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

                                  외모지상주의에

                     망해가는 인생들이여. (3)

                                                                                                                                                      - 허윤욱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창 29:30).


   오늘날 우리들의 눈앞에 보이는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가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기독교는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와 전혀 다르다. 먼저 이것을 밝혀 두는 바이다. 사람들이 기독교의 어두운 면을 보고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것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성경은 분명히 개인이 하나님을 만나야 할 이유를 선포하고 있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멸망의 지옥과 영생의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운명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 중에 하나가 그대의 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진리를 깨닫거나 전도자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 영생의 천국에 가야 하는데 기독교의 잘못된 부분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적대감을 가지고 반대하다가 하나님 만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필자는 이 일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눈물과 아픔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음에도 오늘날 기독교의 타락된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기독교를 떠나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원하는 일이요 사탄의 정책에 춤추는 일임을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멸망의 지옥으로 사탄과 함께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통째로 매도되는 부분도 있기에 안타깝지마는 기독교의 대다수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세상은 겉만 보고 판단하여 망하고 고생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인생들은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진실을 알지 못하여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인생들의 고뇌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외모로 판단하여 오해하고 오해는 분쟁을 일으키고 분쟁은 미움과 고통과 실패를 만들어낸다. 크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어느 곳이나 이것이 문제가 되어 수많은 아픔을 만들어내고 세상을 혼란스럽고 피곤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인생의 길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길에서 외모를 취하는 일은 영원히 망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기에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에게 외모로 선택하는 본성이 있어 고생하며 대가를 받는 것은 야곱의 생애를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야곱은 이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평생에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살펴 본대로 레아는 라헬보다 외모에서 뒤쳐졌지만 신앙에 있어서나 인품에 있어서 라헬을 앞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야곱이 평생 동안 라헬에게 집착하는 것은 차라리 슬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야곱은 그 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음에도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질 때까지 라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였다.

   서두에 기록한 말씀처럼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무료봉사하는 희생을 치러야 하였다. 그것은 순전히 야곱의 결정에 대한 고생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함이나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외모를 택하는 것이 얼마나 자기에게 고통이 되며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아는가? 외모로 취하는 것은 고통의 시작점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사람은 외모로 취하는 열매로 평생 고통을 하다가 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외모로 취하는 일로 인하여 본인이 손해를 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 슬픈 인생이다.

   사람이 진실을 보지 못하고 외모를 보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이 가능할 것이나 그중에 중요한 이유는 욕심이라고 생각된다. 욕심은 집착을 낳아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관계로 옳은 것을 보아도 판단력이 흐려져서 잘못된 길을 옳은 길로 알고 가는 것이다. 야곱이 아내 라헬에게 얼마나 집착하였는가. 그를 사랑하되 주변의 사람들이 질투하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집착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아내에게 집착하여 고통당하고 아내가 베냐민을 낳다가 죽자 그 집착이 요셉에게로 옮겨져 그에게 독특한 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요셉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그의 동생 베냐민에게 집착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요셉과 베냐민은 라헬이 남긴 그림자인 것이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비우고 자기를 레아 옆에 묻으라고 유언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일찍 집착에서 벗어났어야 하였다. 그랬으면 그는 고난에서 일찍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 무서운 집착을 보면서 오늘날 자기의 욕심에 집착하여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소경들을 생각하고 있다. 욕심에 눈이 가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하나님께 나오지 않는 인생들이 이글을 읽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눈이 열리기를 기도한다.

   몇 가지 집착하는 욕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문제는 물질 문제임을 볼 수 있다. 사람에게 돈이 필요함을 다시 말하여 무엇하랴. 그러나 인간이 돈으로 인하여 바른 것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살인을 하거나 어처구니없는 죄를 지을 때에 돈에 눈이 어두워 죄를 지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돈에 눈이 가리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돈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진리를 분별할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사리분별을 할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필자는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서운 현실을 생각하며 통탄한다. 만약 필자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이방인이었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는 기독교 현실을 보고 하나님을 부인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기독교인들로 인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몇 가지 외부로 나타난 기독교 모습과 내부에 감취어진 진실을 살펴보면서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데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종파주의다. 여러 교파가 나뉘어서 서로 옳다고 싸우고 감투싸움을 하는 모습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상한 현상이다. 초대교회 고린도 교회에서도 분당현상이 있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어떻게 대처 하였는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0).

