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사는 인생들이여!


                       구원은 완전한 속죄다


"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 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열왕기하 5:14).


   어떤 전도자가 장로님에게 묻기를 "장로님, 영원한 속죄를 아십니까? " 하니 장로님 대답이 "처음 듣습니다. 어디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하였다. " 예, 히브리서 9장 12절입니다." 하고 보여주니 한참 들여다보던 장로님은 " 나는 42년간 헛 믿은 것 같다. 속았다" 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구원받았다.


   여기서는 나아만이 고침받은 문둥병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이 문둥병은 히브리 말로 "차라" 즉 " 몹시 괴롭다"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인간을 오래 괴롭게 하다가 결국 죽게하는 병이다. 이 문둥병은 죄가 인간을 괴롭히다가 지옥에 끌고감을 생각나게 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문둥병 환자들이 일반인들과 격리되어 있었던 것을 보게 된다.

   이 문둥병의 특성은 감각이 없어져서 살이 점점 썩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죄를 지으면서도 감각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죄인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금일에 수많은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며 심지어는 죄를 짓고도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필자는 감각이 없어지는 특성을 가진 이 문둥병을 통한 교훈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한다.


   죄인은 첫째로 하나님께 대해서 감각이 없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시편 14:1).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없다" 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즉 바보같은 자라고 경고하고 있다. 경험하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섣불리 단정하는 자이다.

   그들의 행위가 시편 14편 4절에 있는바 "저희가 떡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한다." 즉 그들의 잇사이에 씹힌 그리스도인들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자신들이 무지무각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거늘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들을 늘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라고 질문하며 성도들을 괴롭히고 울게 하는 어리석은 핍박자들이다.

   "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에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편 42:3).

   그들은 터무니없는 이론으로 하나님을 반박하나 이미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떠나 있으며 지옥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고 있음을 그 자신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꿈꾸는 자들이다. 이것은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뱃놀이 하는 사람들 중에 폭포의 낭떠러지를 모르고 힘차게 나아가다가 떨어져 죽는 자들의 모습과 같다. 얼마나 불쌍한 모습인가? 독자중 이런 분들이 있거든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기 바란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을 기다리신다.


   둘째로 죄인은 자신의 양심에 감각이 없다.


   양심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고귀한 선물이다. 이 양심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행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수많은 계몽가들이, 운동가들이, 교육가들이 그들의 요구사항을 양심에 호소하고 있지 아니한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시들어버린 목련꽃처럼 인간들의 양심이 더럽혀져 있지 아니한가? 양심대로 사는, 살려는 사람들이 바보 취급받는 현실이 아닌가? 학교에서는 정직할 것을 가르치지만, 정직하게 살아보라. 세상에서 어디 사업이 되는가? 출세가 되는가?

   한번 더렵혀진 양심은 인간 세계의 그 무엇으로도 고칠 수가 없다. 주님을 믿겠노라고 수십 번 약속하고도 믿지 아니하는 거짓말장이들이 우리 가족 중에 얼마나 많은가? 사람을 속임이 아니요, 자신의 양심을 속임이요 하나님을 속임이니 당신의 양심은 어떠한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을 성경은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히브리서 10:22), "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브리서 9:14)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여, 당신의 양심의 악을 깨닫고 주께 나아와 씻어 새 사람이 되라.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이 당신에게 있을 것이다.


   세번째로 죄인은 죄에 대하여 감각이 없다.


   이 시대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시대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도 별로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형무소에서 나온 사람에게 들으니 그 안에 있는 죄수의 대부분이 자신은 억울하게, 또는 운이 없어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더라는 것이다. 다 죄를 짓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이곳에 오느냐고 원망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7절에 보면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저희가 감각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라고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감각없는 자 되어 자신은 항상 옳고 정직하여 깨끗한 것처럼 착각에 빠져 교만한 마음으로 지옥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당신이 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각이 없어서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악한 죄인의 모습 중 하나는 이것인데 곧 " 나는 양심적으로 살았다. 다른 사람은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다. 나는 법없어도 살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교만한 자들이다.


   이제 나아만의 문둥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 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열왕기하 5:14).


   나아만의 병이 절반만 고쳐졌다면 문둥병자가 아닌가? 삼분의 이만 고쳐졌다면 문둥병을 다 고쳤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문둥병은 어느 한 부분에만 있어도 곧 퍼진다. 왜냐하면 피로서 퍼지는 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아만의 문둥병을 온전히 고치셨다. 오늘날도 죄인이 온전히 죄용서함 받지 못하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필자가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해 보면, 죄 문제를 분명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구원받았고 천국에 갈 것이라고 여기는 불쌍한 기독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구원은 "완전한 속죄" 에 있다. 서두에서 말한 장로님처럼 속지 마시기 바란다, 십자가에서 당신의 죄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당신이 기도할 때마다 " 죄인, 죄인" 하고 죄용서함을 믿지 못한다면 당신은 확실히 구원받지 못한 자이다.

   다음 말씀을 천천히 깊이 생각하며 읽으시고 구원을 받기 바란다.

   " 저가 한 제물(예수님)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4).

   나아만이 온전히 깨끗해진 것처럼 당신이 온전히 깨끗한 의인의 신분으로 변화된 것을 경험하기 바란다.

   "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8).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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