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전 대륙이 제2차 세계대전의 피비린내 나는 살륙의 불길에 싸였을 때,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재빠른 비행기의 편대가 나타나 수 없이 많은 삐라를 하늘에 날리고 사라졌습니다.


   #히로시마 시민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00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시민들은 영문모를 경고장에 대하여 각기 나름대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설마 무슨 일이 있을려구?", "그 때 가봐야 알지"

   그러나 그 중 몇몇 소수의 무리는 급히 가산을 정리하여 가족과 함께 정든 히로시마를 떠나 50리 밖으로 대피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

   서쪽에서 날아온 비행기는 상공을 두어번 선회하더니 조그만 물체 하나를 떨어뜨리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잠시후, 폭음과 함께 죽음의 구름은 온 시가지를 뒤덮었고, 마지막 시간까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불신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순식간에 히로시마 시민 30여만 명의 생명과 재산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원자탄의 위력은 잘 알지 못하지만 종이쪽지의 경고를 받아들인 소수의 무리들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의 증인들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미 공군의 경고보다 더 무서운 경고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 경고를 알고 계십니까? 이 경고는 참되신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 때(노아시대)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베드로후서 3:6,7). 이 세상은 경건치 않은 죄악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불사르기 위해 간수되었다고 경고하십니다.

   또한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9:49)고 경고하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겠습니까?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당신의 죄를 담당해 주심으로(베드로전서 2:24) 당신이 꼭 한번 지불해야 될 죄에 대한 댓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치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당신)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이제 당신은 깊이 생각하시고 신중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사랑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 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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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F. 스마아트  &   J. 영


                           제 2 과


                         여성의 범죄와 그 결과(창세기 3장)


   창세기 3장을 공부하기에 앞서 2장 16,17절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이것은 해도 좋지만, 저것은 해서는 안된다' 하신  하나님의 분부가 아주 분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불순종에 대한 형벌을 경고하셨습니다. 도덕적 존재로서 창조된 최초의 인간은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선택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할 수도 있었고, 불순종하며 제멋대로 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최초의 남녀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처로 주셨던 아름답고 풍요로운 동산에서, 얼마 동안이나 평화스럽고도 의좋게 살았는지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평화는 깨어졌고, 대신 비극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자 때문이었습니다.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던 금단의 과실 나무 가까이에 있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 과실을 따먹으면 어떻게 될까를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서성 거렸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랬다면 유혹하는 자에게 있어서 이는 안성 맞춤의 기회였으며, 이러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사단이 이를 놓칠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혹에서 가능한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죄의 유혹을 받을 만한 일에는 섣불리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    혹


   뱀은 교활한 질문과 거짓말로, 여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모두 의심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손대지 못하도록 금하신 것이 있지 않느냐? 왜 그러셨는지 아느냐? 네가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불행이 닥쳐오겠니! 하나님께서는 다만 네가 하나님처럼 위대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실 뿐이야! 이 과실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래! 보라구, 보기에도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만 먹으면 넌 지혜롭게 될거야!'

   이처럼 뱀은 욕심과 교만에 호소하며 하와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죄


   하와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하와가 뱀의 그 모든 제의에 대해 잠깐만 깊이 생각해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거늘 어찌 감히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할 권리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젖혀놓고 사단의 말을 믿는 그 순간에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 고 말씀하셨지만, 뱀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보다 다른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하나님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와는 마침내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자비를 외면했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채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남편까지도 이 일에 끌어들였습니다.

   한편 주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던 때의 사단의 접근 방법이 하와가 당했던 경우와 너무나 유사했음을 유의해 보십시오(마 4:1~10). 사단은 세 차례나 주님을 시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주님께 주시지 않았던 권세와 명예와 재물을 주님 스스로 취하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 번 모두 하나님의 말씀만을 인용하고 의롸하심으로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과 어떠한 논쟁도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오늘날 우리를 유혹하는 데에도 이와 똑같은 수법을 사용합니다. 세상에 반짝이는 것들을 우리 앞에 흔들어서 우리로 그런 것에 욕심을 내도록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 육신의 정욕과(하와에게는 그 과실이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안목의 정욕과(하와에게는 그 과실이 보암직스러워 보였습니다.)  이생의 자랑이니(하와에게는 그 과실이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5,16)고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이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생깁니다.

