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경력을 내세우는 신자들


   "그 날에 많은 사람이...선지자 노릇하며...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태복음 7:22).


   천국에 들어가는데 경력은 필요 없다.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은 경력을 내세웠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하나님의 일꾼)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권능을 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면당했다. 그렇다. 천국에 들어가는 데는 어떤 경력도 소용없다. 오직 예수님 피로 거듭난 자만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올해로 거듭난 지 42년이다. 그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전도해보았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경우를 많이 만나보았는데 그 중에 경력을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면 "제가 교회를 40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또 묻기를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면, '제가 예배당을 2개나 지었습니다." 하였다. 필자는 끈질기게 물어보았다.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그는 "제가 10여 년 전부터 장로입니다" 하였다.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또 묻는 필자의 말에 그는 화를 버럭 내면서 "장로면 천국 가는 것이지 지옥에 가겠습니까?" 하고 내뱉었다. 그러면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물으니 "장로니까 천국에 가고 또 믿음으로 간다고 했으니까 내가 예수를 믿으니 천국에 가는 것 아닙니까." 하였다.

   이 장로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지옥에 간다. 왜냐하면 그는 화려한 경력으로 천국에 가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9)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그대는 장로인가, 집사인가. 성가대원인가.주일학교 교사인가. 목사인가? 존경받는 목사일지라도 예수님 피로 거듭난 사실이 없다면 틀림없이 지옥에 간다.

   오래 전 부흥회에서 부흥강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집사님이 천국에 갔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올 때마다 예수님이 자리를 권하고 앉아서 영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보통 성도나 집사님들이 올 때는 앉아서 영접하시던 예수님이 어떤 분이 오니까 문밖에까지 쫓아 나가서 영접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누군가 하고 자세히 보니 목사님이었다.

   약간 상한 마음으로 예수님에게 물어 보았다. "집사나 평신도가 올 때는 앉아서 영접하시더니 목사님이 오니까 문밖에까지 나가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차별 받았는데 여기서도 차별하십니까? 섭섭합니다."

   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애야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목사님이 많은데  이 곳에서 목사님을 만난 지가 오래되어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뛰어나갔단다."

   우스개 소리 같지만 이것은 현실일 수도 있다. 무슨 이야기인가? 천국에 가는 것은 목사라고 안심하고 있어도 안 되고, 장로라고 장담하고 있어도 안 되고, 집사라고 집사의 직책에 집착하고 있어도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큰 교회 다니거나 유명한 교파에 다니거나 교회의 직책을 맡았으니 천국에 가겠거니 하고 마음 놓고 있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갈 줄 알았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날 그 충격은 어떠하겠는가! 더구나 그 지옥에서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자기가 의지했던 유명한 교파, 훌륭한 직책, 능력있는 목사, 수십년을 섬긴 경력, 수많은 물질을 드린 봉사, 고난을 이기면서 힘들게 살아 온 신앙의 자랑,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지치도록 섬긴 희생, 피곤한 가운데서도 수십 년을 빠지지 않고 나간 새벽기도, 믿음으로 기도하고 담대히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수많은 간증, 기도 응답, 병 고침,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목사님에게 들었던 그 많은 칭찬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어찌할 것인가! 거짓 목사에 대한 울분과, 큰 예배당으로 포장하여 자기 영혼을 노략질한 사단에 대한 미움과, 무엇보다도 생명의 문제를 점검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목사님 말만 맹종했던 멍청한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고통할 것이다. 그 분노와 그 괴로움과 슬픔과 원통한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적고 있다.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복음 13:42).

   이 얼마나 확실한 표현인가. 그들은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거짓 목사에 대해 이를  갈 것이다. 그들은 훌륭한 하나님의 종인 것 같았지만 잘 포장된 가짜였다. 주의 종에게 복종하라고 해서 무작정 복종했는데 알고 보니 거짓 목사였다.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삯군 목자였던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참 목자를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대가 거듭나 보라. 구원을 받아 보라. 즉 영의 눈을 떠보라. 당장에 구분할 수 있다.

   거듭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성경에서는 여러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에 소경이 눈을 뜨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그대가 눈을 뜨는 것이다. 눈을 뜨면 보인다. 모든 것이 보인다. 눈을 뜨지 않고 손으로 만져 보라. 무엇을 구분할 수 있는가? 그대가 지금 직접 실험해 보라. 눈을 감고 손으로 더듬어 보라. 구별할 수 있는가?

