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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08 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죄와 종교로부터의 자유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서 3 : 5).


   하나님께서 인생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실까? 이 문제를 조용히 생각하여 보는 것은 순례의 길을 행하는 믿는 자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보는 관점을 성경을 통하여 아무리 보여주어도 자신의 고집만을 끝까지 내세우며 마음의 문을 닫고 불행하게도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우리의 내세에 관한 최종 결정권자는 하나님이시며 이 심판의 기준은 성경에 세밀하고 충분하게 기록해 놓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을 향한 정열적인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향하여 층성을 다하고 있는 교인을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 만약 그들이 믿음에 의지하기 보다 자신의 행위에 의지하고 있는 자라면 주님은 심판의 눈으로 보고 계심이 틀림없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에게는 많은 계명이 주어지지 않았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가장 쉽고 단순히 순종할 수 있는 한 가지 계명이 주어졌다. 그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한 가지를 지키지 못하여 범죄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한 사람의 후손들이 성경의 그 수많은 율법과 규칙, 그리고 각 종파의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많은 규범을 지키고 순종하면 믿음이 좋은 것이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안타까운 일이며 비웃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큰 실수인가!

   오늘날 교회에 다니다가 중단하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의 고백은 예수 믿기가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우선 생각할 때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도 선한 행위를 나타내야 하는데, 곧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해야 하는데, 실제 생활 속에서 자기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니, 나타난 행실도 거룩하지 못하여 심한 좌절감만 맛본다. 또한 모든 집회에 꾸준히 참석하여야 하는데 이것도 힘들고 자신이 없다. 또한 모든 종류의 헌금에 충실하여야 하는데 짐은 계속 무거워지고, 수많은 세월을 부담 속에 살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만다.

   교회생활을 시작 한 후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쁨과 평강이 있고 믿음의 확신으로 인한 담대함이 있어야 할텐데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어깨가 무거워진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형제의 간증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찬송을 지도하며 열심 있게 주님을 섬기는 경건한 목사의 아들이며 장래가 촉망된다고 평가받은 믿음의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는 회중 앞에서 찬송을 부르는 중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 라는 노래를 부르면 늘 "정말이야?" 하는 양심의 질문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그리고 2절에 "샘솟는 기쁨 넘치네" 할 때는 더욱 그러했으며 그 괴로움을 하소연 할 길 없어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찬송 3절에 가면 "바다 같은 사랑 넘치네" 하는 대목이 있는데 자신을 살펴보니 "접시 물" 만큼도 사랑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무릎을 꿇고 통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율법을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죄인에게 무슨 평강과 기쁨이 있겠는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한가지 계명도 지키지 못한 죄인의 후손이 율법을 순종하여 구원을 받으며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의 교회 지도자들 중에 행위로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지도자가 있겠는가? 아마 없을 것으로 믿고 싶다(실상은 노골적으로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도 있다). 그렇게 드러내 놓고 가르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로 들어간 것이지만, 문제는 겉으로만 믿음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믿음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행위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단은 인간을 교묘하게 속이는데 놀라운 지혜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언어 중에 "믿음이 좋다. 저 분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부담 없이 쓰여지고 있으나 실제 성경 어느 곳에도 이런 말은 없다. 찾아 보라. "믿음이 좋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는가? 도대체 믿음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믿음이 좋은 것은 무엇이고 나쁜 것은 무엇인가?

   독자는 믿음이 강하다는 표현을 "좋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는 말 속에 사단의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그들의 행실이 훌륭하다, 주님을 잘 섬기고 주님을 위하여 대단한 열심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하는 말이다.

   교회생활에 충실하고 교회 일에 열심히 하면 "믿음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행위가 좋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생활에 충실하고 열심인 사람 중에 순수한 믿음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인격을 의지한 자기 열심에 빠져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적인 변화와 거듭남의 체험도 없이 맹목적인 열심으로 목사님들의 가르침만 열심히 순종하며 충성스러운 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면 그들의 결국은 지옥의 길, 곧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로마서 10:2).

   오늘날 믿음이 좋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모습으로 지옥을 향하여 차례대로 줄서서 달려가고 있다.

   필자는 앞서서 말한 좋은 행위들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회생활에 열심이면 열심일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변화된 생활이 아니라 "자기의 의" 라면 그는 지옥으로 가고 있음이 분명함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믿는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피스큐오'란 말로써 "의뢰하다, 의탁하다, 맡기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믿는다'는 말은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믿음의 전제 조건으로 자기 포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독자가 어떤 사람들에게 일을 맡긴 뒤 자꾸 의심하며 간섭한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맡긴 것이 되지 못한다.

   앞서 살펴보았던 로마서 10장 2절의 말씀처럼 자기 의를 붙잡고 자기의 신비한 체험이나 신앙의 경력, 지식 등을 의지하고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두에 인용한 갈라디아서의 말씀처럼 성령 받고 능력을 경험하는 구속의 진리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는 다음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로마서 4:5,6).

   이 말씀대로 만약 독자가 행위로는 주 앞에 자랑할 것이 없고, 경건치 아니하고, 일(선행, 열심)한 것이 없어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분을 믿었다면, 즉 이 진리를 깨달았았다면 구원을 받은 것이다.

   다음 말씀에 또 귀를 기울이시라. 구체적으로 그 믿음은 무엇을 믿는 것인가?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로마서 4:7,8).

   말씀 그대로다. 그대가 구원받는 것은 그대의 행위에 있지 않고 이 말씀처럼 그대의 죄를 완전하게 해결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듣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대의 죄(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사하여 주셨다. 십자가는 그대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증거한다. 십자가는 그대의 모든 죄가 무효화되었음을 증거한다. 이제 죄는 그대를 지옥으로 끌고 갈 능력을 모두 상실하였다. 이제 그대의 선택에 그대의 영혼의 길이 달려 있다. 그대의 생각, 열심, 행위를 붙잡고 지옥으로 가겠는가? 아니면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나와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죄인의 죄를 완전하게 해결하신 주님을 단순하게 의지하나이다"라고 고백하겠는가? 그리하여 천국에 가겠는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베드로전서 5:5) 주님께서 그대의 겸손한 고백을 받으신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라디아서 3:5~6).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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