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가장 깊은 뿌리 뽑아내기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을 한다. 스트레스가 정말로 많은 질병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보다도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두려움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기 전에 먼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즐거운 일이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어떤 안 좋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 스트레스를 만들어 낸다. 그럼 과연 두려움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좋지 못한 모든 현상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일까? 아니다, 영적인 영역에 존재하면서, 아주 크고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일의 공로로만 파괴될 수 있는 중심 뿌리가 있다고 한다. 바로 '정죄감'이다.


프린스 목사님에 의하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었을 때, 사람에게는 양심이 발달해서 의와 죄를 알고 죄가 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죄책감과 정죄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불신자들과는 달리 신자들은 이것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악한 양심으로부터 마음에 뿌림을 받았으니 충만한 믿음의 확신 속에서 참 마음을 가지고 가까이 나아가자"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악한 양심과 선한 양심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악하고 뻔뻔한 사람을 보면 "양심이 썩었다, 양심이 굳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이제까지 죄책감을 모르는 사람들의 양심이 악한 양심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프린스 목사님은 성경에서의 악한 양심은 끊임없이 죄와 실패를 의식하고 일반적으로 처벌을 예상하는 양심, 즉 정죄감 아래 있는 양심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선한 양심은 예수님의 피가 뿌려진 양심으로서, 죄가 아니라 용서를 의식함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지 않으신다는 충만한 믿음의 확신 속에서 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양심이다. 성경은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더 이상 죄를 깨닫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많은 신자들이 삶 속에서 정죄감을 뿌리 뽑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프린스 목사님은 그들이 정죄감을 뿌리 뽑기 위해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노력을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정죄감을 없애기 위해 더 많은 의를 행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죄감은 영적인 영역에 관련되어 있고 그 뒤에 참소자 마귀가 있어서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의를 행해도 마귀는 계속 부족하다고 정죄하기 때문에 결코 정죄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 마귀는 자신의 존재를 뒤에 은밀히 감추기 때문에, 신자들은 죄책감과 정죄감이 들 때마다, 마귀의 역사는 알지 못한 채, 성령께서 죄에 대해 그들을 책망하시고 있다고 오해한다.


프린스 목사님은 요한복음 16장 8-11절을 통해 성령님이 우리에게 정말로 하고 계시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한다.

요한복음 16:8-11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다시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프린스 목사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그 구절이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라고 권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구절의 의미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령께서 죄에 대해 책망하시는 대상은 '저희'로 불신자를 말하며 그 '죄'도 복수가 아닌 단수로 죄된 행위들이 아니라 '불신의 죄' 한 가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성령께서는 신자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불신자들을 향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책망하신다는 것이다. 그럼 신자들을 향해서는 무엇에 대해 책망하실까? 바로 의에 대해서 책망하신다. 이 구절에서 '너희'는 제자들로 대표되는 신자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로워졌고 실패할 때조차도 여전히 하나님의 의라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살아가다가 자칫 이 진리를 놓치면, 우리를 책망하시고 그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신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라고 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버젼과 다른 몇몇 영어 성경들은 '깨어 의를 행하라' 보다는 '의에 깨어 있으라' 는 의미에 더 가깝게 번역되어 있다. 프린스 목사님은 자신이 의롭다는 것에 깨어 있을수록 의롭게 행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바른 믿음이 바른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있는 바를 바꾸라고 권한다. 성령님은 바로 우리가 의에 깨어 있도록 도우셔서 고소자 마귀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쏟아붓는 정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프린스 목사님은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임을 믿고 정죄가 없는 자유 속에 걸으며 의로운 자의 머리 위에 있는 축복을 누리라고 권한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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