   결론적으로 하와는 하나님께 범죄했을 뿐 아니라, 아담을 무시하고 행동함으로써 아담에게도 범죄하였습니다. 이렇듯 하와는 아담이 행사하게 되어 있는 지도권을 남용함으로써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본분에서 이탈하게 되면, 우리는 무질서와 근심외에 다른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범죄의 결과


   하와의 범죄는 즉각적으로, 이전에 가졌던 순수한 상태가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대치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죄로 인한 최초의 증세는 부부 관계에서 나타났습니다(창 3:7). 곧 이 죄는 창세기 2장 23~25절에 나타난 부부 일체의 원리를 파괴한 것입니다.

   뱀이 그들에게 선악을 알게 되리라고 꾀었던 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선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이를 실천할 힘은 없었으며, 그들이 악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이를 물리칠 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궁극적인 결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죽음이었습니다.

   이 죽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즉시로 이들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영적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둘째, 세월이 지난 후에 그들은 육체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임하게 될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곧 영원한 죽음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높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으나(창 3:5), 도리어 죽음과 더불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는 이와 대조적인 사실을 보게 됩니다. 주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공부하시는 여러분도 하나님의 강하신 손 아래 스스로 겸손하십시오. 때가 되면 그가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벧전 5:6).

   이렇듯 죄가 들어오게 되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행복한 관계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들 최초의 남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피해 숨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후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은혜로 도우시며, 축복해 주시려고 우리 인간들을 찾고 계십니다.


                    범죄로 인한 형벌


   하나님께서는 이 범죄 사건에 관련하여 세 가지 대상들 즉, 뱀과 남자와 여자를 각각 다루시되, 뱀과 땅은 저주하셨지만(창 3:14,'17) 남자와 여자를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옛 뱀(계 12:9)이라고 불리우는 타락한 사단의 상징으로서, 뱀을 보다 하등한 돔물로 격하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최후 운명에 대해서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 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창 3:15).

   또한 남자에게 내리신 형벌은 그가 평생토록 가장 보람을 가지고 해야 할 근로가 이제는 고통과 수고와 피로를 수반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그의 몸이 흙에서 지음을 받았던 대로 흙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형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내리신 형벌은 근본적으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본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창 3:16). 즉, 여성으로서의 특유하고도 축복된 기능, 곧 어머니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데에 고통과 슬픔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여성들은 언제나 자녀를 갖고자 하는 강한 갈망이 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그의 소원을 성취할 수는 있었지만, 그 때마다 죄로 인해 당하게 되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슬픔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가 와서, 이제는 남편의 권위에 복종하며, 다스림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죄를 지을 때에는 하와가 지도자였고 아담이 하와를 따랐으나, 이제는 하와가 아담에게 복종해야만 했습니다. 창조의 질서에 있어서 아담에게 지도적 권위가 부여되어 있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와가 아담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타락한 이래로 결혼에 대한 갈망, 그리고 결혼에 의한 종속이 여성 대부분의 숙명처럼 되어왔습니다. 여성사, 특히 비 기독교 국가에서의 여성사는 굴종과 멸시, 천대의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와서 남성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킴으로, 이러한 굴종과 멸시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형벌의 선언 가운데 16절에서의 고통, 수고라는 낱말과 17절에서의 수고라는 낱말은 한가지로 정신적이고도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형벌이 내려졌다는 점에 있어서는 남녀간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즉 피로와 고통을 견디면서 처절하리 만큼 수고하는 것이 남녀 모두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비취어오고 있는가를 유의해 보십시오. 비록 여자가 먼저 범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구속 사업의 일익을 담당하는 영예를 안겨 주셨습니다. 여인의 후손, 곧 사단의 희생 제물이 되었던 하와의 씨가 바로 그 사단을 멸망시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창 3:15). 우리는 이 약속의 성취를 히브리서 2장 14절의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셨다는  말씀에서 보게 됩니다.


