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존 필립스

                                           CHAPTER  2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확신

                               Being Sure of Heaven


   별로 많은 지식을 갖지 못한 한 노부인이 교회 집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후, 그녀의 마음에 갑자기 의심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분명한가?" "이와 같은 나의 경험은 진실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진실로 구원은 우리 자신 스스로가 확신할 수 있는 분명한 체험일까요? 실제로 이 노부인의 마음 가운데 일기 시작한 의심들은 바로 사탄이 쏘아대는 것들이었습니다. 순간 그녀는 성경을 열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손가락으로 짚었습니다. 그리고 침대 천을 제키며 그밑에 숨어 있는 악마에게 그 성경 구절을 들이 대면서 "자, 여기다. 네 자신이 이것을 똑똑히 읽어 보아라"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노부인이 취한 행동은 참으로 현명한 방법이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다음의 세 가지 진리에 근거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함 (Besides in the Word of God)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지함 (Rests on the work of Christ)

   성령님의 증거를 받아드림 (Results from the witness of the Spirit)


   본과에서는 구원의 확신에 관한 위의 세 가지 기본적인 진리들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구원의 확신에 대한 모든 의문들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바로 성경말씀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이브를 유혹할 때, 사탄은 제일 먼저 그녀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해제시켰습니다. 이브는 자신을 꾀는 사탄에게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분명하게 사탄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으로 사탄의 공격을 받아넘겨 보려고 하였습니다(창 3:1-3).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구원에 대한 의심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대신 사탄에 의해 그 마음이 해이해진 까닭입니다.


   1. 성경의 근본 저자 (The Authorship of the Bible)


   만일 우리가 성경의 근본 저자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면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심령과 의지와 양심에 그의 절대적인 권위로 말씀하십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2. 성경의 절대 무오성 (The Accuracy of the Bible)


   만일 성경의 절대 무오성을 의심하게 되면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성경은 가장 오랜 세월 동안 그 원본의 내용을 유지하며 지켜져 내려오는 유일한 책입니다. 그리고 한 권으로 된 책이 아니라 크고 작은 여러 책들을 모은 방대한 책입니다. 그 내용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도합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책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인류 역사에 가장 크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유일한 책입니다. 성경은 그 원본이 정확하며, 인간의 지혜와 명철도 초월하는 확고하고 절대적인 진리라는 점에 있습니다(고전 1:18-31).

   성경에 오류와 모순이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회의론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이 있었으나 끈질긴 조사를 통하여 그와 같은 오해는 사라졌습니다. 저명한 학자 웨스트콧(Westcott)과 홀트(Hort)는 신약 성경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 사용된 낱말들 중에서 의문이 제기되는 낱말들의 비율은 사실상 무시할만하다. 실질적 변이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전체 변이의 적은 분량에 불과하며, 전체 성경 원본의 1천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적어서 문제가 될 만한 여지가 없다" 또 다른 저명한 학자 역시 "신약 성경 사본들 간의 미세한 변이는 성경 전체의 풍부한 뒷받침으로 말미암아 의심의 여지 없이 단 하나의 믿음의 신조, 신앙적 교훈에 하등의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님도 증언하셨습니다. 그는 항상 성경을 통하여 우리를 감화시키셨고, 성경을 인용하셨으며, 성경의 권위를 확증하셨고, 친히 그 교훈을 따르셨습니다. 그는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요한 10:35)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오직 우리는 성경으로 되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친히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보고, 그 교훈 안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3. 성경 말씀의 신뢰성 (The Acceptability of the Bible)


   만일 성경 말씀에 대한 확실한 신뢰가 없다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성경의 교리나 명령은 종종 우리 자신의 본성적인 욕구나 인간적 지혜와 충돌합니다. 우리는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게 될 때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모든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고, 뿐만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그것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 (딤후 3;16-17)에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얻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사람의 증언을 받을 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요한일서 5: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한 10:27-29).

   그 외에도 구원의 확신에 도움을 주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일부 난해한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거듭난 자들에게 주신 새 생명(eternal life)은 세상의 물질처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하신 우리 주 예수께로부터 온 불변의 것입니다. 언젠가 변하고 끝나는 것이라면 영생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자들에게 이러한 새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자신이 이러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29)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 손으로 주시고 다른 손으로 빼앗아 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로마서 8장은 구원의 확신을 위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 말씀은 "정죄함이 없다"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읽고, 묵상하고, 암기하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 (The Work of Christ)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이 구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바라보게 하여 우리를 참된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기쁜 소식(복음- Good news, Gospel)입니다.


