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여인들]
사라의 여종 하갈
- 임용민
아브라함과 사라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지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10년 전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 땅을 너와 네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줄 것과 아브라함으로 모든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과 그리고 아들을 주어 그 아들로 아브라함의 언약의 상속자가 되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 같이 셀 수 없는 후손들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태를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기다리다 지치고 생산능력까지 잃게 된 사라가 더욱 초조했습니다.
사라는 남편에게 자신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삼아 아들을 낳을 것을 제의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잠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결국 아내의 권고를 따라 하갈을 그의 첩으로 취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한 때 가뭄을 피하여 잠시 애굽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이 애굽소녀를 아내 사라를 위한 여종으로 산 듯 합니다. 하갈이란 이름은 "나그네" 혹은 "행인" (stranger)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하갈이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녀의 태도가 돌변하여 자신의 주모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라" (잠 30:21-23). 그러나 어찌하랴! 그녀를 남편의 품에 안겨준 것이 바로 사라 자신의 실수인 것을,,, .
사라도 여인인지라 여종의 수모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라는 하갈을 심히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한 하갈이 도망하여 애굽으로 향하는 광야 길에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하여 하갈에게 은혜를 나타내신 것으로 믿습니다. 천사는 하갈에게 다시 옛 주모에게로 돌아가 그녀에게 순종하라고 권했습니다. 결국 다시 돌아온 그녀는 아브라함 86세에 이스마엘(하나님이 들으심)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 13년 후,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 사라의 잉태소식을 전해줍니다. 부엌에서 이와 같은 천사의 말을 듣고 사라는 속으로 웃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실소라고 하지요. 가능치도 않은 일로 여겼던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늙은 사라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90세에, 그리고 아브라함 100세에 마침내 아들 이삭(웃음)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로서 약속의 후사가 될 것을 믿고 있던 하갈과 이스마엘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추측컨대 하갈은 그의 아들 이스마엘에게 이렇게 누누이 강조했을 것입니다. 비록 어린 이삭이 태어났을지라도 "이 집의 장자는 바로 너" 라고 (무슬림들은 여전히 그렇게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스마엘도 이삭에 대해 멸시와 좋지 않은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삭의 젖 떼는 잔치석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이를 본 사라는 곧 남편 아브라함에게 여종과 그 종의 자식을 쫓아내도록 강력히 요구했습니다(참고, 갈 4:30).
이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근심하게 되었으나 결국 아내의 말을 따라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물 한 자루를 어깨에 메워 내어보냈습니다. 곧 그들은 사막을 헤매이다가 길을 잃고 물이 떨어져 아이가 죽게 될 때에 크게 소리쳐 울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천사를 보내어 그들의 눈을 열게 하시고 한 샘물을 발견케 함으로 그들의 생명을 구해주었습니다.
이제 오늘 하갈의 이야기 중에서 생각해야 할 고훈은 첫째로 하갈이 자신이 임신함을 알고 주모를 멸시한 것은 율법이 은혜의 복음을 멸시하고 배척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얼마나 멸시했습니까? 사도바울은 이 율법주의적인 유대인들을 계집 종 하갈의 자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갈 4:21-28). 그러므로 오늘날 아직도 율법을 자랑하고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을 멸시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역시 계집 종 하갈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둘째로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갈 4:29-31). 결국 예수님의 죽음도,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고난과 죽음도, 그리고 많은 의로운 성도들의 핍박과 순교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오. 나는 아직도 종의 여인 하갈에게 속한 자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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