                         현대 여성의 지위


   죄악이 가득한 인간 본성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는 타락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권위가 확립되고 유지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남자가 가정의 머리가 되어, 그 가정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권위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리는 궁극적으로 결혼 생활과 사회 생활 전반에 걸쳐 유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해보겠다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에 유의해서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믿는 아내에게 이러한 여성의 지위에 대해 더 상세하게 교훈해 주십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상세히 상고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지적하려는 것은 이것이 영구적인 원칙으로서 복종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의 축복을 위해서 그렇게 계획하셨다는 점입니다.

   여성 중에 몇 사람이나 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전 가족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완전히 책임을 지겠노라고 결단을 내리고 그 길을 선택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시 103:14)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성으로 하여금 조력하도록 계획하셨고, 조력하는데 알맞게 하셨을 뿐, 한 가정의 가장으로 계획하셨거나 세우시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관한 한, 창세기 첫머리에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정상적인 일입니다. 폐일언하고, 여자를 창조하신 순서에서 보나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여자의 본분은 남자를 '돕는 배필' 로서의 역할, 곧 후원적이고 보조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엘리사벳 엘리오트(Elisabeth Elliot)는  "나는 모든 남성이 아주 강인하고, 지성적이고, 유능하고, 덕망이 있고, 거룩해서 남성 우위가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남성 우위란 그들의 훌륭함과 무관한 천부적인 지위임을 알고 있다" 고 술회했습니다.

   아직도 복종의 개념이 좀체로 깨달아지지 않으십니까? 복종하라신 하나님의 명령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명령을 깨달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일상 생활에서 평안을 누리며 사는 비결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친히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번뇌가 그치기까지


                                                 주님의 평온을


                                                 새벽 이슬처럼 내려 주소서 !


                                                 우리의 심령에서


                                                 긴장과 초조를 제하여 주소서 !


                                                 그래서


                                                 우리의 단정한 생활로



                                                 아름다움을 나타내게 하소서 !


                                                                                          J. G. Whit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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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09 더 많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18:23-20:38)


요절 :  요한복음 14장 12절, 디모데후서 4장 7,8절

요점 ;

1.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은 성령님을 모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 사단은 하나님의 사역을 모방하려고 힘씁니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행운의 부적이 필요없습니다.

4.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5.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6.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긴 삶은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의 부흥


1. 바울과 아볼로의 여행(18:23-28)


바울은 우리가 소아시아라고 부르는 갈라디아와 브루기아의 지역의 모임들을 다시 방문하는 동안에 아볼로가 에베소로 왔습니다. 아볼로는 실제로 아프리카계 유대인으로 알렉산드리아 태생이었습니다. 그는 말을 잘 하는 사람으로 구약성경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도 주님에 관한 것을 가르치는데 매우 진지했습니다. 그는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곧 오실 것을 증거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주 예수님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볼로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실제로 기독교에 관해서 더 많이 알고, 회당에서 아볼로가 전하는 것을 듣고 있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였습니다. 그들은 아볼로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해 주었습니다. 아굴라는 위대한 설교가가 아니라 장막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18:3). 비록 아볼로가 훌륭한 설교가이었지만 이 훌륭한 사람들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은 것은 좋은 태도입니다. 이 새롭고 더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 아볼로는 헬라에 가서 유일하신 구주 그리스도를 그곳에 전하기 원했습니다.