   1.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 (Salvation from Sin's Penalty)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고전 15: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수많은 희생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놀라운 예표입니다. 이들 희생 제물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에 의해 명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속죄나 혹은 예배를 원할 때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희생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특별히 번제(burnt offerring)와 속죄제(sin offerring)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잘 예표해 줍니다. 이와같은 제사들에 관해서는 레위기 1장과 4장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번제나 속죄의 제물들을 가져올 때, 죄인은 그가 드리는 희생 동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위한 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징적 행위들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속죄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예표하였고 번제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상징이었습니다. 속죄제는 죄인을 위하여 준비된 하나님의 예물인 반면, 번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속죄제는 죄인의 모든 죄가 대속 제물인 동물에게로 전가되는 것을 나타내며, 번제는 대속물의 의가 죄인에게로 전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제물들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대속자와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완전성과 확실성을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0-21).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형벌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죄의 권능으로부터의 구원 (Salvation from Sin's Power)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믿는 우리를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 되셨습니다"(롬 1:4).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낸 바 되었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은 사망을 이기신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주장하는 죄의 권능까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살아계십니다. 이는 기독교가 내세우는 단순한 신화나 무미건조한 종교적 교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심으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심으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4-25).

   우리는 구원함을 받은 후에라도 우리 마음 속에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될 때 그에게로 나아가 고백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1서 1:9, 2:1).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심으로 우리 안에 지금 함께 계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18,20). 이 세상 것들은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가 곧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아계셔서 인격적으로 우리 속에 함께 거하십니다.  성부와 성자께서 신비스러운 관계로 영원히 함께 하심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믿는 자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정말 감격적인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 14:11,20).


   3. 죄의 존재로부터의 구원 (Salvation from Sin's Presence)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죄의 존재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천국은 준비된 백성들을 위해 예비 된 곳입니다. 그 곳은 현재에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요한 14:2)고 말씀하셨습니다. 즐겁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믿는 자들이 이 세상의 삶을 통해 체험하는 모든 경험들은 장차 하늘나라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하늘나라는 영구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집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모두 심판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 53:5; 히 10:17).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내 구주로부터 모든 죄 값을 취하시고 또 다시 나에게 죄 값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장차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믿는 자들의 준비는 전 생애를 통하여 계속 진행됩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천국에 대한 약속은 영구 불변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이 세상에서 육체 가운데 머물고 있는 동안 현실적으로 우리의 상태는 종종 불완전하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계속적인 준비가 요구됩니다(빌 2;12, 엡 4:15). 이러한 과정은 주님의 재림으로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에야 우리들은 완전한 나라에서 완전한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죄가 들어 올 수 없는 완전한 장소로 우리를 옮겨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 (요한1서 3:2).

   천국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여기서 잠시 천국의 실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원자(atom)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설명으로 우리는 원자의 존재를 믿습니다. 현대의 어느 사람 중에 나폴레옹이나 아브라함 링컨과 악수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보존된 그들의 개인적인 기록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북극에 가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북극의 존재를 믿습니다. 흥미 있는 보고중의 하나는 죽음의 문턱에 까지 이르렀던 사람들의 천국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체험을 실제적으로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증언하는 천국에 대하여 전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초대형 망원경을 통해 우주 정거장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시대를 여는 과학의 힘을 믿는 우리는 이를 믿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마련하신 천국은 실제적으로 저곳(3층천)에 존재합니다. 망원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는 실존하는 천국을 볼 수 있으며,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그 찬란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차 그 나라에 이르게 될 날을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는 우리가 거하기에 충분한 것 그 이상으로 많은 집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너희를 위하여 내가 준비하러 가노라는 말을 내가 할 수 있었겠느냐?" (요 14:2 역자 의역)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장은 이 놀라운 천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그 집으로 불리움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그 나라에 들어 갈 준비가 되었다면 언젠가 당신과 나도 그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묻기를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하나뿐이신 그의 독자를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들은 멸망하지않고 그 대신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요 3:16 역자 의역) 실존하는 보이는 것들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은 훨씬 더 큰 능력을 줍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사실을 받아드릴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가 죽으실 때 나의 죄를 지시고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삶을 시작하게 하는 첫 번째 단계이며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영생의 시작입니다. 천국의 실존은 사실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피로 구속하신 자들을 위해 그곳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그곳에 갈 준비가 되셨습니까? 바로 지금이 그 기회입니다.