   고린도 교회는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개척자 바울, 바울 이후에 섬겼던 아볼로 그리고 베드로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온전히 그리스도만 좇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분쟁을 책망하면서 사람 중심의 교회를 만들어가면 안 된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 시대에 바울이 오면 동일하게 오늘날 사람 중심의 종파주의를 책망할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 수백 개인지 수천 개인지 모르는 교파들을 보면서 식상하여 신앙을 그만 둔 사람들을 목격하였다. 성경에는 고린도지역에 고린도 교회, 에베소 지역에 에베소교회처럼 지역 이름을 붙이는 외에 아무것도 없다. 지역교회 앞에 붙이는 수식어는 아무것도 없다. 교회 안에 성경에 준한 장로가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러나 장로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감독이 성경에 있으나 감리교회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성결하여야 하지만 성결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침례를 주어야 하지만 침례교회는 성경에 없다. 교파의 벽은 무너져야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교파도 교파의 흔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경에 없는 잘못된 기독교의 외형은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켜 지옥으로 가게하고 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안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바깥에서 집을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국의 기독교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각 종파는 조직이 생기니까 거기에 따른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감투싸움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부조리와 문제들이 성경을 진심으로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분열된 고린도 교회를 눈물로 책망하였던 바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의 책망을 따라 회개하여야 한다.

   두 번째로 외향적인 것은 헌금 문제이다. 성경은 헌금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무기명을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이 문제에 관하여 원칙적인 것을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 6:1). 헌금을 하든지 개인적인 봉사를 하든지 성경은 은밀하게 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 앞에서 나팔을 부는 것은 유치한 발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얼마를 누가 했는지 사람이 알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집사들이 헌금을 잘 관리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에서 전개되는 실상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다. 봉투에 이름을 기록하여 헌금함으로, 헌금을 내지 않거나 낼 수 없는 사람은 교회에 붙어있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유치한 현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생각하여 보라. 봉투에 이름을 쓰면 하나님이 알아보고 축복하고 안 쓰면 누군지 몰라 축복을 못하시는 하나님이신가? 오늘의 헌금은 사람에게 할 뿐이다.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다. 가난한 자가 교회에 붙어 있을 수 없는 현실은 참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기막힌 일이다. 한국의 교회는 회개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타락한 외형적 모습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를 떠나거나 기독교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일들이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누구 하나 이 일을 통한히 여기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슬프다. 사탄은 메스컴을 통하여 이와 같은 기독교 현실을 부지런히 전파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역사하고 있다. 그리고 무지한 사람들은 사탄의 전략대로 기독교를 비방하며 하나님을 멀리한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참모습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아무런 죄도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유는 인간들이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의 고난을 선택하신 것이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 2:22).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한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사형을 받으셔야 했느냐 하는 것이 성경의 핵심이다. 당시의 재판 책임이 있는 빌라도의 입으로 세 번이나 무죄 판결을 받고도 억울하게 십자가 형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예수님이시다. 군중들은 무지한 소란으로 사형을 요구했으며 유대 지도자들은 뒤에서 그들을 부추겨 사형을 이끌었다. 예수님은 사형을 피할 명분도 능력도 자격도 있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셨다. 왜 그랬을까.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십자가에 사형을 피할 이유가 충분 하였지만 주님은 십자가 사형을 피하지 않으시고 죽으셨다. 이유는 우리 모든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자 하는 거룩한 뜻이었다. 인생들은 죄 속에서 태어나 결국 죄 값을 치루는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하는 운명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비참한 운명에서 우리를 건지시고자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셔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이다. "...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죄에 매여 고생하다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하여 순순히 자원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시다. 그 십자가의 고난으로 인하여 죄에서 해방 받아 지옥을 면한 그리스인들이 교파에 상관없이 명예도 상관없이 주님을 자원하여 섬기며 헌금을 드리며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기독교의 참된 모습이다. 이름을 쓰지 않아도 기쁘고 즐겁게 헌금을 드리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 외형적인 모습에 관계없이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교회가 이 땅에 있는데 대다수 잘못된 기독교로 인하여 저들이 함께 정죄 당하는 것을 필자는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기독교의 타락된 외모를 보고 절망하다가 지옥에 가는 이 땅에 시들어가는 영혼들을 보면서 가슴 아픈 고통을 금할 수 없다. 부디 겉으로 보이는 기독교 말고 성경의 진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진실을 깨달아 영생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요 16:7).*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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