2. 에베소에서 바울 : 요한의 제자들(19:1-7)


아볼로가 그리스의 큰 도시인 고린도에 있는 동안에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아볼로처럼 침례는 받았지만 그리스도에 관해 거의 모르고 있던 12명의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주 예수님에 관해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쳤고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그들 위에 임하셨고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그들도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구원받은 후에 침례를 받지만 거듭날 때 성령님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고 있다는 증거는  주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친절하고 진실되며 더욱 그리스도를 닮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3. 바울이 전파하며 많은 기적을 행함(19:8-16)


이 후에 바울은 회당에서 3개월 동안 전파하였지만 유대인들이 결사적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거절하자 그는 옮겨 두란노 서원(school of Tyrannus)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일은 2년동안 계속되었고 복음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지방으로 퍼졌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이 실제로 옳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에 행했던 것보다 더 큰 기적을 에베소에서 행할 수 있도록  특별한 권능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 임하면 제자들이 주님께서 행하셨던 것보다 더 큰 일들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2). 심지어 바울의 천 조각들 조차도 병자나 귀신에게 괴롭힘을 받는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는데 사용되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일을 시작하실 때면 사단이 그것을 방해하려고 힘쓴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단이 그 일을 방해하지 못한다면, 때때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과 사단에게 속한 것을 결코 구별하지 못하도록 그일을 모방하려고 애씁니다. 이제 여기에서 예수님과 바울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는 7명의 사람들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은 상처를 입고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에서도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4. 에베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19:17-22)


사단의 거짓 역사가 드러나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되면 주 예수님의 이름은 더욱 더 높여집니다. 그 결과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책을 가져다가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웠습니다. 이 비밀의 책들은 매우 값비싼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팔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악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겠다는 사실로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행하는 여러 가지 모습이 구원받지않은 다른 사람과 독같이 행동 한다면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큰 은혜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계속해서 마게도냐, 헬라, 로마에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방문하기 원했지만 먼저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보냈습니다.


5. 데메드리오와 은장색(19:23-28)


사단이 하나님의 권능을 모방하려는데 실패하자 이제 다른 방법으로 성도들에 대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데메드리오와 여러 은장색들은 아데미라는 거짓 종교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아데미 상을 만들어 그것이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고가로 팔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더이상 그들의 옛사단적 종교를 생각나게 하는 이러한 물건들을 구하지 않게 됩니다. 은장색들은 그들의 사업이 불리하게 되어가자 바울을 비난하며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종교를 통해서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믿지 못하도록 막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보다도 그들의 돈에 관해서 더 생각합니다.


6. 온 성에 소동이 일어남(19:29-41)


사람들이 바울의 동료들을 붙잡았으나 바울의 친구들은 바울이 그 위험한 곳으로 달려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군중들은 거의 두시간동안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라고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침내 서기장이 사람들을 안정시키자 외치는 것이 멈추었고 아주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한번 위험이 지나갔고 사도는 해와 위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이 가장 암흑하게 보이는 때에라도 언제나 자신의 종들을 구하실 수 있는 방법을 갖고 계심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두려운 환경은 결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1. 에베소에서 헬라로, 그리고 드로아로 돌아옴(20:1-9)


에베소의 소동이 지나가자 바울은 마게도냐로 갔고 그 다음에 헬라, 아마도 고린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3개월 후에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계획하자 그곳을 떠나 소아시아와 수리아로 돌아갔습니다.

   바울이 방문했던 장소와 그와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는 어느 곳에 가든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지칠줄 몰랐습니다. 이들 중에 얼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몇 사람은  주님께 대한 사역으로 바울을 돕기 원했습니다. 4절에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여행하며 얼마동안 지내게 된 특권을 가진 7명의 이름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얻으려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2. 바울이 청년을 살려줌(20:7-12)


마침내 바울은 다시 드로아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한 주일을 머물렀습니다.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제자들이 떡을 떼며 주님을 기억하려고 다락방에 함께 모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상당히 길게, 사실상 밤새 설교했습니다. 그가 놀랄만한 설교자였음에 틀림없었고 사람들은 물론 그가 말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밤 중 쯤 창가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청년이 깊이 졸다가 3층 창가에서 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내려가서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하며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아침까지 말씀을 계속 전할 수 있었습니다.