   "진실로, 절호의 때는 바로 지금이로다. 오늘이 바로 그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역자 의역). (Have a Good Day, November 2006 중에서)


   성령님의 증거 (The Witness of the Spirit)


   진정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제 3의 위격이신 성령님을 그 마음에 소유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를 성전 삼고(고전 3;16, 고후 6:16). 그 속에 함께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고 단언하였고, 다른 구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참조구절; 딤후 1:14, 요한 14:16 엡1;13 등)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실패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구원의 확신 중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근심하며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엡 4;30, 롬 8:26). 우리가 성령님의 거룩한 성품과 일치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 때 성령님은 탄식하고 근심하며 슬퍼하십니다. 근심한다(grieve)는 말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는 오직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슬퍼하게 됩니다, 이미 구원 받은 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구원 그 자체를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단지 구원의 기쁨을 잃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 다시 잃어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 10:28, 요 5:24, 히 10:12-18).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받은 자들 속에 들어오신 성령님도 결코 우리들에게서 다시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잘못을 범하여 구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앞으로 나아가 아뢰어야 합니다(요한 1서 1:9-2:2).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먼저 우리 속에서 근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곧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고 그 죄에서 돌이킴으로 깨끗함을 받은 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 5과에서 더욱 자세히 공부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위해 하시는 사역은 사실(Facts), 믿음(Faith), 감정(Feeling) 이 세 단어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들과 관련된 성령님의 세 가지 사역에 대해서 좀더 상고해 보겠습니다.


   1. 성령과 사실 (The Holy Spirit and Facts)


   첫째로, 성령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확실한 사실(facts)을 보여 주십니다. 히브리 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게시며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한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2-17).

   여기에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하나님의 말씀과 믿는자들의 죄 사함에 대한 사실(fact)들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2. 성령과 믿음 (The Holy Spirit and Faith)


   둘째로, 성령님은 믿는 자들의 믿음에 대하여 확증해 주십니다.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의 증언을 받을 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한1서 5:6, 9-11).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각자의 개인적인 축복으로 이어주는 생명의 고리가 믿음(believing)이며 성령님은 그러한 믿음을 확증해 주고 계십니다.


   3. 성령과 감정 (The Holy Spirit and Feelings)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믿는 자들의 감정을 통해(feelings)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5-17).

   구속함을 받은 자들의 심령 속에 넘치는 기쁨, 평안, 사랑의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해 아바(Abba)라고 부르짖게 합니다. 아바란 어린 아기들의 부르짖음으로 오늘 날 아빠(papa 혹은 daddy)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장성한 자녀는 아버지(father)라고 부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앞으로 그 자신이 당하실 십자가의 고통을 내다보시고 동일한 감정으로 부르짖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감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으셨습니다(막 14:36). 성령님은 주 예수님께서 그의 아버지를 향하여 가지셨던 똑같은 심정으로 우리 믿는 자들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도록 하십니다. 이 이상 우리가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은 인간의 생각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위에 두는 것이며,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지하는 것이며, 인간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증거에 의한 것입니다.

   이제 당신 자신에게 자문해 보기 바랍니다. 나는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사람의 감정이 아니고, 성령의 증거에 의해 심령에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당신은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빛처럼 증거하고 자석처럼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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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새로운 출생 (BORN TO WIN)

                                                                               -윌리암 맥도날드

                                          제3과

                                 본문 : 누가복음 18장 9-14절


                                  바리새인과 세리

                      (The Pharisee and The Publican)


   먼저, 바리새인과 세리란 두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바리새인(Pharisee)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장 정통적으로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 유대교의 한 종파입니다. 그러나 이 바리새인들은 지나치게 많고 세부적인 규례들을 만들었는데, 대부분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를 실천하는데 있어서도 실제 삶의 품행보다는 종교적인 형식에 치우쳤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종교적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세리(Tax collector)는 로마 정부를 위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세무 공무원이었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세리들은 유대인이지만 그들의 압제자인 로마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는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착복하는 자들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실제적으로 종교적 활동에서 제외된 부류였습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한 바리새인과 한 세리가 각각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아마도 바리새인은 성전 안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저 낮은 구석에 있는 세리와 같이 나쁜 사람이 아님을 감사하나이다. 저는 세금을 착복하지도 않고, 우리의 원수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으며, 간음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고 정기적으로 헌금을 바쳤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저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리는 성전 안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곳에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나쁜 죄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단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결말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세리는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주장한 바리새인은 여전히 죄인의 상태로 되돌아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의 기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우리들 자신을 비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두 가지 기도 (Two Ways of Rapping With God)


