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음식?…알고 먹으면 더 ‘즐겁다’

2016.02.02.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새해를 알리는 설 명절이 다가왔다. 5일의 연휴를 맞는 기분은 제 각각일 테다. 올해도 두둑한 ‘설 특수’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벌써부터 설렘이 한가득이다. 한편 누군가에게는 가족, 친지들이 쉴새 없이 쏟아낼 잔소리가, 또 누군가에게는 쉴새없이 밀려들 일들에 괜히 마음이 무거운 지금이다. 하지만 설을 앞둔 복잡한 마음들은 맛있는 먹거리들로 가득한 설 상을 맞았을 때 ‘행복함’으로 통일된다. 물론 열심히 집안 한켠에서 설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엄마, 며느리들의 심정은 다를테지만….

맛있는 먹거리들이 없다면 설을 기다리는 재미도 줄어들 거다. 설하면 떡국이며 떡이며 전이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먹거리에 대한 기대가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어른들 사이에 서서 차례가 끝나기를 얌전히 기다리게 하는 힘은 잠시 후면 만나게 될 명절 상에 대한 기대감이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풍성한 설 명절 상은 비단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에만 그 의미가 있지 않다. 일찍이 농경사회를 이뤘던 우리 민족은 계절에 따라, 절기에 따라 그 것에 의미를 더한 음식을 먹어왔다. 가령, ‘작은설’이라 부르는 동지에는 태양의 색과 닮은 붉은 팥으로 쑨 팥죽을 먹었고, 푸르름이 짙어지는 단오에는 쑥잎을 따서 수리떡을 만들어먹었다. 하물며 만물이 시작되는 날이라 여겼던 정월초하루에 선조들이 먹었던 음식에 그 의미가 깃들어있지 않으리 만무하다.

1년에 한 번 밖에 없지만, 매해 한 번씩 마주하게 되는 설 명절 상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면, 그리고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더욱 맛있고 즐겁게, 건강하게 설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차례상 [사진출처=aT]


▶‘하얗고 뽀얗게 새로 태어나라’=설 음식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 한다. 세찬 중에서도 설을 대표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떡국이다. 뽀얀 국물에 가래떡을 얇게 썰어넣고 고명을 얹은 떡국은 지금에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어쩌면 ‘슬픈’ 의미가 됐지만 사실 떡국에는 ‘하얗고 뽀얗게 새로 태어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한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떡국 속에 들어있는 셈이다. 길게 뽑은 가래떡을 썰어 넣은 떡국에는 장수의 의미까지 담겼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시풍속 자료에는 떡국을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음의 표시로 흰색의 떡을 사용한 것이며,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태 양의 둥근 것을 상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영양적으로도 떡국은 봄이 다가오는 겨울에 먹기에 최적의 음식이었다. 지금에야 사계절이 무관하게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그렇지 못했던 과거에는 겨우내 부족한 식량, 추위를 견뎌내느라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에 떡국만한 것이 없었다. 가래떡에 응집돼있는 탄수화물은 좋은 에너지원이었고, 필수 아미노산과 무기질이 풍부한 고깃국은 원기회복을 도왔다. 떡국에 올라간 계란 지단, 고기 등 고명은 단백질을 채웠다. 

떡국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의 ‘웰빙식의 최종진화, 세시음식-전통문화 속에 숨겨진 제철음식의 가치(2014.1)’에 따르면 지역마다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떡국을 즐겨먹었다. 바다를 낀 경상도는 굴떡국, 남해안은 미역생떡국, 전라도는 두부 떡국, 닭장 떡국, 충청도는 다슬기 국물로 만든 떡국이 유명하다. 이북 지방에서는 재물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동전 모양처럼 동그랗게 빚은 만둣국을 떡국보다 즐겨먹는다. 소고기 육수 대신에 산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꿩으로 육수를 낸 것도 이북 지방만의 특징이다. 지금도 강원, 충청 일원에서는 꿩으로 육수를 내거나 만두소를 만드는 재료로 꿩을 활용하기도 한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홍동백서, 조율이시, 두동미서=차례상의 메뉴얼은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찾아봐야 할 만큼 복잡하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 진설법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상을 바라봤을 때 맨 앞 줄에는 과일을 놓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바로 홍동백서, 즉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홍동백서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전해지는 데 그 중 하나가 음양오행설에 따라 동쪽을 더 길한 것으로 보고 붉은색의 음식이 더 좋고 자주 먹어야 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란 설이다. 서쪽에는 조율이시의 순으로 놓는데 이때 대추는 자손번창을, 밤은 세대간의 연결을, 감은 교육의 중요성을, 배는 우주의 중심을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둘 째 줄에는 채나 나물류를 넣는데 이때 좌포우혜라 해서 포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는다. 셋째 줄에는 탕을 놓는다. 탕의 수는 홀 수로 하고 양념에는 파와 마늘, 고추 등은 쓰지 않는다. 생선을 놓을 때는 두동미서라고 해서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하는데 여기에는 머리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좋은 것을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섯째 줄에는 국과 잔반, 밥을 올린다. 설에는 떡국을 올리고 떡은 오른쪽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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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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