3. 바울이 걸어서 여행함(20:13-16)


바울과 함께 여행한 일곱 사람의 이름이 앞에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의 기록자인 누가도 바울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해야만했던 그들은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이며, 어떠한 교제가 있었을까요! 24장 17절에서 바울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에게 구제의 선물을 가져가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바울이 여러사람과 함께 여행하기 원했던 이유 중의 한가지일 것입니다. 그 물질은 여러 교회들에게서 받은 것이었고 이 사람들은 바울이 정말로 그 모든 물질을 의도했던 사람들에게 가져간 것에 대한 증인이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경찰이 없던 그 당시에 여행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바울에게서 이 거액의 물질을 강탈하려 한다면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육로로 20마일을 걸어서 배가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그들과 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걷는 것은 매우 좋은 운동입니다. 어느 정도의 운동은 건강 유지에 필수적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았으며 할 수 있는대로 주님을 섬기는데 적당하고 좋은 건강 상태이기를 원했습니다.


4. 에베소 장로들에 대한 바울의 작별인사(20:17-27)


바울은 다시 도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때에는 에베소에 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바울이 머물며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갈을 보내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장로들을 밀레도 항구로 내려오게 했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그들 가운데 있을 때 했던 사역을 상기시키고 앞으로 직면할 문제들을 경고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어떻게든 자신을 자랑하지 않으면서, 삼년 동안 에베소에서 자신의 생활을 위해 일하며 그리스도에 대해 그들에게 더 말해 주려고 공적으로든 그들의 집을 방문해서든 전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21절)을 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을 증거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24-25절)를 항상(18절), 밤낮으로(31절) 전했습니다. 참으로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리낌 없이(27절), 유대인들로부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19절) 전하였습니다.

   그가 사랑했고 바로 마지막까지 섬기기로 결심한 분에 대한 얼마나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섬김의 본입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에서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려고 힘써야 합니다.


5. 바울이 그들에게 직면할 위험을 경고함(20:28-35)


에베소에는 아주 견고한 교회가 있었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그들을 세우려고 많은 것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한 자들이 밖으로부터 와서 주님의 사역을 파괴하려고 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욱 악한 것은 교회의 지체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지 않은 것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이러한 거짓 교사들이 저지른 악행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 악한 사람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그들 자신과 교회의 남은 자들을 돌보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장 4절에서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단이 항상 주님의 사역을 훼방하려고 바삐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 사랑과 슬픔(20:36-38)


그들에게 직면할 악한 날을 경고한 후에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과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였고(32절) 그들 모두는 울면서 그에게 입맞춤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를 다시 볼 수 없겠다는 그의말에 슬퍼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그곳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8년 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돌보신다고 위로했습니다. 장로들은 에베소로 돌아가는 28마일 여행을 시작할 때도 그 일로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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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

 