   바리새인의 기도는 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기도이었습니다. 그는 인칭대명사인 "나"  (I)라는 단어를 5번이나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나"  (I)의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낱낱이 읊어 댔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으나, 율법의 요구는 일년에 한번씩이었습니다(레위기 16:29, 23:27, 29 ; 민수기 29:7). 그는 자신의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드렸으나 율법에 의하면 옥수수와 포도주와 오일과 가축의 10분의 1이었습니다(신명기 14:22-23).

   세리의 기도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마치 자기 같은 죄인은 감히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을 심히 낮추며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였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 특히 제 세리와 같지는 않습니다" 만일 우리들도 이와 같이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의 결점만을 더 발견해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세리는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였으며, 율법과 자신을 비교하였고, 그 자신이 참으로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며 옳지 못한 자인지 고백하였습니다. 십계명은 곧은 측량줄과 같습니다. 우리 자신을 이 곧은 율법의 줄로 재어볼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구부러진 자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표준으로 우리자신의 상태를 재어 보십시오.


   네 혹은 아니오 (O or X)


   당신은 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마가복음 12:30) (     )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합니까? (마가 12:31) (     )

   당신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진심으로 합당하게 공경하고 있습니까? (출 20:12) (     )

   당신은 자신의 생활이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마가 7:21-23) (     )

   당신은 결코 다른 여인을 음란한 마음으로 바라 본 적이 없습니까? (마태 5:28) (     )

   당신은 옳다고 여기는 일을 다 실행하였습니까? (야고보서 4:17) (     )

   당신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습니까? (출 20:15) (     )

   당신은 한번도 거짓말한 적이 없습니가? (출 20:16) (     )

   당신은 누구를 살인한 적이 없습니까? (출 20:13) (     )

   당신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거나 저주한 적이 없습니까? (출 20:7) (     )


    옳은 길과 그릇된 길 (The Right Way and The Wrong)


   세리는 다른 사람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판단 했으며, 자신이 죄인임을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전적으로 자신과 그 자신이 한 일의 옳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했습니다.

   바리새인은 그가 취한 선한 행동을 자랑하고 의지했습니다. 세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그 자신을 내어 맡겼습니다.

   바리새인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마치 자신 만이 성자인체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마치 자신만이 죄인인 것처럼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자신은 "죄인 중에 하나가 아니라 바로 그 죄인 자신이라" (Not a sinner, but the sinner) 고 고백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만족주의자(self-sufficient)였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혹은 다른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신에게는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는 다른 제물이 반드시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대속자가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고백의 의미는 "저는 나의 죄를 해결 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합당한 제물을 대신 준비해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을 준비하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하여 내어 주시고 죽게 하셨습니다. 죽음은 모든 죄에 대한 최종형벌입니다.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롬 6:23).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자신의 주와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 값은 이미 모두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말입니다.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You Don't Get If You Don't Ask)


   자비를 구하였던 세리가 그것을 얻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한 바리새인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회개를 거절한 자는 자신의 죄 짐을 다시 짊어지고 그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에게 의로움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구했습니다. 의로움이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분명한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자신의 주와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또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먼저 고백하지 않는 한, 그 누구의 죄도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차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자신을 높인 바리새인은 낮춤을 받았습니다.( The Pharisee honored himself and was down) 그리고 자신을 낮춘 세리는 높임을 받았습니다.( The publican put himself down and was honored)

   이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종교를 대표하고 잇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수백 종류의 종교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유대교,기독교,그 외의 많은 종교들 중에 하나를 따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두 종류의 종교만 있을 따름입니다. 바리새인은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모든 종교의 대표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고, 종교의 힘에 의해 구원을 얻고, 물질을 바침으로 구원을 얻고, 선한 사람이 됨으로 구원을 얻고, 최선을 다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사람들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자신의 선행이 충분한지, 혹은 옳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거나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바리새인의 종교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힘써라" (works)입니다.

