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히말라야

네팔 히말라야 이야기

17.04.11 13:57l최종 업데이트 17.04.11 13: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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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슴 시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슴팍에 들어온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울컥해졌다. 목젖 위까지 차오른 시린 마음에 짧은 몇 초의 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가이드가 볼세라 눈물을 훔쳤지만 목에선 딸꾹질처럼 '흡', '흡', '흡' 울컥한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이곳에 발을 디딘 사람이 수백 명, 수천 명일 수도 있는데 왜 이곳이었을까.
광활한 설산이 바로 눈앞에 있던 것도 아니요, 아름다움에 몸서리치게 만든 설산이 있던 것도 아니요.
그냥, 이 자리가 좋았던 것일까.
갖은 이유를 대며 설명하라면 할 수 있을까.
시린 가슴 들킬까 휴대폰을 꺼냈다.
촬영에 집중하다 어느새 감정은 사라져 버렸다. 불과 몇 초전이었는데
잃어버린 감정에 잠시 주춤했다.
아 그리워라, 시려라.

낭가르 타샹 낭가르 타샹 5600m
▲ 낭가르 타샹 낭가르 타샹 5600m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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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기몸살

감기 몸살에 몸져 누워 있었어요.
이틀 후면 떠나야 하는데 배낭 한 꾸러미 매고 저 높은 히말라야로 트레킹도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몸에선 식은땀이 멈추질 않고 입맛도 떨어졌어요.
약은 또 왜 그렇게 센 약을 줬는지 다시 잠들기 일쑤였지요.
네팔에 도착했어요.
아직도 몸살에 게스트하우스에 밖을 나가가기 힘들어요.
밥 먹고 기운차게 돌아다녀야 하는데 침대 이불안에서 꽁꽁 숨어 움직이질 못하고 있어요.
이틀을 그랬어요.
밖으로 나갔습니다.
쾌쾌한 먼지 뒤집어쓰고 너 나 할 것 없이 클락숀을 빵빵 거리는 비좁은 골목을 걷다
로컬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따뜻한 차가 필요했어요. 소량의 음식도 필요했지요.
밀크티를 시켰어요. 마살라의 향이 가득 담긴 밀크티였어요.
몸이 데워지더군요.
볶음면이 나왔습니다. 초우멘이라고 불리는.

초우멘 로컬식당 초우멘
▲ 초우멘 로컬식당 초우멘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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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너무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었답니다.
그제야 식당 안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겨워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정겨워요.
사람이 정겹고 음식이 정겹고 지나가는 자전거 오토바이마저 정겨웠으니까요.
네팔에 도착했나 봅니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타멜의 거리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루만 더 있으면 감기도 떨쳐낼 수 있을까요.?
히말라야는 어디에 있나요?
네팔에 오면 하얀 설산을 항상 볼 줄 알았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이겠죠.

타멜 거리 타멜 거리
▲ 타멜 거리 타멜 거리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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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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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즐거웠어요.
별들이 보였거든요.
우리는 취했어요.
여행에 취했고, 모닥불에 취했고, 여행 얘기로 물들어갈 때쯤 우리는
만취 상태였어요.
그래요. 여행지에선 나이도 성별도 중요치 않아요.
우리는 여행자니까요.

신혼부부가 있었어요.
네팔로 신혼여행을 왔어요.
내일이면 카트만두로 돌아간다 했어요.
아쉬워 하더군요.
우리는 말했어요.
그대들의 앞날이 신혼여행처럼 달콤한 삶으로 풍성해지기를
그날 밤 참 많이도 즐거웠네요.

우리 밤 모닥불
▲ 우리 밤 모닥불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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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름다워라

산에서 아침은 일상의 아침보다 좀 더 분주합니다.
배낭 하나에 나의 온갖 것들을 마구 집어넣고 새롭게 떠날 채비를 하니까요.
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죠.
이곳은 그렇게 장관이 펼쳐진다던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입니다.
새벽 5시 반에 일출을 보러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모두들 지금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인증샷을 남기고 눈에 담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도 몇 장 남겼습니다.
지독히도 외롭더군요. 곁에 사람이 있는데도 말이에요.
찬란한 해가 떠오르기 바로 직전인데 마음은 차갑도록 시리고 외로운 기분
저 해는 알까요? 내가 이토록 외로운걸.
그런데 왜 이리도 아름답지요.
구름이 아름답고 해 가 아름답고 사람마저 아름다워 보입니다.
마음은 외로운데 외로운 마음을 녹여줍니다. 이곳이.

이곳을 떠나기 전 롯지 주인이 해준 말이 있습니다.
손에 꼽히는 날씨 중에 하루 였다고.
날씨 복은 타고 났나 봅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일출
▲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일출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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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일출
▲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일출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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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 오는 날

비가 오는구나.
그래, 오늘은 쉬자. 까짓 거 내일도 쉬지 뭐.
무섭게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내려가고 싶었다.
'번다' 네팔 운전기사들 파업이란다.
내려갈 수도 없었다. 올라갈 수도 없었다.
나는 분명 오늘도 내일도 쉬려고 했는데
마음은 또 갈팡질팡  쉬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데 정말 편히 쉬고 있는데
마음은 쉬지 못한다.
이것도 병이다. 쉬라고 비까지 내려 주는데
왜 마음이 불편할 것일까.
그렇게 걸을땐 생각이 많아져 힘들었는데
이제는 누워만 있다고 생각이 많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감정이 휘몰아친다.
셀 수 없는 많은 감정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시키지도 않은 감정과 싸우고 있다.
고립되었다가 해방됐다가 다시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치다가
행복한 마음에 실소를 했다.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았다. 지금 이 감정을 놓치기 싫어 펜을 들었지만
이내 던져 버렸다. 무언가 떠올랐다고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해야 하는데 인위적이었던 게다.
비정상적일 때만이 정상이 보이고 부자연스러울 때 자연스러움이 보이는거다.
나는 지나치게 감성적이었다.

비 오는날 롯지에서 
란드룩
▲ 비 오는날 롯지에서 란드룩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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