                     거듭남(Born Again)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처음 태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 하늘로부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두 번째 출생)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첫 번째 생일은 1951년입니다. 저는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요9:34) 성경은 우리가 날 때부터 본성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하나님에 관해서나 영원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못하였고 또 관심도 없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유아 세례를 받앗고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으로 알고 지내왔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오락실등의 의심스러운 장소에 가는 일은 허락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일 학교와 교회의 집회에 자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이 되었을 때, 저는 간추린 교리문답서를 공부하였고, 11살이 되었을 때에는 형 해롤드와 저는 교회 집회에 참석해보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기위하여 저희는 먼저 집사님들과 만나야 했고, 집사님들은 우리형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형 해롤드는 그분들의 질문에 대답을 아주 잘하였고 저는 그 대답에 그대로 동의 하였습니다. 그리고서 우리 형제는 교회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져, 만찬 예배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천국을 향해 순조로운 항해를 하는 자로 인정 받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형 해롤드는 복음에 관한 어느 소책자를 읽는 중에 그 자신이 여전히 길을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해롤드는 그 때로부터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게 되었고 자신이 지은 죄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의 피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아 지워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일이 있고난 바로 직후에 해롤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순하게 모이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고 그들과 성경말씀으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형은 집으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그와 같은 유형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이 곳에서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서 약 18km 떨어진 곳의 작은 읍 소재지에 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하나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날부터 형 해롤드는 조금도 힘들어 하지않고, 변치 않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자전거 페달을 부지런히 밟아서, 매 주일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그 곳 모임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 18km나 떨어져 있는 곳까지,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해롤드의 모습은 거의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부모님에게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린 우리 형제들은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갔지만 부모님들은 한 사람의 자리 밖에 없는 경마차에 두 분이 타고 그곳 모임의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나의 눈이 크게 떠지기 시작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매 주일이 지나면서 우리 형제의 주일학교 교사이신 미스 반데카르 선생님은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말씀을 우리의 어린 마음 속에다 천공기로 강력하게 구멍을 뚫어서 그 속에다 집어넣어 주는 것처럼 넣어 주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이 잃어버린 죄인이며, 그래서 저 아래 지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은 죄들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 모든 죄로 인하여 저와 하나님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어떤 죄인이라 하더라도 죄인은 결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결코 거할 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한 진리가 완전히 소화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로마서 6장 23절 말씀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죽음과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분리 이 둘은(원)죄의 결과였습니다. 즉 죄의 삯에 대한 값이 지불되어야 하는데, 내가 지은 죄 하나하나 모두에 대하여 값이 지불되어야 했습니다. 이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장 위대한것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곧 제2위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모든 사람의 죄값을 치루시기 위한 댓가로 예비해놓으셨습니다. 미스 반데카르 선생님은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하는 말씀을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우리 마음 판에 잘박힌 못을 박아 놓은 것처럼 그렇게 강하게 잘 박아 놓으셨는지요!  그래서 우리는 크고 흰 백보좌 심판이 마치 지금 현재 우리 앞에 펼쳐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생애에서 지금 이곳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 형제들 모두는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시는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만하고, 결국 우리는 지옥 불 못 속에 던져져서(계20:10-15),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할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얼마나 두려워하며 떨었었는지요!

 

   그렇게 3년의 두려움 속에 사는 불행한 세월을 보낸 후, 어느 주일날에 시카고로부터 세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와서 우리의 조그만 모임을 방문하였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주의 죽으심과 그 안에 있는 주님을 기억하는 만찬 예배가 끝난 직후에 "그리스인 토니'라고 알려진 방문자 중에 한 사람이 제게 조용히 다가와서 제게 구원받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즉각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구원받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분은 사이즈가 비교적 큰 성경책을 펼치더니 잃어버린 상태에 관한 많은 성경구절을 찾아서 저를 위해 읽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 사실을 믿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즉각 "물론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서 이분은 저로 하여금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요한 복음 3장 16절 본문에서 세상이 나오면 세상이라는 말 대신에 그곳에 제 이름을 대신 넣어서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에므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만약 에므리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믿기만 하면 에므리는 멸망치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저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죽으셨고 저의 모든 죄를 위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은 모든 죄들의 유죄성과 타고난 원죄가 고스란히 저에게 그대로 있는 그 곳에서 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하나님을 영접하였으니 하나님은 결코 제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영접하였으니 저는 이미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탄생 즉, 영적인 탄생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의 유죄에 대한 책임을 지시고 정당한 값의 죄 형벌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물로서 저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이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저에게 어떻게 쏟아 부으셨으며, 저를 인도하사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구주로 믿게 하셨는가에 관한 나의 경험과 나의 간증입니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지난 모든 세월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제게 신실하신분이신가를 증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저를 모든 어려운일 가운데서도 넉넉히 지켜주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입증해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와 구주로 영접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EMMAUS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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