   세리는 참된 종교를 대표합니다. 그것의 가르침은 사람은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참된 종교는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오직 하늘나라의 소망이 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값없이 구원의 선물을 준비하셨다는 진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리새인의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나는 날마다 일한다네

   좀더 열심히 좀더 열심히


   Every day in every way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세리의 노래는 어떨까요?

   아무 공로도 자랑도 없는 빈손으로,

   주님의 십자가만 의지하며 옵니다.

   주님의 의의 옷을 입고자 옵니다.

   주님의 은혜만을 바라며 옵니다.

   더러운 몸 샘물로 뛰어듭니다.

   구주여, 저를 씻기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습니다.


   In my hand no price and better

   Simply to Thy cross I cling

   Naked, come to Thee for dress

   Helpless, look to Thee for grace

   Foul, I to the fountain fly

   Wash me, Savior, or I die.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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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10 바울이 붙잡힘(21-24)


요절 : 사도행전 22장 15절, 24장 25절

요점 :

1.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람들을 얻으려고 그들을 기쁘게 해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시는데 신실하십니다.

4.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어느 때든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5.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미루기 때문에 잃어버려질 것입니다.

6. 자기가 행하지 않은 어떤 것을 고백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루살렘에서의 바울


1.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말 것을 경고함(21:1-14)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에베소에서 예루살렘까지 계속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잠깐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멈추었는데 그것은 물론 그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자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로에서 제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아가보라 불리우는 선지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들려 이방인 통치자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전달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는 또한 순전한 복음을 전하고 그 성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곳의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구원받는 방법에 관해서는 매우 불분명했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요?


2. 형제들이 기쁨으로 그들을 영접함(21:15-26)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은 그들을 만나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된 소식을 듣게 되어 매우 기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도자들이 가져온 구제헌금을 받고도 기뻐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성에는 바울이 더이상 구약성경의 율법에 대해 주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의심하는 수천의 믿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장로 형제들은 그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바울에게 어떤 의식을 행하도록 제안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신앙 간증을  해칠만큼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작은 일들을 행하는 것은 현명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0절에서 밝힌 자신의 전도 원리, 선교 원리에 따라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되었다는 것을 또 한 번 행동으로 보여 주었었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온전히 순전한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기 원하여 이 의식을 행하였지만 이번에 행한 이 의식을 통해서는 바울이 원했던 유대인도 얻고 율법 아래 있는 자도 얻고자 했던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3. 바울이 붙잡힘(21:27-40)


7일이 거의 되자 몇몇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는 그를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가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이 소동을 듣자 그는 즉시 이 폭도를 안정시키려고 일단의 병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붙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여 영문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바울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헬라말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란 천부장에게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가 중요한 도시인 다소의 유대인이라고 말하고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말할 허락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자주 무리들이나 폭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종을 공격하거나 죽이려고 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다수가 언제나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과 비록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반대할지라도 진리를 세우는 사람에게 주님의 복이 임한다는 것에 주의하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4. 바울의 변론 : 그가 빛을 받음(22:1-10)


바울은 처음으로 돌아가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저명한 교사인 가말리엘에게서 바르게 교육받았으며 자기가 유대교에 지나치게 열심이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으로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하늘로부터 밝은 빛을 보았고 왜 주님을 핍박하는지를 묻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듣게 될 것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의 9장에서 이 이야기에 대해 읽었지만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말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주 놀랍지 않습니까! 시편 기자는 "주님의 구속받은 자들이 그렇게 말한다" 고 말했습니다. 당신 가정과 이웃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친구들에게 주님을 시인했습니까? 어느날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께 속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5.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본 환상에 대해 말함(22:11-21)


바울이 다메섹에 들어가자 경건한 사람인 아나니아가 찾아와서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사 모든 사람들에게 증인이 되게 하셨다고 말해주었으며 그래서 그가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예루살렘, 사실상 성전으로 돌아왔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사람들이 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성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신 그는 더 멀리까지 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아직까지도 거절하고 있는 구원의 복된 소식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고 바울은 그들 중에 수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복을 거절한다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을 거절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6. 천부장이 유대인들에게서 바울을 구함(22:22-30)


여기까지 오자 유대인들이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복을 더많이 받게 된 것을 생각하자 그들은 다시금 소리를 지르며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천부장은 그들의 증오를 이해할 수 없자 바울을 때리면 참 이유를 말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의 시민이라고 말하자 로마의 시민을 때리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보호하게 하고 그 밤에 파숫군을 두어 보호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그 신실한 종을 계속 주목하고 계신 것을 볼수 있으며, 그 주님은 오늘도 동일하신 분입니다.



