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노소영씨 모녀를 앵글에 담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4.10.13 00:23 / 수정 2014.10.13 04:12

[여성중앙] 둘째 딸 해군 장교 입대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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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 관장은 입소 과정을 한순간이라도 놓칠 새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띄지 못한 채 계속해서 사진을 찍으며 딸의 군 생활을 응원했다.

2 교육 훈련 일정 및 훈육장교 소개가 끝난 후 민정씨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시간에 노 관장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3 입영식이 열리는 체육관으로 들어가기 직전 민정씨와 노 관장 모녀는 포옹을 나누며 응원과 격려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4 제 117기 사관후보생 입영식 현장. 최민정씨는 앞으로 11주간 해군 장교가 되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여느 회장님의 딸처럼 아버지 회사에서 경영에 참여하거나 갤러리를 운영하는 보편적인 길을 걸을 줄로만 알았던 SK그룹의 차녀 최민정씨가 단단히 큰 결심을 했다. 군인의 길을 택한 것이다. 세간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던 유례없는 ‘재벌가 딸’의 입대 과정을 함께 했다.


지난 9월 15일 오후 2시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제117기 사관 후보생 입영식이 열렸다. 이날 입영식에는 해군 127명과 해병대 30명까지 총 157명의 사관후보생들이 참석했다. 해군을 지원한 최민정(23세)씨는 어머니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함께 입영식을 찾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노 관장의 동생인 노재헌 변호사도 조카의 입대를 응원하기 위해 함께 자리했다. 재계 오너 일가의 사상 첫 입대인 만큼 최민정씨의 입대에 재계 안팎의 눈과 귀가 집중됐지만, 그녀의 ‘첫걸음’은 유난스럽지 않았다. 입영을 앞두고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보이는 이들과 달리 노 관장 모녀는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특히 최민정씨는 입영식 내내 긴장하는 기색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임했다. ‘군인의 꿈’을 키운 딸을 묵묵히 응원해왔던 노소영 관장 역시 환한 미소로 딸의 입영을 지켜봤다.

최민정씨의 각오와 포부는 머리 모양에서부터 드러났다. 해군사관학교 규정에 따르면 여성 입영생의 경우 머리카락의 길이가 제복의 깃에 닿으면 안 된다. 그동안 긴 생머리를 유지해왔던 터라 턱선까지 내려오는 짧은 커트 머리가 어색할 법하지만, 그녀의 당당함은 그마저도 보이시한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앞으로 11주에 걸쳐 체력, 정훈, 전투 수영, 제식, 긴급 상황 조치 등 5개 과목에 대한 훈련을 받는다. 이번 임관 평가에서는 전투 수영 평가 과정에서 비상 이함, 구명정 승선 등 종합 생존 훈련을 시범 평가하는 등 전보다 훈련 강도가 높아졌다는 게 해군사관학교 측의 설명이다. 모든 훈련 과정을 마치고 난 뒤 별문제가 없으면 그녀는 11월 28일 해군·해병대 소위로 정식 임관하게 된다.

한편, 그녀는 지난 4월 해군 사관후보생 모집에 지원해 필기시험, 면접, 신체검사를 거쳐 8월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원한 병과는 ‘함정 승선 장교’로, 해군에서도 가장 힘들기로 유명해 남자들도 꺼리는 병과라고 한다. 함정에 승선하면 갑판의 함교(브리지)에 서서 파도를 맞으며 몇 시간씩 거친 바다를 살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2주 이상 외부와 연락을 끊어야 하며, 높은 파도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기왕이면 힘든 곳에서 하겠다는 의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딸을 군대에 보내는 엄마의 심경은 어떨까. 노 관장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Q : 딸을 군대에 보내는 심경이 어떠세요
서운하죠. 하지만 군인의 딸로서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 대견하기도 하고요. 그분(최태원 회장)도 자랑스럽다고 하셨어요.

Q : 생각보다 담담한 것 같아요
스스로 결정하고 본인이 원해서 가는 거잖아요.

Q : 엄마로서 딸에게 특별히 해준 말이 있나요
제가 군대 경험자가 아니라 딱히 해줄 말은 없고, 그저 훈련 과정 무사히 잘 마치라고만 했어요.

Q : 늘 여성스러운 모습만 보다가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니 (민정씨의)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 같아요. 남다른 포스도 느껴지고요
오랫동안 긴 생머리를 고수했는데 (합격 통보 후) 망설임 없이 자르더라고요.

Q : 가족들이 처음에는 최민정씨의 해군 장교 지원을 반대했다고 들었어요
(일부 언론 보도처럼) 반대한 건 아니에요. 이미 본인이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고, 또 가족들이 반대한다고 흔들릴 아이가 이니거든요.

Q : (군인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특히 흐뭇해했을 것 같은데
손녀딸이 뒤를 잇는다고 하니까(당연히 흐뭇하시겠죠).

Q : 언론의 지나친 관심을 최민정씨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요
지금은 11주간 훈련 과정에 들어간 거고, 임관(11월 28일)이 진짜잖아요. 훈련 과정을 못 버틸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일로 임관을 못 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가족들도 묵묵히 응원만 하고 있어요. ‘잘해라’ ‘견뎌라’ 말하지 않고요. 안아주고 두들겨준 게 전부예요.

