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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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용서의 폭포수

 

진정한 성도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 가운데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성도들 사이에서 조차도 그리스도인의 좋은 성품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다른 성도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다른 성도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며, 어떤 때는 다른 성도들에게 실망했다가 또 다른 때는 자기 자신에게도 실망한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그리스도를 더 닮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그것은 다 착각이고, '올 해는 꼭 예수님을 닮아 보리라'는 똑같은 결심을 매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프린스 목사님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의 좋은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다른 비결을 제시한다. 베드로후서 1장 5-9절은 자기 절제, 경건함, 형제 우애 등과 같은 좋은 그리스도인의 자질이 부족한 자는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다고 말한다. 즉, 성도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질이 부족한 것은 훈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 덕분에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새언약의 가장 중요한 조항을 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성도가 이미 모든 죄를 용서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의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경건한 삶을 사는 비결이라는 것인데, 죄 용서 받음을 아는 것과 경건한 삶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프린스 목사님은 우리가 완전히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죄의 권능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패했을 때도 전혀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프린스 목사님에 의하면, 죄 고백이라는 것은 용서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았기 때문에 자애로우신 아버지께 다 드러내놓고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 죄 고백을 한다면 이것은 결국 우리가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인데, 그럼 우리가 깨닫지도 못한 채 지은 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요한일서 1장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은 문맥을 볼 때 성도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불신자인 영지주의자들에게 회개를 권하는 말이라고 한다. 바울도 서신서에서 죄 고백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죄에 빠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조차 죄 고백을 권한 것이 아니라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면서 그들의 의를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7절에 의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는 것은 우리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의 피이다. 게다가 '깨끗케 한다'에 쓰인 원래 헬라어 시제는 계속 '깨끗케 하고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마치 폭포수 아래 놓여 끊임없이 씻겨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폭포수의 이미지를 마음에 새겨놓는 것이 참 좋은 것 같다. 어쩌다 실패했을 때에도, 이 이미지를 떠올리면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 뛰어들 믿음이 생기고, 그렇게 하나님께 바로 나아갈 때 회복이 오기 때문이다.


프린스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의 폭포수'를 누릴 때, 치유를 위한 믿음, 번영을 위한 믿음, 회복을 위한 믿음 더 나아가 삶 속에서 왕노릇 할 믿음이 우리 내면에서 솟아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다운 좋은 성품도 이렇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알고 누릴 때 가능한 것 같다. 내가 예수님 덕분에 많이 용서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깨끗이 씻겨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수록 예수님이 더 좋아지고 예전에 즐기던 세상 것은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또 삶에서 조금씩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니 마음이 즐거워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좀 더 너그러울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의 비결은 정말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아닌가?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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