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나는 십자가

                                      군사인가?

                                                                                                                             - 숀 아비가일


      "내가 선한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나는 십자가의 군사가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지나치게 낭만적인 시각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들은 선교사들, 설교자들, 전임사역자들, 장로들이 되기를 열망하는 신자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물론 그런 소원들을 갖는 것에 대해 성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그들이 거기에 들어가는 희생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리스도인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을 때, 성도들의 사랑과 지원을 얻고 있을 때, 어려운 일들을 맡고 있지 않을 때, 그와 같은 때들에 십자가의 군사가 되기란 쉬운 일입니다. 또한 고상한 포부를 갖고 드높은 묵표를 갖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우리 자신을 승리를 거둔 용사들로 또 훈장을 받은 장군들로 보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싸움터에 나가서 격전을 치러본 적이 있나요?


   많은 젊은 신자들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먼 나라에서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싸움터를 누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요? 그들은 새로운 지역에 가서 그곳의 유일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처절한 외로움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단 한 명의 회심자를 얻을 소망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오랜 세월을 힘들게 수고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복음을 환영하지 않는 나라에 들어가서 온갖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잃어진 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가정이 주는 위안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가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중 몇 명이나 거기에 투여되는 희생을 생각해 보았을까요?


   많은 젊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 합니다. 강단에 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로 인해 인기를 얻을 것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싸움터를 누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요? 그들은 몇 명 안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말씀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말씀을 전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몇 시간씩 차를 몰고 갔는데 그 집회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때의 심정을 알까요? 그들은 성경 연구와 말씀 준비에 수많은 시간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진리를 선포할 때마다 어김없이 거센 비난이 빗발치는 현장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사람들의 가려운 귀를 만족시키는 것을 거부함으로 인해 쏟아지는 비판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잔시의 최선의 노력을 다 쏟아 붓고도 묵살을 당할 뿐일 그런 현실을 예상하고 있을까요? 어떤 자매들은 말슴의 은사를 가진 형제와 결혼하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편이 아내가 아닌 메시지 준비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을 각오하고 있을까요? 그가 말씀을 전하기 위해 출타 중인 동안 아픈 자녀를 집에서 혼자 간호하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인내로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자가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중 몇 명이나 거기에 투여되는 희생을 생각해 보았을까요?


   많은 젊은 신자들이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고 싶어 합니다. 강단에 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로 인해 인기를 얻을 것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싸움터를 누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요? 그들은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말씀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말씀을 전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몇 시간씩 차를 몰고 갔는데 그 집회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때의 심정을 알까요? 그들은 성경 연구와 말씀 준비에 수많은 시간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진리를 선포할 때마다 어김없이 거센 비난이 빗발치는 현장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사람들의 가려운 귀를 만족시키는 것을 거부함으로 인해 쏟아지는 비판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자신의 최선의 노력을 다 쏟아 붓고도 묵살을 당할 뿐인 그런 현실을 예상하고 있을까요? 어떤 자매들은 말씀의 은사를 가진 형제와 결혼하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편이 아내가 아닌 메시지 준비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을 각오하고 있을까요? 그가 말씀을 전하기 위해 출타 중인 동안 아픈 자녀를 집에서 혼자 간호하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인내로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자가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중 몇 명이나 거기에 투여되는 희생을 생각해 보았을까요?


   많은 젊은 신자들이 전임사역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천거 받은 일꾼이 되어 섬기는 것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싸움터를 누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요? 그들은 한 해 두 해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까요? 그들은 세상의 안락함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재정적인 지원을 받다가 그 중 많은 액수가 지급 중단되는 상황에 처해도 여전히 줄기차게 진리를 증거할 각오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주님께서 때가 되었으니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서 그분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 그에 기꺼이 따를 마음을 갖고 있을까요?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훈련을 자신에게 실시할 의사가 있을까요? 그들은 밖으로 나가 번민하는 영혼을 만나기 위해 집안의 행사에 불참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임사역자가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중 몇 명이나 거기에 투여되는 희생을 생각해 보았을까요?


   많은 젊은 신자들이 장로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역교회의 장로가 되는 것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싸움터를 누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요? 그들은 똑같은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똑같은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처리해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들은 성도들에게 자기 가정을 개방할 준비가되어 있을까요? 나는 어떤 자매가 오랜 세월을 지역교회의 장로로 섬겼던 자기 남편에 대해 했던 다음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녀는 한밤중에 깨어서 남편이 잠자리에 없음을 발견할 때가 자주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방문을 열고 나가보면 남편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형제와 그의 아내는 날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곤 했습니다. 각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저마다의 특정한 필요를 아뢰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장로의 일에 대해 낭만적인 시각을 갖고 있나요? 우리는 장로란 그저 다른 성도들 위에 권위를 행사하는 이들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로가 되는 것의 의에 대해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중 몇 명이나 거기에 투여되는 희생을 생각해 보았을까요?


   우리 모두는 큰 섬김으로, 화려한 섬김으로, 주목을 끄는 섬김으로 주님을 섬기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섬김들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싸움터를 누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우리는 작은 일들에서 또 우리 자신에게 영광이 돌려지지 않을 사역들에서 충성을 다 바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그런 일들에 자신을 드릴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매주 주일학교에서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매주 주일학교에서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어떤 신자를 태워서 집회에 오게 하려고 옆동네까지 운전해서 다녀올 준비가 되어 있나요? 또한 매주 그렇게 차량을 운행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 신자를 집으로 태워다 주어야 하는 까닭에 친구들에게 가서 그들과 점심을 싸들고 소풍갈 시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나요? 우리는 예배당을 깨끗하게 청소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사고뭉치 십대들을 자기 가정에서 초대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이를 보면 그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려 하나요? 아니면 친구들과 같이 하키게임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싶어 하나요?  우리는 집회가 열리기 전에 말씀을 전할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인가요?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삶을 추구하는 까닭에 가족들의 섭섭하다는 말을 기꺼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잃어버려진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감옥과 병원과 요양원을 찾아가볼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불쌍한 이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는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는 것의 의미에 대해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중 몇 명이나 거기에 투여되는 희생을 생각해 보았을까요?


   오랜 기간의 충성스러운 섬김을 마친 후에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단 한 차례만 전투를 치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따금씩 전투를 치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회심하던 순간부터 죽음에 들어간 순간까지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확실하게 불살랐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들어가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사가 되고자 열망하는 모든 신자들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낭만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맹렬하며 희생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그러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할 수 있나요? *


   나는 예수 따라가는 십자가 군사라.

   주 이름 증거하기를 왜 주저하리요.


   다른 군사 피 흘리며 나가서 싸울 때

   나 혼자 편히 앉아서 바라만 보리요.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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