Q : 최태원 회장은 어떤 격려를 했나요

구체적인 얘긴 나중에 정식으로 임관한 다음에 할게요. 아직 훈련도 안 받은 상태라 조심스럽고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노 관장은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이었다. 다소 불편한 질문에는 재치 있는 대답으로 분위기를 전환했고, 곤란한 질문에는 화제를 돌려 노코멘트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사서 하는 고생’의 가치를 아는 둘째 딸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최민정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로 당찬 성격이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모두 중국에서 나왔다. 고등학교는 수업료가 비싼 국제학교가 아닌, 중국인이 다니는 일반 고등학교(런민대 부속고)를 졸업했다. 방학 때 한국에 와서는 서울 강남역 근처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벌기도 했다. 베이징대 광화관리원대(경영대)에 입학한 후에도 한국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학비는 장학금을 받아 해결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집에서 돈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게 노 관장의 말이다. 그녀의 자립심과 독립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얼마든지 편하고 쉬운 길이 보장돼 있었지만 그녀는 기꺼이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흔들리거나 꺾일 리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사서 하는 고생’의 귀중한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다.

구속 수감(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4년 구형) 중인 아버지 최태원 회장에게는 올해 초 면회를 가서 (군 입대)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입대 전 작별 인사는 추석 연휴 직후에 나눴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평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한 딸에 대한 세상의 지나친 관심을 걱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딸의 선택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적극적으로 격려했다는 후문이다.

그녀는 평소 아버지와 대화도 자주 나눈다. 두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과 관련해 동일한 인물을 역할 모델로 삼고 있을 만큼 가치관 측면에서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영국 출신 남극 탐험가로 1914년 남극 탐험 도중 조난돼 600일 넘게 고립된 상황에서도 대원 27명 모두를 무사히 귀환시킨 어니스트 섀클턴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해군사관학교 측에 따르면 그녀는 이번 해군 사관후보생 선발 면접 때 섀클턴의 리더십에 감명 받아 해군에 지원했다고 밝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 회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후폭풍이 한창이던 2009년 초 사내 방송에 출연해 그 해 경영 방침을 소개하면서 섀클턴의 이야기를 다룬 책인『인듀어런스』내용을 발표 자료로 쓴 바 있다.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집에서 한 명 정도는 외할아버지(노태우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것도 의미 있지 않느냐”는 말을 종종 할 만큼 군인이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2002년 전립샘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도 외손녀가 군대에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뿌듯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선 외할아버지의 군인 DNA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뭐가 됐든 ‘난사람’ 임은 분명하다. 다른 재벌가의 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보여준 그녀의 행보가 참 신선하다. 이러한 그녀의 뚝심과 강단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됐다.

슬하에 최윤정(25세), 최민정(23세), 최인근(19세) 1남 2녀를 두고 있는 노 관장의 교육법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제도권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나와 남을 바꾸는 미디어아트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남들과 똑같은 평수에 살고 남들과 같은 차를 굴리고 남들과 같은 대학에 아이를 집어넣기 위해 애면글면할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창의적인 육아, 살림, 일꾼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노 관장의 지론이다. 실제로 노 관장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뭔가를 배우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공부하라고 잔소리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저것 안 시키니 오히려 클수록 더 배우고 싶어 하더라는 것. 이러한 교육관은 노 관장의 학창 시절과 연관이 있다. 고3 때 억지로 한 일명 ‘족집게’ 과외를 받으면서 반발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억지로 한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노소영 관장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관

보통의 대기업 총수 자녀들이 명문 사립고, 명문 대학교 등 ‘엘리트코스’를 밟을 때 노 관장은 큰딸과 둘째 딸을 외국으로 유학 보냈다. 큰딸 최윤정씨는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후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했다. 막내아들 최인근 군은 이우학교(대안 학교)를 거쳐 미국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 미국 명문대인 브라운대에 입학한다. 노 관장은 아들을 대안 학교에 보내 주목을 받았는데, 당시 대안적 사고를 하고 이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만큼 배울 점이 많을 거라고 믿는다는 그녀의 소신 교육은 재벌가를 비롯한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것도 노 관장이 자녀들과 즐겨하는 것 중 하나.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논리 정연하게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아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자녀들이 유학길에 올라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가급적 많이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노 관장은 독서를 통한 교육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는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들도 독서 습관이 몸에 밴다는 생각에 항상 모범을 보이고 있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행히 내가 공부를 좋아해서 손에서 책을 놓는 날이 거의 없다”며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그런 모습을 보고 책을 따라 읽고,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의견을 나누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녀는 아이들과 연극이나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기도 한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공연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연극을 직접 만들고 콘티를 짜기도 한다. 지금은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 ‘특별한’ 취미 생활을 예전만큼 즐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교육이 밑거름이 되어 세 남매 모두 재주가 많다. 노 관장의 교육 방식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교육법. 이것은 바꿔 말하면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방법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편, 노 관장은 최근 대한민국 디지털 아트의 21세기 첫 10년사를 정리한『디지털 아트』(자음과 모음)를 출간했다. 국내 최초의 디지털미술관으로 평가받는 아트센터 나비를 15년간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경험을 살려, 디지털 아트라는 새 영역을 개척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기획한 바를 총정리한 것이다. 노 관장은 “지난 15년간 디지털 아트의 현장에서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해온 한 문화예술인의 어설프지만 진솔한 기록으로 읽힐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라고 밝혔다.

글=정은혜 여성중앙 기자 사진= 이종걸(cao studio)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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