입니다.

 

   "옛 지계석(경계표)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잠 23:10)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웃의 담장을 옮겨 자기의 경계를 넓히거나 혹은 고아나 과부를 상대하여 사기로 피해를 입히는 악하고 거짓된 행동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한 외국 노동자들이나 시골에서 올라 온 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임금을 제대로 지불해 주지 않고 착취하는 자들은 모두 악한 자들입니다. 야고보서는 경고하기를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임금을 받지 못한)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일반인들을 속이고, 기업가는 자신의 종업원을 속이고, 상인은 고객을 속이고, 교사는 제자들을 속이고, 정치가들은 백성들을 속인다면 그 사회, 국가는 곧 병들고 망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도 각국 마다 그들의 옛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지켜 내려온 국토의 경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36년간 일본은 대한민국 땅을 침범하고 식민지화하여 자기들의 나라로 만들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인들은 결국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우리나라를 풀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 23:23).

 

   솔로몬은 여기서 진리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을 추구하고 잊어버리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습니다. 진리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며 그것은 감춰진 보물과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진리의 가치를 생각하며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 24:12).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르기를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저지른 그릇된 일들을 나는 알지 못하노라고 거짓말하며 변명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의 눈과 귀를 막고 그들의 행동에 아무런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그 마음에 품고 그것을 온전히 따르기로 작정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온전한 길로 인도하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 24:28-29).

 

   거짓말을 하는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는 원한 때문입니다. 때때로 부부간의 가정불화의 원인도 그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분노에 휩싸이게 될 때 그 동안 마음에 쌓였던 것들을 들어내며 ' 당신이 내게 대하여 행한 것 같이 나도 그리하노라'고 사실 이상의 거짓말로 상대편에게 복수하려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태는 폭행 같은 사건으로 발전하여 육체적 가해를 입히는 불행한 사고를 야기하고 이로 말미암아 결국 법정에까지 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상대편을 속이고 거짓 주장으로 맞설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피차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는 말씀을 잊지 말 것입니다. 허물은 상대편이 아니라 내게 있다는 솔직하고 진실 된 마음으로 돌아와야 부부 사이도, 이웃 간에도 불행은 화평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잠 25:9-10).

 

   만일 두 사람이 언쟁을 할 일이 생기면, 가능하면 그 언쟁을 두 사람만의 일로 지키도록 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불 필요한 개입으로 개인적인 문제가 공개적인 다툼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를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 27:5-6).

 

   사랑과 인자로 행동할 때 그 말은 진실하며 바른 때 바른 장소에서 항상 합당하게 행한 행동들은 하나님을 존귀케 만듭니다.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솔직하고 진실 된 말은 개인적인 우정 사이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잠 29:12).

 

   이 세상은 신실한 사회와 거짓과 부패한 사회가 공존하는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가령, 덴마크는, 지구상에서 세금의 부정이 가장 낮은 나라로 칭송을 받는 나라입니다. 반면에, 많은 나라들은 그 정부나 사회 전반에 걸쳐 거짓과 뇌물과 부패가 깊숙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가정이나 어떤 단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있으며, 한 가정이나 한 조직의 지도자는 반드시 정직한 원칙을 세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5-6).

 

   설교자들이나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더 한다면 그들은 거짓말쟁이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절대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고후 4:2).

 

   종교적인 거짓말쟁이

 

   성경 속에서 종교적인 거짓말쟁이의 전형적인 대표 인물은 유다입니다 .열한제자들이 그의 중심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그는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 흉내를 냈습니다. 그들은 금전 회계 일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모든 거짓은 결국 다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몸으로는 예수님을 따랐으나 그영혼은 거짓의 아비 사탄을 따랐습니다.

 

   라울(Raul)은 형무소 재소자 중에서 98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모든 성경 통신과정을 훌륭하게 마쳤습니다. 그가 통신으로 보내온 서신들은 매우 영적이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정도로 훌륭해 보였습니다.

 

   그는 서신으로 그가 가석방을 받았을 때, 옷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한 그리스도인이, 그에게 옷을 보내 주었습니다. 두 번째도 같은 방식으로 차가 필요하다고 호소하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리스도인이 그에게 차를 보내 주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집에까지 차를 태워줄 수 없겠냐고 하여 그 소식을 들은 그리스도인이 그의 차로 집까지 그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네 번째의 또 다른 그리스도인에게는 그가 집에 당도했을 때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고 호소 하였고, 네 번째 사람도 얼마의 돈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부모님께도 이틀 후 식당으로 모시고 나가 식사를 잘 대접하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라울은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가석방을 받은 지 30시간이 지난 후 라울은 옛 애인을 찾았고 그녀와 마약을 하며 밤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도 않고 함께 식사를 나가자는 약속을 어긴 아들에게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를 관리하던 가석방 감시관은 그를 거의 감옥으로 다시 돌려보내버릴 뻔 하였습니다.

 

   그곳 감시관은 그렇게 하는 대신 라울을 크리스천 훈련원으로 보내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섯 번째로 그를 돕는 또 한사람의 크리스천과 친구관계를 맺었습니다. 라울은 크리스천 친구에게 자신은 영적인 새 각성을 회복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곳 훈련원에서 나온 라울(Raul)은 다시 마약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교도소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라울은 그를 돕던 다섯 사람의 크리스천들 중 몇몇 사람에게 아무런 사과도 없이 또 다시 돈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라울(Raul)은 그의 부모들을 속였던 것처럼 크리스천들에게 똑 같이 행동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이용하려고 할뿐더러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거짓과 속임 된 삶을 반복해서 살았습니다.

 

   결론

 

   라울은 종교적 거짓말쟁이의 전형적인 한 표본입니다. 그의 삶은 자신의 쾌락만을 좇을뿐 다른 이들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단지 진실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냅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며 크거나 작은 모든 일에 신실합니다. 그는 신뢰할 만하며 순전합니다. 그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칭찬하신 이유는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본 것과 취한 것이 동일하다"(What you see is what you get)라는 말과 같습니다. 나다나엘은 순수했고, 솔직했고 정직했으며 이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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