바울이 가이사랴로 감


1. 예루살렘에 있는 공회 앞에서(23:1-11) 


그 다음날 천부장은 바울을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 세우려고 데려갔습니다. 바울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가졌다고 진술하자 대제사장은 매우 화를 내며 옆에 서있던 병사들에게 그의 입을 때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부당한 것이기에 바울은 화가 나서 그를 회칠한 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제사장이었음을 알게 되자 곧 사과했습니다. 성경에 기록 되어 있는 대로 백성들의 통치자들에 관해서 나쁘게 말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입을 치려고 할 때에 잠잠히 서 있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같은 장소에 서 계실 때 얼마나 인자하셨고 오래 참으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 병사는 주님을 때렸지만 주님은 악으로 악을 갚지 않으셨습니다(요18:23절을 보십시오). 이제 법정에서 더 큰 말싸움이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천부장은 바울을 구해내서 다시 영문에 두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로마에서 주님을 증거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 사십명이 바울을 죽일 것을 맹세함(23:12-24)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 중에 몇사람이 음모를 꾸며 바울을 죽일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계획은 천부장에게 바울을 대제사장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그 도중에 그를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울의 조카가 그 음모에 관해 듣게되어 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천부장이 그 사실을 알게되자 470명의 사람들에게 바울을 보호하도록 명령했고 그를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종을 공격하는 사단의 여러가지 방법을 보게 됩니다. 자신들이 매우 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이 살인을 자행하려고 실제로 준비했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하시며 주님의 충성스런 증인을 도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부께서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자녀에게 일어날 수 없으며 먼저 피할 길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조카 이름을 알지도 못하지만, 그는 자기의 임무를 알고 그것을 충성스럽게 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약 9년 정도 주님을 더 섬길 수 있었습니다.



3.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냄(23:25-35)


 

벨릭스는 유대를 통치하도록 로마의 임명을 받은 총독이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벨릭스의 보호하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써서 바울이 로마 시민권이 있고 또한 그가 죽거나 구속될 만한 어떤 일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바울을 총독에게 보내는 이유인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음모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보병들은 그들과 함께 중간까지 간 뒤 돌아갔고 마병들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 데려 갔습니다. 벨릭스가 편지를 읽고는 바울에게 어느 지역 사람인지를 물은 뒤 재판때까지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법과 질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많은 통치자들이 타락했고 불의했습니다. 우리는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가 유대인들이 주님의 죽음을 요구하자 그들에게 넘겨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로마의 법을 지켜야 할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돈을 벌수 있다면 그 법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4. 더둘로가 벨릭스 앞에서 바울을 고소함(24:1-9)


5일 후에 대제사장이 바울에 대해서 고소하려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더둘로라 이름한 전문 변사가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재판이 시작되자 그가 벨릭스 앞에서 바울을 대항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총독에게 아첨을 하고는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이며 이방인들을 거룩한 성전에 데리고 가려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었던 유대인들은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동의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사실이었지만, 그는 할 수 있는대로 나쁘게 보이도록 하여 바울이 총독을 괴롭게하는 자가 되도록 애를 썼습니다. 다소 사실을 말하긴 했지만 그것은 더욱 나쁜 인상을 주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5. 벨릭스 앞에서 바울의 답변(24:10-21)


바울은 답변의 첫부분에서 그가 예루살렘에서 어떤 소동을 일으켰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에 온지 12일 밖에 안되었고 사람들을 위해 희생제물을 드렸으며 그가 성전에서나 성중에서나 군중들에게 변론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예수를 따르는 자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구약성경과 부활을 믿었고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행한 잘못이 있다면 시인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어떤 고소에 대해 거짓된 자백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여전히) 주 예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시인하는 것을 기뻐했으며 만일 그것이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6. 벨릭스는 두려웠지만 바울을 감옥에 둠(24:22-27)


이제 벨릭스는 천부장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내려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상당한 자유를 허락하였고 친구들의 방문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누가가 그와 함께 있었던 것을 알고 있으며, 빌립이 가이사랴에 거하고 있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벨릭스의 아내가 오자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졌고, 벨릭스가 듣자 실제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장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제안을 미루기 때문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입니다. 벨릭스는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바울이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그에게 뇌물을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는 또한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를 원해서 바울을 2년 동안 감옥에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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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원리

