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⑫ 나이토 겐지 한국닛산 대표 [중앙일보]

2010.07.03 00:22 입력 / 2010.07.03 00:22 수정

“냉면은 더위 이기고 입맛 돋우는 보양식”

나이토 대표가 직접 만든 비빔냉면을 선 보이고 있다. 조리대 위 그릇에 담긴 것은 그가 만든 물냉면이다. [정치호 기자]
“살얼음을 동동 띄운 물냉면은 요즘 같은 무더운 날씨에 그야말로 별미입니다.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면발과 새콤하면서 시원한 육수는 몸의 열을 식히고 더위를 이겨내는 데 최고의 음식이죠. 이번 여름에도 저만의 보양식인 물냉면 한 그릇으로 더위를 이겨보려 합니다.”

올 4월 서울에 부임한 한국 닛산 나이토 겐지(48) 대표이사는 주한 외국인 사회에서 열렬한 물냉면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가느다란 메밀 면에다 그 위에 올라가는 오이·동치미 무 등이 한데 어우러져 영양가가 풍부한데다 더위로 인해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입맛도 돋우는 데 냉면만큼 효과적인 음식도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본에도 물냉면과 맛과 모양이 비슷한 ‘소멘’이라는 맑은 가다랑어 포(가쓰오부시) 육수의 국수 요리가 유명합니다. 여름마다 이 소멘을 차갑게 해서 자주 즐겨먹곤 했는데 한국에서 물냉면을 접해보니 고향에서의 그때 그 맛이 저절로 생각납니다.”

평소 담백한 맛의 음식을 선호한다는 나이토 대표가 물냉면을 처음 맛본 것은 2008년. 당시 그는 닛산 글로벌 본사 중남미 총괄책임자로 일본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평소 한식당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불고기·비빔밥 등 그가 맛본 수많은 대표 한식 요리 중에서도 물냉면이 그의 입맛을 가장 사로잡았다고 한다.

나이토 대표는 “그때 시원한 물냉면 맛에 매료되어 한국에 온 뒤에도 줄곧 냉면집을 자주 찾았다”며 “일본 한식당에서 맛봤던 물냉면보다 한국의 원조 물냉면이 훨씬 맛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국 물냉면의 육수 맛이 더 진하고 부드러울 뿐더러 더 자연스러운 맛이 납니다. 이번에 물냉면 만들기에 도전한 이유도 전문가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아 집에서 나중에 직접 만들어 보기 위해서입니다.”

나이토 대표는 먼저 물냉면 위에 고명으로 올릴 오이와 동치미 무를 손질해 얇게 썬 뒤 오이에 소금으로 간을 했다. 나이토 대표는 평소를 요리를 별로 하지 않아 칼질이 서툴었지만 옆에서 그를 도와주던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의 권오성 주방장은 “거듭 연습을 하다 보면 요리 솜씨가 늘게 된다”며 응원했다. 이에 나이토 대표는 “요리를 직접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들을 많이 봐 왔다”며 “이 기회에 요리를 취미생활로 삼아봐야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권 주방장이 육수를 우려내기 위해 덩어리째 찬 물에 담가 핏물을 뺀 쇠고기 양지머리 부분을 끓는 물에 마늘과 함께 넣어 삶기 시작했다. 나이토 대표는 미리 끓인 육수를 동치미 국물과 함께 섞어 간을 하고 건져낸 양지머리 고기는 얇게 썰어 편육을 만들었다. 권 주방장은 가는 메밀 면을 적당히 삶은 뒤 찬 얼음물에 가볍게 헹궈서 사리를 만들고 준비된 육수를 듬뿍 붓고 삶은 계란·오이 등을 위에다 얹었다.

마침내 요리가 완성되자 나이토 대표는 권 주방장에게 비빔냉면도 요리법이 비슷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권 주방장이 즉석에서 고추 가루·마늘·깨·참기름 등을 넣어 다진 양념을 만든 뒤 사리 위에 얹었다. 나이토 대표는 “일본의 고추냉이(와사비)에 익숙해 매운 것도 잘 먹는다며 한국의 고추장 양념도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 뒤 비빔냉면부터 먹음직스럽게 비벼 한 입 크게 먹었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해외에 소개한다면 더운 여름에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한국의 음식문화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기는 만드는 요리법 그대로 만들어 소개를 해야 합니다.”

나이토 대표는 일부 외국에서 한식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것도 문제라며 그가 예전에 근무했던 남아공이나 뉴질랜드의 경우 “한국 음식이 고급스럽고 비싸 접근이 힘든 음식으로 인식되어 있다”며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에 있는 한식당만 해도 ‘야키니쿠(한국식 불고기)’를 먹으려면 1인당 최소한 7만원은 드는데다 김치·상추·깻잎 등 각종 밑반찬이나 야채 가격을 별도로 내야 한다”며 “한국에서처럼 다양한 밑반찬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편하고 대중적인 식당이 해외에 많이 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이토 대표는 현재 닛산과 인피니티 브랜드의 한국 내에서의 판매·마케팅·서비스 등 업무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글=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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