   어떤 집사님은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직장 관계상 여러 군데 이사하며 교회를 여러 번 옮겼다. 문제는 만나는 목사님마다 기본적인 가르침에 차이가 있으니 어느 목사님 말씀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지금은 포기하고 있단다. 그는 열심히 더듬었지만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낙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방법은 한 가지다. 그대가 거듭나는 것이다. 그대가 눈을 뜨는 것이다.

   다시 경력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해서 심각하게 논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단은 구원문제를 계속 공격하고 있다. 사단이 구원문제를 공격하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대하여 오해나 착각을 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하여 그 영혼을 노략질하는 것이다. 사단이 구원문제를 공격하는 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구원은 단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원은 차츰차츰 경력을 쌓아 가면서 신앙의 경험을 축적하여 완성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사단의 주장에 잡힌 사람들은 필자가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면 눈을 크게 뜨면서 어떻게 그런 교만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필자는 이런 반박을 기독교인들에게서 수없이 들어 왔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단의 첫 번째 전략에 잡힌 사람들이다.

   구원은 단번에 주신 것이다. 어느 날 말씀을 통하여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지옥의 두려움 가운데 떨다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죄 용서함 받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아기가 단번에 태어나듯이 구원도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다. 학교에 단번에 입학 하듯이 구원도 단번에 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구원은 과정을 통하여 경력을 쌓으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요즘 한국 기독교는 사단이 더욱 교묘하게 역사하여 입으로는 단번에 구원받는다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지만 실제 깊이 교제하여 보면 그들은 과정을 주장한다. 사단의 교묘한 속임수다.

   바울 이래로 지금까지 사단은 이 문제를 주장해 왔고 전도자는 이 문제와 싸워왔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다서 3절).

   이 말씀을 자세히 보라.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하시지 아니하였는가! '싸우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단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사단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구원은 단번에 받는 것이다.

   어떤 장로님께 구원은 단번에 받는다고 하였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단번에 받았다는 간증을 하셨다. 간증인즉 자기가 중년 때 기도원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밤새워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고 엄청난 기쁨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절망적인 병을 고침받았다고 한다. 환상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기도하다가 입신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구원 간증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간증에는 예수님의 속죄의 피가 빠져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이 진리는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진리이다. 경험한 사람은 일반적인 진리이다. 깨달은 사람은 쉽고도 쉬운 진리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게는 답답한 말이다. 목사님들도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있다. 슬프고 기가 막힐 일이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사단은 행위로 구원 얻는다고 주장한다. 모든 종교가 행위를 가르친다. 세상의 종교나 교육이나 기타 모든 가르침에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이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 멀리해야 하고, 선을 행해야 하며,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하며, 정직과 진실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에 따라서 금세와 내세에 상을 받든지 벌을 받든지 하는 것이다. 자기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자기가 받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피곤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 멍에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힘들게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형벌이 두렵고 죄과가 두려워서 선을 행하려고 무척 노력한다. 그들의 선은 지독한 이기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예컨대 불교의 경우를 보자.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자비는 같은 자비가 아니다. 불교는 자비를 얻기 위하여 자비를 베푼다. 그러나 기독교는 비참한 죄인이 십자가의 피로 죄 용서함 받은 엄청난 자비를 입었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동하여 자원함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종교적인 행위가 기독교에 들어와서 기독교인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는 것인데 마치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야, 죽도록 충성해야 천국에 가는 것처럼 사단이 속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죽으셔야 했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대와 나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죽으심으로 다시 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의인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나 신앙 경력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생각해 보라. 구원이 신앙경력으로 말미암았다면 예수님 한편에 있던 강도는 어떻게 낙원에 갈 수 있었겠는가? 그에게 무슨 경력이 있었는가? 그에게 무슨 선행이 있었는가? 그가 새벽기도를 다녔는가? 그가 예배당을 지었는가? 그에게는 순수한 믿음 만이 있었을 뿐이다.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인 것을 깨달았고 예수님만이 자기를 낙원에 데려갈 수 있는 구원자라는 사실을 시인한 것 외에 그의 경력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누가복음 23:29절 이하).

   구원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다. 단순히 믿음으로, 십자가의 피로 거듭나는 것이다. 거듭나는데 있어서 신앙경력은 아무 쓸모가 없다. 니고데모가 그 증인이다(요한복음 3장).

   오!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기독교인들이여, 진지하고 진솔하게 영혼의 문제를 검토해 보라. 그대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지옥에 버림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 성경은 말하기를 그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읽어본 마태복음 7장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대의 영혼은 그대가 사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은 그대의 영혼을 책임질 수 없다. 그대가 섬기는 훌륭한 목사님이라도...!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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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믿음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점검해보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23).


