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도레미도 못하던 그가 웃었다

[중앙일보] 입력 2015.04.24 00:41 / 수정 2015.04.24 01:03

성악 남자 1위 서준호
“노래 포기 못한다” 혹독한 재활
“오페라 무대에도 도전할 것”

           

소프라노 조수미, 베이스 연광철 등 클래식 스타를 배출한 중앙음악콩쿠르. KT&G와 함께 하는 제41회 대회가 22일 막을 내렸다. 7개 부문 561명이 참가해 22명이 수상했다. 음악계를 주도하게 될 영광의 얼굴들을 만났다.



성악 남자 부문 1위를 차지한 서준호씨. 그는 “마지막이라 여기고 도전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성악 남자 1위, 서준호!”

22일 중앙음악콩쿠르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서준호(31)씨는 불편한 걸음걸이로 무대에 올랐다. 다리를 절었고 표정은 침착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끝없이 울고 있었다”고 했다.

 2004년 큰 교통사고로 목 이하의 몸이 마비됐다. 추계예대 성악과 2학년 때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숨을 쉴 수 있었던 기간이 100일이다. 병원에서 “평생 누워 살아야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100일 만에 발가락을 움직였고, 그는 일어났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신경이 살아났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노래했다.

 퇴원 직후에는 ‘도레미’도 못 불렀다. 목뿐 아니라 호흡과 관련된 모든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발성의 기본으로 돌아가 매일 혹독한 연습을 했다. “못 일어날 거란 진단을 받고서도 노래를 그만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래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발성 재활 4년 만에 다시 노래를 했다.

 무대의 문턱은 높았다. 지난해엔 중앙음악콩쿠르에 도전했다가 1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또 불편한 걸음걸이 때문에 오페라 무대는 스스로 포기했다. 서씨는 “스승 김영미 선생님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대학원에서 만난 스승이다. 김영미 교수는 서씨의 잘못된 버릇을 고치고 소리에서 힘을 빼 자연스럽게 노래하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더 큰 가르침은 음악에 대한 것이었다. 서씨는 “노래 내용 속의 캐릭터를 해석해 몰입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번 콩쿠르에서도 이 방법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1차 탈락자가 올해 우승자로 올라섰다.

 “행동이 불편하지만 오페라 무대에도 못 설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스승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한예종 대학원에서 오페라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무대 위 동선에 대해 남들보다 4~5배 많이 생각하고 먼저 움직인다. 무엇보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하고, 오페라는 몸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는 대학원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인간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오페라 무대를 목표로 다시 한 번 기적을 이루고 싶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무대 공포증 이기려
더 지독하게 연습했다”
바이올린 1위 배창훈


배창훈(20)씨는 무대 공포증에 시달린다. “전력 질주할 때만큼 심장이 뛰고, 활을 끝까지 누를 수 없을 정도로 떨린다”고 한다.

증상은 고등학교 시절 시작됐다. “김남윤 선생님을 사사하게 됐는데 같이 배우는 친구들이 잘하는 것을 본 후로 무대가 두려웠다.” 이번 콩쿠르에서도 엄청난 긴장감과 싸웠다. 하지만 이제 공포증을 인정하고 함께 가는 법을 배운 듯하다.

“무대 위에서 실력 발휘를 70% 정도 밖에 못하기 때문에 연습을 엄청나게 한다. 또 긴장감을 잊으려 음악에 집중하려 더 노력하게 된다.” 콩쿠르 본선에서 땀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긴장했지만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오히려 떨리는 것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팔에 이상 생길 만큼 연습
대학생들 제친 당찬 고3
첼로 1위 허자경


고3인 허자경(18)양은 대학생·대학원생 본선 진출자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게다가 콩쿠르를 한 달 앞두고 독주회까지 열었던 ‘강심장’이다. 콩쿠르에 집중할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허양은 “미리 잡혀있던 독주회여서 어쩔 수 없었다”며 “슈베르트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네 작곡가의 소나타를 한 무대에서 연주했다”고 말했다.

무리한 연습 탓에 팔에 이상까지 왔다. 양팔 모두 힘을 잘 줄 수 없어 연주가 어려웠다. 허양은 “팔이 아프다 보니 본선 무대에서 오히려 마음이 비워지더라”며 “점수·등수에 상관하지 않고 음악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습은 괴롭지만 무대 위에서 박수 받는 게 정말 좋다”는 연주자다.

2년 전 도전 땐 3위
“지치지 않는 체력 강점”
플루트 1위 이주형


이주형(24)씨는 2년 전 중앙음악콩쿠르에서 3위를 한 후 두 번째 도전해 1위에 올랐다. “당시 군대 제대 전이어서 콩쿠르 준비를 마음껏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혼자 음반만 들으면서 연습해 출전했었는데 제대만 하면 정말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서 2위 없는 1위로 실력을 입증했다. 경남 마산이 고향인 이씨는 덕원예고에 진학하면서 ‘서울 유학’을 와 혼자 생활했다. “흔히 음악 공부엔 부모 뒷바라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10시간씩 연습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이 가장 큰 장점”이라는 이씨는 졸업 후 미국·독일 유학을 고려 중이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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