 

                            7장 교회 선택

               Choosing a Church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참여해야 할 교회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이 구원 받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참 교회와 연합하게 됩니다. 또한,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됩니다(계 21:27). 참된 교회는 인종이나 피부색에 상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 구성됩니다. 비록 모든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참된 교회의 구성원들은 전 세계 각처에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가까운 곳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그들의 안내자로 삼고, 한 교회의 지체로 함께 모여 봉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가정에서 모였습니다(롬 16:5, 몬2). 그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골 4:15)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지체로서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은 아주 분명한 주님의 뜻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는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말은 몇몇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함께 모이는 습관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때때로 갓 구원받은 성도가 어느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릴지 분별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한 지역 혹은 한 도시 내에 지역교회가 둘 이상 있을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몇 몇 도시에는 그 가르침에 있어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는 기독교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참여해야 할 지역교회를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요? 먼저 교회 선택의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지역교회에 대한 참된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전해준 가르침을 검증하기 위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합니다(사 8:20).

 

   다음에 열거된 사항은 새 신자가 바른 교회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지 확인 하십시오. 모든 성경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하나님은 성경을 쓴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셔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딤후 3:16, 벧후 1:21). 이것이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하는 근거입니다(성경의 기본진리 1과 참조) 몇몇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일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나머지는 인간의 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어야 하며, 또한 성경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신앙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이며, 우리가 하는 일들을 항상 성경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진리들을 가르치는지 확인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대한 지도자 혹은 이 세상에서 산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분으로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께 "성" 이란 칭호를 붙여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구주에 대한 가장 큰 진리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성육신 하셔서,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이 성부, 성자, 성령 3위 하나님 가운데 제 2위의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골 2:9).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인정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해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성경은 주 예수님께서 죄 없는 삶을 사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더 이상 썩지 아니하시고 죽지 아니하시는 부활의 몸으로 승천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 15:1~4).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며, 우리의 어떠한 공로나 선행도 구원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엡 2:8~9).

 

   4) 그리스도의 귀중한 보혈에 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빠진 죄 사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골 1:14, 갈 1:6~9).

 

   이상의 네 가지 외에도 지역교회가 그들의 설교와 행동으로써 다음의 중요한 진리들을 인정하는지 확인하십시오.

 

    1)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골 1:18~19, 엡 1:22~23). 누구도 이 자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곳에서 신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되, 오직 그분의 계명을 이해하고 따르는 데 있어서도 그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모든 신자는 몸 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고전 12:12~13).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모두 지역교회 안으로 기쁘게 영접되어야 합니다. 다만, 지역교회의 교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분명한 가르침을 믿지 않는 사람들(요이 10).

   <2> 죄 가운데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고전 5:13).

 

   이러한 사람들은 교회에 참석할 수는 있으나, 예배나 교회의 일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3) 불신자들을 교회의 교제 가운데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4) 신자들은 모두 제사장들입니다(벧전 2:5,9). 구약 성경을 보면 제사장들과 나머지 백성들 간에는 구분이 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가지고 올 수는 있었으나, 그분 앞으로 그것을 가지고 직접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희생제물을 제사장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는 것은 바로 제사장들의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돌아가심 이후, 신약 성경에는 더 이상 제사장들과 백성들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도 없습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이며,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져가는 희생제물은 예배와 찬양과 봉사입니다. 또 신약성경은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성령님의 권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인도자가 되셔서 교회 안에서의 예배와 봉사, 가르침, 징계를 직접 인도하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의 인도와 지배가 인간의 생각이나 의식으로 제한 되어서는 안됩니다(고후 3:17, 엡 4:3).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정리해보면, 신자들은 마땅히 성경을 그들의 유일한 안내자로 삼고, 그리스도의 사역과 위격*에 관한 모든 가르침을 믿으며, 또한 교회와 교회의 사명에 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하는 지역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들에 동의하는 신자들이라면 성경적인 "성도간의 교제"를 나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위격: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셔서 완전한 인격을 가지고 오신 완전한 사람이셨지만, 동시에 삼위 하나님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의 위를 가지고 오신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위를 가지시고 성육신하여 오신 완전하신 하나님이 갖고 계신 완전한 인격이 그리스도의 위격입니다. (역 주)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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