   1973년 빌리그래함 초청 복음전도대회(7.29~8.16)가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다. 그때 빌리그래함과 여러 명의 수행 목사님들이 같이 오셔서 전국에서 초교파적으로 집회를 가졌었다. 수행한 목사님들은 지방에 흩어져서 집회를 하였는데 전북 전주에서는 전주 신흥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집회를 하였다. 전주에 오신 목사님은 E. J. 다니엘 목사님이셨다. 그 목사님은 마태복음 7장 21~23절 말씀을 읽고 난 뒤 운동장을 가득 메운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충격적인 말로 설교를 시작하였다.

   "여기에 모이신 목사님들은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나지 못했으면 지옥에 갑니다. 장로님들은 구원받았습니까? 그렇지 못하면 지옥에 갑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죄용서 받은 기쁨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진정 이와 같은 경험이 없다면 멸망의 지옥에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십 년 교회에 출석하였을지라도 지옥에 갈 것입니다."

   다니엘 목사의 설교는 연일 모인 수많은 군중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운동장에 모인 전북 각 지역에서 온 교인들과 지도자들을 놀라게 한 이 한편의 설교를 필자는 잊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하나님 없이는 못 산다고 고백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생각하며 과연 그들이 다 천국에 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룸으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게 하고자 한다. 사도바울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린도후서 13:5).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구원 문제를 검토해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앞의 말씀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여 주여' 하고 부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되 물불 가리지 않는 봉사와 수고를 한 자들이다. 그들 자신은 누가 뭐래도 천국에 간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잘 믿으니 틀림없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많은 능력을 행했다. 귀신을 쫓아냈다. 그들은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평신도는 아니다. 그들은 기독교 지도자들임이 분명하다. 자타가 인정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했으며 하나님만을 위해서 외길을 달려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셨다. 23절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중요한 이야기이다. 생각해 보라. 지도자들이 그러하다면 평신도들은 어찌하겠는가. 혹자는 말하리라. 그렇다면 이 시대에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말은 대단히 의미 있고 중요한 말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주님이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살펴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전파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며, 하나님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는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통령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대통령에 관한 내용들을 잘 정리하여 누구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만난 적도 없고 사귄 적도 없고 인사를 나눈 적도 전혀 없다. 믿음에 있어서도 이와 같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하며, 심지어 순교까지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이 글을 읽는 열성 신자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알고 계신지 확신이 있는가? 그 확신이 일방적인 확신은 아닌가? 진정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는가? 이 질문은 실로 끔찍한 종말을 피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점검해보기를 바란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짝사랑하는 불쌍한 기독교인은 어쩌면 한국 기독교인의 대부분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말씀 이전에 7장 13절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하였기 때문이다. 이 넓은 문에 관해서 보통은 기독교 아닌 이교도로 막연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거짓 선지자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독자여, 본문을 잘 살펴보면서 일평생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온 나도 지옥 갈 수 있다는 끔찍하고 두려운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점검하기 바란다. 나는 큰 교파에 속했다고 자위하지 말라. 나는 크고 유명한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안심하지 말라. 대부분 크거나 유명한 곳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분명한 것은 넓은 문은 멸망의 길이며 그 날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외면당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재림하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초림 때의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진정 예수님을 믿고 기다린 신자들이 몇 명이나 되었는가? 시므온과 동방박사와 안나 등 몇 명에 불과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 4명이 구원받은 것을 잊었는가. 노아 시대에 몇 명이 구원받았는가? 성경은 증거한다. 겨우 여덟 명이라고(베드로전서 3:20).

   오늘날 이 화려하고 웅장한 기독교 속에 진실로 거듭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두렵고 떨릴 뿐이다.

   필자는 며칠 전 서울 모교회 집회에서 90이 다 된 노인을 만났다. 그는 20살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열심을 다하여 다니셨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천국에 간다는 확신은 없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지옥이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확신에 관해서 말씀드렸을 때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떠나가려 하였다. 떠나가는 그에게 필자는 "부친은 절대로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아가시면 지옥에 갑니다." 하고 경고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헛 믿었다는 말이요?"

   "네 그렇습니다."

   그는 속상한 모습으로 떠나갔는데 내일 오시라고 해도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나갔다. 필자는 그를 위하여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이튿날 왔다. 그리고 말씀이 끝난 뒤에 물어보니 구원받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얼굴이 환하게 변화되어 있었다. 아마 그는 전날 저녁 자신을 점검해 보았음에 틀림없다. 독자여, 자신에 대하여 관대하지 말라. 그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흔히 자신에 대하여 관대하고 자신의 길을 무작정 옳다고 인정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예수님이 초림하셨을 때에 대하여 더 이야기해 보자.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는 시간에 예루살렘에서는 율법에 익숙한 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정통이라고 생각했으며 율법의 준행자요, 수많은 선진들이 물려준 신앙의 계승자라고 자처하며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그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질타하셨다. 그들은 말은 매끄럽지만 실제는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않은 마귀 자식들인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고 사랑하지만 그들의 행실은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아니하여 이방인들에게 "예수 믿는 놈" 이라는 비방을 들으면서 마귀 자식의 모습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로마서 2:24).

   어떤 회사 사원은 자기 사장님이 장로인데 사장님의 전도로 교회에 다녔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사장님은 교회에서는 천사인데 회사에서는 무서운 사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왜 에배당에서만 신자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여러분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라.

   수천 명이 모여서 의식을 갖추어 유월절 예식을 엄숙히 진행하는 군중 속에 속할 것인가? 아니면 초라하지만 12명이 모였던 그곳, 예수님이 함께 하셨던 그곳에 속할 것인가? 오늘도 동일하다. 숫자에 유혹 받지 말라. 큰 에배당에 유혹 받지 말라. 큰 세력을 자랑하는 교파에 위안 받지 말라. 당신의 생명은 당신이 사랑해야 한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확신이 있는가?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는가?

   필자는 오래 전에 유명한 교파의 전도사 사모님과 상담한 적이 있다. 그는 필자가 주관하는 집회에 참석했는데 끝나고 난뒤에 필자에게 "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느냐'고 하였다. 필자가 "무슨 뜻이냐" 하니 나의 설교를 듣고 구원 문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웃으면서 "흔들어 보아서 가짜라면 진실로 거듭나면 되는 것이고 진짜 같으면 점검해 보았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답변하니 그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필자는 또 말했다. "흔들리는 것을 보니 진짜이기는 어렵겠구먼." 하니 그는 고민하면서 집으로 갔다. 필자는 그 영혼을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오, 사랑하는 독자여, 사단의 정체는 거짓말쟁이이다. 사단은 사람을 속이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다. 따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속였지 아니한가? 사단은 지금도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그들은 자기 생각에 속고 있으며 자기 지식에 속고 있으며, 환경에 속고 있는 것이다. 사단은 속삭인다.

   "너는 잘 믿고 있는 거야. 너는 훌륭해. 너는 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왔어. 너는 수십 년간 믿었지 않느냐? 네가 구원받지 않았다면 누가 구원받았겠느냐? 너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아니냐? 너는 칭찬받는 집사가 아니냐? 너는 교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네가 구원받지 못했다니, 그런 일은 없다. 절대로 안심하라.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지 않느냐? 너는 지금 에수님을 믿고 있지 않느냐?  성경을 믿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 아니냐?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 그래, 우리 목사님 말씀에 단순하게 믿으라고 하였으니 무조건 믿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필자는 경고한다. 이 모든 것이 사단의 속삭임이라고... . 사단은 얼마나 그럴듯하게 사람들을 속이는가.

   며칠 전 필자는 전도지를 나누고 있는 집사님과 노상에서 대화한 적이 있다. 많은 말을 했지만 그 중에 한 가지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필자가 물었다. 그는 '우리 목사님이 천국에 갈 수 있느냐 물을 때 갈 수 있다고 대답하라고 여러 번 교육 시켰다"고 했다.

   독자여, 정신을 차리라. 도대체 구원문제가 교육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억지로 대답한다고 천국에 가는 것인가?

   교제하는 중에 그는 죄가 있다고 하였고 거듭나지 못했고, 거듭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천국에 간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목사님에 의해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거듭남도, 거듭남의 뜻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필자가 전해주는 복음은 끝까지 거부하고 자기 교회 목사님이 천국 간다고 했으니 천국 간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얼마나 불쌍하고 미련한 영혼인지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옥에 가서 목사님 멱살을 잡고 영원히 원망하며 싸울 것이다. 통곡하며 후회할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여, 여기까지만 말하고 그치고자 한다. 다음부터는 구체적으로 점검해 볼 수 있는 사례들을 열거하고자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린도후서 13:5).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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